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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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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삼략(三略)》은 진(秦)나라 시기 황석공(黃石公)이 태공망(太公望)의 병법에 더하여 전한(前漢)의 개국공신인 장량(張良)에게 전수해준 것으로 알려진 3부의 병서이다.

2. 저자

(1)성명:장량(?~B.C. 186)
(2)자(字)·별호(別號):자는 자방(子房), 시호는 문성(文成)
(3)출생지역:미상(未詳)
(4)주요활동과 생애
장량은 조부와 부친이 한(韓)나라에서 재상 등을 지낸 집안이었으나 B.C. 230년에 한(韓)나라가 진(秦)나라에 멸망한 이후 집안이 몰락하였다. 이에 장량은 복수를 하고자 B.C. 218년에 진 시황(秦始皇)이 동쪽 지방을 순시할 때 철퇴로 저격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에 이름을 바꾸고 하비(下邳)에 숨어 살았다. 이때 그는 황석공을 만나 태공망의 병법을 배웠다고 한다. 그 후 진나라의 폭정에 반발하여 각지에서 영웅호걸들이 세력을 모아 봉기하자 장량은 후일 한(漢)나라를 세운 유방(劉邦)을 도와 천하를 다시 통일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는 소하(蕭何), 한신(韓信)과 함께 개국 삼걸(三傑)로 추앙받았고 유후(留侯)에 봉해졌다. 그러나 그는 정치에 일체 관여하지 않았고 신선(神仙) 사상에 심취하여 조용히 여생을 마쳤다.
(5)주요저작:미상(未詳)

3. 서지사항

《삼략》은 《황석공삼략(黃石公三略)》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삼략》이 언제 편찬되었고 현존하는 지금의 체재가 갖추어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 병가류(兵家類) 서목에 《손자(孫子)》, 《오자(吳子)》 등은 전해지고 있으나 황석공, 장량의 병서는 전하지 않는다. 다만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에는 《황석공삼략》, 《황석공병서(黃石公兵書)》 등의 서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전국시대 이후 병학 관련 내용이 축적되면서 한나라 시대 크게 정리되고 위진남북조 시대 현재의 체재를 갖춘 것으로 보인다. 당(唐)나라 초기의 장수인 이정(李靖)이 《이위공문대(李衛公問對)》에서 ‘장량이 배운 것은 태공의 육도와 삼략이다.’ 하여 《삼략》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 것은 당나라 초반 이 책이 상당히 널리 퍼졌음을 알 수 있다. 북송(北宋) 시대인 1080년 송 신종(宋神宗)이 이 책과 《손자(孫子)》, 《오자(吳子)》, 《사마법(司馬法)》, 《육도(六韜)》, 《울료자(尉繚子)》, 《이위공문대(李衛公問對)》 등과 함께 교정하여 한 책으로 간행하도록 하였는데 이에 추밀원 검상관 왕진(王震) 등이 책임을 맡아 편찬하고 이를 ‘무경칠서(武經七書)’라고 하였다.

4. 내용

이 책은 〈상략(上略)〉, 〈중략(中略)〉, 〈하략(下略)〉의 세 부로 이루어져 있으며 약 4,000여 자로 분량은 많지 않다. 〈상략〉에서는 《군참(軍讖)》, 〈중략〉에서는 《군세(軍勢)》라는 이전의 병서를 인용하여 주로 자신의 주장을 기술하고 있으나 각 부별로 내용상의 구분은 분명하지 않다. 이로 보아 현존하는 《삼략》은 황석공이나 후세의 여러 사람들이 태공망 등 역대 병학자들의 여러 내용을 종합하고 중요한 내용을 뽑아 모아 편찬한 것으로 생각된다.
1부 〈상략〉은 정치의 대도(大道)와 군 운용의 기본 원칙을 논하고 있다. 〈상략〉에서는 정치의 근본을 인의와 도덕에 두고 국가의 존엄성의 군의 기강을 확립하기 위하여 먼저 백성과 군사들을 친화력으로 다스려 결속시켜야 하며 유능한 인재를 확보하고 간신을 분별하여 제거하며 이어 상벌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정치나 전쟁에 있어서 성패의 본질을 논하고 강약(强弱)의 형세가 변하는 것을 밝히고 이것이 국가의 흥망성쇠와 이해득실에 직결되는 권변(權變)이라고 결론지었다. 2부 〈중략〉은 앞의 〈상략〉에서 언급한 통치자의 덕목과 권변을 구체화하여 삼황(三皇)과 오제(五帝), 패자(霸者)의 시대에 각각 통치술이 어떻게 변화하며 민심의 향배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군주의 정략에는 출정하는 장수에 대한 독자적인 재량권 부여를 비롯하여 군사들의 심리를 파악하고 은덕과 위엄 등으로 이들을 부리는 방법 등을 밝히고 있다. 아울러 전쟁 시 권모술수와 기계(奇計)의 운용에 대한 중요성, 그리고 전투 이후 군권의 회수 및 전공자의 포상 등의 문제를 열거하고 이러한 조치들은 모두 군주의 권위를 보장하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하였다. 3부 〈하략〉에서는 국가의 안위를 좌우하는 최고 규범의 하나로서 도덕을 논하고 있다. 여기서 인덕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들과 휴식하는 것이 부국강병의 관건이라 주장하면서 인정을 베풀고 어진 인재를 등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언급하고 있다. 특히 현자는 인간의 심리에 도(道)·덕(德)·인(仁)·의(義)·예(禮) 등 다섯 가지 규범으로 백성들의 화합과 결속을 유지하며 이를 실천하여 백성으로 하여금 기꺼이 복종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5. 가치와 영향

