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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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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주자어류(朱子語類)》는 송대 유학의 집대성자인 주희(朱熹)가 제자들과 강학한 어록(語錄)을 제자들이 각자 기록해두었다가 모아 편집한 책으로, 1170년부터 1199년까지 근 30년간 97명이 기록하여 편집한 것이다. 모두 140권이다.

2. 저자

(1)성명:주희(朱熹)(1130~1200)
(2)자(字)·별호(別號):자는 원회(元晦), 중회(仲晦), 호는 회암(晦庵), 회옹(晦翁), 운곡산인(雲谷山人), 창주병수(滄洲病叟), 둔옹(遯翁) 등이다.
(3)출생지역:중국 복건(福建) 우계(尤溪).
(4)주요활동과 생애
주희의 부친인 주송(朱松)은 남송(南宋) 휘주(徽州) 무원(婺源) 사람이다. 자는 교년(喬年)이고, 호는 위재(韋齋)이며, 시호는 헌정(獻靖)이다. 건주(虔州) 정화현위(政和縣尉)와 남검주(南劍州) 우계현위(尤溪縣尉)를 지냈으며, 교서랑(校書郞)과 저작좌랑(著作佐郞) 등을 역임했다. 고종(高宗) 소흥(紹興) 4년(1134) 호세장(胡世將) 등의 천거로 비서성정자(秘書省正字)에 올랐다. 주송은 경학은 《대학(大學)》과 《중용(中庸)》의 가치를 중시했고, 《예기(禮記)》는 노(魯)나라 학자들의 설이 많이 섞여 있다고 여겨 회의적인 입장을 가졌다. 그는 나종언(羅從彦)에게 수학하여 이정(二程)(정호(程顥)와 정이(程頤))의 이학(理學)을 배웠는데, 이정과 나종언의 학문이 주희에게 이어지도록 교량적 역할을 했다. 또한 사마광(司馬光)의 학문을 존중했다. 당시 재상 진회(秦檜)의 화의(和議) 결정에 동료들과 같이 불가함을 주장하다 미움을 받아 요주지주(饒州知州)로 밀려났는데, 부임하기 전에 죽었다. 저서에 《위재집(韋齋集)》 등이 있다.
주희는 다섯 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문장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14세 때 아버지가 죽자 그의 유언에 따라 호적계(胡籍溪), 유백수(劉白水), 유병산(劉屛山)에게 사사하면서 불교와 노자의 학문에도 흥미를 가졌었다. 그러나 24세 때 이통(李侗)을 만난 이후 10년 동안 세 차례 가르침을 받으면서 유학에 전념하게 되었다. 이후 주희는 불교(佛敎)와 노장(老莊) 사상을 융합하여 이학(理學)의 공고한 기초를 세웠으며, 이를 바탕으로 주자학을 집대성하였다.
