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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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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연수(李延壽)는 당(唐) 초기의 관리이자 역사학자이다. 본서는 모두 100권(卷)으로 구성된 기전체(紀傳體) 사서이다. 이 책은 북위(北魏), 동위(東魏), 북제(北齊), 서위(西魏), 북주(北周), 수(隋)의 역사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사서이다.

2. 저자

(1) 성명:이연수(李延壽)(생몰연대 미상)
(2) 자(字):하령(遐齡)
(3) 출생지역:상주(相州)(현재의 河南省 安陽市)
(4) 주요활동과 생애
이대사(李大師)의 아들이다. 당(唐) 태종(太宗) 시기 벼슬하여 태자전선승(太子典膳丞), 숭현관학사(崇賢館學士), 어사대주부(御史臺主簿), 부새랑(符璽郞), 수국사(修國史) 등을 역임하였다.
629년(貞觀 3) 당 태종은 신하들에게 양(梁), 진(陳), 북제(北齊), 북주(北周), 수(隋)의 역사서를 편찬하도록 명령하였다. 이연수(李延壽)는 이 작업에 참여하였다. 또 당 태종은 643년(貞觀 17) 양, 진, 북제, 북주, 수 5개 왕조의 전장제도를 쓴 《오대사지(五代史志)》의 편찬을 명령하였다. 이연수는 이 작업에도 참여하였다. 이 중 《경적지(經籍志)》는 이연수와 경파(敬播)가 집필하였으며, 옛날부터 수대까지의 역대 저작을 기록하였다. 이후 659년(貞觀 22) 《남사(南史)》 80권과 《북사(北史)》 100권, 《태종정전(太宗政典)》을 편찬하였다.
(5) 주요저작:《남사(南史)》, 《북사(北史)》, 《태종정전(太宗政典)》등을 편찬하였고 《양서(梁書)》, 《진서(陳書)》,《북제서(北齊書)》,《주서(周書)》,《수서(隋書)》편찬에 참여하였다.

3. 서지사항

모두 100권(卷)이며, 본기(本紀) 12권과 열전(列傳) 88권을 구성되었다.

