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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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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권학편(勸學篇)》은 청나라 말기 고위관료였던 장지동(張之洞)(1837~1909)이 지은 저서이다. 그는 이 저서에서 중국이 처한 대변혁기이자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전통적인 윤리, 도덕 등의 정신적 가치를 중시하는 한편 서양의 근대 과학기술에 대한 수용과 연구를 권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렇지만 서구의 민권론(民權論)등에 대해서는 그 위험을 경고하는 이른바 중체서용론(中體西用論)을 제기하고 있다. 이런 논조로 인하여 장지동은 강유위(康有爲)(1853~1927) 등이 변법유신을 주장하는 개혁운동에 대항하는 한편 청 왕조의 전제정치를 옹호하는 보수적 성격을 띤 양무파(洋務派)로 분류된다. 이 저서는 내편 9편, 외편 15편 총 24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편에서는 인(仁)을 추구하며 중국의 실존과 가치를 강조했다면 외편에서는 지혜와 용기를 추구하며 중국이 배워야 할 서구의 근대과학 문명에 대한 수용을 담고 있다. 그의 사상적 특징은 중국의 전통적인 정치, 도덕, 학문 등의 정신, 문화적 가치를 주체(主體)로 삼는 한편 서양의 근대 물질문명, 과학기술 등을 용(用)으로 여기고 있다. 이런 그의 중체서용론(中體西用論)은 조선의 동도서기론(東道西器論), 일본의 화혼양재(和魂洋才)와도 비교된다.