주희는 그 이전 시대까지의 유학을 집대성(集大成)했다는 평가를 받는데, 주자학을 보다 정확히 말하면 이른바 북송오자(北宋五子)라 일컬어지는 북송 시대 유학자 다섯 명의 사상을 종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섯 명의 유학자들은 북송시대의 학자인 소옹(邵雍), 주돈이(周敦頤), 장재(張載), 정호(程顥), 정이(程頤)이다. 19세에 진사시에 급제하여 71세에 생애를 마칠 때까지 여러 관직을 거쳤으나, 약 9년 정도만 현직에 근무하였을 뿐, 그 밖의 관직은 학자에 대한 일종의 예우로서 반드시 현지에 부임할 필요가 없는 명목상의 관직이었기 때문에 학문에 전념할 수 있었다. 특히 그는 사서(四書)를 집주(集註)하면서 자연적인 올바른 이치[理]와 그것이 인간의 본성으로 내면화된 성(性)을 중심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이른바 성리학(性理學)의 기반을 다졌다. 철학뿐 아니라, 역사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 사마광이 편찬한 역사서인 《자치통감(資治通鑑)》을 무원칙하다고 여기고 그것을 다시 재편집하여 1172년에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을 완성하였는데, 이 책은 동아시아 전역에서 널리 읽혔으며, 또한 프랑스의 천주교 예수회 선교사 드 마이야(J.M.de Mailla)에 의해 유럽에서 최초로 간행된 중국역사서인 《중국통사(中國通史)》의 토대가 되었다. 1200년 건양 고정에서 병사(病死)하였으니, 향년 71세였다. 1209년과 1230년에 그에게 시호가 내려졌고, 태사(太師)·휘국공(徽國公)에 추증(追贈)되었다. 1241년에는 그의 위패가 정식으로 공자(孔子) 사당에 모셔졌다.
(5)주요저작
《논어요의(論語要義)》, 《논어훈몽구의(論語訓蒙口義)》, 《곤학공문편(困學恐聞編)》, 《정씨유서(程氏遺書)》, 《논맹정의(論孟精義)》,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 《팔조명신언행록(八朝名臣言行錄)》, 《서명해의(西銘解義)》, 《태극도설해(太極圖說解)》, 《통서해(通書解)》, 《정씨외서(程氏外書)》, 《이락연원록(伊洛淵源錄)》, 《고금가제례(古今家祭禮)》, 《근사록(近思錄)》, 《논맹집주혹문(論孟集註或問)》, 《시집전(詩集傳)》, 《주역본의(周易本義)》, 《역학계몽(易學啓蒙)》, 《효경간오(孝經刊誤)》, 《소학서(小學書)》, 《대학장구(大學章句)》, 《중용장구(中庸章句)》, 《석존예의(釋尊禮儀)》, 《맹자요로(孟子要路)》, 《예서(禮書):의례경전통해(儀禮經傳通解)》, 《한문고이(韓文考異)》, 《서전(書傳)》, 《초사집주후어변증(楚辭集註後語辨證)》 등이 있다. 이외에도 《주문공문집(朱文公文集)》(100권, 속집 11권, 별집 10권)과 문인과의 평생문답을 수록한 《주자어류(朱子語類)》 140권이 있다.

