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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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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본서는 송대(宋代)의 저명한 유학자이자 사상가인 주희(朱熹)의 저술로서 주돈이(周敦頤), 정호(程顥), 정이(程頤) 및 이정(二程)의 문인과 제자들의 언행과 사실을 수집하여 기록했다. 본서를 통해 주희는 낙학(洛學)을 중심으로 도학(道學)의 계보를 확립했다. 14권 체제이며, 총 44인의 행적이 수록되어 있다.

2. 저자


(1) 성명:주희(朱熹)(1130~1200)
(2) 자(字)·별호(別號):자는 원회(元晦), 중회(仲晦), 호는 회암(晦庵), 회옹(晦翁), 운곡산인(雲谷山人), 창주병수(滄洲病叟), 둔옹(遯翁) 등
(3) 출생지역:복건성(福建省) 우계(尤溪)
(4) 주요활동과 생애
주희는 송대 신유학의 집대성(集大成)을 이룬 철학자이자 사상가이다. 남송(南宋) 초에 태어나 관료이자 교육자로서 평생을 헌신했다. 14세 때 아버지 주송(朱松)을 여윈 후 아버지의 친구인 호헌(胡憲), 유면지(劉勉之), 유자휘(劉子翬)의 가르침을 받았다. 19세에 과거에 급제했으며, 24세 때 처음 이통(李侗)을 대면하면서 유학에 더욱 침잠하게 되었고, 특히 이정(二程) 이래 양시(楊時), 나종언(羅從彦), 이통으로 전수된 이른바 도남학(道南學) 계열의 학문을 접했다. 1163년 이통이 세상을 떠난 뒤 장식(張栻)과 밀접하게 교유하면서 도남학에서 벗어나 이정에서 사량좌(謝良佐)를 거쳐 호굉(胡宏)으로 이어진 이른바 호남학(湖南學) 계열의 학문에 경도되었다. 이후 중화구설(中和舊說)을 건립했지만 재차 도남학과 호남학을 종합한 이른바 중화신설(中和新說) 체계를 확립하여 학문적, 사상적 종지를 세웠다.
주희는 관료로서도 다양한 업적을 쌓았지만, 생애의 많은 시간을 서원(書院)을 짓고 강학(講學)에 헌신하는 등 연구와 저술에 종사했다. 예컨대 여조겸(呂祖謙)과 함께 《근사록》을 편찬하여 주돈이(周敦頤), 정호(程顥), 정이(程頤), 장재(張載)의 학문을 정리, 종합했으며, 《사서집주(四書集註)》를 편찬하여 경학(經學) 체제의 혁신을 이루었다. 또한 이기(理氣), 심성(心性), 격물궁리(格物窮理), 주경함양(主敬涵養) 등의 개념을 통해 본체론, 심성론, 공부론을 아우르는 방대한 성리학(性理學) 이론을 완성했다. 이밖에 공맹(孔孟) 이래의 도통(道統)의 성격을 둘러싸고 육구연(陸九淵), 진량(陳亮) 등과 학술적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경원(慶元) 6년(1200) 71세로 세상을 떠났으며, 시호는 문공(文公)이다.
(5) 주요저작:그의 저술로는 《사서집주(四書集註)》를 비롯하여 《주자문집(朱子文集)》, 《주역본의(周易本義)》, 《시집전(詩集傳)》, 《태극도설해(太極圖說解)》, 《통서해(通書解)》, 《서명해(西銘解)》, 《사서혹문(四書或問)》 등이 있다. 한편 여정덕(黎靖德)은 주희의 어록을 종합하여 《주자어류(朱子語類)》를 편찬했다.

3. 서지사항


건도(乾道) 9년(1173)에 초고를 완성했다. 당시에 주희는 《이정유서(二程遺書)》, 《이정외서(二程外書)》를 편찬하면서 정호(程顥)와 정이(程頤) 및 그 문인들의 행적과 사실에 관해 폭넓게 수집했다. 그 과정에서 《이락연원록》의 편찬을 구상했으며, 여조겸(呂祖謙) 등도 자료 수집을 도왔다. 주희 생전에 초고본이 유통되기도 했지만, 정식으로 완성본이 간행되지는 않았다. 송간본(宋刊本)은 전해지지 않으며, 원대(元代)의 지정(至正) 3년(1343) 악각본(鄂刻本) 및 지정 9년(1349) 오각본(吳刻本)이 남아 있다. 명대(明代) 이후의 판본은 기본적으로 원대의 판본을 저본으로 삼았다. 한편 명대 이후 기존 판본의 내용을 증보한 《이락연원록신증(伊洛淵源錄新增)》, 《이락연원속록(伊洛淵源續錄)》 등의 저술이 나오기도 했다.

