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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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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원말 명초의 문인 시내암(施耐庵) 혹은 나관중(羅貫中)이 지은 것으로 전해지는 최초의 장회체 백화소설이다. 송강(宋江) 등 108명의 영웅이 양산박(梁山泊)에 웅거하여 탐관오리를 징치(懲治)한 후 조정에 투항하여 방랍(方臘)의 난을 토벌한다는 내용이다. 4대 기서(奇書) 중 하나로 백화의 묘사 기법이 뛰어나고 송대 사회에 대한 풍자, 비판의식을 강하게 표출한 소설이다.

2. 저자

(1)성명:시내암(施耐庵). 나관중(羅貫中)(1315-1385 추정)의 경우 나본(羅本)이라는 설도 있음.
(2)자(字)·별호(別號):시내암의 경우 본명이 자안(子安) 혹은 조단(肇端), 자는 언단(彦端). 내암(耐庵)은 별호로 보기도 한다. 나관중의 경우 나본(羅本)이 이름이라면 관중(貫中)은 자(字)일 가능성이 있다. 별호는 호해산인(湖海散人)이다.
(3)출생지역:시내암의 경우 전당(錢塘) 혹은 소북(蘇北). 나관중의 경우 태원(太原).
(4)주요 활동과 생애
시내암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원말 명초 사람으로 원말 농민 반란의 우두머리인 장사성(張士誠)의 막하에서 일했다고 한다. 장사성이 패한 후 시내암이 백구(白駒)에 은거했다가 주원장(朱元璋)을 피하여 회안(淮安)으로 가서 죽었다는 설이 있으나 확증된 것은 아니다.
나관중의 생애 역시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원말 명초의 문인 가중명(賈仲明)의 《속녹귀부(續錄鬼簿)》에 따르면 나관중은 태원(太原) 사람으로 별호를 호해산인(湖海散人)이라 하였으며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기록에 의하면 나관중은 장사성(張士誠)과 교분을 맺기도 하는 등 정치적 야심을 지닌 인물이었다는 설도 있다.
(5)주요 저작
시내암의 경우 《수호전》 외에 알려진 저작이 없으며, 나관중의 경우 소설로는 《삼국연의(三國演義)》, 《수당양조지전(隋唐兩朝志傳)》, 《잔당오대사연의전(殘唐五代史演義傳)》, 《평요전(平妖傳)》 등이 있고, 희곡으로는 잡극 《송태조용호풍운회(宋太祖龍虎風雲會)》 등이 남아있다.
3. 서지 사항
《수호전》의 판본은 복잡하기로 유명하다. 간단히 정리하면 크게 번본(繁本)과 간본(簡本)의 두 가지 계통이 있는데 번본은 다시 70회본, 100회본, 120회본의 3개 계통으로 나뉜다. 그중 100회본이 가장 오래된 것인데 용여당본(容與堂本) 《이탁오선생비평충의수호전(李卓吾先生批評忠義水滸傳)》 100권이 내용이 완정(完整)하며 100회본 중 현존하는 가장 이른 번본이다. 120회본으로는 양정견(楊定見)의 서문이 있는 원무애(袁無涯) 각본(刻本) 《수호전전(水滸全傳)》이 있는데 100회본에 전호(田虎)와 왕경(王慶)에 관한 내용을 첨가한 것이다. 70회본으로는 김성탄(金聖嘆)의 서문이 있는 《제오재자서시내암수호전(第五才子書施耐庵水滸傳)》이 있으며 간본 중 중요한 것으로는 《신간경본전상삽충의수호전(新刊京本全像揷忠義水滸傳)》, 《경본증보교정전상충의수호지전평림(京本增補校正全像忠義水滸志傳評林)》 등이 있다.

