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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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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용(中庸)》은 자사(子思) 혹은 진(秦), 한(漢)나라 때 유학자가 지었다고 전해진다. 《중용》은 원래 《예기(禮記)》에 속해 있는 한 편이었으나, 송나라 이래 독립된 전적으로 읽혀지다가 주희(朱熹)에 이르러 사서(四書)에 편입되었다. 송나라 이후 주자학이 동아시아 유학의 주류가 됨으로써 주희가 편찬하고 주석을 단 《사서집주(四書集注)》의 위상도 격상되었다. 이에 따라 《중용》 또한 유가의 이념을 담은 중요한 저작으로 인식되었고, 특히 주자학이 성행했던 조선에서는 오경을 능가하는 학문적 권위를 담은 저작으로 평가되었다.

2. 저자

(1)성명:공급(孔伋)(?~?) 혹은 자사학파(子思學派)
(2)자(字)·별호(別號):자(字)는 자사(子思)로 보통 자로 부름.
(4)주요활동과 생애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에서 《중용》의 저자를 자사(子思) 즉 공급(孔伋)이라고 하였다. 사마천 이후 이러한 설은 당나라 공영달(孔穎達)에 의해 계승되었으며, 특히 송나라에 이르러 주희를 위시한 성리학자들이 《중용》의 저자로 자사를 강력하게 지지하였다. 송나라 이후 주자학이 한중일 삼국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 자사의 《중용》 저자설은 널리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송나라에 이미 구양수(歐陽脩) 등이 《중용》은 자사가 지은 것이 아니라고 하였고, 청나라에 이르러 고증학자 최술(崔述) 등에 의해 《중용》의 저자에 대한 기존의 논의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이후 근대의 호적(胡適)이나 전목(錢穆) 같은 저명한 학자들은 진(秦), 한(漢) 시대 무명(無名) 유학자들의 작품이라고 단정하였다. 결국 《중용》은 자사 혹은 자사학파의 유학자들의 손에 의해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3. 서지사항

《중용》은 원래 《예기(禮記)》의 제31편에 들어 있던 것이었다. 《중용》이 독립된 책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한나라 때부터였다. 이후 수(隋)나라와 당(唐)나라를 거쳐 《중용》에 관한 독립된 저술들이 잇달아 나왔다. 한편 송대에 이르러 더욱 많은 유학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하였는데, 특히 주희가 《논어(論語)》 《맹자(孟子)》 《대학(大學)》에다 《중용》을 합하여 사서(四書)로 삼은 뒤부터 이 책은 완전히 경서의 반열에 올랐다. 주이존(朱彛尊)의 《경의고(經義考)》155권 〈왕씨백정고중용(王氏柏訂古中庸)〉에 기록된 왕백(王柏)의 설에 따르면, 원래 《예기》의 중용은 〈중용(中庸)〉과 〈성명(誠明)〉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예기》의 편자인 소대(小戴)가 한 편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설은 《중용》의 체제가 다른 경서에 비해 다른 내용의 혼합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짐작케 한다. 이에 여러 유학자들은 《중용》의 분장을 의미에 따라 다양하게 하였는데, 후대에 가장 영향을 미친 분장체계는 주희가 《중용장구(中庸章句)》에서 행한 33장의 분장이었다.

