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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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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분서≫는 명나라를 대표하는 사상가, 사학가, 문학가이고, 스스로 이단을 자처하며 유가의 말기적 폐단을 공격한 이지(李贄)의 대표 저작이다. 당시 관료의 부패와 도학자의 위선을 비판하며 소박하고 자유로운 사상을 강조하였다. 책은 출간 당시 금서로 취급되었으나, 이후 문학, 철학, 예술 등 여러 영역에 큰 영향을 미쳤다.

2. 저자

(1) 성명:이지(李贄)(1527~1602). 원래의 성은 임(林)이고 이름은 재지(載贄)였다.
(2) 자호(字號):자는 굉보(宏甫), 호는 탁오(卓吾), 별호는 온릉거사(溫陵居士), 백천거사(百泉居士), 탁오자(卓吾子), 독옹(禿翁) 등.
(3) 출생지역:복건성(福建省) 천주(泉州) 진강현(晉江縣)(현재의 진강(晉江))
(4) 주요활동과 생애
이지는 양명학 좌파의 대표 인물이다. 이지의 조상은 이슬람교도였으며, 주로 상업으로 생계를 이었다. 그의 선조 중에는 명초에 통역관으로 근무하면서 일본 및 류구(流球)의 입공자(入貢者)를 맞이하여 도성까지 안내하는 역할을 한 사람도 있었다. 이지는 원래 임씨였다. 서당에 입학했을 때 명부에 임재지(林載贄)라고 기재했으나 얼마 뒤부터는 이씨(李氏)로 고쳐 사용하였다. 또한 황제의 휘를 피해 이름에서 ‘재(載)’ 자를 삭제하여 이지(李贄)라고 했다. 이지는 평생 47개에 달하는 많은 호를 사용했다.
부친 백재공(白齋公)은 군(郡)의 제생(諸生)이고 서당 선생이었다. 이지가 태어나자마자 생모가 사망하여 계모의 손에서 자랐다. 이지는 7세 때부터 아버지에게 배우기 시작하여, 12세 때 ≪노농노포론(老農老圃論)≫을 지었고 1551년 26세에 거인(擧人)이 되었다. 이때부터 45세까지 하남휘현교유(河南輝縣教諭), 남경국자감박사(南京國子監博士), 북경국자감박사(北京國子監博士), 북경예부사무(北京禮部司務), 남경형부원외랑화랑중(南京刑部員外郞和郎中), 운남요안지부(雲南姚安知府) 등의 관직을 역임했다.
1569년 초횡(焦竑)과 처음 알게 되었고, 1570년 남경에서 초횡과 자주 어울리며 학문을 토론했다. 기윤(紀昀)은 “초횡과 이지 두 사람은 모두 광선(狂禪)(비정상적 언행을 일삼는 선승)의 작태를 보였다. 이지는 공자를 비판했고, 초횡은 역시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을 숭상하며 맹자를 비난하였다.”고 했다. 1572년 경정리(耿定理)와 만나서 친구가 되었다. 44세 때는 왕기(王畿)와 나근계(羅近溪) 등을 만난다. 이렇게 해서 양명학의 진보적 흐름인 태주학파 쪽에 속하게 된다. 1576년 불교 연구를 시작하였다. 1581년 관직에서 물러나, 황안(黃安) 마성(麻城)에서 친구 경정리(耿定理)의 집에 거주하며 주로 강학, 저술, 연구 등 활동을 하였다. 1585년에 마성 지불원(芝佛院)에서 ≪초담집(初潭集)≫, ≪분서(焚書)≫ 등 중요한 작품을 완성했다. 1589년 지불원에 정식 출가하였으며 1590년 ≪분서(焚書)≫ 6권, ≪장서(藏書)≫ 68권과 ≪설서(說書)≫ 44편을 간행하였다. 1593년 마성의 용호(龍湖)에 원씨(袁氏) 삼형제(원종도(袁宗道), 원굉도(袁宏道), 원중도(袁中道))를 만났다. 1597~1600년 사이 북경, 남경, 금릉(金陵) 등을 유람하였고, 마테오 리치(Matteo Ricci)와 종교에 대해 깊이 토론하였다. 76세(1602년)에 장문달(張問達)의 탄핵을 받아 투옥, 3월에 감옥에서 자결했다.
(5) 주요저작
이지의 저술은 ≪분서(焚書)≫와 ≪속분서(續焚書)≫를 비롯해 ≪초담집(初潭集)≫, ≪손자참동(孫子參同)≫, ≪구정역인(九正易因)≫, ≪인과록(因果錄)≫, ≪독승암집(讀升庵集)≫, ≪정토결(淨土訣)≫, ≪파공년보(坡公年普)≫, ≪용계왕선생문록초(龍溪王先生文錄鈔)≫, ≪자저년보(自著年譜)≫, ≪양명선생도학초(陽明先生道學鈔)≫, ≪역인(易因)≫, ≪언선편(言善篇)≫, 그리고 사서(四書)를 평한 ≪사서평(四書評)≫, 경전을 재해석한 ≪도고록(道古錄)≫, 제자서에 대한 ≪노자해(老子解)≫, ≪장자해(莊子解)≫, ≪묵자비선(墨子批選)≫ 등이다. 유불도 및 문학, 역사, 병법 등 다양한 영역에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비점화명통기(批點皇明通記)〉, 삼황오제의 상고시대부터 원대까지의 제왕에 대한 ≪사강평요(史綱評要)≫, 역사인물 비평서 ≪장서(藏書)≫와 ≪속장서(續藏書)≫가 있고 ≪비평충의수호전(批評忠義水滸傳)≫, ≪비점서상진본(批點西廂眞本)≫, ≪비평홍불기(批評紅拂記)≫, ≪비평유규기(批評幽閨記)≫, ≪비평세사기(批評洗紗記)≫ 등 소설과 희극 비평서가 있다. 문집으로는 ≪이온릉집(李溫陵集)≫이 있다.
≪장서(藏書)≫는 역사서로서, 묻어버려야 할 책이란 뜻이다. 그 내용에 관련된 인물이 800명이 넘는다. ≪설서(說書)≫는 44편으로 학사(學士)들이 자주 사용하지 않는 철학적인 단어 가운데서 핵심을 밝힌 것인데, 오늘날 전해지지 않는다.

