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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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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저자 고염무(顧炎武)는 명말청초(明末淸初)의 학자이자 사상가이다. 본서는 《문집》 6권과 《시집》 5권을 합한 것이다. 고염무의 시문은 이 외에도 《정림여집(亭林餘集)》 1권, 《장산용잔고(蔣山傭殘稿)》 3권, 《정림일문집보(亭林佚文輯補)》 1권, 《정림집외시보(亭林集外詩補)》 3수 그리고 〈희묘양암기사(熹廟諒陰記事)〉 한 편이 있다. 본서는 청대 학술의 개창자가 되는 고염무의 학문관과 함께 후세에 심대한 영향을 주었던 그의 경세치용사상을 파악할 수 있는 직접적인 자료이다.

2. 저자


(1) 성명:고염무(顧炎武)(1613~1682)
(2) 자(字)·별호(別號):본명은 강(絳), 자(字)는 충청(忠清), 영인(寧人)이다. 명나라가 망한 뒤에 문천상(文天祥)의 제자 왕염오(王炎午)의 인품을 사모하여 염무(炎武)로 개명하였고, 때론 장산용(蔣山傭)이라고 서명하였다. 그의 고향 근처에 정림(亭林)이 있었으므로 후세에 정림선생(亭林先生)으로 불리었다.
(3) 출생지역:남직예(南直隷) 소주부(蘇州府) 곤산현(昆山縣) 천돈진(千墩鎭)(現 강소성(江蘇省) 곤산시(昆山市) 천등진(千燈鎭))
(4) 주요활동과 생애
고염무는 왕부지(王夫之), 황종희(黃宗羲)와 함께 명말의 삼유로(三遺老)이다. 명나라 말기 반청(反淸)투쟁에 참가하였으나, 실패한 후 45세에 고향을 떠나 북유(北遊)하여 평생 산동(山東)과 북경(北京), 섬서(陝西) 사이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70세에 여전히 섬서 화음(華陰)에서 산서(山西)로 이동하다가 곡옥(曲沃)에서 말에서 떨어져 사망하였다.
그는 각지를 돌아다니며 지방의 풍물과 산천의 형세를 기록하였는데, 이는 주로 정치적, 군사적 목적을 띠고 있었으며, 후세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그는 각지 명유(名儒)들과의 교유를 통해 반청의 기회를 모색하는 한편 자신의 학문을 절차탁마하였다. 그의 학문은 다방면에 걸쳐 폭넓게 전개되었으며, 이중 경학, 사학, 금석학, 음운학(音韻學), 방지학(方志學), 지리학 등에서 뛰어난 성과를 이루었다. 그는 공소(空疏)한 학문을 반대하고 박학(博學)과 실사구시의 방법론을 제창하여, 당시 및 후세의 박실(樸實)한 학풍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따라서 그의 학문은 청대 학술의 시발점으로 평가된다.
(5) 주요저작
고염무의 저작은 30여 종에 달한다. 이중 중요한 것으로는 《일지록(日知錄)》, 《음학오서(音學五書)》, 《좌전두해보정(左傳杜解補正)》, 《오경동이(五經同異)》, 《천하군국리병서(天下郡國利病書)》, 《조역지(肇域志)》, 《석경고(石經考)》, 《구경오자(九經誤字)》 등이 있다. 고염무의 사후 제자 반뢰(潘耒)가 《정림유서(亭林遺書)》를 출간했으나 금서로 지정되었으며, 광서(光緖) 연간에 이르러서야 이를 보완한 《정림유서회집(亭林遺書滙輯)》이 출판되었다.

