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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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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남송(南宋)의 채원정(蔡元定)이 1187년경에 완성한 대표적 음악이론서이다. 〈율려본원(律呂本原)〉과 〈율려증변(律呂證辨)〉의 전2권으로 구성되었으며, 우리나라에는 조선 세종(世宗) 원년(1419)에 전래되었다. 세종의 아악(雅樂) 정비에 주요 이론이 되는 등, 조선시대 악정(樂政)의 기준이 되는 중요도서이다.

2. 저자

(1) 성명:채원정(蔡元定)(1135~1198)
(2) 자(字)·별호(別號):자는 계통(季通)이고, 호는 서산(西山)
(3) 출생지역:복건성(福建省) 건양(建陽)
(4) 주요활동과 생애
채원정은 10세부터 부친 채발(蔡發)에게서 정호(程顥)·정이(程頤)의 ≪이정어록(二程語錄)≫, 소옹(邵雍)의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 장재(張載)의 ≪정몽(正蒙)≫을 배웠다. 뒤에 주희(朱熹)를 배알했는데, 주희는 그의 학문을 인정하여 벗으로 대우했으며, ≪율려신서≫에 크게 감명 받고 서문을 썼다. 부친 채발(蔡發) 및 아들 채침(蔡沈)과 더불어 삼부자(三父子)가 함께 천문(天文)·역상(易象)·악률(樂律) 등에 탁월한 학식으로 알려졌다. 한탁주(韓侂冑)가 주자학을 위학(僞學)으로 몰았던 사건에 연루되어 도주(道州)에 유배되고 그곳에서 사망했다.
(5) 주요저작: ≪율려신서(律呂新書)≫, ≪서산공집(西山公集)≫

3. 서지사항

저작년도가 정확하지 않으나, 주희의 서문에 의거하여 1187년경으로 알려져 있다. 단행본으로서의 ≪율려신서≫는 우리나라에 전해진 기록이 없고, 현재까지 전해진 것은 ≪성리대전(性理大全)≫과 ≪사고전서(四庫全書)≫에 포함된 판본이다. 특히 ≪성리대전≫ 본은 조선 태종(太宗)의 장자인 사은사(謝恩使) 경녕군(敬寧君) 이비(李裶) 등에 의하여 중국에서 가져와 1419년(세종 원년)에 우리나라에 최초로 소개된 후 여러 차례 복간되었다. 전체 70권인 ≪성리대전≫ 안의 ≪율려신서≫는 권22와 권23에 해당하는데, 각각 〈율려본원(律呂本原)〉과 〈율려증변(律呂證辨)〉이다. 본문에 앞서 주희의 서문을 수록하고, 소주(小注)를 통하여 주희의 율려에 대한 생각을 보충하였다.

4. 내용

〈율려본원〉은 모두 13편으로 음계와 악조의 이론을 밝히고 이로부터 도량권형(度量權衡)의 이론과 수치를 생성하였으며, 〈율려증변〉은 모두 10편으로 〈율려본원〉에서 생성한 이론에 대하여 각 전적들을 인용하여 실증하였다. ‘율려(律呂)’란 음악을 이루는 12음을 일컫는 말이다. 한 옥타브는 황종(黃鐘)‧대려(大呂)‧태주(太簇)‧협종(夾鐘)‧고선(姑洗)‧중려(仲呂)‧유빈(蕤賓)‧임종(林鐘)‧이칙(夷則)‧남려(南呂)‧무역(無射)‧응종(應鐘)인데, 이를 12율이라고 한다. 황종을 기준음으로 하여 홀수순번을 양율(陽律)이라고 하고, 짝수순번을 음려(陰呂)라고 하므로, 이를 합하여 ‘율려(律呂)’라고 한 것이다. 〈율려본원〉의 구성은 우선 황종관(黃鐘管)의 규격을 제시하였다(제1). 이어 황종의 실수(實數)를 얻는 원리에 대하여 설명하고(제2), 이를 기준으로 삼분손익법에 따라 11율이 생성되는 원리를 밝혔으며(제3), 2진(辰)의 순서에 따라 12율(律)의 실수(實數)를 계산하여 음의 체계를 잡았다(제4). 12율관이 순환하여 음계가 조직되는데 평균율을 해결하기 위하여 변율(變律)을 두어 음률을 해결하였고(제5), 오성(五聲)(궁(宮)·상(商)·각(角)·치(徵)·우(羽))을 산출했다(제6), ‘황종궁’이니 ‘대려궁’이니 하듯이 12율에서 각각 오성이 정해지는데, 오성 사이의 음정을 고루기 위하여 변치(變徵)와 변궁(變宮)의 변성(變聲)을 두고, 이것이 생성되는 원리를 설명했다(제7). 2변(변치(變徵)·변궁(變宮))을 더하여 조직되는 84성의 산출원리를 설명하고 도표화했으며(제8), 12율과 오성에서 60조(調)의 음계조직이 생성됨을 밝히고 이를 도표화했다(제9). 이상은 음악의 직접적인 이론이고, 이하는 음악이론을 절기와 도량형에 응용하여 음악적 조화와 질서를 인사(人事)에 반영한 부분이다. 즉, 세 겹의 밀실에 12율관을 설치한 후 재를 넣고, 절기에 따라 오르내리는 치수를 관측하여 기록한 것이 〈후기(候氣)〉편이고(제10), 황종의 길이로부터 푼(分)·척(尺)·장(丈)·인(引)의 길이단위를 정한 것이 〈심도(審度)〉편이며(제11), 황종의 용기(容器)로부터 약(龠)·홉(合)·승(升)·두(斗)·곡(斛)의 부피단위를 정한 것이 〈가량(假量)〉편이고(제12), 황종의 무게로부터 수(銖)·냥(兩)·근(斤)·균(鈞)·석(石)의 무게단위를 정한 것이 〈근권형(謹權衡)〉편이다(제13).