3. 서지사항

《주자어류》가 간행되기 전에는 3록(三錄) 2류(二類)라고 하는 어록 형태와 어류 형태의 두 계통의 간본(刊本)이 있었다. 주희가 죽은 후 이도전(李道傳)이 1215년에 《주자어록(朱子語綠)》 43권을 편집하여 지주(池州)에서 간행하였다. 그 안에는 요명덕(廖明德) 등 주희의 제자 33명이 기록한 것이 수집되어 있었다. 이도전의 동생 이성전(李性傳)은 또 1238년에 요주(饒州)에서 《주자어속록(朱子語續綠)》 46권을 편집하여 간행하였다. 또 채항(蔡抗)은 1249년에 《주자어후록(朱子語後錄)》 26권을 편집하여 요주에서 간행하였는데, 주희의 제자 양방(楊方) 등 23명이 기록한 것을 수록했다. 오견(吳堅)은 1266년에 또 이전의 세 판본에서 아직 수집하지 못한 기록을 수집하여 《주자어별록(朱子語別錄)》을 편집하여 건안에서 간행하였다. 또 황사의(黃士毅)는 1219년에 이도전이 지주에서 간행한 《주자어록》을 기초로 증보하여 《주자어류》 140권을 분류하고 편성하였다. 그 후에도 계속해서 후속 자료를 보충하여 출판되다가 남송 이종(理宗) 때 여정덕(黎靖德)이 각종 판본의 어록과 어류를 종합하여, 이동(異同)을 고찰하고 중복된 것을 삭제하고 더욱 수정하여, 황사의가 《주자어류》를 편집할 때 사용한 주제별 분류에 따라 《주자어류대전(朱子語類大全)》을 편집하였다. 여정덕은 기왕에 나온 주희의 어록들을 수집하여 중복되는 부분을 삭제하고, 내용을 26문(門)으로 분류한 《주자어류》를 편찬했다. 《주자어류》의 내용은 97명에 이르는 주희의 제자가 1170년과 1200년 사이에 스승과 문답한 것으로, 만년에 이른 주희가 사서오경(四書五經), 이학(理學), 철학, 역사, 정치, 문학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졌는지 잘 나타나 있어 주자학을 이해하는 데 기본적인 텍스트가 된다.
《주자어류》의 판본은 매우 많은데, 중요한 것으로 송나라 함순 6년(1270)에 간행된 판본과 명나라 성화 9년(1473)에 강서번사(江西藩司)에서 판각한 성화본(成化本)으로, 팽시(彭時)의 서(序), 장원정(張元禎)의 후서(後序), 진위(陳煒)의 발(跋)이 있다. 성화본은 현재 대만의 국립중앙도서관과 일본의 내각문고에 소장되어 있다. 성화본 이외에 성화본의 복각본(復刻本), 성화본의 보각본(補刻本)인 가정본(嘉靖本), 무원(婺源)에서 주숭목(朱崇沐)이 판각한 만력본(萬曆本), 만력본의 보각본인 숭정본(崇禎本), 강희 연간에 여유랑(呂留良)이 판각한 여씨보고각본(呂氏寶誥刻本), 동치 연간에 나온 응원서원(應元書院) 간본(1872), 광서 연간에 나온 전경당(傳經堂) 간본(1876), 하서린(賀瑞麟) 교각본 등이 있다. 1981년 중화서국에서 왕성현이 교점한 《주자어류》를 출판하였다. 그리고 최근에 상해고적출판사에서 간행된 《주자전서(朱子全書)》에 들어 있는 《주자어류》는 조선고사휘주본(朝鮮古寫徽州本)(조선본(朝鮮本))을 참고한 판본으로, 중화서국본과 차이가 나는 대목이 교감기(校勘記)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조선본에는 기존의 통행본에는 빠져 있는 내용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4. 서지사항
《주자어류》는 어류적 입장에서 종래의 제간본(諸刊本)을 재편한 것이다. 어록(語錄)의 편은 문인이 주희로부터 들은 학문상의 회답을 개인적으로 기록했던 것을 수록한 것이고, 어류(語類)는 필록자별의 〈어록〉을 해체하여 유목별로 사상 내용에 따라 분류·재편성한 것이다. 주희의 어록(語錄) 및 어류(語類)의 종류는 모두 14종이나 여정덕의 《주자어류》로 재편된 간본이 가장 내용이 풍부하다. 대부분의 어록은 주희가 보지 못한 것이지만, 다만 보광(輔廣)이 기록한 내용의 일부분은 주희 본인이 검열했다고 한다. 그 가운데 64명의 기록은 주희가 60세 이후 때의 어록을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주희 만년의 관점이 더욱 성숙된 것이어서 매우 가치가 있는 것이다.
《주자어류》의 편집 순서에 따른 내용을 살펴보면 이론을 앞에 두고 사건은 뒤에 실었다. 맨 앞에 이기, 성리, 귀신 등 세계의 본원 문제를 실었다. 그 다음은 심성(心性), 정의(情意), 인의예지(仁義禮智) 등 도덕 윤리와 사람과 사물의 성명의 근원에 관한 토론을 실었다. 계속해서 지행(知行), 역행(力行), 독서 등 학문 방법론을 실었고, 그 다음에 《사서》·《오경》의 내용에 관한 토론을 하면서, 이(理)의 본류를 고찰하고, 불교와 도교를 배척한 것을 실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물과 세태에 대한 평론을 실었다. 이 가운데 사서에 관련된 내용이 51권을 차지하고 오경에 관련된 내용이 29권을 차지한다.

