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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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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공총자(孔叢子)》는 중국 서한(西漢) 시기에 공부(孔鮒)(공자(孔子)의 8대손)가 편찬한 책이라 전해진다. 처음에 공부가 공자 이하 자사(子思)‧자상(子上)‧자고(子高)‧자순(子順)의 언행을 모아 21편으로 펴냈다. 그 후 서한 무제(武帝) 때에 태상(太常)인 공장(孔藏)이 자신이 저술한 부(賦)와 서(書)를 〈연총상하편(連叢上下篇)〉이라고 이름하고 이에 덧붙여서 《공총자》라고 했는데, 이것이 현재까지 전하는 《공총자》라고 한다.

2. 저자

(1) 성명: 공부(孔鮒)(B.C. 264~B.C. 208)
(2) 자(字):자는 갑(甲) 또는 자어(子魚)
(3) 출생지역 : 산동성(山東省) 곡부(曲阜)
(4) 주요활동과 생애
공부(孔鮒)는 전국시대 말기에 노(魯)나라 곡부(曲阜)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경전(經典)과 사서(史書)에 정통했으며, 위(魏)나라의 명사인 장이(張耳)‧진여(陳余) 등과 친분이 있었다. 진시황(秦始皇)이 천하를 통일한 후 법가(法家)의 정책을 채택하여 분서갱유(焚書坑儒)를 단행하고 전제주의(專制主義) 정치를 지속적으로 펼치자, 공부는 집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사용하던 《논어(論語)》, 《효경(孝經)》, 《상서(尙書)》 등 유가의 경전을 모아서 공자 구택(舊宅)의 벽 속에 감춘다. 그 후 공부는 제자들을 이끌고 숭산(嵩山)으로 도피한 후 그곳에 은거하면서 백여 명의 학생들을 가르친다.
이후 진나라 말기 진승(陳勝)이 궐기한 후 스스로를 초왕(楚王)이라고 칭하면서 기세를 올릴 때, 공부는 진여의 권유로 숭산에서 내려와 진승의 진영에 가담한다. 그때 진승은 직접 공부를 맞이하고 그를 박사이자 태사(太師)로 모신다. 진승은 공부를 태사로 모시면서 자신의 측근에 두고, 많은 사안에 대하여 자문을 구한다. 그 후에 진승이 공부의 간언을 듣지 않자, 공부는 병을 핑계로 물러나 재야로 돌아갔으며, 얼마 후에 진(陳) 땅에서 죽는다.
(5) 주요저작 : 《공총자(孔叢子)》 21편

3. 서지사항

〈가언(嘉言)〉‧〈논서(論書)〉‧〈기의(記義)〉‧〈형론(刑論)〉‧〈기문(記問)〉‧〈잡훈(雜訓)〉‧〈거위(居衛)〉‧〈순수(巡狩)〉‧〈공의(公儀)〉‧〈항지(抗志)〉‧〈소이아(小爾雅)〉‧〈공손룡(公孫龍)〉‧〈유복(儒服)〉‧〈대위왕(對魏王)〉‧〈진사의(陣士義)〉‧〈논세(論勢)〉‧〈집절(執節)〉‧〈힐묵(詰墨)〉‧〈독치(獨治)〉‧〈문군례(問軍禮)〉‧〈문답(問答)〉 등 21편 외에 〈연총상하편(連叢上下篇)〉이 있다.

4. 내용

《공총자(孔叢子)》 21편은 공자 집안 다섯 명의 조상의 언행을 기록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책 속에는 공자 이후 공씨 가문이 장기간에 걸쳐서 인재를 배출한 것과 왕성한 학술활동을 한 것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는데, 이러한 사실은 사마천이 《사기(史記)》를 저술할 때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사마천은 〈공자세가(孔子世家)〉에서 공자의 가르침이 십여 세대가 지난 후에도 여전히 학자들로부터 추앙을 받고 있다고 언급했던 것이다.
이 책의 1~5편에서는 공자와 제자, 가족, 군주, 경대부 등의 사람들이 언급한 내용에 대하여 기록을 했는데, 매우 광범위한 내용을 언급했다. 예를 들자면 수신치국(修身治國)에 대한 문제나 《상서(尙書)》의 대의에 관한 문제, 일상생활 속에서 마땅히 준수해야 할 예의규범이나 덕과 형벌의 관계 등에 관한 언급이 대부분이다.
6~10편에서는 공자의 손자인 공급(孔伋)이 노나라, 위나라, 제나라, 송나라 등에서 많은 사람들과 교유한 사실과 그 대화 내용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다. 여기에 언급된 인물들로는 증자(曾子), 증신(曾申), 노래자(老萊子), 노 목공(魯穆公), 제나라 군주, 위나라 군주, 공백(孔白), 맹자(孟子) 등이다. 11~14편에서는 공천(孔穿)과 공손룡(公孫龍), 평원군(平原君), 신릉군(信陵君), 위나라 군주, 제나라 군주와의 대화 등이 서술되어 있다. 15~17편에서는 공겸(孔謙)과 위나라 왕, 조나라 왕, 한나라 왕, 경대부(卿大夫)에 대한 언급 및 위나라와 조나라의 정치상황에 대한 기록이 담겨져 있다. 18~21편에서는 묵가(墨家)에서 유가와 공자를 비판한 내용을 공부가 반박한 내용, 공부와 진섭(陳涉)이 군례(軍禮)와 기타의 문제에 대하여 논의한 사실이 서술되어 있다.

