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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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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주자연보(朱子年譜)》는 일찍이 왕무횡(王懋竑)이 과거 급제하기 전부터 이전의 연보를 수집하여 바로잡는 작업에 착수하였고, 진사가 된 뒤에도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저술 활동을 계속하였다. 《주자연보》는 이러한 그의 학문 활동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으니, 그는 20여 년에 걸쳐 초안을 4번이나 고치는 작업을 통해 임종 며칠 전에야 비로소 완성할 수 있었다. 반평생에 걸친 기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주자연보》는 주자의 생애에 대해, 특히 주자의 학술사상을 연구하는데 체계적이고 명확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어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
평생을 주자학을 종지로 삼았던 왕무횡은 청초에 유행한 양명학에 대해 근심하여 전력을 다해 이묵본(李黙本) 《연보》를 수정하였으니, 이는 당시 이묵본 《연보》가 지니는 양명학적 요소가 적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주자학자들은 이묵을 양명 후학으로 간주하여 그가 이방자(李方子)가 작성한 연보를 수정한 내용이 왕양명(王陽明)의 《주자만년정론(朱子晩年定論)》과 정민정(程敏政)의 《도일편(道一編)》과 일치한다고 여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뒷사람들은 그 진위를 분별하지 못하고 존경하여 믿기에 이르렀으니, 그 폐해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를 근심한 왕무횡이 전력을 다하여 《연보》를 완성하였으니, 그 목적은 학문하는 순서를 분별하고 이묵본 《연보》의 오류를 바로잡음으로써 양명의 《주자만년정론》설을 공격하기 위함이었다.

2. 저자

(1) 성명:왕무횡(王懋竑)(1668-1741)
(2) 자(字)·호(號):자는 여중(予中)이고, 호는 백전(白田)이다. 선대 때 소주(蘇州)에서 보응(寶應)으로 이주하여 백전(白田)에 거주하다 뒤에 다시 현성(縣城)으로 옮겨 백전초당(白田草堂)을 구축한 까닭에 학자들이 백전 선생이라 불렀다.
(3) 출생지역:강소성(江蘇省) 보응(寶應)(現 중국 강소성(江蘇省) 양주시(揚州市) 보응현(寶應縣))
(4) 주요활동과 생애
어릴 때 숙부 왕식단(王式丹)에게서 배웠다. 그의 숙부 왕식단은 강희(康熙)42년(1703) 계미과(癸未科)의 장원으로 일찍이 《주자전서(朱子全書)》를 편찬하는 작업에 참가하였으며, 주자학에 대해 평소 강구한 바 있어 이로 인해 그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는 41세(1709)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향시에 급제하였고, 강희 57년 51세(1718) 때 진사가 되고, 안경부 교수(安慶府敎授)에 임명되었다. 대략 51세 이전의 대부분의 세월을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주력하였다. 이러한 교학 과정은 또한 학문 연구의 과정이기도 하였다.
관운(官運) 역시 순조롭지 않았으니, 그는 비록 옹정(雍正) 원년(1723)에 황제의 은택을 입어 한림원편수(翰林院編修)로 임명되어 내정에서 봉직하였으나 1년이 안 되어 부모상을 당하여 귀향하기에 이르고, 마침내 58세(1726년)에 이르러 퇴직하기에 이른다. 퇴직 후에 그는 주자학 연구에만 몰두하여 당시 주자학을 발양시킨 중심인물이 되었다. 건륭(乾隆) 6년(1741) 74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양명학이 범람하던 당시 상황에서 주자학 진영에서 양명학에 대해 적극적인 반격을 가하였던 학자들 가운데 정동(程瞳)과 진건(陳建)을 들 수 있다. 정동은 《한벽록(閑闢錄)》을 통해 주자집 편집 과정에서 이학(異學)의 시비를 집중적으로 분별하여 잘못을 바로잡는 과정을 통해 육왕(陸王)의 설을 배척하고 있다. 진건은 《학부통변(學蔀通辨)》을 통해 주자 사상의 전후 순서를 분명히 밝히고, 아울러 왕양명과는 달리 주희와 육구연(陸九淵) 사상이 초기에는 비록 같았으나 만년에 이르러 다르게 되었다[(早同晩異)]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정동의 《한벽록》과 진건의 《학부통변》은 주자학의 입장에서 육왕의 입장과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주자학을 수호하고자 하였던 저서로 높이 평가된다. 하지만 왕무횡의 《주자연보》는 이들의 업적을 훨씬 뛰어넘는 부분이 있으니, 이는 다름 아닌 왕무횡 자신의 평생에 걸친 주자학 연구를 통해 주자에 관한 모든 것을 체계적으로 분석 종합하여 주자학 연구의 바이블을 완성하였다는 점이다.
(5) 주요저작:《주자연보(朱子年譜)》 4권, 《백전초당존고(白田草堂存稿)》 24권, 《독서기의(讀書記疑)》 16권 등이 있다. 《주자연보》는 〈주자연보〉 4권, 〈주자연보고이(朱子年譜考異)〉 4권과 부록인 〈주자논학절요어(朱子論學切要語)〉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백전초당존고(白田草堂存稿)》는 〈잡저(雜著)〉 9권, 〈서지(序誌)〉 6권, 〈서계(書啓)〉 5권, 〈시집(詩集)〉 4권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행장行狀》의 기록에 의하면, 안타깝게도 간행되지 않은 채 집안에 보관되어 있던 저작으로는 《속집(續集)》, 《별집(别集)》, 《주자문집주(朱子文集注)》, 《주자어록주(朱子語錄注)》, 《독경기의(讀經記疑)》, 《독사기의(讀史記疑)》, 《우열잡초(偶閱雜抄)》 등이 있다.