《삼략》은 실제 저자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지만, 중국 병학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춘추시대 초기 태공망의 병학사상을 바탕으로 황석공과 장량 등의 여러 후세 인물들이 여러 내용을 뽑아 편찬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 책 속에 도가(道家)와 유가(儒家), 황로사상(黃老思想) 등의 내용이 섞여 있는 것을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현재의 체재와 내용은 대체로 후한(後漢)이나 위진시대(魏晉時代)에 정리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내용상으로 《손자》 등 다른 병서들이 전쟁과 군사의 운용에 대한 내용이 주를 차지하고 있음에 비해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기르는 유교적 국가 통치서의 성격이 강한 점이 특징적이다. 따라서 북송대(北宋代) 편찬된 ‘무경칠서’의 한 종으로 수록되었지만 다른 책에 비해 널리 읽혀진 것은 이 책이 가진 독특한 성격에 따른 것이다. 무경칠서의 한 편으로 들어감에 따라 무과 시험의 한 과목인 강경(講經)의 주요 대상이 되어 무관 교육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조선(朝鮮) 후기에 《삼략》은 단순한 병서가 아니라 국가를 다스리는 통치서의 하나로 높게 평가받음에 따라 다양한 판본의 《삼략》이 여러 차례 전국에서 간행되어 널리 읽혔다.

6. 참고사항

(1)명언
• “용병(用兵)의 요체는 예절을 숭상하고 녹봉을 무겁게 하는 것에 있으니, 예절이 숭상되면 지혜로운 선비가 찾아오고 녹봉이 무거워지면 의로운 선비가 죽음을 가볍게 여긴다. 그러므로 어진 이에게 녹봉을 줄 적에는 재물을 아끼지 않고, 공이 있는 자에게 상을 줄 적에는 때를 넘기지 않으면 아랫사람들이 힘을 함께 써서 적국의 영토가 줄어들게 될 것이다.[夫用兵之要 在崇禮而重祿 禮崇則智士至 祿重則義士輕死 故 祿賢 不愛財 賞功 不踰時 則下力幷 敵國削]” 〈상략(上略)〉
• “왕자(王者)는 사람을 도(道)로써 제어하여 마음을 낮추고 뜻을 굴복시키고 법도를 만들어 쇠할 때를 대비하여 사해(四海)의 제후들이 모여 왕자의 직책이 무너지지 않았다. 비록 갑옷과 병기를 갖추었더라도 전투하는 근심이 없어서 군주는 신하를 의심하지 않고 신하는 군주를 의심하지 않아서 나라가 안정되고 군주는 편안하며 신하는 의리로써 물러나니 또한 능히 아름답고 해로움이 없었던 것이다.[王者 制人以道 降心服志 設矩備衰 四海會同 王職不廢 雖甲兵之備 而無鬪戰之患 君無疑於臣 臣無疑於主 國定主安 臣以義退 亦能美而無害]” 〈중략(中略)〉
• “성왕이 용병(用兵)하는 것은 전쟁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장차 포악함을 주벌하고 난리를 토벌하려고 해서이다. 의(義)로써 불의(不義)를 주벌하는 것은 장강과 대하(大河)를 터서 작은 횃불에 물을 대는 것과 같고, 측량할 수 없는 깊은 못에 임하여 떨어지려고 하는 사람을 떠미는 것과 같으니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聖王之用兵 非樂之也 將以誅暴討亂也 夫以義誅不義 若決江河而灌爝火 臨不測而擠欲墜 其克 必矣]” 〈하략(下略)〉
(2)색인어:태공망(太公望), 황석공(黃石公), 장량(張良), 삼략(三略), 황석공삼략(黃石公三略).
(3)참고문헌
• 三略(中國兵書集成1, 解放軍出版社)
• 三略直解(漢文大系, 富山房)
• 육도‧삼략(유동환 역, 홍익출판사)
• 六韜‧三略(남만성, 현암사)
• 譯註 三略直解(성백효 외 역, 전통문화연구회)
• 中國軍事思想史(백기인, 국방군사연구소)

【노영구】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3.10.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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