2. 저자


(1) 성명:장지동(張之洞)(1837~1909)
(2) 자(字)·별호(別號):자(字)는 효달(孝達), 향도(香濤), 호(號)는 일공(壹公), 향암거사(香岩居士), 무경거사(無竟居士) 등으로 불렸으며 만년에는 포빙노인(抱冰老人), 사후 시호(諡號)는 문양(文襄)이다.
(3) 출생지역:귀주성(貴州省)의 흥의부관사(興義府官舍)
(4) 주요활동과 생애
- 生涯
장지동(張之洞)(1837~1909)은 중국의 청말 개명된 관료, 정치인, 교육가이다. 선대(先代)가 산서성 홍동현에 살다가 후에 직예남피(直隷南皮)(현 하북성(河北省) 남피현(南皮縣))로 옮겨왔기 때문에 남피인(南皮人)이라고도 불린다. 그는 1837년 8월3일 귀주성(貴州省)의 흥의부관사(興義府官舍)에서 출생했다. 대대로 관료가의 집안에서 출생하여 양육되었다(증조부 장이웅(張怡熊)은 절강산양의 지현으로 염길(廉洁)한 인물로 알려짐. 조부 장정침(張廷琛)은 복건성 길전의 지현을 지냄). 부친 장영(張鍈)은 가경(嘉慶) 연간(1796~1820)에 귀주 안화현의 동지를 지냈다. 장영은 세 차례 결혼했는데 장지동의 모친은 그의 세 번째 부인이었다. 그는 형제 6명 가운데 4번째 아들로 출생했다. 4세에 모친상을 당했다. 26세에 진사에 합격 한림원 편수가 된 후 10여 년간 호북학정(湖北學政), 예부시랑(禮部侍郞) 등 학문 및 교육 분야의 관직을 두루 역임했다. 서태후의 신임을 받으면서 산서순무(山西巡撫)(1881)에 이어 양광총독(兩廣總督)(1884), 호광총독(湖廣總督)(1889)에 각각 발탈되었다. 이후 무창(武昌)을 중심으로 부강(富强)정책을 실시하는 한편 호북기계국(湖北器械局), 제지공장(製紙工場), 해군학교, 호북병포창(湖北兵砲廠) 등의 건설로 신식군대 편성에도 관여했고 40여 년 관료생활 가운데 무창자강학당(武昌自强學堂), 호북농무학당(湖北農務學堂) 등의 학교설립, 운영 등 교육 분야에도 깊이 관여했다. 《권학편(勸學篇)》은 그의 나이 62세(광서(光緖) 24년, 무술(戊戌))에 저술되었다. 이어서 1903년 주중일본대사와 외국유학생 관련 규정(약속고려출양유학생장정(約束顧勵出洋遊學生章程)) 등을 제정하여 외국유학을 장려하는 계기를 마련했고 1904년 일본의 학제를 참고하여 중국의 최초 신식학제인 주정학당장정(奏定學堂章程)(계묘학제(癸卯學制))를 반포하게 했다. 1905년에는 과거제 폐지를 건의 중국에서 1300년간 실시되던 과거제가 막을 내리게 된다. 1907년에는 관학부대신 등 관료생활을 끝으로 1909년(선통(宣統) 원년(元年), 을유(己酉)) 73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 主要活動
어린 시절에는 유학(儒學)을 수학했다. 1852년 16세에 순천부(順天府) 향시(鄕試)에 해원(解元), 1863년 26세에 회시(會試)에 응시하여 합격(탐화(探花):진사급제), 한림원 편수가 되었다. 1867년(30세) 절강향시부고관(浙江鄕試副考官)이 되었다. 동년 8월 호북학정, 예부시랑 등 학문 교육 분야의 관직을 역임했다. 1869년(32세) 무창에 경심서원을 설립했다. 1881년(43세) 산서순무(山西巡撫)에 임명되었다. 서태후의 신임을 받아 1884년 청불(淸佛)전쟁이 발발하자 청(淸) 정부는 그를 광동, 광서의 양광총독(兩廣總督)(장관)에 발탁했고 1889년 호남성, 호북성의 호광통독(湖廣統督)을 역임케 했다. 의화단 사건 이후 과거제도의 폐지를 건의하자 정부가 이를 수용했다(1905). 한편 근대학교의 도입, 일본에 유학생 파견 등을 정부에 건의한 바 있다. 1904년 주정학당장정(奏定學堂章程)(계묘학제(癸卯學制)) 등 중국 최초의 근대학교제도 성립에 관여했으며 이후 무창(武昌)을 중심으로 강화정책을 실시했다. 호북기계제조국의 제조공장, 제철소, 제지공장 등을 설립했다. 그리고 수사학당(水師學堂)(해군학교)의 설립, 호북창포창(湖北艙砲廠)(병기창) 설립에 의한 신식군대의 편성을 시행했다. 그 밖에 자강학당, 호북농무학당 등 학교 설립운영에도 관여했다. 1907년 이후 내각대학사겸 군기대신이라는 최고의 지위를 부여받아 중앙정부에서 교육행정을 관리하게 되었다. 이처럼 그는 청말 교육개혁을 추진하는 중심적인 인물이었다.
(5) 주요저작
《장문양공전집(張文襄公全集)》, 중국서점(中國書店), 1990년 영인본(影印本).(이 책 속에 주의(奏議) 72권, 전주(電奏) 13권, 공독(公牘) 36권, 전독(電牘) 80권, 권학편(勸學篇) 2권, 유헌어(輶軒語) 2권, 서목답문(書目答問) 4권, 독경찰기(讀經札記) 2권, 고문(古文) 2권, 병문(騈文) 2권, 시집(詩集) 4권, 제자기(弟子記) 1권, 서찰(書札) 8권, 가서(家書) 1권 등, 총 229권 포함)
《권학편(勸學篇)》 광서(光緖) 24년 호북학무처인행(湖北學務處印行) 5책
《주정학당장정(奏定學堂章程)》 광서 30년, 호북학무처인행(湖北學務處印行) 5책