4. 내용


본서에는 주돈이 이래 여러 유학자들의 언행과 사적이 수록되어 있다. 편찬 과정에서 주희는 행장(行狀), 연보(年譜), 묘지명(墓誌銘), 제문(祭文), 주장(奏章), 유사(遺事) 등을 폭넓게 참고, 활용하였다.
주요 권별 내용을 보면, 1권에는 주돈이의 언행과 사적을, 2권에서 4권까지는 정호와 정이의 언행과 사적을 수록했다. 그 아래로는 장재(張載), 소옹(邵雍)을 비롯하여 이정 문인들에 관한 기록을 배치했다. 13권에는 호안국(胡安國)의 언행과 사적을, 마지막 권인 14권에서는 앞에서 소개하지 않은 이정의 문인 20여 명의 성명(姓名), 자호(字號) 등을 나열했다.
본래 이락(伊洛)은 이정 형제가 강학하던 이천(伊川)과 낙양(洛陽) 일대를 가리키는데, 주희가 이른바 낙학(洛學)을 정점으로 송대 유학의 도통(道統) 계보를 정립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본서에서 주희는 도통(道統)에 대한 자신의 관점에 비추어 인물을 편집하고 배치했다. 예컨대 그는 왕안석(王安石)이나 소식(蘇軾)의 계보를 철저하게 배제하였다. 반면에 그는 주돈이를 이학(理學)의 개산조사(開山祖師)로 삼았으며, 이정(二程) 형제를 맹자 이후 끊어졌던 성현의 도를 계승한 인물로 추앙했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주희는 송대 도학(道學)의 원류와 전개를 자신의 관점에서 확정하였다.

5. 가치와 영향


본서는 개별 유학자의 사적을 풍부하게 수록하고 있을 뿐 아니라, 송대 도통(道統)에 관한 주희의 관점과 이론을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본서를 통해 이른바 염락관민(濂洛關閩)의 전승 계보가 확정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주희의 관점은 《송사(宋史)》 〈도학전(道學傳)〉, 〈유림전(儒林傳)〉의 체계와 서술에도 결정적 영향을 미쳤으며, 멀게는 황종희(黃宗羲)의 《송원학안(宋元學案)》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주무숙(周茂叔)의 가슴속은 씻은 듯이 깨끗하여 비 갠 뒤 맑은 날의 바람이나 달과 같았다.[周茂叔胸中灑落 如光風霽月]” 〈권1 염계선생(濂溪先生)〉
‧ “명도(明道) 선생께서 말씀하시길, ‘내가 주무숙을 뵌 뒤에 음풍농월(吟風弄月)하며 돌아왔는데, 나는 증점(曾點)과 함께 하겠다는 뜻을 품게 되었다.’고 하였다.[明道先生言 自再見周茂叔後 吟風弄月以歸 有吾與點也之意]” 〈권1 염계선생(濂溪先生)〉
‧ “〈명도 선생은〉 타고난 자질이 이미 남다르면서 확충하고 기르는 데에도 도가 있었다. 순금처럼 순수했고, 옥처럼 따뜻하고 윤택했다. 관대하면서도 절제함이 있었고, 조화를 이루면서도 휩쓸리지 않았다. 진실되고 성실한 자세는 쇠나 돌을 뚫을 만했고, 효도와 공손함은 신명(神明)에 통했다. 얼굴빛을 살펴보면 사람을 대할 때 봄날 햇볕의 따사로움 같았고, 가르침을 들으면 사람을 감화시키는 것이 때에 맞추어 내리는 비가 적시는 것과 같았다. 가슴은 탁 트여서 사물을 보는 데 간격이 없었다. 학식의 깊이를 재어보면 끝없는 바다처럼 넓었고, 덕성이 지극하여 어떤 아름다운 말로도 형용하기에 부족했다.[先生資稟旣異 而充養有道 純粹如精金 溫潤如良玉 寬而有制 和而不流 忠誠貫於金石 孝悌通於神明 視其色 其接物也 如春陽之溫 聽其言 其入人也 如時雨之潤 胸懷洞然 徹視無閒 測其蘊 則浩乎若滄溟之無際 極其德 美言蓋不足以形容]” 〈권2 명도선생(明道先生)〉
(2) 색인어:주희(朱熹), 이락연원록(伊洛淵源錄), 도통(道統), 도학전(道學傳), 염락관민(濂洛關閩)
(3) 참고문헌
‧ 朱子全書(朱傑人 等 主編, 上海古籍出版社)
‧ 二程集(程顥, 程頤, 中華書局)
‧ 宋元學案(黃宗羲, 中華書局)
‧ 朱子大傳(束景南, 福建敎育出版社)
‧ 〈朱熹伊洛淵源錄版本硏究〉(李愛華 等, 遼東學院學報, 第21卷第1期, 2019年2月)


【임헌규】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0.08.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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