5. 가치와 영향

《주자어류》는 주희의 이학(理學) 사상을 총체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그러므로 《주자어류》에서 언급되고 있는 주제들은 천리·인륜·우주 자연·독서와 실천·경제와 세상사 등이 총망라되어 있다. 따라서 《주자어류》는 주희의 사상을 정밀하고 섬세하게 체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사상적 체계와 발전 과정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자료라고 할 수 있으며, 철학·자연과학·정치·사학 등의 분야에 대한 주희 사상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책은 토론의 주제가 광범하여 여러 측면에 걸쳐 주희 사상의 심도와 넓이를 보여주고 있으며, 또한 주희의 전문 저작에 대한 보충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주자어류》는 주희 사상을 정밀하고 섬세하게 체현하고 있는 만큼 주희의 사상과 품격을 다각도로 이해하는 데 큰 보탬이 되는 자료이며, 주희 사상의 체계와 그 발전 과정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자료로 성리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필독서였다.
조선에 《주자어류》가 처음으로 수입된 것은 성종 연간이다. 1476년 5월에 사은사로 북경을 방문한 정효상(鄭孝常)과 박양신(朴良信)이 《주자어류》 20권을 가지고 왔다. 1481년에는 질정관(質正官) 김흔(金訢)이, 1482년에 정조사(正朝使) 이극기(李克基)와 한충인(韓忠仁)이 《주자어류》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러나 1515년에 홍문관에 《주자어류》가 1건 밖에 없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16세기 전반까지 조선에서는 《주자어류》의 보급이 매우 미미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의 《주자어류》에 대한 연구서 중에는 1679년 송시열(宋時烈)이 초고를 완성하고 제자들이 수정한 《주자어류소분(朱子語類小分)》이 대표적이다. 1774년에는 이의철(李宜哲)이 홍계희가 편집한 목판본의 문제점을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이 방면의 여러 저서들을 모아 42권 10책의 《주자어류고문해의(朱子語類考文解義)》를 저술하였다. 이 책은 《주자어류》의 난해한 부분을 이해하는 데 좋은 참고자료가 된다. 한편 안정복(安鼎福)은 《주자어류》 중에서 중요한 부분을 뽑아 《주자어류절요(朱子語類節要)》를 저술하였는데, 이 책은 8권 5책으로 되어 있으며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1516년에 동활자로 《주자어류》가 간행되었는데, 이는 현재 국립중앙도서관과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은 권23만 남아있는 낙질(落帙)이다. 이후 김안국(金安國)이 1518년 명나라 사신으로 갔다가 《주자어류》를 구입해 돌아왔으며, 이를 바탕으로 1544년에 《주자어류》가 다시 활자본으로 간행되었다. 1571년에는 선조가 교서관에 《주자어류》를 간행하여 배포하라고 명령함에 따라 유희춘(柳希春)과 조헌(趙憲)이 주도하여 《주자어류》를 간행하였는데, 이때 유희춘이 기존의 오류를 바로잡고 상세히 주를 달았으나 이 주는 전해지지 않는다. 1771년에는 경상관찰사 이명식(李命植)이 주관하는 가운데 경상감영에서 홍계희(洪啓禧)가 교정한 《주자어류》가 목판으로 제작·인쇄되었다. 1905년에는 경상남도 진주 지역의 유림들이 중심이 되어 산청군 시천면에 있는 대원사(大源寺)에서 《주자어류》 목판을 새로 제작하였는데, 현재 진주시 수곡면 사곡리 광명각(光明閣)에 보관되어 있다. 이 목판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61호로 지정되어 있다.

6. 참고사항

(1)명언
• “만물이 부여받아 지극히 선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 본성이고, 본성을 따라 행하여 각각 그 분수를 얻은 것이 도이다.[萬物稟受 莫非至善者性 率性而行 各得其分者道]” 〈중용(中庸) 제일장(第一章)〉
• “마음이 병든 사람은 그 집도 편안하지 못하다.[人有病心者 乃其舍不寧也]” 〈성정의(性情義)〉
• “경(敬)이란 별도의 일이 아니라 항상 이 마음을 불러일으켜 깨우는 것이다. 사람이 매일 흐리멍덩하게만 지내면 마음을 안에서 수습할 수가 없다.[敬非別是一事 常喚醒此心便是 人每日只鶻鶻突突過了 心都不曾收拾得在裏面]” 〈사단의(四端義)〉
(2)색인어:주희(朱熹), 어류(語類), 소옹(邵雍), 주돈이(周敦頤), 장재(張載), 정호(程顥), 정이(程頤), 성(性), 이(理), 태극(太極), 사서(四書), 오경(五經), 심성(心性)
(3)참고문헌
• 朱子語類(朱熹, 中華書局)
• 朱子語類考文解義(李宜哲 著,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東アシアにおける朱子學の地域的展開(李基東, 東洋書院刊)
• 朱子語類(黎靖德 編, 허탁·이요성 역주, 청계)
• 儒學源流(李書有 編, 中國靑年出版社)
• 中國理學(潘富恩 編,東方出版中心)
• 朱熹評傳(張立文, 南京大學出版社)
• 주희의 철학(陳來, 이종란 외 역, 예문서원)
• 주희 주자어류(박성규, 《철학사상》 제7권 제3호, 서울대학교철학사상연구소)
【함현찬】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0.08.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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