5. 가치와 영향

≪율려신서≫는 조선 악률론의 기본 지침서로서 이 책에서 언급된 악률과 도량권형의 이론을 실제생활에 적용하는 등 악정(樂政)의 기준으로 삼았다. 악률의 조화를 인사(人事)에 접목했으니 ≪율려신서≫가 중요시된 데는 단순히 음악만을 위한 이론이 아님을 간과할 수 없다. 조선은 유학(儒學)을 치도로 삼았으나 당시는 아직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상황이었으므로 ≪성리대전≫ 속에 포함되어 있는 ≪율려신서≫는 예악으로 질서와 안정을 찾고자 했던 세종의 심정과 맞물려 연구되고 장려되었다. 세종은 경연(經筵)에서 ≪율려신서≫를 진강(進講)하게 할 정도로 이를 정밀하게 분석하여 정사(政事)에 반영했다. ≪율려신서(律呂新書)≫를 근거로 박연(朴堧)은 황종율관을 제작하고 편종·편경과 같은 아악기를 제작했으며, 성현(成俔)은 우리나라 최초의 음악이론서인 ≪악학궤범≫을 편찬했고, 正祖의 ≪악통(樂通)≫도 이의 영향이 크다.
그러나 저자의 이학적(理學的) 학문 성향이 그의 악론(樂論)에도 스며 있어 지나치게 이론에 치중되었다는 지적이 있다.

6. 참고사항

(1) 명언
• “황종관의 길이는 9촌이고 공원(空圍)는 9푼이며 부피는 810분이다. 기장알 1200개가 들어가야 황종율에 맞다. [按黃鍾管 長九寸 空圍九分 積八百一十分 容黍千二百粒 以中黃鍾之律]” 〈율려본원 제1〉
• “도(度)는 황종(黃鐘)의 길이에서 생기며, 양(量)은 황종(黃鐘)의 용기에서 생기며, 권형(權衡)은 황종의 무게에서 생긴다.[度者 生於黃鐘之長 量者 生於黃鐘之容 權衡者 生於黃鐘之重]” 〈율려본원 제11·제12·제13〉
• “잘 다스려지는 세상에서는 천지의 기운이 합해져 바람이 생기고 천지의 풍기가 바로잡혀 12율이 생긴다.[至治之世 天地之氣合以生風 天地之風氣正 十二律定]” 〈율려증변 제1〉
(2) 색인어:채원정(蔡元定), 율려신서(律呂新書), 음악이론서, 악률(樂律), 율려(律呂), 십이율(十二律), 오성(五聲), 황종(黃鐘), 악학궤범(樂學軌範)
(3) 참고문헌
• 국역 율려신서(송방송 외, 민속원)
• 국역 율려신서(이후영, 문진)
• 〈율려산출법의 두 가지 견해〉(정화순, ≪음악학논문집≫, 2002)
• 〈율려신서의 60조와 6악률 연구〉(남상숙, ≪한국음악사학보≫ 40, 2008)
• 〈조선왕조실록의 문헌적 검토–율려신서·문헌통고·악기를 중심으로-〉(손태룡, ≪음악과 민족≫ 18, 1999)
• 〈송대 역학과 율도량형론의 맞물림-채원정의 ≪율려신서≫를 중심으로-〉(조희영, ≪철학논집≫ 44, 2016)
• 〈김근행의 율려신서차의에 대한 연구〉(김수현, ≪한국음악사학보≫ 54, 2015)
• 〈≪율려신서≫의 번역·교감·주석 고찰〉(김병애, ≪동양철학연구회≫ 77, 2012)
【김병애】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0.08.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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