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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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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강유위(康有爲)는 근대 중국의 저명한 학자이자 정치가이며, 청나라 말기에 개혁 이론에 기초한 무술변법(戊戌變法)을 주도한 변법 사상가이다. 본서는 광서(光緖) 23년(1897)에 21권 10책으로 처음 간행되었다. 《신학위경고 新學僞經考》·《대동서(大同書)》와 함께 강유위의 3대 대표 저작으로 일컬어지며, 이 세 책은 강유위가 추진했던 변법 이론의 핵심 사상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사회와 사상계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친 작품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공자고제고》는 강유위 변법과 개혁 사상의 이론적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책이다. 그는 이 책을 이론적 근거로 삼아 변법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주장하고, 나아가 개혁의 방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려고 했다. 또한 공자의 제도 개혁을 자신의 변법운동과 등치시킴으로써 공자의 권위를 빌어 개혁의 설득력을 높이는 데 적극 활용하였다.

2. 저자


(1) 성명:강유위(康有爲)(1858~1927)
(2) 자(字)·별호(別號):원명은 조이(祖詒), 자는 광하(廣夏), 호는 장소(長素)·경신(更甡)·서초산인(西樵山人)·유존수(游存叟)·천유화인(天游化人) 등. 별칭은 남해선생(南海先生) 또는 강남해(康南海).
(3) 출생지역:광동성(廣東省) 남해현(南海縣)
(4) 주요활동과 생애
강유위는 청나라 말기 무술변법(戊戌變法)을 주도한 인물이다. 자신의 고향에 만목초당(萬木草堂)이라는 사숙(私塾)을 열고, 강연과 저술 등을 통해 변법유신에 대한 정치적 성향을 표출했고, 양계초(梁啓超)·진천추(陳千秋) 등의 뛰어난 제자들을 배출했다. 그 후 북경(北京)과 상해(上海)에서 면학회(勉學會)를 조직하여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전개했다. 1895년 청일전쟁에서 패배하자, ‘공거상서(公車上書)’를 올려 변법의 실시를 주장했고, 1897년에는 서구 열강의 침략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의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배워 입헌군주제의 근대 국가로 개혁해야 한다는 상서를 올리기도 했다. 다음해인 1898년에는 그의 ‘변법자강책(變法自彊策)’이 광서제(光緖帝)에게 수용되어 무술변법(戊戌變法)이라는 개혁을 직접 주도했다. 그러나 100일 남짓한 기간 만에 원세개(袁世凱)의 배반과 서태후(西太后)를 중심으로 한 보수파의 쿠데타로 ‘100일 변법’으로 끝나버렸고, 양계초 등과 함께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망명 생활 중에 보황회(保皇會)를 조직하여 황제의 복위를 시도하거나 공교국교화(孔敎國敎化) 운동을 벌이기도 했지만, 결국 모두 실패로 끝났다. 1913년 중국으로 돌아온 이후에는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고 지내다가 1927년에 세상을 떠났다.
(5) 주요저작:《신학위경고(新學僞經考)》, 《공자개제고(孔子改制考)》, 《대동서(大同書)》, 《춘추동씨학(春秋董氏學)》, 《예운주(禮運注)》, 《중용주(中庸注)》, 《맹자미(孟子微)》, 《논어주(論語注)》, 《춘추필삭미언대의고(春秋筆削微言大義考)》 등. 그의 저서는 강의화(姜義華)·장영화(張榮華)의 편교(編校)를 거쳐 간행된 《강위유전집(康有爲全集)》(중국인민대학출판사, 2007)에 모두 실려 있다.

