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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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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책부원귀(冊府元龜)》는 1,000권으로, 송(宋)나라 왕흠약(王欽若)·양억(楊億) 등이 황제의 명을 받고 편찬한 관찬유서(官纂類書)이다.

2. 편자

(1) 성명:왕흠약(王欽若)(962~1025)·양억(楊億)·이유(李維)·전유연(錢惟演)·하송(夏悚)·손석(孫奭) 등
(2) 자(字)·별호(別號):왕흠약의 자는 정국(定國)이다.
(3) 출생지역:왕흠약은 임강(臨江) 군신유(軍新喩)(현 강서성(江西省) 신여(新餘)) 사람이다.
(4) 주요활동과 생애
순화(淳化) 3년(992)에 진사(進士)에 급제하고 지제고(知制誥)·한림학사(翰林學士)를 역임하였다. 진종(眞宗) 초년 함평(咸平) 4년(1001)에 참정지사(參知政事)가 되었다. 경덕(景德) 원년(元年)(1004)에 거란(契丹)이 대거(大擧) 남하(南下)하여 영주(瀛州)(현 하북성(河北省) 하간(河間))를 포위하고 패(貝)(현 하북성 청하(淸河) 서쪽)·위(魏)(현 하북성 대명(大名) 동쪽)에 접근하자, 그는 비밀리에 진종에게 금릉(金陵)(현 강소성(江蘇省) 남경(南京))으로 갈 것을 건의하였으나 재상 구준(寇準)의 제지를 받았다. 구준과의 불화로 사직을 하고 《책부원귀》의 책임 찬수(纂修)를 요구하였다. 진종과 구준의 관계를 힘써 이간시켰으며 ‘전연(澶淵)의 맹(盟)’을 굴욕적인 강화(講和)로 비난하여 구준을 재상에서 물러나도록 했다. 대중상부(大中祥符) 연간에 그는 진종에게 영합하기 위해 천서(天書)를 만들고 부서(符瑞)를 바치고서 태산에서 제사를 지냈다. 이로부터 진종의 신임을 깊이 얻게 되었다. 대중상부 5년(1012)에 추밀사(樞密使)·동평장사(同平章事)가 되었다. 천희(天禧) 원년(1017)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 겸 중서시랑(中書侍郎)에 올랐다. 천희 3년(1019)에 재상에서 파직되어 항주(杭州)로 나갔다. 인종(仁宗) 천성(天聖) 원년(1023)에 다시 재상이 되었다. 그의 체구가 작고 목에 사마귀가 있어 당시 사람들은 ‘혹 재상[癭相]’이라고 불렀다. 그는 지혜와 술수가 아주 뛰어났고 간교하면서 위선적이며 황제의 뜻에 잘 영합하였다. 정위(丁謂)·임특(林特)·진팽년(陳彭年)·유승규(劉承珪) 등과 결탁하였으니, 당시 ‘오귀(五鬼)’로 불렸다.
(5) 주요저작:왕흠약의 저서로는 《노부기(卤簿记)》, 《동관의범(彤管懿範)》, 《천서의제(天書儀制)》. 《성조사적(聖祖事跡)》, 《익성진군전(翊聖眞君傳)》, 《오악광문기(五嶽廣聞記)》, 《열수만령조진도(列宿萬靈朝眞圖)》, 《나천대초의(羅天大醮儀)》가 있다.

3. 서지사항

진종(眞宗) 조항(趙恒)은 경덕(景德) 2년(1005) 9월에 왕흠약·양억·이유(李維)·전유연(錢惟演)·하송(夏悚)·손석(孫奭) 등에게 역대 군신(君臣)들의 미덕을 모아 이 책을 편집토록 명하였는데, 당시는 서명을 《역대군신사적(歷代君臣事跡)》이라고 정하였다. 대중상부 6년(1013) 8월에 편찬을 완성하여 《책부원귀》로 서명을 바꾸었다. ‘책부(冊府)’는 제왕의 책 소장처(所藏處)를 가리킨다. ‘원귀(元龜)’는 큰 거북이라는 뜻으로, 고인(古人)들은 거북이로 점을 쳐 국가대사를 예견하고 길흉을 예측할 수 있다고 여겼는데, 그것이 인신(引伸)되어 ‘귀감(龜鑑)’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즉, 이 책 내용은 후세 제왕들이 국가를 다스리는 데 귀감이 된다는 뜻이다.
《책부원귀》의 판본으로는 명(明) 숭정(崇禎) 15년(1642) 예장(豫章) 황국기(黃國琦) 간본(刊本)이 있다. 1960년 중화서국(中華書局)에서 이 판본을 영인하였는데, 권수(卷首)에 〈유목색인(類目索引)〉을 덧붙여 검색에 편리하도록 하였다. 이것이 현재 가장 좋은 판본이다.