3. 서지사항

주자 사후 700여 년에 걸쳐 연보를 작성한 학자는 적지 않았다. 사외(謝巍)가 편찬한 《중국역대인물연보고록(中國歷代人物年譜考錄)》에 기재된 주자 연보는 57종에 달한다. 하지만 이외에도 산실되거나 기록되지 않은 판본이 적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주자 연보는 먼저 주자 문인인 이방자(李方子)(1169-1226)가 주자 사후 스승의 언행을 모아서 편찬하고 위료옹(魏了翁)이 서(序)를 지은 《자양연보(紫陽年譜)》 3권(원본(元本))을 만들었으나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 명(明) 홍무(洪武) 갑술(甲戌)에 주자 후손인 경境이 별도로 한 책을 간행하였는데, 왕중로(汪仲魯)가 서(序)를 지었다. 가정 연간에는 이묵(李黙)이 원본을 개편하면서 많은 부분을 수정하여 원본의 본래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이본(李本)) 청조에 이르러 홍경(洪璟)에 의해 이루어진 홍본(洪本)이 있으나, 수록된 내용이 비교적 번잡하다. 또한 건령주씨신본(建寧朱氏新本)과 무진추씨정위본(武進鄒氏正僞本)이 있는데, 두 본 모두 내용에 오류가 많다.
왕무횡은 이묵본과 홍본의 내용을 참고하고 수정하여 《주자연보》 4권을 완성하였다. 그는 기존 주자연보 판본들을 수집, 비교 검토하여 이전의 연보 내용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되는 자료는 연보 속에 수록하였으며, 이전의 연보가 다른 자료와 비교하여 조금이라도 다름이 발견될 때에는 더욱 철저하게 비교 검토하여 주자의 본의에 합치하는 내용을 채택하였다.
현존하는 판본으로 주요한 것으로 청 건륭 17년(1752)에 이루어진 초판본인 백전초당간본(白田草堂刊本)(백전본)이 있다. 이 밖에 주요한 판본으로는 오읍교씨간본(吳邑喬氏刊本), 사고전서본(四庫全書本)(사고본), 월아당총서본(粵雅堂叢書本)(월아당본), 장사당씨간본(長沙唐氏刊本), 오창응씨간본(吳閶應氏刊本), 숭문서국본(崇文書局本), 절강서국보간본(浙江書局補刊本), 무창서국본(武昌書局本), 총서집성초편본(叢書集成初編本) 등이 있다.