5. 가치와 영향

《공총자(孔叢子)》는 유가의 문헌 가운데 줄곧 중시 받지 못했던 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역대로 《공총자》에 대하여 연구를 진행한 학자가 매우 적었을 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담겨져 있는 가치 있는 문구들을 학자들이 외면한 사실에 기인한다. 그러나 사실상 《공총자》에는 다양한 분야의 가치가 담겨져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예를 들자면 문헌적 가치와 사료적 가치 및 사상사적 가치 등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공총자》에는 공자세가에 대한 소중한 사료들이 소장되어 있다. 《공총자》는 《공자가어(孔子家語)》와 더불어 양한(兩漢)에서 위진(魏晉)시대에 이르는 공자가학(孔子家學)에 대한 매우 중요한 문헌으로 취급되고 있다. 특히 공자 후손의 언행과 사적을 심도 있게 다뤘기 때문에 공자가학의 전승과정 및 공자세가에 대한 조명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그 가치는 매우 크다.
또한 《공총자》의 사상적 가치는 공자의 사상을 두 가지 측면에서 빛냈다는 점이다. 먼저 공자의 후손이 끊임없이 공자의 가르침을 전승해왔다는 점이 그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공자의 후손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본분을 잊지 않고 사람의 도리와 처신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덕을 수양하고 가르침을 전수할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이다.

6. 참고사항

(1) 《공총자(孔叢子)》의 저자 진위에 관한 문제
남송(南宋) 시기의 주희(朱熹)는 《공총자》 문체의 연약함이 서한(西漢)의 문자답지 않다고 하면서, 서한의 공부(孔鮒)가 저자라고 하는 것에 대하여 의구심을 표명하였다. 또한 남송의 홍매(洪邁)는 남조시대 제(齊)나라‧양(梁)나라 이래의 호사가(好事家)가 공부를 가탁해서 저술한 저작이라고 의심했으며, 명(明)나라 시기의 송렴(宋濂)이나 청(淸)나라 시기의 요제항(姚際恒)은 북송(北宋) 시기의 송함(宋咸)의 저작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명나라의 호응린(胡應麟)은 공자의 20대손인 공계언(孔季彦)을 비롯한 후손들이 선대(先代)의 유언일사(遺言佚事)를 집성(集成)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 명언
• “옛날 재판을 하는 사람은, 죄를 범한 그 마음은 미워해도 그 사람을 미워하지는 않았다.[古之听言公 惡其意 不惡其人]” 〈형론(刑論)〉
• “제비와 참새는 사람의 집에 둥지를 틀고 새끼와 어미가 서로 먹이를 먹여주고 화락하게 지내며 스스로 안전하다고 여긴다. 그 집의 굴뚝에서 불이 나서 마루와 추녀를 태우려고 하는데도, 제비와 참새는 얼굴색도 변하지 않고 재앙이 자신에게 미치는 줄 모른다.[燕雀處屋 子母安哺 煦煦焉其相樂也 自以爲安矣 竈突炎上 棟宇將焚 燕雀顔色不變 知禍之將及也]” 〈세론(論勢)〉
(3) 색인어:공자(孔子), 공부(孔鮒), 공급(孔伋), 공백(孔白), 수신치국(修身治國), 상서대의(尙書大義), 공자가학(孔子家學)
(4) 참고문헌
• 《孔叢子》(孔鮒 著, 中華書局)
• 《孔叢子校釋》(傅亞庶 編, 中華書局)
• 《孔叢子》(孔鮒 著, 페이퍼문)

【조원일】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3.10.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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