3. 서지사항

≪분서≫는 명나라 만력(萬曆) 18년(1590) 이지가 마성현 용호(龍湖)의 지불원에 거주할 때 십여 년 동안 즉 50대부터 60대까지 쓴 편지 및 역사평론, 시를 모아 만든 문집으로 ≪이씨분서(李氏焚書)≫라고도 한다. 만력(萬曆) 46년(1618)에 제자 왕본가(汪本軻)가 이지의 유문(遺文)을 보충, 편집한 ≪속분서(續焚書)≫ 5권도 있다.
≪분서≫는 자서(自序), 정집(正集) 6권, 증보(增補) 1권으로 구성돼 있다. 제1권은 서답(書答) 27편, 제2권은 서답(書答) 48편, 부문(附文) 3편, 제3, 4권은 잡술(雜述) 75편, 부문(附文) 2편, 제5권은 독사(讀史) 49편, 제6권은 시회(詩匯) 148수, 증보(增補) 13편으로 이루어졌다. 중화서국판(中華書局版)의 ≪분서≫ 뒷부분에 있는 황절(黃節)의 발문을 제외한 증보 13편은 원래 ≪이온릉집(李溫陵集)≫에 들어있던 것을 발췌, 편집한 것이다.
≪분서≫에는 이지의 초기 생존과 창작상태가 드러나고 그의 철학적 사유도 엿볼 수 있다. 이지가 ≪분서≫를 출판하며 “대개 ‘인연어(因緣語)(사물의 현상과 변화에 대한 견해)’와 ‘분격어(忿激語)(분노에서 나온 언어)’가 많아서 보통의 말투와 다르다. 그리하여 읽는 사람에 따라 혹 질책과 원한이 생길 수도 있기에 책 이름을 ‘분서(태워 없애야 할 책)’라 했다.”고 한다.

