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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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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장생전(長生殿)》은 청(淸)나라 초기 극작가 홍승(洪昇)의 극본(劇本)이다. 당 현종(唐玄宗)과 양귀비(楊貴妃) 양옥환(楊玉環)의 사랑이야기는 이미 당대(唐代)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장한가(長恨歌)〉와 원대(元代) 잡극가 백박(白樸)의 《오동우(梧桐雨)》에서 다루었다. 그러나 《장생전》에서는 이 이야기를 더욱 발전시켜 당시 사회와 정치를 풍자하고 두 주인공의 애정 이야기를 더욱 충실하게 묘사하였다. 《장생전》에서는 양귀비를 나라를 망하게 한 여인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아름다움은 물론이고 음악과 춤에 조예가 깊으며 변함없는 사랑을 품은 여인으로 재조명하였다. 후에 홍승은 공상임(孔尚任)과 함께 ‘남홍북공(南洪北孔)’(남쪽의 홍승, 북쪽의 공상임)이라는 말로 병칭되었다.

2. 저자

(1) 성명:홍승(洪昇)(1645~1704)
(2) 자(字)·별호(別號):자는 방사(昉思), 호는 패휴(稗畦) 또는 패촌(稗村), 남병초자(南屏樵者)
(3) 출생지역:절강성(浙江省) 항주시(杭州市)
(4) 주요활동과 생애
명문세가의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정통 유가교육을 받아 15세에 이미 이름이 널리 알려졌으며 20세쯤에는 시문(詩文)과 사곡(詞曲)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강희 7년(1668) 북경 국자감에서 수학하지만 20년 동안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여 관직을 얻지 못한다. 27세 무렵 집안사정이 안 좋아지자 생계를 위해 다시 북경으로 올라왔다. 강희 18년(1679) 겨울에 부친이 모함을 받자 다시 항주로 되돌아간다. 강희 27년(1688)년 44세 때에 《장생전》을 완성하고 배우들을 모아 공연하여 일시에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강희제가 궁정에서 공연한 《장생전》을 보고는 불경하다고 여겨 관련 인물을 하옥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1689년 자효황후(孝懿皇後)가 승하하여 향락을 금하던 차에 홍승의 친구 조집신(趙執信) 등이 악공을 불러 《장생전》을 공연하는 바람에 관련자 모두 탄핵을 받게 된다. 이 일로 홍승은 태학생의 자격을 박탈당하고 북경을 떠나 강희 30년(1691) 46세에 다시 고향 항주로 돌아온다. 만년의 생활은 몹시 곤궁하였다. 그러나 《장생전》은 더욱 유명하여 각지에서 공연된다. 강희 43년(1704) 조인(曹寅)이 남경에서 《장생전》 전체를 공연하였고, 홍승도 이를 관람하였다. 그 후 항주로 돌아가던 중에 오진(烏鎮)에서 술에 취해 실족하여 물에 빠져 세상을 떠났다.
(5) 주요저작:8종의 전기(傳奇) 작품과 3종의 잡극(雜劇)이 있지만 현재는 전해오지 않고 《장생전》과 《사선연(四嬋娟)》 만이 전한다.

3. 서지사항

본 작품은 전체 50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궁궐의 장생전(長生殿)에서 당 현종과 양귀비가 견우직녀를 바라보면서 굳은 사랑을 맹세했기 때문에 제목을 《장생전》이라 하였다.
《장생전》은 10여년 동안 3번의 수정을 거쳐 완성되었다. 1673년에 《침향정(沈香亭)》을 완성했고, 1679년에 《무예상(舞霓裳)》을 완성했다. 그리고 1688년에 앞의 두 작품을 개편하여 《장생전》으로 제목을 고쳐서 나왔는데 출간되자 마자 사대부들의 주목을 받았다. 당 현종과 양귀비의 이야기는 당대(唐代)에 이미 이백, 두보, 백거이 등의 작품에서 등장하였고, 남송과 원대에 이르기까지 끝없이 탄생하였다. 현재까지 제목을 알 수 있는 작품이 40종, 내용까지 전해지는 것이 20종에 달할 만큼 중국 전통극에서 빠질 수 없는 작품이다.

