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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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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하동집(柳河東集)》은 중당(中唐)의 문인 유종원(柳宗元)의 시문집으로, 본집 45권, 《외집(外集)》 2권, 《보유(補遺)》 1권이다. 친우(親友) 유우석(劉禹錫)이 유종원의 시(詩)·부(賦)·논(論)·비(碑)·행장(行狀)·기(記)·고금시(古今詩) 등을 모아 편집한 문집이다. 명나라 장지교(蔣之翹)가 집주(輯注)한 텍스트가 널리 유통되었다.
2. 편·저자
(1)성명:저자 유종원(柳宗元)(773~819), 편자 유우석(劉禹錫)(772~842).
(2)자(字)·별호(別號):유종원은 자가 자후(子厚), 본적지가 하동 출신이므로 유하동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마지막의 관직이 유주(柳州)의 자사였으므로 유유주(柳柳州)라고 부르기도 한다. 유우석은 자가 몽득(夢得)이다.
(3)출생지역:유종원은 당(唐)나라 장안(長安)(현 산서성(山西省) 서안(西安))에서 출생하였고, 유우석은 중산(中山)(현 하북성(河北省) 정주시(定州市)) 혹은 팽성(彭城)(현 강소성(江蘇省) 서주시(徐州市)) 출신이라고 한다.
(4)주요활동과 생애
유종원은 백거이(白居易)·유우석보다 한 해 뒤에 출생하였다. 시에서는 왕유(王維)나 맹호연(孟浩然)과 함께 자연시인으로서 이름이 높았고, 산문에서는 한유(韓愈)와 함께 고문부흥 운동을 실천하여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당(唐)나라 덕종(徳宗)의 정원(貞元) 9년(793)에 진사(進士)에 천거되고, 정원 14년(798)에 관리등용 시험인 박학굉사과(博學宏詞科)에 합격해서 집현전정자(集賢殿正字)에 배수되었다. 교서랑(校書郎), 섬서성(陝西省) 남전(藍田)의 위(衛)를 거쳐, 감찰어사리행(監察御史裏行)을 역임하였다. 당시 환관 세력을 중심으로 하는 보수파와 한림학사 왕숙문(王叔文)·왕비(王伾) 등 신진 관료 집단이 대립하였는데, 예부원외랑(禮部員外郞)으로 있던 유종원은 친우 유우석과 함께 이왕(二王)(왕숙문·왕비)의 집단에 참가하여 예부시랑(禮部侍郎)이 되었다. 그러나 805년 덕종의 몰후 순종(順宗)이 병약하여 퇴위하고, 헌종(憲宗)이 즉위하고 무원형(武元衡) 등 보수파가 득세하게 되면서 개혁정책 ‘영정(永貞)의 혁신’은 7개월 만에 좌절하였다. 이왕 집단이 실각하면서 유종원도 처형은 면하였으나 호남성(湖南省) 소주(邵州)의 자사(刺史)로 좌천되었다. 그런데 보수파의 획책으로 개혁파에게 엄벌을 부과하게 되어, 유종원은 소주에 도착하기 전에 자사의 직에서 해임되어 다시 호남성 영주(永州)의 사마(司馬)로 좌천되었다. 당시 개혁파의 8인이 사마의 직으로 모두 좌천되었으므로 이것을 ‘팔사마(八司馬) 사건’이라고 한다. 당시 유종원은 33세였다. 이후 영주에 10년간 거처하다가, 원화(元和) 10년(815), 장안에 소환되었으나 다시 광서성(廣西省) 유주(柳州)의 자사로 나갔다. 이곳은 현재 광서장족자치구(廣西壯族自治區)이다. 원화 14년(819), 유종원은 47세로 유주에서 몰하였다. 한유가 〈유자후묘지명(柳子厚墓誌銘)〉을 작성하였다.