3. 서지사항


《정림문집》은 고염무 사후 제자 반뢰(潘耒)가 강희(康熙)년간에 각인한 반각본(潘刻本)이 있으며, 현재 《사부총간(四部叢刊)》에 수록되어 있다. 《장산용잔고(蔣山傭殘稿)》 3권은 수초본(手抄本)인데 반각본의 원문을 교정하거나 내용을 보충하는 데 유용하게 쓰인다. 장산용(蔣山傭)은 고염무의 서명(署名)이다. 《정림여집(亭林餘集)》은 괴광전(蒯光典)의 중각본(重刻本)이 있다. 《정림시집》은 반뢰(潘耒)의 반각본(潘刻本)과 역시 반뢰(潘耒)의 수초본(手抄本)이 있다. 이 밖에 《정림일문집보(亭林佚文輯補)》, 《정림집외시보(亭林集外詩補)》 3수 그리고 〈희묘양암기사(熹廟諒陰記事)〉는 모두 근대에 고염무의 자료를 정리하면서 발견된 것들이다.

4. 내용


문집은 주로 논(論) 11편, 서문 22편, 편지 52통, 기(記) 12편, 묘지명 및 행장 6편, 기타 3편 등 모두 106편의 글로 이루어졌다. 논은 〈전량론(錢量論) 〉, 〈혁제변(革制辨)〉, 〈군현론(郡縣論)〉, 〈생원론(生員論)〉 등과 같이 당시 제도의 개혁에 관한 것이고, 서문과 편지는 경세치용을 중심으로 한 그의 일관된 논의를 담고 있다. 여타의 글에도 이러한 의식이 강렬히 담겨있다. 작자는 예리한 필치와 드넓은 의론으로 자신의 주장을 간명하게 드러내었다.
시집은 각체의 시 412수를 담고 있는데 고체시(古體詩)가 주를 이룬다. 작자는 사교를 위한 시는 거의 짓지 않았다. 주로 당시 혼란한 현실을 시로 표출해내었는데, 비장한 감상과 애국주의적 정서가 담겨있으며, 역사시(歷史詩)의 성격 등을 띠고 있는 것이 많다.

5. 가치와 영향


고염무는 생전에 이미 《일지록(日知錄)》을 통해 학술적 명성을 드날렸을 뿐만 아니라, 명조의 유신(遺臣)을 자처하며 청조의 압력과 회유에 굴하지 않았기 때문에 학인들의 그에 대한 존모(尊慕)는 청대를 두고 계속 이어졌다. 따라서 《정림집》은 당시 및 후세에 끼친 영향이 적지 않다. 우선 당시 및 건가(乾嘉) 시대에 그의 학술 정신이 유포 및 계승되었으며, 후세에는 외세의 침입이 빈번한 상황에서 그의 절의(節義)가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였다. 《정림집》은 청대 학술 및 사상의 성격을 밝히는 단초가 된다고 하겠다.

6. 참고사항


(1) 명언
‧ “군자가 학문을 하는 것은 도를 밝히고 세상을 구제하려는 것이다.[君子之爲學 以明道也 救世也]” 〈권4 여인서이십오(與人書二十五)〉
‧ “옛날의 이른바 이학이라는 것은 경학이다.[古之所謂理學 經學也]” 〈권3 여시우산서(與施愚山書)〉
‧ “나의 한 몸에서부터 천하 국가에 이르기까지 모두 배움의 대상이다.[自一身至於天下國家 皆學之事也]” 〈권4 여우인논학서(與友人論學書)〉
(2) 색인어:고염무(顧炎武), 정림집(亭林集), 일지록(日知錄), 경세치용(經世致用), 고증학(考證學), 고음학(古音學), 건가학술(乾嘉學術), 박학(璞學). 실학(實學)
(3) 참고문헌
‧ 顧亭林詩文集(顧炎武, 中華書局)
‧ 日知錄集釋(黃汝成, 上海古籍出版社)
‧ 新譯顧亭林文集(劉九洲, 三民書國)
‧ 顧亭林詩集彙注(王遽常, 上海古籍出版社)
‧ 顧亭林詩箋釋(王冀民, 中華書局)
‧ 顧炎武論考(沈嘉榮, 江蘇人民出版社)
‧ 顧炎武年譜(周可眞, 蘇州大學出版社)


【김경천】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0.08.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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