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북송 때 요현(姚鉉)(968~1020)이 편찬한 당나라 시문 선집으로 100권으로 되어 있다. 요현은 서문에서 “문수(文粹)란 무엇을 이르는가? 당나라 현자의 글 중에 정수가 되는 것을 집록한 것이다.”라고 했다. 《당문수(唐文粹)》의 편선(編選)은 송(宋) 진종(真宗) 함평(咸平) 5년(1002)부터 시작해 대중상부(大中祥符) 4년(1011)에 완성되었고 본래 《문수(文粹)》라고 했다가 남송 때 《당문수(唐文粹)》로 개칭했다. 편찬 체제는 《문선(文選)》과 비슷하나 요현이 복고를 숭상하여 병문(騈文)을 거의 수록하지 않고 고문과 고체시만 수록했다.2. 편자
(1) 성명:요현(姚鉉)(968~1020)3. 서지사항
《당문수》는 총 100권으로 되어 있으며 고부(古賦), 고조(古調), 송(頌), 찬(贊), 표(表), 주(奏), 소(疏), 서(書), 책(策), 문(文), 논(論), 고문(古文), 비(碑), 명(銘), 기(記), 잠(箴), 계(誡), 서(書), 서(序), 전(傳), 록(錄), 기사(記事) 등 총 22類로 분류되어 있다. 작가 260여 인의 작품을 망라하고 있고 詩文 2088작품을 수록하고 있다. 그 가운데 고부(古賦)는 9권 55편이 있고 시(詩)는 9권(그중 14권부터 17권은 상하로 나뉘어져 있어 실은 13권임) 981수가 있으며 송(頌), 찬(贊), 표(表) 등 다양한 문장 82권 1052편이 있다. 북송 보원(寶元) 2년(1939) 각본과 남송 소흥(紹興) 9년(1139) 임안부(臨安府) 각본이 있으며 명나라 때에도 여러 가지 각본이 있었다. 지금 유통되는 판본으로는 《사부총간(四部叢刊)》 초편(初編)에 편입된 명나라 가정(嘉靖) 3년(1524) 서육(徐焴) 각본과 《사고전서(四庫全書)》본이 있고, 또 1986년 절강인민출판사(浙江人民出版社)에서 나온 광서(光緖) 16년(1891) 항주허씨유원교각본(杭州許氏榆園校刻本)의 영인본 등이 있다.4. 내용
북송 초기 문단은 만당오대(晚唐五代) 이래의 화려하고 퇴폐적인 유미주의와 형식주의적 기풍이 성행한 바, 요현은 본서를 선집해 이를 제거하고 복고를 추구하여 고문운동에 호응하고자 했다. 서문에서 “오직 예스럽고 우아함만을 숭상하고 지나치게 꾸미는 것을 뛰어나다고 여기지 않으니 과장한 문사는 모두 취하지 않았다.”라고 했듯이 고체(古體)를 숭상하는 경향이 매우 선명하다. 이 선집은 목차에서 첫 번째 문체는 고부(古賦)라 했고 두 번째는 고조(古調)라 했으며 시부(詩賦) 부분에는 악부(樂府)와 고체시만 수록했고 시 작품에서 제목에 ‘고의(古意)’, ‘고흥(古興)’, ‘풍고(諷古)’, ‘영고(詠古)’, ‘의고(擬古)’, ‘남고(覽古)’, ‘속고시(續古詩)’ 등과 같은 ‘고(古)’자가 들어간 작품이 유난히 많다. 권12에 ‘흥망(興亡)’ 4수, 권15에 ‘회고(懷古)’ 12수, 권18에 ‘영사(詠史)’ 21수, 권24에 ‘고현(古賢)’ 4수가 수록되어 있는데 비록 시체와 분류가 다르지만 내용은 모두 고인(古人)이나 고사(古事) 혹은 국가의 치란과 흥망을 읊은 영사시(詠史詩)들이다. 문(文)의 부분에는 또한 ‘고(古)’자를 강조해 고문(古文)을 따로 하나의 문체로 묶어 중시하고 있다. 문장가들 가운데에 고문운동의 대표적 작가들의 글을 많이 수록하고 있는데 가장 많은 것은 한유(韓愈)의 글로 62편을 수록했고 그 다음은 유종원(柳宗元)의 글로 55편을 수록했다.5. 가치와 영향
요현의 《당문수》는 송나라 초기 고문을 제창했던 유개(柳開)와 목수(穆修)를 계승하여 당말과 오대로부터 성행한 유약하고 화려한 문풍을 바로 잡는 데에 기여했고 후대 구양수(歐陽修)와 매요신(梅堯臣), 윤수(尹洙) 등이 시문혁신운동을 일으키는 데 영향을 끼쳤다. 동류의 《문원영화(文苑英華)》에 비해 시문의 양은 적지만 선집의 표준이 다르기 때문에 《문원영화》에 편입되지 않은 작품을 많이 수집하고 보존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뚜렷한 문학관은 송대의 문학 복고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사용된 자료가 풍부해 당대 시문을 교감하는 데에도 가치가 있다. 청인(淸人) 비유용(費有容)은 《고경정사과예칠집(詁經精舍課藝七集)》에서 ‘마음의 공정함(存心之公)’과 ‘식견의 정밀함(立識之精)’과 ‘취재의 풍부함(取材之富)’ 등 세 가지가 남이 미치지 못하는 바라 평가했으며, 왕사진(王士禛)은 《대경당시화(帶經堂詩話)》 권4에서 “《문선》 이후 오직 요현의 《당문수》만 탁월하고 볼 만하여 다른 선집이 미치지 못한다. 수록한 시는 모두 악부나 고시이고 근체시를 취하지 않아 유난히 식견이 있다.”고 평했다. 조선에서도 많이 읽혀 이색(李穡)의 《목은집(牧隱集) · 목은시고(牧隱詩稿)》 제10권에 실린 〈기증김경숙소감(寄贈金敬叔少監)〉과 《世宗實錄》 93권 세종 23년 8월 11일 을해조(乙亥條) 기사인 〈시호법에 관한 의정부의 상소문〉 등에 모두 《당문수》에 대한 언급이 보인다.6. 참고사항
(1) 명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