4. 내용

북송 휘종(徽宗) 황제 때 송강(宋江), 무송(武松), 노지심(魯智深), 이규(李逵) 등 108명의 호걸은 의협심으로 인해 죄를 짓고 양산박(梁山泊)에 모여든다. 이들은 송강을 우두머리로 모시고 오용(吳用)을 군사로 삼아 지방의 악랄한 토호와 탐관오리를 공격하여 재물을 빼앗고 징벌을 가한다. 관군도 이들을 진압하려 했으나 연전연패한다. 그러나 송강 일행은 장군 장숙야(張叔夜)에게 설득되어 투항하고 속죄를 위해 방랍(方臘)의 반란을 토벌한다. 송강 등의 반란은 실제 있었던 역사적 사건으로 남송 시기에 이미 양산박과 관련한 이야기들이 민간에서 유행하였고 설화인의 구연 대상이 되었다. 마침내 송말 원초에 화본소설 《선화유사(宣和遺事)》가 성립되었고 후일 이를 바탕으로 원말 명초에 《수호전》이 탄생한 것이다.

5. 가치와 영향

《수호전》에서 표출된 사회비판의식은 후대의 반란사조에 영향을 미쳐 백련교(白蓮敎), 태평천국(太平天國), 천지회(天地會), 소도회(小刀會), 의화단(義和團) 등 반란 사건의 배후에서 작용하였다. 《수호전》은 또한 영웅소설, 협의소설의 전범으로서 문학, 예술 영역에서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설당(說唐)》, 《양가장(楊家將)》, 《설악전전(說岳全傳)》, 《삼협오의(三俠五義)》 등과 같은 소설의 원류가 되었으며 희곡, 곡예는 물론 현대의 영화, 드라마 등으로도 많이 각색되었다. 그리고 《수호전》의 뒤를 이어 《수호후전(水滸後傳)》, 《후수호전(後水滸傳)》, 《탕구지(蕩寇志)》 등의 속서(續書)가 지어졌다. 우리나라에는 조선 광해군 이전에 이 책이 유입된 것으로 보이며 독자들의 환영을 받아 방각본(坊刻本)과 필사본 및 번역본 등이 출현하였다. 아울러 선조(宣祖) 10년(1577)에는 백화문을 해독한 《수호전어록(水滸傳語錄)》이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현재 국내 도서관에서 볼 수 있는 《수호전》 판본은 대부분 김성탄(金聖嘆)이 펴낸 70회본이 주종을 이룬다. 우리나라는 허균(許筠)의 《성소부부고(惺所覆瓿稿)》에 이 책이 처음 저록(著錄)된 것으로 보아 늦어도 광해군 시기인 17세기 초 이전에는 전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6. 참고사항

(1)명언
• “한편 임충은 그 눈을 밟고 북풍을 맞으며 나는 듯이 초장 입구로 달려와 자물쇠를 열고 안에 들어가 보고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알고 보니 하늘이 무심치 않아 선인과 의사를 지켜주었던 것이니 이 한 차례의 큰 눈으로부터 임충의 생명을 구한 것이었다. 그 초가 두 칸은 이미 눈에 눌려 무너져 있었다.[再說林冲踏着那瑞雪 迎着北風 飛也似奔到草場門口 開了銷 入內看時 只叫得苦 原來天理昭然 佑護善人義士 因這場大雪 救了林冲的性命 那兩間草廳 已被雪壓倒了]” 〈제10회 임교두풍설산신묘(林敎頭風雪山神廟)〉
(2)색인어:수호전(水滸傳), 선화유사(宣和遺事), 시내암(施耐庵), 나관중(羅貫中), 송강(宋江), 양산박(梁山泊)
(3)참고문헌
• 水滸傳(人民文學出版社)
• 鍾伯敬批評忠義水滸傳(安徽文藝出版社)
• 신역 수호지(윤백남 역, 박문서관)
• 수호지(이주홍 역, 을유문화사)
• 수호지(김팔봉 역, 어문각)
• 수호지(김광주 역, 서문당)
• 수호지(이문열 역, 민음사)
【정재서】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0.08.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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