4. 내용

주희의 《중용장구(中庸章句)》 〈서문〉을 중심으로 《중용》의 내용을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다. 상고(上古)시대 유가의 성왕들인 요임금과 순임금은 인류 문명의 새벽을 열면서 후대 왕들에게 유가의 비결(秘訣)을 전수하였다. 이른바 16자 심전(心傳)이라 전해지는 《서경》 〈대우모〉에 나오는 “인심은 위태하고 도심은 미세하니, 오직 정밀하고 일관되게 하여 그 중도(中道)를 진실로 잡아야 한다.[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가 바로 이것이다. 이 16자 심전은 이후 탕, 문왕, 무왕 같은 군주들과 고요, 이윤, 부열, 주공, 소공 같은 신하들에 의해 계승되었으며 마침내 공자에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다시 이는 안연과 증삼을 거쳐 자사로 이어졌다. 여기서 이른바 유가의 도통이 성립되었다. 그런데 자사에 이르러 문제가 발생하였다. 16자 심전이 발생한 시점으로부터 시간이 많이 흐르자 사이비 이단이 득세를 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자사는 이를 걱정하여 16자 심전을 부연하여 유가의 도통을 확립하고자 하여 《중용》을 지은 것이다. 《중용》 1장의 ‘천명(天命)·솔성(率性)’은 바로 16자 심전의 ‘도심(道心)’을 부연한 것이고, 《중용》 20장의 ‘택선(擇善)·고집(固執)’은 ‘유정유일(惟精惟一)’을 설명한 것이며, 《중용》 2장의 ‘군자(君子)·시중(時中)’은 ‘집중(執中)’을 논의한 것이다. 즉 주희의 설명에 의하면, 《중용》의 내용은 《서경》 〈대우모〉에서 논의된 16자 심전의 주석에 불과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중용》은 고대 유가의 도통에 등장하는 핵심 이론을 확대 해석한 책인 것이다.

5. 가치와 영향

《중용》은 주희가 사서의 하나로 삼고 주석을 단 이후로 유가사상을 대표하는 경전의 지위를 획득하였다. 주희는 《중용》에 주석을 달면서, 한당대(漢唐代)에 발흥한 도가와 불가의 형이상학적 논리에 대응할 이기론적 사유를 투영시켰다. 주희의 이러한 시도로 말미암아 유학은 일대 혁신을 이루었다. 고대 유가의 실천윤리성에 이를 뒷받침하는 근본원인으로서의 형이상학성이 더해져서 이른바 신유학을 정립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이기론은 인간 본성뿐 아니라 우주 자연의 모든 현상을 설명하면서, 이에 관한 수많은 담론들을 도출하였다. 특히 조선에서는 이러한 학술적 담론이 크게 성행하여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 같은 학자들에 의해 독자적인 주자학 담론이 출현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의 후예들에 의하여 조선의 주자학은 주자서에 관한 문헌고증과 정밀하고도 새로운 이론의 창조라는 동아시아에서 보기 드문 학술적 성과를 이룩하였다.

6. 참고사항

(1)명언
• “하늘이 명(命)하신 것을 성(性)이라 이르고, 성(性)을 따름을 도(道)라 이르고, 도(道)를 품절(品節)해 놓음을 교(敎)라 이른다.[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 〈1장〉
• “남이 한 번에 능하거든 나는 백 번을 하며, 남이 열 번에 능하거든 나는 천 번을 하여야 한다.[人一能之 己百之 人十能之 己千之]” 〈20장〉
• “성(誠)은 하늘의 도(道)이고, 성(誠)해지려고 하는 것은 사람의 도(道)이다. 성(誠)한 자는 힘쓰지 않아도 도(道)에 맞으며, 생각하지 않아도 알아서 저절로 도(道)에 맞으니 성인(聖人)이다. 성(誠)해지려고 하는 자는 선(善)을 택하여 굳게 지키는 자이다.[誠者 天之道也 誠之者 人之道也 誠者 不勉而中 不思而得 從容中道 聖人也 誠之者 擇善而固執之者也]” 〈20장〉
(2)색인어:중용(中庸), 중화(中和), 귀신(鬼神), 공급(孔伋), 자사(子思), 심전(心傳).
(3)참고문헌
• 中庸章句(朱熹, 中華書局)
• 中庸哲學硏究(譚宇權, 文津出版社)
• 學庸硏究論集(吳康 等著, 黎明文化)
• 역주 중용장구(성백효 역, 전통문화연구회)
• 중용(동양고전연구회, 민음사)
• 중용(김학주 역주,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이영호】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0.08.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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