3. 서지사항


《권학편(勸學篇)》은 광서(光緖) 24년(1898) 중춘(仲春)(3월)에 간행되었다. 서문에 앞서 “광서 24년(1898) 6월 7일에 한림원 시강 황소기(黃紹箕)(1954-1908)에서 지시하여 장지동이 지은 권학편을 헌상케 하고 이 책의 원서 내외 각편의 일부를 대신 보고케 하였다. 짐이 자세히 살펴본 바 지론이 균형 잡히고 바르며 학술에 통달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보아 이 저서 사본 40부를 군기처로 하여금 각 성의 독무(督撫), 학정(學政)에게 각 한부씩 보내 널리 도움이 되게 하라. 이 책을 간행하여 배포하는 것은 실다운 힘과 權導권도가 강상명교(綱常名敎)를 중시함으로써 모든 어려움을 근절하도록 함이니 이상의 명을 준수하기 바란다” 光緖二十四年 六月初七日 奉上諭本日翰林院奏侍講 黃紹箕呈進張之洞所著勸學篇據呈代奏一摺原書內外各篇 朕詳加披覽持論平正通達于學術人心大有裨益 著將所備副本四十部由軍機處頒發各省督撫學政各一部 俾得廣爲刊布實力勸導以重名敎而杜厄言欽此”라고 하여, 광서제가 이를 친람한 후 ”그 지론이 학술과 인심에 통달하여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대만에서 간행된 《권학편》 영인본(近代中國史料叢刊第49輯(沈雲龍 主編), 《張文襄公(之洞)全集》(勸學篇), 臺北:文海出版社, 1974)에 의하면 이 책의 순서는 맨 앞에 광서제의 흠차서(欽此書), 저자 서문, 권학편 상(내편) 9장, 외편 15장 총 24장으로 각각 구성되어 있다. 내편은 인심을 바르게 하는데 힘쓴다면 외편은 기풍을 개방하여 통달하는데 힘쓴다[內篇務本以正人心 外篇務通以開風氣]는 것이 내외편의 요지이다. 내편에는 동심(同心), 교충(敎忠), 명강(明綱), 지류(知類), 종경(宗經), 정권(正權), 순서(循序), 수약(守約), 거독(去毒) 등 9편이, 외편에는 익지(益智), 유학(遊學), 설학(設學), 학제(學制), 광역(廣譯), 열보(閱報), 변법(變法), 변과거(變科擧), 농공상학(農工商學), 병학(兵學), 광학(鑛學), 철로(鐵路), 회통(會通), 비미병(非弭兵), 비공교(非攻敎) 등 15장으로 각각 구성되어 총 내외 2편 15장으로 되어 있다. 판형은 4×6배판(14x21㎝)에 가깝다. 분량은 총 197쪽에 해당된다. 구체적으로는 맨 앞에 광서제의 흠차(欽此)가 명시된 글(111자)과 저자 서문(446자)이 실려 있다. 《권학편》은 총 4만자에 이른다.

4. 내용


《권학편》은 신구(新舊) 간 학설이 혼재한 때 장지동이 전통적인 강상명교(綱常名敎)를 옹호하기 위한 하나의 지침서로 쓰여진 저서이다. 저술배경에도 중도론적 입장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 반면에 벽사론적 시각에서 보는 견해도 있다. 권학편 내용 구성은 서문, 내편, 외편 순으로 이뤄져 있다. 내편은 주로 근본에 힘씀으로써 인심을 바로 잡는데 주안을 두었다면 외편은 서학을 통하는데 힘써 풍기를 연다는 의미가 함의되어 있다. 내편은 보국(保國), 보교(保敎), 보종(保種)을 위해 청 왕실을 존중하고 유학(儒學)의 보존, 국권의 우위, 민권의 저지 등을 담고 있는 반면에 외편은 주로 서구의 학문을 수용하여 제도 개혁을 담은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다. 예컨대 과거제도의 개혁, 해외유학, 직업교육 등이 그 예이다. 그러나 내외편을 관통하는 주제어는 중체서용론(中體西用論)이다.