4. 내용

왕무횡은 당시 주자에 대한 양명학파의 오해를 바로잡고, 동시에 주자학을 발양시키기 위해 《주자연보》를 지었다. 현존하는 문헌자료에 근거해서는 비록 왕무횡이 연보 작업을 언제 시작하여 언제 끝마쳤는지 정확히 알 방법이 없지만, 아들이 《행장》을 통해 밝히고 있듯이 왕무횡은 20여 년이라는 적지 않은 세월 동안 4차례에 걸친 원본 수정 작업 끝에 《주자연보》를 완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왕무횡은 《주자연보》를 짓기 전에 이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는 데 온 힘을 쏟았으니, 그가 취급한 자료로는 주자 본인의 작품은 물론이고 주자와의 서신 왕래를 통해 그의 사상 전개 과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던 학자들의 문집 등이 포함된다. 먼저 주자 자신의 《문집》, 《어록》, 전주(箋注), 찬집(纂集)한 저작을 들 수 있으며, 이 밖에 당시 학자들이나 친구들과 주고받은 서신 등을 들 수 있다. 《주자연보》에 실려 있는 관련 자료로는 《연평문답》, 《남헌집》, 《상산연보》, 《상산어록》, 《동래집》, 《백록동서당강의》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왕무횡은 《주자연보》를 완성하기 위해 관련 자료를 하나도 빠짐없이 충실하게 반영하려 노력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자료에 대한 검토가 철저하다. 그는 기존 《주자연보》 판본들을 수집, 비교 검토하여 이전의 연보에 내용상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되는 자료는 해마다 자신이 지은 연보 속에 수록하였으며, 이전의 연보가 다른 자료와 비교하여 조금이라도 다름이 발견된다면 더욱 철저하게 비교 검토하여 주자의 본의에 합치하는 내용을 채택하고 있다. 이전의 연보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자료는 《연보고이(年譜考異)》를 통해 상세하게 분별하고 있으니, 《연보고이》는 기존의 연보와의 비교 분별 과정을 거친 기록이라 할 수 있으며, 《주자연보》는 분별 과정을 거친 뒤에 내린 최종 결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주자연보》와 《연보고이》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이 둘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 되는 밀접한 관계에 있다 하겠다.