4. 내용

이 책의 내용은 정치사실을 위주로 하고 아울러 기타 경제·군사·사회·문화 등에 미치고 있어, 한 부의 역사적 성격을 지닌 유서라고 할 수 있다. 모아놓은 자료들은 정경(正經)·정사(正史) 위주로 되어 있으며, 아울러 당(唐)·오대(五代)의 실록과 조령(詔令)·주의(奏議) 및 《국어(國語)》·《전국책(戰國策)》·《관자(管子)》·《안자춘추(晏子春秋)》·《여씨춘추(呂氏春秋)》·《한비자(韓非子)》·《회남자(淮南子)》 등도 있다. 또한 고대 기타 유서로부터 뽑은 자료도 있다. 소설·잡서들은 일률적으로 수록하지 않았다.
이 책은 31부(部), 즉 제왕(帝王)·윤위(閏位)·참위(僭僞)·열국군(列國君)·저궁(儲宮)·종실(宗室)·외척(外戚)·재보(宰輔)·장수(將帥)·대성(臺省)·방계(邦計)·헌관(憲官)·간쟁(諫諍)·사신(詞臣)·국사(國史)·장례(掌禮)·학교(學校)·형법(刑法)·경감(卿監)·환위(環衛)·전선(銓選)·공거(貢擧)·봉사(奉使)·내신(內臣)·목수(牧守)·영장(令長)·궁신(宮臣)·막부(幕府)·배신(陪臣)·총록(總錄)·외신부(外臣部)로 나누어져 있다. 각 부 아래는 다시 문류(門類)로 분류하였는데, 총 1,104문(門)으로 되어 있다. 각 부에는 총서(總序)가 있는데, 해당 부의 사적(事跡) 연혁을 평술(評述)하고 있어 한 편의 小史와 같다. 총서의 자수(字數)는 많게는 수천 자가 되며 적게는 수백 자가 된다. 부 아래의 문목(門目)에는 각기 소서(小序)가 있는데, 해당 소류(小類)의 내용을 논술하였다. 자수가 수백 자에서부터 수십 자까지 일정하지 않다. 이러한 총서와 소서는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유 등 6명이 지었는데, 최종적으로 양억의 손을 거쳐 문장이 세련되고 의미가 완벽해졌다고 한다. 이것들은 꽤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열거한 역대 인물의 사적 및 조령·주의는 모두 전체 장절(章節)로서 원문을 수록하고 고치지 않았으며, 문장 중의 속된 말도 없애지 않았다. 그래서 이 책은 수(隋)·당·오대의 많은 사료(史料)의 진면목을 보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5. 가치와 영향

《책부원귀》는 본래 황제가 독서하면서 옛것을 살펴보는 데 편리하게 하기 위해 편찬한 것인데, 오히려 후인들에게 풍부한 사료를 남겨주었다. 이 책은 체재가 대단히 잘 갖추어져 있는데, 상고(上古)로부터 오대에 이르는 17사(史)에 대한 자료를 인물과 사물에 의거해 분류·배열하고 있어 매우 조리가 있다. 몇천 년의 사실(史實)로 하여금 하나로 연관되게 하였으니, 다른 책에서는 보기 드문 특색을 지니고 있다. 전체 940여만 자로 되어 있는 이 책은 송조(宋朝) 최대의 유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이 인용한 사료는 비교적 풍부하며, 특히 집록(輯錄)한 사적(史籍)은 모두 북송(北宋) 이전의 고본(古本)이다. 당·오대의 사실은 더욱 상세하여 수·당사 연구자들의 고증에 제공될 수 있다. 이미 실전(失傳)된 많은 사료들을 싣고 있는데, 이러한 사료들은 서사(史書)를 교정하거나 역사를 보충하는 데 사용될 수 있으며, 아울러 집일(輯逸)과 교감(校勘) 작업에도 사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이를테면, 청대(淸代) 사람 유문기(劉文淇) 등은 일찍이 《책부원귀》로 《구당서(舊唐書)》를 교감하여 자못 성과를 거두었다.
단지 인용한 서적에 대해 출처를 명기하지 않은 사실이 하나의 결점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이용할 때는, 책의 내용에 근거하여 상·하 문장의 의미를 분석하거나 혹은 책에 나오는 인명·조대명과 역사 사실로부터 실마리를 찾아냄으로써 그것이 어느 책으로부터 나왔는지를 미루어 알 수 있는데, 그런 후에 다시 현행 서적을 이용하여 교감을 진행함으로써 그 취사를 결정하면 된다.
《책부원귀》는 고려(高麗) 때 이미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고려 선종(宣宗) 10년(1093), 송나라에 사신 황종각(黃宗慤)을 보내 《황제침경(黃帝鍼經)》을 바치고 많은 책을 사기를 청하였으나 소식(蘇軾)이 반대하였는데, 후에 이 책을 구해왔다.(《송사(宋史)》 권487·〈열전(列傳) 246 외국(外國)3 고려(高麗)〉 참조) 우리나라의 《규장총목(奎章總目)》 유사류(類事類)에는 중국본 유서 32종(유서가 아닌 책도 있음)이 저록되어 있는데, 《책부원귀》가 그중의 하나에 속한다.