《유하동집》의 편자인 유우석은 정원 9년(793) 진사(進士)에 급제하고 회남절도사(淮南節度使) 두우(杜佑)의 막하에서 서기(書記)로 있었다. 이후 유종원과 함께 왕숙문의 당파에 가담하였다가, 헌종이 즉위함에 무원형 등이 득세하여 왕숙문이 실각하자, 그도 광동성(廣東省) 연주(連州)의 자사(刺史)로 좌천되었다가 다시 호남성(湖南省) 낭주(朗州)(현 호남성 상덕시(常徳市))의 사마(司馬)로 좌천되었다. 9년 뒤 원화 10년(815) 장안에 소환되었으나 현도관(玄都觀)을 읊은 시가 정부를 비판했다는 죄목으로 다시 연주 자사로 나갔다. 그 후 여러 곳의 자사를 거쳐 대화(大和) 2년(828) 장안에 돌아와 주객낭중(主客郎中)에 배수되었다. 하지만 후원해주던 재상 배도(裴度)가 은퇴한 후 그도 낙양(洛陽)으로 쫓겨나고, 대화 6년(832)에는 소주(蘇州)의 자사가 되었다. 검교예부상서(檢校禮部尙書)·태자빈객(太子賓客)으로서 생을 마쳤다.
(5)주요저작:유우석은 〈죽지사(竹枝詞)〉, 〈유지사(柳枝詞)〉, 〈삽전가(揷田歌)〉, 《유몽득문집(柳夢得文集)》, 《외집(外集)》 등이 있다.

3. 서지사항

《유하동집》의 각 권은 운문과 산문을 구분하고, 운문과 산문을 다시 양식별로 수록하였다. 운문에는 아시(雅詩), 가곡(歌曲), 고부(古賦), 고금시(古今詩)가 속하는데, 아시, 가곡, 고부는 앞부분에 배치하고 고금시는 문집의 뒷부분에 배치하였다. 산문에는 논(論), 의변(議辯), 고성현비(古聖賢碑), 석교비(釋敎碑), 석교비명(釋敎碑銘), 행장(行狀), 표명갈뢰(表銘碣誄), 지(志), 지갈뢰(志謁誄), 표지(表志), 지(志), 대(對), 문답(問答), 설(說), 전(傳), 소(騷), 조찬잠계(弔贊箴戒), 명잡제(銘雜題), 제서(題序), 서(序), 서별(序別), 서(序), 서(序)(운둔도유석(隱遁道儒釋)), 기(記)(관서(官署)·정지(亭池)·사묘(祠廟)·산수(山水)), 서(書)(명방책궁(明謗責躬)), 서(書), 계(啓), 표(表)(경하(慶賀)·기타), 주상(奏狀), 제문(祭文)를 구분하였다. 또한 고전 연구의 저술인 〈비국어(非國語)〉를 분리하여 별도로 배치하였다.
한편 유종원에 관한 자료로 묘지명이 최근 출토되었다. 또한 유종원의 문집으로는 사부총간(四部叢刊) 《증광주석음변당유선생집(増廣注釋音辯唐柳先生集)》, 문연각사고전서(文淵閣四庫全書) 《신간고훈당유선생문집(新刊詁訓唐柳先生文集)》, 문연각사고전서(文淵閣四庫全書) 《오백가주음변당유선생문집(五百家注音辯唐柳先生文集)》, 정정본(鄭定本) 《중교첨주음변당유선생문집(重校添注音辯唐柳先生文集)》, 요영중세채당본(廖瑩中世彩堂本) 《하동선생집(河東先生集)》, 남송영주각(南宋永州刻) 《유유주외집(柳柳州外集)》, 장지교(蔣之翹) 집주(輯注) 《당유하동집(唐柳河東集)》, 곽운붕제미당(郭雲鵬濟美堂) 《하동선생집(河東先生集)》, 유거경(游居敬) 교각(校刻) 《유문(柳文)》, 하작(何焯) 비교(批校) 《왕형석선생비평유문(王荊石先生批評柳文)》이 있다. 그리고 이방(李昉) 등 편(編) 《문원영화(文苑英華)》, 요현(姚鉉) 《당문수(唐文粹)》, 곽무천(郭茂倩) 《악부시집(樂府詩集)》, 《전당시(全唐詩)》, 《전당문(全唐文)》 등에 시문이 수록되어 있다. 윤점화(尹占華)·한문기(韓文奇) 교주(校注), 《유종원집교주(柳宗元集校注)》 10책이 간행되어 있다.