5. 가치와 영향


이 책은 해외로도 널리 알려져 영어 번역본(Samuel I. Woodbridge, 《China´s only hope》, Fleming H. Revell Company, 1900)을 비롯하여 일본어 번역본(濱久雄, 《勸學篇》 東京:明德出版社, 2006), 불어판 등으로 각각 번역될 정도로 대내외적 관심을 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대한 평가는 찬반이 분분하다. 광서제(光緖帝)(1871~1908)와 자희태후(慈熹太后)(1835~1908)는 이 책에 대해 “지론이 평정 통달하여 학술과 인심에 크게 도움이 된다.[持論平正通達 于學術人心大有裨益]”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성유(聖諭) 형식으로 군대와 각성의 독무학정에게 널리 유포토록 명했다. 이와 다르게 하계(何啓)(1859~1914), 호예원(胡禮垣)(1847~1916) 등 유신을 주장하는 인사들은 이 책에 대해 “마침내 신정을 실천에 옮기는 것을 저지한 것은 권학편 만한 것이 없다.[終足以阻新政之行者 莫若勸學篇]”라고 혹평을 하기도 했다. 더 나아가 양계초(梁啓超)(1873~1929)는 “삼십년이 가지 않아 멸진될 것이고 먼지가 야생마가 되어 그 먼지가 우연이 바람을 따라 일어나 이를 맡아 취하게 되면 코를 싸들고 갈 것이다.[不三十年將化爲灰燼 爲塵埃野馬 其灰其塵 偶因風揚起 聞者獲得掩鼻而過之]”라고 비판적 시각을 보였다. 이렇듯 정치적인 면에서 《권학편》에 대한 평가는 찬반양론이 제기될 수 있지만 교육의 측면에서 보면 《권학편》은 다음과 같은 역사적 가치와 영향을 추론해 볼 수 있다. 《권학편》은 ① 중국의 전통교육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제공했다. ② 국가의 위기 타개를 위해서는 지식인들의 역할을 강조했다. ③ 서구 학문의 연구와 학습 범위를 확대했다. ④ 서구의 발전된 교육제도의 도입과 학습을 강조했다. 요컨대 장지동의 《권학편》은 신구와 선진과 후진, 체와 용을 포섭하고 있다. 물론 그는 유학을 존숭하고 봉건적인 예교를 고수하는 한편 민주 민권을 부정한 보수적인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그는 교육을 중시하고 신학문 제창에 앞장선 면에서 보면 진보적인 측면도 확인된다.

