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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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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청나라 초기에 왕상(王相)(1662~1722)이 주를 단 부녀자 교훈서로, 중국 후한(後漢) 조대가(曹大家)의 《여계(女誡)》, 당나라 송약신(宋若莘)의 《여논어(女論語)》, 명나라 인효문 황후(仁孝文皇后)의 《내훈》, 명나라 왕절부(王節婦)의 《여범(女範)》 등 네 가지를 합본한 《규각여사서(閨閣女四書)》를 펴냈다. 조선에서는 1736년 영조(英祖)의 하명으로 이덕수(李德壽)(1673~1744)가 언해하여 2권 4책으로 《여사서언해(女四書諺解)》를 펴냈는데 내용, 배열, 순서, 풀이 양식이 다르다.
이 《여사서(女四書)》 안에 실린 《내훈》은 명나라 성조(成祖)의 황후인 서씨(徐氏)가 궁중 여성들의 교육을 위해 옛 선현들의 행적을 채집하여 덕성, 수신, 신언, 근행, 근려, 절검, 경계 등 전체 20장으로 구성하여 영락(永樂) 2년(1404) 편찬한 여성교화서이다. 조대가의 《여계》가 너무 간략하고, 《여헌》, 《여칙》 등의 저서가 있었으나 모두 유실되어 여성들을 교육하는 책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에, 과거 어느 것보다 탁월하고 만세에 수범(垂範)이 될 만한 것을 가려 뽑아 저술하였다고 그 동기를 기술하고 있다.

2. 저자


(1) 성명:인효문황후(仁孝文皇后) 서씨(徐氏)(1362~1407),본명은 무기재(无記載)이다.
(2) 자(字)·별호(別號):명나라 서달(徐達)의 적장녀이자, 성조(聖祖) 주체적(朱棣嫡)의 황후이다. 사후에는 인효황후(仁孝皇后)로 추시하였고, 영락제(永樂帝) 사후 추시된 정식 시호는 인효자의성명장헌배천제성문황후(仁孝慈懿誠明莊獻配天齊聖文皇后)이다. 능호는 장릉(長陵)이다.
(3) 출생지역:중국 호주(濠州)
(4) 주요활동과 생애
명나라 개국공신인 장군 중산왕(中山王) 서달(徐達)의 장녀이다. 명나라 제3대 황제인 영락제 성조(成祖)의 황후이자 정비이며, 1402년 정난의 변으로 영락제가 집권하자 황후에 책봉되었으나 5년 만에 사망하였다. 서씨는 어릴 적 독서를 좋아하고 성격이 온화했는데 홍무 9년(1376)에 주원장(朱元章)이 그 이야기를 듣고 서달을 불러 사돈을 맺자고 청하였다. 그녀는 학식이 높고 교양이 있으며 정계와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사에 관여했다는 기록은 드물다. 어려서 연왕(燕王) 주체(朱棣)와 혼인했으나, 정작 그의 친정은 주원장의 공신 대숙청 때 휘말려 큰 화를 입기도 했다.
건문 4년(1402)에 연왕이 정난의 변에서 승리를 거두고 황제가 되자, 그녀 역시 황후로 승격되었다. 영락제는 자신을 돕기 위해 죽은 서씨의 동생 서증수(徐增壽)에게 작위를 추서하려고 했지만, 서씨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이를 반대하였다. 영락제가 서씨 몰래 작위를 주고 나중에 알리자 서씨는 끝까지 감사해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명사(明史)》에 전한다. 서씨는 “백성을 아끼고 널리 인재를 구하여 황실에 예를 다하되 자신의 외가친척들을 절대 돌보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었다. 1407년 정비인 서황후가 죽자 인효(仁孝)라는 시호를 내렸다.
(5) 주요저작
선행(善行)을 권하여 편찬한 책으로 《내훈》이 있다. 1368년 건국한 명나라는 건국 초기에 백성들을 교화하기 위해 선서를 많이 간행하였는데, 《대명인효황후권선서(大明仁孝皇后勸善書)》는 영락제 때 간행된 10종 가운데 하나이다. 따라서 《대명인효황후권선서》의 편찬 동기는 명나라 초기 전제 질서를 확립하고자 했던 집권층의 정치 활동에 의한 것이다.