4. 내용

제1권의 서답(書答)은 친구와 스승 간의 편지이며, 이지의 철학적 입장을 적은 것이다. 제1권에는 주로 선천적 인식능력 생지(生知)를 논하고 옷 입고 밥 먹는 백성의 일용이 바로 인륜이고 만물의 이치라는 이지의 중요한 관점을 밝혔다. 〈답등석양(答鄧石陽)〉에서는 공자처럼 되려는 요령만 배우는 것을 비판했다. 제2권의 〈별유초천서(別劉肖川書)〉에서는 “대인은 남을 비호하는 사람이고, 소인은 비호받는 사람인데, 비호받기를 좋아하는 유학자들을 걱정하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제2권의 〈답이여인학도위단견서(答以女人學道爲短見書)〉에서는“단지 부인들의 식견이 ‘짧다’라고 하면 안 된다.”는 여성관을 드러낸다. 제3권에서는 정치, 부부, 귀신, 병법을 논하면서 민본주의와 인간성에 대한 인식, 자연의 꾸미지 않는 솜씨에서 천하의 명문이 나온다는 자연미 사상과 마음의 본래 형태를 논한 동심설(童心說)을 제시했다. 그리고 〈양명선생도학초〉, 〈양명선생년보〉, 〈용계선생문록〉 등 양명학에 대한 글도 수록하였다. 제4권은 불교에 대한 내용과 희극 평론 등이고, 제5권은 역사와 역사인물에 대한 평론이다. 특히 여기서 “경과 사는 하나이다.”라는 설을 제시했다. 제6권에는 “가정이란 진짜 부담 덩어리, 세속과 어울림엔 원망 투성이. 훌쩍 떠나, 산 속에 드러누워 자다가. 새벽에 일어나 죽 한 사발 들이키면 될 일을….”이라는 삭발 출가를 꿈꾼 〈체발(薙髮)〉이라는 시가 있다.
이지는 봉건시대 예교(禮敎)의 도학자와 위선자를 가장 싫어하였으며 관료층이 극도로 추앙하는 공맹의 학문도 크게 규탄하였다. 이것은 공자를 지성(至聖)으로 높였던 종래의 관점에서 볼 때 매우 파격적이었다. 공자는 성인이 아니고 평범한 사람이라고 하였고, 공자의 시비를 모든 시비로 삼는 것은 옳지 않으며 사람마다 모두 성인이니 공자를 배울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또한 보통 유학자들이 금과옥조로 삼는 육경(六經)을 도학자가 내세우는 구실이고 거짓된 무리들의 소굴일 뿐이라고 하였다. 이지가 당시 유명한 이학가(理學家) 경정향(耿定向)에게 보낸 답서에서 반공자우상론(反孔子偶像論)과 ‘참된 도와 사람의 윤리’에 대한 논쟁을 보이는데, 이것은 명말 明末의 중심적인 이슈였다.
이지는 불교와 양명심학을 섭렵한 이력으로 그의 사상은 주관유심주의의 성격을 띤다. 그는 만물의 근원을 현상세계에 찾아야 하는 선종의 주장을 이어받아, 구체적인 일상생활 속에서 도를 실현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이는 이지 사상에서 불교로 유교를 해석하고 불교와 유교를 융합한 측면이다.
≪분서≫ 권3에 〈동심설(童心說)〉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지 사상에서 매우 중요한 ‘동심’의 사상이다. 동심이란 거짓과는 무관한 순수한 진실이며, 인간 최초의 유일한 본심이다. 이지는 〈실언삼수(失言三首)〉에서 “정(情)은 억지 부릴 필요 없고, 성(性)은 위반할 필요 없으며, 마음은 속일 필요 없고, 뜻은 누를 필요가 없다. 마음을 곧게 움직이면 참 부처가 될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그는 ‘진심’, ‘동심’을 만물의 본원(本源)이라고 생각하였다. 이것은 육왕학 및 선불교와 연결되는 대목이다.
이 책은 통치자와 전통유학자들의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이 나오자마자 금서로 낙인 찍혔다. 다만 이지의 저술이 유교 비판과 불교・도교로 기운 면도 있으나 모든 글이 다 전통을 비판하고 있지만은 않다.