4. 내용

《유하동집》의 전체 목차를 보면 다음과 같다.
권1 〈아시가곡(雅詩歌曲)〉, 권2 〈고부(古賦)〉, 권3 〈논(論)〉, 권4 〈의변(議辯)〉, 권5 〈고성현비(古聖賢碑)〉, 권6 〈석교비(釋敎碑)〉, 권7 〈석교비명(釋敎碑銘)〉, 권8 〈행장(行狀)〉, 권9 〈표명갈뢰(表銘碣誄)〉, 권10 〈지(志)〉, 권11 〈지갈뢰(志謁誄)〉, 권12 〈표지(表志)〉, 권13 〈지(志)〉, 권14 〈대(對)〉, 권15 〈문답(問答)〉, 권16 〈설(說)〉, 권17 〈전(傳)〉, 권18 〈소(騷)〉, 권19 〈조찬잠계(弔贊箴戒)〉, 권20 〈명잡제(銘雜題)〉, 권21 〈제서(題序)〉, 권22 〈서(序)〉, 권23 〈서별(序別)〉, 권24 〈서(序)〉, 권25 〈서운둔도유석(序隱遁道儒釋)〉, 권26 〈기관서(記官署)〉, 권27 〈기정지(記亭池)〉, 권28 〈기사묘(記祠廟)〉, 권29 〈기산수(記山水)〉, 권30 〈서명방책궁(書明謗責躬)〉, 권31 〈서(書)〉, 권32 〈서(書)〉, 권33 〈서(書)〉, 권34 〈서(書)〉, 권35 〈계(啓)〉, 권36 〈계(啓)〉, 권37 〈표경하(表慶賀)〉, 권38 〈표(表)〉, 권39 〈주상(奏狀)〉, 권40 〈제문(祭文)〉, 권41 〈제문(祭文)〉, 권42 〈고금시(古今詩)〉, 권43 〈고금시(古今詩)〉, 권44 〈비국어 상(非國語上)〉, 권45 〈비국어 하(非國語下)〉, 《外集》 권 상(上) 〈부문지(賦文志)〉, 《외집》 권 하(下) 〈표계(表啓)〉, 《보유(補遺)》, 《부록(附錄)》 등.
유종원은 한유와 함께, 육조(六朝)로부터 수당(隋唐)에 이르기까지 주류를 이루고 있던 사륙변려문(四六駢儷文)의 형식주의 문학을 비판하고 달의(達意)를 주지로 하는 진한(秦漢)의 고문을 모범으로 삼아 새로운 문체를 제창하였다. 유종원은 명도(明道)를 중시했다. 그는 〈시령론(時令論) 상(上)〉에서, 한비자가 “성인의 도는 특이한 것을 궁구하여 신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으며 하늘을 끌어와서 고원한 것으로 삼지 않는다.[聖人之道 不窮異以爲神 不引天以爲高]”라고 했던 말을 끌어온 후, “사람들에게 이롭고 모든 일에 적절하도록 그렇게 할 뿐이다.”[利於人 備於事 如斯而已矣]라고 하여, 도를 매우 현실적인 의미로 파악했다. 《유하동집》에는 유종원이 남긴 고문 문체의 명작이 거의 모두 수록되어 있다. 그 가운데서도 권19 〈조찬잠계(弔贊箴戒)〉에 수록된 〈삼계(三戒)〉 등 풍유체(諷諭體) 산문과 권29 〈기산수(記山水)〉에 수록된 〈영주팔기(永州八記)〉 등 산수유기가 특히 저명하다. 〈삼계〉 가운데 〈부판전(蝜蝂傳)〉은 전이라 했지만 풍유체 산문이다. 작은 벌레가 감당하지 못할 짐을 지고 다니다가 높은 곳에 올라 떨어져 죽는 사실을 비유로 들어 인간이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욕망을 지고 사는 것을 풍자했다. 영주팔기는 〈시득서산연유기(始得西山宴游記)〉, 〈고무담기(鈷鉧潭記)〉, 〈고무담서소구기(鈷鉧潭西小丘記)〉, 〈지소구서소석담기(至小丘西小石潭記)〉, 〈원가갈기(袁家渇記)〉, 〈석거기(石渠記)〉, 〈석간기(石澗記)〉, 〈소석성산기(小石城山記)〉 등 8편이다. 〈소석담기(小石潭記)〉는 소(沼)에서 물고기들이 유영하는 모습을 중점적으로 묘사하면서, 불행한 처지에서 느끼는 자신의 흉금을 담아냈다.