6. 참고사항

(1) 명언
• “맹명(孟明)(백리시(百里視)의 자(字))은 진(晉)나라를 칠 때 황하(黃河)를 건너고는 자신이 타고 온 배를 불태웠다.[孟明擊晉 濟河焚舟]” 《책부원귀》 〈열국군부(列國君部)〉
• “무릇 배움은 부족함을 아는 것이니 학업을 넓히는 것은 부지런함에 있고, 벗을 사귐은 견문이 많은 것을 귀히 여기는 것이니 고루함을 부끄러이 여긴다. 대저 스스로 노력하며 쉬지 않는 사람은 옛 것을 좋아하고 박아(博雅)한 도리를 염두에 둔다.[夫學知乎不足 廣業在勤 友貴乎多聞 孤陋爲耻 蓋夫自强不息之士, 以好古博雅爲念]” 《책부원귀》 〈총록부(總錄部) 박학(博學)〉
• “안연지(顔延之)가 비서감(祕書監)으로 있을 때 불가(佛家)의 승려 혜림(惠林)이 재주와 학식으로 문제(文帝)의 칭찬을 받아 조정의 정사를 많이 그와 상의하였다. 문제가 매번 접견할 때마다 항상 혼자 앉는 걸상에 오르게 하니 안연지가 이를 심히 미워하였다. 그래서 술에 취해 ‘옛날에 환관(宦官) 동자(同子)(조담(趙談))가 황제와 함께 수레에 오르니 원사(袁絲)가 정색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삼공(三公)의 자리인데 어찌 머리 깎는 형벌을 받은 자가 앉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니, 문제가 얼굴빛을 바꾸었다.[顔延之爲祕書監時 沙門釋惠林以才學爲文帝所賞 朝廷政事多與之謨 上每引見 常升獨榻 延之甚嫉之 因醉曰 昔同子驂乘 袁絲正色. 此三台之座 豈可使刑餘居之 上爲變色]” 《책부원귀》 〈총록부(總錄部) 주실(酒失)〉
(2) 색인어:책부원귀(冊府元龜), 왕흠약(王欽若), 양억(楊億), 역대군신사적(歷代君臣事跡), 황국기(黃國琦) 간본(刊本)
(3) 참고문헌
• 한·중 유서문화 개관(최환, 영남대학교출판부)
• 中國類書槪說(劉葉秋 지음, 金長煥 옮김, 학고방)
• 中國古代的類書(胡道靜, 中華書局)
• 中國類書(趙含坤, 河北人民出版社)
• 〈新世纪古籍整理的豐碩成果—評校订本《册府元龜》〉(劉紅儒, 蘇州大學學報(哲學社會科學版) 2008年 06期)
• 〈《册府元龜》的编纂、版本及對後世類書的影響〉(賈素玲, 《河南圖書館學刊》 2013年 07期)
• 〈《册府元龜》編撰考〉(林耀琳, 《欽州學院學報》 2015年 01期)
• 〈《册府元龜》的成書源起〉(林耀琳, 《紅河學院學報》 2015年 04期)
• 〈論宋真宗時期對董仲舒刻板印象的塑造——以《册府元龜》爲核心的考察〉(王宏海, 《中国儒学》 2016年 00期)
• 〈宋本《册府元龜》之蒐輯配補與校勘影印始末考〉(胡珂·魯明, 《文獻》 2019年 01期)

【최환】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3.10.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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