6. 참고사항


(1) 명언
‧ “큰 일을 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자신의 마음을 단련하고 육신을 수고롭게 하여 충분히 먹지도 휴식도 하지 못한 채 스스로를 모질게 단련 한 뒤에야 비로소 큰 일을 시작할 수 있다. 모든 일이 다 그러하다. 시간이 지나도 변함이 없는 사실이다. 정금은 굽히고 펴고를 할 수 있고 많이 단련해도 상함이 없다. 군자는 그 능력에 있어 숨김과 드러남을 자유로 할 수 있어야 하고 제왕은 포부를 속도감 있게 펼칠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事欲常行必先從暫行起, 欲停辨必先從緩辨起, 百事皆然, 歷之不爽, 精金能屈伸, 百煉仍無傷, 君子有卷舒, 帝王有馳張]”〈張之洞이 아들에게 보낸 글에서〉
‧ “인재(人才)를 얻는 길 일곱 가지. 하나는 지극한 정성을 쏟는 인물. 둘은 공평무사한 인물 – 명망 있는 인물을 발탁하는데 힘쓰고 나이로 인하여 정체되는 것은 제거하는데 힘쓰고, 관리가 자리만 지키는 사람은 축출하며 자신의 능력에 비해 지위를 높게 하지 않으며 기쁘고 화내는 것으로 애증을 삼지 않으며 다르고 같음으로 인재를 버리고 취하지 않게 하라. 셋은 빈 마음을 가진 인물 - 아래 사람들 중에 인재가 없다고 걱정하지 말고 위에서 인재를 구하지 않는 것을 걱정하라. 조정에서는 높은 지위에 있는 관리들을 이목으로 삼고 높은 관리들은 공론을 이목으로 삼아 마땅이 이를 비축해두어라. 임시로 인재를 취할 수 없는 것이다. 넷은 상례(常例)를 벗어나는 인물 - 나이를 계산하지 말고 관례에 물들지도 마라. 뛰어난 인물은 문과나 병과냐의 그 전공을 가릴 것 없다. 어렵고 무거운 임무를 부과하는 경우는 인척을 멀리하라. 다섯은 적재적소에 인재를 등용할 줄 아는 인물 - 기본적인 조건인 먹이는데 그리고 인력이 충분하면 그 역량을 보아 임무를 맡길 수 있다. 남쪽에서는 해로를 북쪽에서는 육로를 각기 활용하는데 그 장점이 있다. 외방의 승려는 통제하고 서방에서 온 지혜와 기교, 교통 등에는 취할 바 좋은 점이 있다. 모두 우리의 발전을 위한 책략으로 제공될 수 있다. 여섯은 악을 버리고 선을 취할 줄 아는 인물 - 변방의 인재는 매번 속이고 교활한 사람이 많으나 건강한 장수는 매번 어디에 구속됨이 없다. 한 번의 과오를 보고 큰 인물을 버리지 말며 두 번의 실수를 보고 간성이 될 인물을 버리지 마라. 혹 그의 기능을 취할 수도 있고 혹은 그의 아이디어를 취할 수도 있다. 일곱은 인물의 재분(才分)에 따라 그의 역량을 길러낼 줄 아는 인물 - 변방의 일에는 변방의 인재가 필요하고 조나라 명장인 염파(廉頗)와 이목(李牧)은 본래 날 때부터 그렇게 된 인물은 아니고 모두 익히고 연습한 바이다. 우리의 영토에 위기가 몰아 닥칠 때에 바르게 연마된 많은 인재가 이어서 나와야 한다([得人之道有七 一曰至誠 責大臣薦擧 不薦不止 廣條目以求才 不得不休 二曰秉公 務采物望 務拔齒滯 黜尸素 禁濫芉 不以喜怒爲愛憎 不以異同爲去取 三曰虛心 不患下無才 但患上不求 朝廷以樞臣爲耳目 樞臣當以公論爲耳目 宜儲之于夹袋 不可取辨于臨時 四曰破格 勿計年資 勿泥成例 奇杰之才不拘文武 艱鉅之任不限疏戚 五曰器使 足食足兵 量能授任 南船北馬 各用所長 卽塞外番僧 泰西智巧 駕駛有方 皆可供我策遣 六曰節取 邊才每多偏駮 健將每涉不覇 不以一眚揜大德 不以二轂棄于城 或取其技能 或采其議論 七曰造就 有邊事始有邊才 頗牧衛霍 非本天生 皆有習鍊 疆圉孔棘之秋 正磨歷人才之具] 〈《장문양공연보(張文襄公年譜)》 권일(卷一)〉
(2) 색인어:중체서용(中體西用), 장지동(張之洞), 내편(內篇), 외편(外篇), 강상명교(綱常名敎), 권학편(勸學篇), 양무(洋務), 신학(新學), 중학(中學), 과거(科擧)
(3) 참고문헌
‧ 張之洞評傳(馬天瑜·何曉明, 南京大學出版社,1991)
‧ 張文襄公全集(勸學篇)(沈雲龍, 近代中國史料叢刊第49輯, 文海出版社)
‧ 勸學篇(李忠興 評注, 中州古籍出版社. 1998)
‧ 張之洞與湖北敎育改革(蘇雲峯, 中央硏究院近代史硏究所, 1976)
‧ 勸學篇(張之洞, 송인재 역, 산지니, 2017)
‧ 淸末政治思想硏究(小野川秀美, みすず書房, 1969)
‧ 勸學篇(濱久雄, 明德出版社, 2006)
‧ 〈장지동의 교육개혁론〉(김귀성, 고려대학교 교육문제연구소 《교육문제연구》3, 1990)
‧ 〈장지동의 권학편 분석〉(요전덕, 《중국사연구》 64, 2010)
‧ 〈淸末 張之洞의 중체서용론과 교육사상:권학편을 중심으로〉(장의식, 《역사학보》147, 1995)
‧ 〈儒學道統與晩淸社會制度變革-張之洞《勸學篇》硏究〉(石文玉, 吉林大學 博士論文, 2008)
‧ 〈張之洞的中體西用與程朱理學的關係-以《勸學篇》爲中心的考察〉(張勇,
《水盤水師範高等專科學校學報》, 2006)
‧ 〈《勸學篇》與《翼敎叢編》淸末之保守主義〉(小林武, 《中國哲學史的展望與探索》, 創文社, 1976)
‧ 〈張之洞《勸學篇》的西文譯本〉(黃興濤, 《近代史硏究》, 2000年第 1期)
‧ William Ayers, 『Chang Chi Tung and Educational Reform in China』, Havard University Press, 1971
‧ Samuel I. Woodbridge, 『China´s only hope』, Fleming H. Revell Company, 1900.
‧ Yoon, Seungioo, 『The Formation, Reformation, and Transformation of Zhang Zhidong´s Document Commissioners, 1885-1909』, Harvard Univ. Press,1999.


【김귀성】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0.08.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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