5. 가치와 영향

이지의 사상은 명⋅청 시대에 지속적으로 비판을 받았다. 이지는 자신의 사상이 반드시 관료층과 가짜 도학자(道學者)들의 불만을 초래할 것이라고 여겼는데, 그 말대로 관료층들은 ≪분서≫를 매우 위험한 책으로 여겨서 금서로 지목되었다. 이지도 이 책 때문에 혹세무민의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갇혀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독창적인 언어와 자유분방한 풍격으로 반봉건, 반전통, 반도학 사상을 담아낸 이 책은 매우 큰 영향력을 미쳤다. 독서견문에 물들지 아니한 마음을 말한 동심설, 자연미 문학론과 ‘만고의 시비를 뒤집은 역사관’ 등은 정치, 사회, 문학, 철학, 예술 등 전 영역에 큰 영향을 주었다. 남녀평등과 진심을 주장하였던 그의 사상은 근대 계몽사상의 선구적 역할을 하였으며, 5⋅4운동 때는 진보적인 사상가들이 그를 반공(反孔)의 모범으로 삼기도 했다.
≪사고전서총목제요(四庫全書總目提要)≫에서는 “이지의 책은 모두 인륜에 어긋나고 포악하며 오류에 가득 찬 것으로서 성인을 그릇되다 하고 법을 무시했다. 특히 공자를 배격하여 별도로 그 포폄을 세우고 무릇 천고의 선악을 전도시켜 그 위치를 바꾸지 않은 것이 없다. 그 죄가 가히 목을 베고도 남음이 있다.”라고 평했다.
고염무(顧炎武)는 ≪일지록집석(日知錄集釋)≫에서 “고대 이래로 아무 거리낌 없는 소인배로서 감히 성인에게 반기를 든 자로 이지보자 더 심한 자는 없었다.”라고 평했다. 고염무 뿐만 아니라 명대 말기의 황종희(黃宗羲)와 청초의 왕선산(王船山), 대진(戴震), 담사동(譚嗣同) 등도 이지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또 그의 평론의 방법은 후대 소설비평의 본보기가 되어 김성탄(金聖嘆), 모종강(毛宗崗), 장죽파(張竹坡) 등 소설 평론가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동심설’로 입론하여 문학예술에서 자연적 인간본성을 드러내야함을 제창한 것은 중국문학사상사에서 획기적인 의미가 있다. 명말에 공안삼원(公安三袁)도 이지의 동심설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문학사조 공안파(公安派)를 형성하고 성령설(性靈說)을 제시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허균(許筠)이 이지의 영향을 받아 유교적인 예교를 반대하고 동심설을 수용하였다. 그 외에 이수광(李晬光), 정약용(丁若鏞), 박지원(樸趾源), 이건창(李建昌) 등 실학자들에게도 자유문예사조의 영향을 미쳤다.
일본에서는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 이지를 흠모하여 그의 행적을 따르고 연구하였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옷 입고 밥 먹는 것이 사람 사는 이치이고 사물의 이치이다. 이것을 떠나거나 제외한다면 사람 사는 이치도 사물의 이치도 없다.[穿衣吃飯 卽是人倫物理 除却穿衣吃飯 無倫物矣]” 권1 〈답등석양(答鄧石陽)〉
• “하늘이 한 사람을 낳아서 스스로 그 한 사람의 쓰임새를 있게 하셨으니, 반드시 공자에게서 얻은 뒤에야 충족되는 것은 아니다. 만약 반드시 공자를 기다려서 충족된다면 천고 이전에 공자가 없었을 적에는 끝내 사람이 될 수 없었겠는가?[夫天生一人 自有一人之用 不待取給於孔子而後足也 若必待取足於孔子 則千古以前無孔子 終不得爲人乎]” 〈답경중승(答耿中丞)〉
• “동심이란 거짓과는 무관한 순수한 진심이며 최초 일념의 본심이다.[夫童心者 絕假純真 最初一念之本心也]” 권3 〈동심설(童心說)〉
• “단지 부인의 견해라 하여 식견이 짧다고 여기면 안 된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남녀의 구분이 있다고는 할 수 있어도, 식견에 남녀의 차이가 있다고 하는 것이 옳겠는가. 식견에도 길고 짧음이 있다고 할 수 있으나, 어찌 남자의 식견은 다 길고 여자의 식견은 다 짧다고 할 수 있겠는가?[不可止以婦人之見爲見短也 故謂人有男女則可 謂見有男女豈可乎 謂見有長短則可 謂男子之見盡長 女子之見盡短 又豈可乎]” 권2 〈답이여인학도위단견서(答以女人學道爲短見書)〉
(2) 색인어:이지(李贄), 이단(異端), 태주학파(泰州學派), 사론(史論), 반공자우상론(反孔子偶像論), 동심설(童心說), 남녀평등(男女平等), 생지(生知), 자연미문학론(自然美文學論), 비판정신(批判精神)
(3) 참고문헌
• 李贄硏究叢書-續焚書注(張建業・張岱 注 社會科學文獻)
• 이탁오평전(옌리에산 지음, 홍승직 옮김, 돌베개)
• 李溫陵集(顧大韶校定本, 文史哲出版社)
• 분서(이탁오 지음, 김혜경 옮김, 한길사)
• 주자학과 양명학(시마다 겐지 지음, 김석근・이근우 옮김, 까치출판사)
• 중국 전근대 사상의 굴절과 전개(미조구찌 유조 지음, 김용천 옮김, 동과서)
• 李贄에 대한 再評價 - 道德性을 중심으로(김춘희, 명청사연구)
• 이탁오의 인식세계(김혜경, 중국어문학회지)
• 양명학과 공생⋅동심⋅교육의 이념(최재목, 영남대학교 출판부)
【최재목】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0.08.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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