유종원은 춘추학(春秋學)을 전공하기도 한 인물로, 그의 산문은 논리가 엄정하기로 유명하다. 유종원의 〈종수곽탁타전(種樹郭橐駝傳)〉은 종수(種樹)의 일을 빌려 재상의 역할을 논한 명문으로 꼽힌다. 입전(立傳)의 대상도 하찮은 인물에까지 확대해서 〈종수곽탁타전(種樹郭槖駝傳)〉이외에 〈송청전(宋淸傳)〉과 〈동구기전(童區寄傳)〉도 집필하였다. 또한 〈동엽봉제변(桐葉封弟辨)〉에서는 《여씨춘추》와 《설원》, 그리고 《사기》 〈진세가(晉世家)〉에 실린 “오동잎으로 아우를 제후에 봉했다.”라는 사실을 변정(辨正)하고, “천자는 장난할 수 없다.[天子不可戱]”라는 설을 반박했다. 귀류법(歸謬法)을 이용하여 “천자는 장난할 수 없다.”라는 전제를 분쇄하고 “만일 군주가 오동잎으로 규옥의 모양을 만들어 궁중의 부인이나 환관에게 주고 장난하더라도 그 말대로 실시해야 한단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포사자설(捕蛇者說)〉·〈변논어(辨論語)〉·〈변열자(辨列子)〉·〈변귀곡자(辨鬼谷子)〉·〈박복수의(駁復讐議)〉 등이 모두 논리가 특히 뛰어나다.
한편 《유하동집》은 유종원의 풍유체 산문 가운데 소(騷)의 양식을 취한 것으로, 〈걸교문(乞巧文)〉·〈매시충문(罵尸蟲文)〉·〈참곡궤문(斬曲几文)〉·〈유복사문(宥蝮蛇文)〉·〈증왕손문(憎王孫文)〉·〈축필방문(逐畢方文)〉·〈변복신문(辯伏神文)〉·〈소리문(愬螭文)〉·〈애닉문(哀溺文)〉·〈초해고문(招海賈文)〉 등을 별도로 구별하여 두었다.

5. 가치와 영향

《유하동집》은 유종원의 자연시와 고문을 집성한 문집으로, 후세의 시문학과 산문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산문 가운데 〈영주팔기〉는 후대 산수유기(山水遊記) 문학의 시원으로 평가되고, 〈삼계〉는 우언(寓言) 양식의 시발로 평가된다.
정도전(鄭道傳)의 〈사리매문병서(謝魑魅文幷序)〉는 한유의 〈송궁문(送窮文)〉과 같은 양식인데, 꿈속에서 이매[도깨비(두억서니)]가 도발하는 것을 묘사해서, “펄쩍 뛰고 냅다 부딪치고 벌떡 넘어지고 함부로 밀친다.[跳踉衝冒 偃仆蕩倚]”라고 표현했다. 이 묘사는 실은 유종원의 〈삼계(三戒)〉 가운데 ‘검주의 당나귀[黔之驢]’에서 호랑이가 당나귀를 “툭툭 건드리고 냅다 부딪치며[蕩倚衝冒]”, “펄쩍 뛰어 덥석 물었다[跳踉大㘚]”라고 묘사했던 표현을 이용한 것이다.