5. 가치와 영향

《주자연보》를 통해 알 수 있는 왕무횡의 주자학 연구가 지니는 의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당시 주자학 연구자들이 대개 주자학의 본래 의도와는 멀어져 주자학 연구를 빌미삼아 다만 공명(功名)을 얻고자 학문을 표절하는 데 그쳤다. 이와 달리 왕무횡은 20여 년에 걸친 주자학 연구를 통해 《주자연보》와 《연보고이》를 완성하였다. 이를 통해 주자의 사적(事跡) 가운데 논란이 되는 부분은 하나하나 빠짐없이 고증하였고, 주자 작품 가운데 정확한 연도를 알 수 없는 부분은 작품 상호 간의 관계를 밝혀 가장 적절한 연도에 삽입시켰다. 이러한 왕무횡의 저서에 근거해 주자학을 연구하는 후대의 학자들은 주자 사상에 관한 논의에서 고증하고 시비를 따져 바로잡는 과정을 생략할 수 있게 되었다.
둘째, 왕무횡이 고증의 방법으로 주자학을 연구한 것과 청초(淸初) 학자들이 가짜를 가려내는 방법으로 경학을 연구한 것은 선후 전승의 관계에 있다. 류대공(劉台拱), 주빈(朱彬), 류보수(劉寶樹), 류보남(劉寶楠) 등 왕무횡의 후학들은 주자학 연구에 있어서나 고증학 연구에 있어서 모두 왕무횡의 영향을 받아 학풍이 매우 독실하였다. 이 점에 있어 청초 왕무횡 계통의 학풍은 청대 학풍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셋째, 왕무횡의 《주자연보》와 《연보고이》는 연보 편찬 작업에 있어서 신기원을 열었다. 주자와 같이 저작이 많고 교유관계가 넓은 학자에게 있어 자료 기술의 내용이 한결같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할 수 있다. 이처럼 내용면에서 차이를 보이는 사적을 연보에서 모두 바로잡으려 한다면 기사의 연속성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고 지면 또한 몇 배로 늘어날 것이다. 그러므로 왕무횡은 고증한 사실을 되도록 상세하게 기술하면서도 연보의 지면이 늘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고증한 부분을 따로 《연보고이》로 편성하였다. 이와 같은 왕무횡의 방법은 이후 연보 편찬에 있어서 하나의 범례가 되었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제가〈의 주자연보〉 가운데 오직 왕무횡본이 가장 자세하고 철저하며, 다른 것은 모두 〈내용상〉 조잡하고 어그러짐을 면할 수 없다.[諸家之中 惟懋竑本最精核 他家皆不免疏舛]” 《사고전서총목(四庫全書總目)》
• “다른 사람들이 정주 이학을 평론함은 모두 허황되고 남의 말을 표절할 따름이다. 오직 왕무횡은 일생동안 주자의 글에 힘써서 고증함이 자세하고 철저하니, 진정한 주자의 공신이라 하겠다.[他人講程朱理學 皆浮游勦襲而已 惟懋竑一生用力於朱子之書 考訂精核 乃眞考亭功臣]” 《조고루집(雕菰樓集)》 권12 〈국사유림(國史儒林)・문원전(文苑傳)〉
• “백전은 주자서를 수십 년 동안 읽어 주자의 생애・학문・교육의 순서와 본말에 있어서, 조목별로 분석하고 상세히 연구하여 《연보》 4권으로 바로잡아 주자학에 뜻을 둔 자가 이설(異說)로 인하여 혼란을 겪지 않도록 하였다. 그 성인의 도에 도움이 되는 것이 그야말로 《한벽록》이나 《학부통변》에 비해 훨씬 뛰어나다.[白田讀朱子書數十年 於朱子生平爲學誨人次第本末 條析精硏 訂爲年譜四卷 俾有志朱學者不致爲異說所迷眩 其有裨聖道 校之閑闢錄學蔀通辨二書 直遠出其上矣]” 《청유학안淸儒學案》 제3책 권52 〈백전학안(白田學案)〉
(2) 색인어:주희(朱熹), 왕무횡(王懋竑), 주자연보(朱子年譜), 주자연보고이(朱子年譜考異), 주자논학절요어(朱子論學切要語), 이묵(李黙), 왕양명(王陽明), 주자만년정론(朱子晩年定論), 정민정(程敏政), 도일편(道一編), 왕식단(王式丹)
(3) 참고문헌
• 朱熹年譜 (王懋竑 撰, 何忠禮 點校, 中華書局, 1998)
• 晦庵先生朱文公文集 (朱熹, 国家圖書館出版社, 2006)
• 朱熹集 (郭齊 尹波 點校, 四川敎育出版社, 1996)
• 朱子語類 (黎靖德, 中華書局, 1986)
• 南軒集 (張栻 撰, 清康熙锡山華氏刊本)
• 東萊集 (呂祖謙 編, 四庫全書本)
• 陸九淵集 (陸九淵 撰, 中華書局, 1980)
• 陳亮集 (陳亮, 中華書局1974年標點本)
• 文獻通考 (馬端臨 编撰, 浙江書局本)
• 朱陸學術考辨五種 (吳長庚 主編, 江西高校出版社, 2000)

【임홍태】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3.10.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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