3. 서지사항


《공자개제고》가 편찬된 과정은 그가 직접 쓴 《강남해자편연보(康南海自編年譜)》(《강유위전집》에는 제목이 《아사(我史)》로 되어 있다)를 참조하면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 이 책은 광서(光緖) 18년(1892)에 본격적인 편찬 작업이 시작되었고, 광서 24년(1898)에 세상에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세부 집필 과정을 살펴보면, 책의 초고가 처음으로 작성된 것은 광서 12년(1886)이다. 그 후 집필 작업이 계속되다가 광서 18년(1892)에 제자들의 도움을 받아 체계적인 편찬 작업을 진행했다. 책의 편찬 작업에 함께 참여한 인물은 강유위의 제자인 진천추(陳千秋)·조태(曹泰)·양계초(梁啓超) 등이다. 그리고 광서 23년(1897) 겨울에 상해(上海) 대동역서국(大同譯書局)에서 《춘추동씨학(春秋董氏學)》·《일본서목지(日本書目志)》와 함께 21권 10책으로 처음 간행되었다. 책의 〈서문〉은 광서 24년(1898) 1월 28일에 작성되었는데, 그 해 강유위가 공교회(孔敎會)를 결성하여 이 책을 황제에게 바침으로써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 해에 강유위가 주도했던 무술변법(戊戌變法)이 실패로 돌아가자, 이 책은 《신학위경고》 등과 함께 1898년과 1899년 두 차례에 걸쳐 소각 및 간행 금지 처분을 받았다. 그 이후 1913년에 간행된 《불인(不忍)》 잡지에 분기별로 나누어 다시 기재되었고, 《만목초당총서(萬木草堂叢書)》 속에 포함되어 1920년과 1923년 두 차례 상해와 북경에서 중간되었다.
청나라 광서 연간에 내부(內府)에서 간행한 필사본은 현재 중국의 고궁박물관(古宮博物館)에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현재 통행되는 판본은 총 네 종류이다. 중화서국(中華書局) 판본(1958), 만목초당총서(萬木草堂叢書) 판본(《民國叢書》 第四編3, 上海書店, 1989), 중국인민대학출판사(中國人民大學出版社) 판본(薑義華․張榮華 編校, 《康有爲全集》 제3집, 2007), 중국인민대학출판사(中國人民大學出版社) 판본(國學基本文庫, 2010) 등이다.

4. 내용


《공자개제고》의 핵심 내용은 책의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공자의 제도 개혁[改制]을 실증적으로 고증하는 것이다. 공자가 탁고(託古)라는 형식을 통해 고대 중국의 문명을 새롭게 창립했으며, 그것이 한(漢)나라 무제(武帝) 이후 중국 전체에 파급되어 중화(中華)의 사상과 문화로 정착되었다는 논리이다. 이 작업을 통해 강유위는 중국 고대 문명의 실체를 밝히고, 중화 문명의 총체인 유교를 창립한 공자의 위대성을 최대한 부각시키려고 시도했다. 나아가 공자의 제도 개혁과 대동(大同)의 이상 세계를 자신이 추진하는 개혁의 목표로 삼았다.
강유위가 추구했던 태평과 대동의 이상 사회 건설은 세 단계의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그의 대표 저서인 《신학위경고》·《공자개제고》·《대동서》가 바로 각 단계별 추진 내용과 방향을 정립한 책이다. 가장 먼저 봉건체제에 물든 낡은 사회구조와 의식을 타파하는 것이 첫 단계이다. 강유위는 기존 정치와 문화의 폐습은 모두 전통왕조에서 바이블로 받아들여지던 위조 경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파악했다. 따라서 위조 경전의 허위성을 폭로하여 개혁의 장애를 제거하는 것이 개혁의 시작이며, 그것은 바로 태풍으로 비유된 《신학위경고》를 통해 진행되었다. 다음 단계는 중국에서의 개혁과 이상 사회의 건설이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실현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단계이며, 그것은 바로 화산 대폭발로 비유된 《공자개제고》를 통해 진행되었다. 공자의 유교 창설과 탁고개제(託古改制), 유교에 의한 중국의 사상 통일의 전 과정을 실증적으로 고증함으로써 자신이 추구하는 태평과 대동의 세상이 실현 가능한 세계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마지막 단계는 태평과 대동이 실현된 미래 중국의 모습을 미리 구현해보는 것이며, 그것은 바로 대지진으로 비유된 《대동서》를 통해 기획되었다. 이 세 단계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는 개혁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불가결한 조건인데, 그 이론적 근거가 되는 것이 바로 《공자개제고》이다.
따라서 《공자개제고》는 강유위가 추구한 개혁운동의 슬로건을 상징적으로 대변할 뿐만 아니라, 개혁의 토대이자 핵심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전체 목차를 살펴보면, 강유위가 주장하고자 하는 핵심 주장이 무엇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책 전체가 마치 체계적으로 작성된 하나의 논문과 같은 형식을 띠고 있는데, 그 핵심 주제를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다. ①상고시대의 불확실성에 대한 논증, ②제자백가의 교설 창립과 탁고개제(託古改制), ③공자의 유교 창립과 제도 개혁, ④육경(六經)과 탁고개제, ⑤유교와 제자백가의 투쟁, ⑥유교의 전파와 사상 통일이다. 공자가 유교를 창립하여 제도를 개혁하였고, 그 이후 제자백가와의 사상 투쟁을 거쳐 유교의 전파와 사상 통일이 완성되는 과정이 전체 목차에 일목요연하게 드러난다.