세종은 경자자(庚子字)·갑인자(甲寅字)·병진자(丙辰字) 등의 활자로 서적을 간행하여 문신들에게 반포하고, 지방 관아로 하여금 정판(整版)·간행케 함으로써 문화 수준을 향상시키려고 하였다. 1440년(세종 22)에는 《당유선생집(唐柳先生集)》을 갑인자로 간행하였다. 한편 집현전 학사들은 안평대군을 중심으로 하나의 문단을 형성하였는데, 안평대군의 《당송팔가시선(唐宋八家詩選)》(《팔가시선(八家詩選)》)은 이백(李白)·두보(杜甫)·위응물(韋應物)·유종원(柳宗元)·구양수(歐陽脩)·왕안석(王安石)·소식(蘇軾)·황정견(黃庭堅)의 시를 대상으로, 당시 유행하던 《삼체당시(三體唐詩)》(《삼체시(三體詩)》)에 따라 칠언절구·칠언율시·오언율시만을 선별하여 엮은 시선집이다.
정조는 당송팔가를 고문의 모범으로 표창하여, 재위 5년인 1781년에 당송고문의 진수 100편을 선하여 《팔자백선(八子百選)》(《당송팔백자선(唐宋八子百選)》)을 엮고 정유자(丁酉字)로 간행하고서, 그것들을 다시 목판으로 찍어 내게 했다. 뒤에 정조는 그 자매편으로 작가별 선집인 《팔가수권(八家手圈)》도 엮었다. 《팔자백선》은 한유 30편, 유종원 15편, 구양수 15편, 소순 5편, 소식 20편, 소철 5편, 왕안석 7편, 증공 3편을 수록하였다.

6. 참고사항

(1)명언
• “일천 산에 새의 날갯짓 끊기고, 일만 길에 사람 발자취 감췄는데, 외론 배에 도롱이 삿갓 쓴 노인, 홀로 낚고 있다, 추운 강에 눈 내리는 때.[千山鳥飛絶 萬徑人蹤滅 孤舟簑笠翁 獨釣寒江雪]” 〈강설(江雪)〉
기구(起句)와 승구(承句)가 우연히 짝을 이루어 풍경 묘사의 형성력을 발휘하였다. 당나라 때 나온 오언절구 가운데 이 작품보다 뛰어난 것이 없다는 논평이 있다. ‘絶’과 ‘滅’이라는 시어가 절대적 고요와 절대적 평화를 절묘하게 상징하고 있다.
(2)색인어:유종원(柳宗元), 유하동집(柳河東集), 유우석(劉禹錫), 우언(寓言), 산수유기(山水遊記), 당유선생집(唐柳先生集), 고문(古文), 자연시(自然詩), 세종(世宗), 정조(正祖), 안평대군(安平大君)
(3)참고문헌
• 五百家注音辨唐柳先生文集(中華再造善本 集部 唐宋編, 北京圖書館)
• 柳河東集(柳宗元 撰, 蔣之翹 輯注, 四部備要集部, 臺灣中華書局)
• 柳河東集(中國古典文學叢書, 上海古籍)
• 柳宗元集(中國古典文學基本叢書, 中華書局)
• 柳宗元集校注(柳宗元 著, 尹占華·韓文奇 校注, 中國古典文學基本叢書, 中華書局)
• 유종원집(유종원 지음, 오수형·이석형·홍승직 옮김, 소명출판)
• 唐宋八大家文抄 柳宗元(송기채, 전통문화연구회)
• 한문산문미학(심경호, 고려대학교 출판부)
【심경호】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0.08.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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