3. 서지사항


《내훈》은 명나라 성조 문황제의 원비인 인효황후 서씨가 쓴 책이다. 인효황후는 일찍이 배우기를 좋아하였는데, 왕실의 여성들을 중심으로 여성의 교육이 필요함을 깨닫고 《내훈》을 써서 궁궐 여성들을 가르쳤다. 이 책의 내용은 인효황후의 서문, 제1 〈덕성장(德性章)〉, 제2 〈수신장(修身章)〉, 제3 〈신언장(愼言章)〉, 제4 〈근행장(勤行章)〉, 제5 〈근려장(勤勵章)〉, 제6 〈절검장(節儉章)〉, 제7 〈경계장(警戒章)〉, 제8 〈적선장(積善章)〉, 제9 〈천선장(遷善章)〉, 제10 〈숭성훈장(崇聖訓章)〉, 제11 〈경현범장(景賢範章)〉, 제12 〈사부모장(事父母章)〉, 제13 〈사군장(事君章)〉, 제14 〈사구고장(事舅姑章)〉, 제15 〈봉제사장(奉祭祀章)〉, 제16 〈모의장(母儀章)〉, 제17 〈목친장(睦親章)〉, 제18 〈자유장(慈幼章)〉, 제19 〈체하장(逮下章)〉, 제20 〈대외척장(待外戚章)〉으로, 모두 2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대명인효황후권선서》의 이본이 한국 범어사(梵魚寺)에 소장본이 있다. 이 범어사 소장본은 원래 20권 10책이나, 제5, 6, 10책의 3책만 현존하는 영본(零本)이다. 목판본으로 영락(永樂) 5년인 1407년에 간행되었다. 크기는 36.5×22.3cm이며, 반곽은 30.1×18.3cm이다. 사주 쌍변(四周雙邊)에 흑구(黑口), 상하내향 흑어미(上下內向黑魚尾)이고 14행 28자로 판각되었다. 《대명인효황후권선서》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은 조선 태종(太宗) 8년(1408) 양녕대군(讓寧大君)이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올 때 150본을 영락제에게서 하사받은 것이 최초이다. 그리고 다음해인 1409년에 권완(權緩)이 다시 300부를 가지고 왔다. 그런데 명나라 시대의 선행을 권유하는 선서는 유교·불교·도교 삼교일치(三敎一致)의 관점에서 편집하였고, 특히 이 책에는 불교의 사례가 많기 때문에 조선 조정에 의해 반드시 환영받았다고는 할 수 없다. 따라서 사찰에 주로 소장되었고 불교 신자들에 의해 읽혀졌을 가능성이 크다.

4. 내용


《내훈》은 황녀와 궁인들을 가르치는 교재로 삼았다. 조대가의 《여계》가 너무 간략하고 《여헌》, 《여칙》 등의 저서가 있었으나 모두 유실되어 여성들을 교육하는 책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에, 과거 어느 것보다 탁월하고 만세에 수범이 될 만한 것을 가려 뽑아 저술하였다고 그 동기를 기술하고 있다. 《여사서》 중 《내훈》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많은 고사를 인용하면서 잘못된 품행과 풍속 등을 지적하고 있다.
그 내용의 차례는 〈덕성장(德性章)〉, 〈수신장(修身章)〉, 〈신언장(愼言章)〉, 〈근행장(勤行章)〉, 〈근려장(勤勵章)〉, 〈절검장(節儉章)〉, 〈경계장(警戒章)〉, 〈적선장(積善章)〉, 〈천선장(遷善章)〉, 〈숭성훈장(崇聖訓章)〉, 〈경현범장(景賢範章)〉, 〈사부모장(事父母章)〉, 〈사군장(事君章)〉, 〈사구고장(事舅姑章)〉, 〈봉제사장(奉祭祀章)〉, 〈모의장(母儀章)〉, 〈목친장(睦親章)〉, 〈자유장(慈幼章)〉, 〈체하장(逮下章)〉, 〈대외척장(待外戚章)〉 등 2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의 서문에 인효문 황후는 선인 주덕장의 황후인 고황후의 뜻을 준수하며, 항상 역사와 전기를 보고 옛 어진 부인과 정숙한 여자의 덕성과 아름다움의 사례를 모았는데 《소학》과 《여계》, 《여측》, 《요교》, 《모시》 등의 전고에서 가져온 내용으로 영락 2년(1404) 겨울에 《내훈》 20편을 지어서 성조 3년(1405) 정월 보름에 머리글을 올렸다. 이 《내훈》은 동아시아에 널리 영향을 끼친 여성 수신 교훈서이다.