4. 내용

당나라 현종(玄宗)은 귀비 양옥환(楊玉環)을 총애하여 하루 종일 그녀와 함께 지낸다. 후에는 양귀비의 오빠 양국충(楊國忠)을 우상(右相)에 봉하고 그의 세 자매들을 모두 부인(夫人)에 봉한다. 후에 당 현종은 귀비의 언니 괵국부인(虢國夫人)을 봄나들이 연회석에 불러 사랑하였는데 이에 양귀비가 질투를 하자 사택으로 쫓아 버린다. 양귀비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바쳐 황제를 감동시키니 궁으로 다시 불러와 사랑을 다짐한다. 그러나 당 현종이 또 매비(梅妃)의 침소에 드나들며 정무를 게을리하자 양귀비는 충심으로 간언하고 당 현종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다. 여러 가지 곡절을 겪은 후에 둘 사이는 다시 좋아진다. 칠석날 밤에 장생전에서 견우와 직녀를 보면서 두 사람은 영원히 사랑하며 헤어지지 않을 것을 맹세한다. 양귀비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당 현종은 대량의 인력과 물력을 아까워하지 않고 신선한 여지(荔枝)를 구해오라고 할 정도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정무에 소홀하고 양국충과 안녹산을 너무 총애하여 안사의 난이 일어나게 된다. 피난 중에 마외파(馬嵬坡)에서 호위 부대가 반란을 일으키며 양귀비의 목을 요구하자 당 현종은 하는 수 없이 양귀비에게 죽음을 명령하고 양귀비는 황제의 안위를 위해 자결을 선택한다. 양옥환이 죽자 현종은 몹시 후회한다. 한편에서는 곽자의(郭子儀)가 병사를 데리고 와 안녹산을 격퇴시키고 당 현종은 장안으로 모셔온다. 장안에서 매일 밤마다 양귀비를 그리워하는데 종소리만 들어도 단장이 끊어지고, 달만 봐도 상심에 젖고, 양귀비의 조각상만 보고도 통곡한다. 방사(方士)를 봉래산으로 파견하여 양귀비의 영혼을 찾아오라고 한다. 결국 직녀를 감동시켜 두 사람은 달나라에서 재회하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5. 가치와 영향

《장생전》은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만을 노래한 것이 아니고 비판에 더욱 힘을 기울였다. 단순한 애정을 노래한 것으로는 주제가 너무 박약하며 여기에 정치배경을 더하고 작가의 정서를 더하여 전체 작품의 주제는 승화되고 더욱 풍부해지며 충실하다. 청초에는 명나라의 멸망을 탐색하고 교훈으로 삼아 작품속에 투영하였는데 《장생전》 역시 그러하다. 내용은 당나라 황제의 무능과 정치 부패가 나라에 얼마나 커다란 재앙을 가져왔는지를 묘사하면서 당시 사람들에게 교훈을 삼도록 했다. 또한 당현종의 사치를 책망하면서 동시에 당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에 대해서는 동정을 보내고 있다
《장생전》은 경극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처음 《장생전》이 출간된 후에 청나라 궁정에서는 이 작품을 많이 공연하였다. 북경의 취화반(聚和班)、내취반(內聚班) 같은 극단은 이 작품공연으로 명성을 쌓았다. 현재 유명한 경극 《귀비취주(貴妃醉酒)》는 바로 《장생전》의 작품 중에서 몇 단락을 취하여 개편한 것이다. 이 공연은 특히 경극대사라고 일컬어지는 배우 매란방(梅蘭芳)이 양귀비 역을 맡아 최고의 인기를 얻었으며 경극을 대표하는 레퍼터리로 자리매김하였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오늘 밤의 이 기쁨, 이 맑은 바람과 밝은 달빛, 다른 운우지정(雲雨之情)은 가소롭기만 하구나.[此夕歡娛 清風月朗 笑他夢雨暗高唐]” 〈2척〉
• “백년의 이별은 한 순간, 한 시대의 미인은 님을 위해 자진하렵니다.[百年離別在須臾 一代紅顏爲君盡]” 〈25척〉
• “두 줄기 눈물은 자꾸 훔쳐낼 수 있어도, 천만 가닥 그리움은 어찌할 방법이 없구나[雙淚頻揩,千思萬量沒布擺]” 〈41척 〉
(2) 색인어:장생전(長生殿), 홍승(洪昇), 당 현종(唐玄宗), 양귀비(楊貴妃), 안녹산(安祿山), 양옥환(楊玉環), 괵국부인(虢國夫人), 양국충(楊國忠)
(3) 참고문헌
• 長生殿(洪昇, 徐朔方 校注, 人民文學出版社)
• 洪昇年譜(章培恒, 上海古籍出版社)
• 洪昇集(劉輝校箋, 浙江古籍出版社)
• 長生殿箋注(竹村則行、康保成, 中州古籍出版社)
• 長生殿研究(曾永義, 台灣商務印書館)
• 洪昇和長生殿(王永健,上海古籍出版社)
• 洪昇及長生殿研究(孟繁樹,中國戲劇出版社)
• 장생전(洪昇, 이지은 역, 세창출판사)
• 長生殿=(The) palace of eternal youth(徐朔方 校訂, 楊憲益, 戴乃迭 共譯, 大中華文庫 漢英對照)
• 〈홍승의 장생전 연구〉(김우석, 서울대 석사논문)
【강영매】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0.08.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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