5. 가치와 영향


양계초(梁啓超)(1873~1929)는 강유위의 3대 저서를 평가하면서, 《신학위경고》는 태풍, 《공자개제고》는 화산 대폭발, 《대동서》는 대지진에 비유하였다.(《청대학술개론(淸代學術槪論)》) 이와 같이 《공자개제고》는 당시의 정치와 학술계에 매우 큰 파장을 일으킨 대작이다. 강유위가 이 책에서 유교 창립과 제도 개혁을 강하게 주장한 것은 그의 정치적 활동과 긴밀한 연관을 가진다. 즉 “강유위가 특별히 그것을 기치로 삼아 적극적으로 변법운동을 공감하는 사람들과 군중을 끌어당기고, 단결하여 조직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李澤厚, 《中國近代思想史論》) 또한 강유위는 자신을 공자에게 투영함으로써 공자가 추진했던 개혁과 대동 세계의 이상을 자신의 당대에 실현하고자 열망했다. 따라서 이 책의 개혁 이론은 공양학파의 전통적인 개제 이론과 그 맥을 같이하지만, 현실에서의 직접적인 접목을 추진했다는 점에서 역사진화론의 실천적 적용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양계초는 강유위의 개제 이론을 기존 공양학자들과 차별화하여, ‘일종의 정치 혁명 또는 사회 개조의 의미’(《청대학술개론》)라고 평가했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성인의 제도가 막 움트기 시작할 때, 신(新)나라 왕망(王莽) 시대의 유흠(劉歆)이 출현하여, 위조된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이 성행하고 고문경전이 제멋대로 난립하였다. 이에 공자의 경전을 주공(周公)의 작품으로 깎아내려 버렸고, 성왕으로서의 공자의 지위를 선사(先師)로 강등시켜 버렸다.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의 학문이 폐기되고, 개제(改制)의 의리가 사라졌으며, 삼세(三世)의 학설이 미미해지고, 태평의 정치와 대동의 복지가 깜깜하게 밝혀지지 않고 꽉 막힌 채 드러나지 않게 되었다.[聖制萌芽 新歆遽出 僞左盛行 古文纂亂 於是削移孔子之經而爲周公 降孔子之聖王而爲先師 公羊之學廢 改制之義湮 三世之說微 太平之治 大同之樂 暗而不明 鬱而不發]” 〈공자개제고서(孔子改制考敍)〉
‧ “아! 대동과 태평의 정치를 만나보는 것은 마치 공자가 다시 살아나는 것과 같은 의미일 것이다. 《공자개제고》가 완성된 시점은 공자가 태어난 시대와는 2,449년의 시간적 거리가 있다.[嗟夫 見大同太平之治也 猶孔子之生也 孔子改制考成書 去孔子之生二千四百四十九年也]” 〈공자개제고서(孔子改制考敍)〉
‧ “제자백가들이 제도 개혁의 이론을 주장한 것이 분명한데, 하물며 위대한 성인으로 문물제도를 만든 공자가 혼란한 세상을 가만히 좌시한 채, 어찌 제도를 개혁하여 난리를 바로잡아서 올바른 상태로 되돌리려고 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諸子之改制明 況大聖制作之孔子 坐睹亂世 忍不損益 撥而反之正乎]” 〈제4권 제자개제탁고고(諸子改制託古考)〉
‧ “모든 지구상의 교주(敎主) 중에서 제도를 개혁하고 법도를 세우지 않은 사람이 없다. 제자백가들도 이미 모두 그러했다. 중국의 의리와 제도는 모두 공자에 의해 세워졌으며, 제자들은 그의 도를 전수받고 그의 교설을 전함으로써 그것을 천하에 실행하고, 옛 풍속을 바꾸었다.[凡大地敎主 無不改制立法也 諸子已然矣 中國義理制度 皆立于孔子 弟子受其道而傳其敎 以行之天下 移易其舊俗]” 〈제9권 공자창유교개제고(孔子創儒敎改制考)〉
(2) 색인어:강유위(康有爲), 공자개제고(孔子改制考), 탁고개제(託古改制), 공자개제(孔子改制), 제자개제(諸子改制), 육경(六經), 유흠(劉歆)
(3) 참고문헌
‧ 康有爲全集(姜義華·張榮華 編校, 中國人民大學出版社, 2007)
‧ 孔子改制考(康有爲, 中華書局, 1958)
‧ 淸代學術槪論(梁啓超, 《飮氷室合集》8, 中華書局, 1990)


【김동민】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0.08.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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