5. 가치와 영향


인효문황후가 쓴 《내훈》은 중국은 물론 동아시아 전역 여성 교훈서로 널리 보급되었다. 특히 조선에서의 여성 수신 교훈서로는 성종(成宗) 6년(1475)에 소혜왕후(昭惠王后)가 중국의 《열녀전》, 《소학》, 《여교》, 《명감》에서 요긴한 대목만을 뽑아 편찬한 《내훈》과, 중종(中宗) 27년(1530)에 최세진(崔世珍)이 조대가의 《여훈》을 언해한 《여훈언해》에 이어 영조 12년(1736)에 중국의 4대 여훈서를 언해한 《여사서언해》 및 1907년 이를 개간한 《여사서언해》 개간본과 영조 시기 《어제내훈》 등이 있다. 중국의 《여사서》를 구성하고 있는 후한 조대가의 《여훈》, 당나라 송약소의 《여논어》, 명나라 인효문 황후의 《내훈》, 청나라 왕절부의 《여범첩록》을 대본으로 1736년에 영조의 하명으로 이덕수(李德壽)(1673~1744)가 언해하여 2권 4책으로 간행하였다.
소혜왕후가 쓴 《내훈》은 여훈서 뿐만 아니라 소혜왕후의 《소학》 등 여타 민풍 교화서에 이르기까지 한문 대문과 삽입 사례에 대한 내용의 상호 출입이 많기 때문에 16세기에서 20세기까지 폭넓은 시기에 걸쳐 국어사적 변화를 조망하는데 매우 유리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인효문황후가 쓴 《내훈》은 그 목차만 보더라도 옛사람들의 개인의 체험을 덧붙인 여성 교훈서인데 이는 철저한 삼종지도(三從之道)라는 남성 우월적 가치로 철저하게 여성의 권한을 제한하는 방편이 되기도 하였다. 〈혼례〉편에서는 여자가 권력의 중심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밝히고 있으며, 부부 관계에서도 남편은 아내의 하늘이라 강조하는 등 1,400년대의 전통적인 유교적 여성관이 투영된 관점에서 지어진 책임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이 내용이 조선에 전파되어 낭송하기에 편하도록 3.4조 2음보 격의 내방가사라는 교술 문학 장르를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영남 지역에서는 《규곤의측》, 《규의》, 《여자초학》, 《천금록》, 《여교》, 《일심공덕》, 《태교신기》, 《규방필독》, 《기녀서》, 《여훈》, 《규범》, 《여자계행편》 등 필사본 여성 교훈서가 사대부가의 여성들 사이에 널리 유포되면서 개인의 체험과 상상력이 결합한 교술적 내방가사인 〈계녀〉, 〈계녀가〉, 〈계녀사〉, 〈여 드러보아라〉 등의 계녀가류의 내방가사 문학의 장을 여는 촉매적인 역할을 하였다.

6. 참고사항


(1) 명언
‧ 녀계셩언[厲階成焉](〈德性章〉):《시경(詩經)》 〈대아(大雅) 첨앙(瞻卬)〉에 ‘부인에게 말 잘하는 혀가 있다면, 그것은 환란을 일으키는 실마리가 된다[婦有長舌 維厲之階]’라는 구절에 들어 있다. 여기서 말을 잘하는 여성이란 서주의 마지막 왕인 유왕(幽王)의 부인 포사(褒姒)를 가리킨다.
‧ 죵인쟈야[從人者也](〈修身章〉):《대대례기(大戴禮記)》 〈본명편(本命篇)〉에 ‘부인은 다른 사람에게 복종해야 하기 때문에 혼자서 전횡하고자 하는 뜻이 없다. 〈부인에게는〉 삼종(三從)의 도가 있는데 집에서는 아비를, 시집가서는 남편을, 남편이 죽은 후에는 아들을 따르는 것이다[婦人伏于人也 是故無專制之義 有三從之道 在家從父 適人從夫 夫死從子]’라고 하였다.
‧ 셔빈뎨지신[書斥牝鷄之晨](〈愼言章〉):《서경(書經)》에 〈목서(牧誓)〉에 ‘암탉을 새벽에 울리지 말라. 암탉이 새벽에 울면 집안이 망한다.[牝鷄無晨 牝鷄之晨 惟家之索]’라고 하였다. 이는 은나라의 멸망이 주왕(紂王)의 왕비인 달기(妲己)의 탓이라 한 것이다. 달기(妲己)는 언변과 지모가 뛰어난 여성이었으나 외정에 간섭함으로써 화를 자초하였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권3 〈은본기(殷本紀)〉와 유향(劉向)의 《열녀전(列女傳)》 〈얼폐전(孽嬖傳) 은주달기(殷紂妲己)〉에 보인다.
(2) 색인어:덕성장(德性章), 수신장(修身章), 신언장(愼言章), 근행장(勤行章), 근려장(勤勵章), 절검장(節儉章), 경계장(警戒章), 적선장(積善章), 천선장(遷善章), 숭성훈장(崇聖訓章), 경현범장(景賢範章), 사부모장(事父母章), 사군장(事君章), 사구고장(事舅姑章), 봉제사장(奉祭祀章), 모의장(母儀章), 목친장(睦親章), 자유장(慈幼章), 체하장(逮下章), 대외척장(待外戚章)
(3) 참고문헌
‧ 內訓(소혜왕후(昭惠王后))
‧ 女四書(왕상(王相))
‧ 내훈(인효문 황후(仁孝文皇后))
‧ 열녀전(아라시로(荒域孝信), 明德出版社)
‧ 열녀전(상중하)(야마자키 준이치(山峙純一), 明治書院)
‧ 유향의 열녀전 연구(시모미 다카오(下見隆雄), 東海大學校出版會)
‧ Sharing the Light:Representation of Women and Virture in Early Chaina, Lisa Raphlas, State University od New Yprk Press
‧ 여사서언해(이상규, 세종대왕기념사업회)
‧ 열녀전(유향 지음・이숙인 옮김, 글항아리)


【이상규】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0.08.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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