4. 내용

이연수의 아버지 이대사(李大師)는 남북조라는 분열의 시기에서 통일로 나가는 역사 추세에 맞춰 남조계 사서에서 북조의 국가를 색로(索虜), 혹은 위로(魏虜)라고 표기하고 북조계 사서에서 남조를 도이(島夷)라고 지칭하는 등 상대방을 멸시하고 상대방의 역사를 왜곡하는 상황을 바로잡으려고 하였다. 그리고 남북조사를 하나로 모아 완비된 남북조사를 서술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대사는 이를 완성하지 못하고 죽자 아들 이연수가 이대사의 원고를 보강하여 《북사(北史)》를 완성하였다.
북조시대(北朝時代)를 다룬 기전체(紀傳體) 사서이다. 그러나 표(表)와 지(志)가 없는 불완전한 기전체 사서이다. 북조시대(北朝時代)의 북위(北魏), 동위(東魏), 북제(北齊), 서위(西魏), 북주(北周), 수(隋)의 역사를 서술하였다. 즉 《한서(漢書)》이후 한 왕조의 역사를 서술하는 단대사(斷代史)의 편찬 추세와 달리 북조 여러 왕조의 역사를 종합적으로 기술한 통사이다. 이연수(李延壽)는 아버지가 편찬한 《북사(北史)》의 옛 원고를 근거로 《위서(魏書)》,《북제서(北齊書)》,《주서(周書)》,《수서(隋書)》의 책문(冊文), 조령(詔令), 주의(奏議), 문장(文章) 등을 삭제하고 기타 당시의 잡사(雜史)를 참고하여 보충하였다. 《북사(北史)》가 완성된 후 빠르게 퍼져 《위서(魏書)》,《북제서(北齊書)》,《주서(周書)》를 압도하였다.
《북사(北史)》와 《남사(南史)》는 남북조의 모든 황제를 본기(本紀)에 편입하였고 화이(華夷), 중국인과 이민족을 구별하지 않았으며, 남조와 북조가 상대방을 비하했던 색로(索虜), 위로(魏虜), 도이(島夷) 등의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기존의 남조계 사서와 북조계 사서가 왕죠 교체기의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두둔했던 내용을 바로잡았다. 그러나 통일왕조였던 수(隋)의 역사를 포함하였는데, 이는 이연수가 벼슬했던 당(唐) 왕조를 남북조의 분열을 종식한 최초의 통일왕조로 분식시키고 실제로 남조 진(陳)을 정복하고 중국을 통리한 수(隋)를 북조의 한 왕조로 격하시키려는 정치적 의도 때문이었다.
《위서(魏書)》에서 북위말 황제들의 시호(諡號)를 각각 전폐제(前廢帝), 후폐제(後廢帝), 출제(出帝)라고 표기한데 비해 《북사(北史)》는 절민제(節閔帝), 폐제(廢帝), 효무제(孝武帝)로 표기하여 시호면에서 북위말 황제들을 예우하였다. 또 《위서(魏書)》의 서기(序紀)를 ‘탁발부(拓跋部)’로 표기하여 도무제(道武帝), 명원제(明元帝)와 함께 권1에 수록하였다. 그리고 동위(東魏)와 서위(西魏)를 구분하지 않고 권5에 하음(河陰)의 변 이후 즉위한 효장제(孝莊帝), 절민제(節閔帝), 폐제(廢帝), 효무제(孝武帝)와 서위(西魏)의 문제(文帝), 폐제(廢帝), 공제(恭帝), 동위(東魏)의 효정제(孝靜帝)를 함께 배치하였다. 열전은 특정 인물의 열전 뒤에 부전(附傳)의 형태로 후손들의 열전을 배치하여 북조시대 특정 가문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조감할 수 있지만, 가전(家傳)이라는 비난도 들었다.

5. 가치와 영향

《북사(北史)》는 북위(北魏), 동위(東魏), 북제(北齊), 서위(西魏), 북주(北周), 수(隋)의 역사와 제도를 연구하는 기본적인 사료이다. 《북사(北史)》는 이연수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완성한 사찬(私撰)이며, 정관(貞觀) 연간 편찬한 관찬사서(官撰史書)인 5사(五史)와 다르다. 사마광(司馬光)은 근세의 가사(佳史)로 서사(敍事)가 간략하고 번잡하고 난잡한 기사가 없다고 평가하였다. 조익(趙翼)은 8사와 비교하여 원서(原書)의 기사가 많고 간략하여 양사(良史)라 할 수 있다고 평가하였다. 《북사(北史)》가 완성된 후 《위서(魏書)》,《북제서(北齊書)》,《주서(周書)》가 제대로 전하지 않아 일부 本紀와 列傳의 내용이 사라졌다. 후에 《북사(北史)》를 바탕으로 《위서(魏書)》,《북제서(北齊書)》,《주서(周書)》를 복원하였다. 이처럼 《북사(北史)》는 《위서(魏書)》,《북제서(北齊書)》,《주서(周書)》 복원의 중요한 사료가 되었다.
또 열전(列傳)은 특정 가문의 인물 전체를 나열하여 북조(北朝)와 수대(隋代) 특정 가문의 역사를 조감하는데 편하며 문벌(門閥) 연구의 기본적인 사료적 가치가 있다.

6. 참고사항

(1) 명언
(2) 색인어:이연수(李延壽), 북사(北史), 위서(魏書), 북제서(北齊書), 주서(周書), 수서(隋書)
(3) 참고문헌
• 北史標點本(中華書局)
• 魏書標點本(中華書局)
• 北齊書標點本(中華書局)
• 周書標點本(中華書局)
• 隋書標點本(中華書局)
• 資治通鑑標點本(中華書局)
• 趙翼, 󰡔卄二史箚記󰡕(王樹民 校證, 󰡔卄二史箚記校證󰡕, 中華書局, 1984)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3.10.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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