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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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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본서는 남북조시대 강남에 위치했던 송(宋)왕조(420~479)의 역사를 기술한 기전체(紀傳體) 형식의 사서로 중국의 정사(正史) 가운데 하나에 속한다. 남조 제(齊), 양(梁)의 관료이자 문인인 심약(沈約)이 지었으며 전 100권으로 488년(제 무제(齊武帝) 영명(永明) 6년)을 전후로 완성되었다. 현존하는 남조의 정사(正史)들 가운데 성립 시점이 가장 빠르며 내용의 상세함, 분량의 풍부함에 있어도 다른 정사들을 압도한다. 특히 본서에는 황제의 책서(策書), 조서(詔書), 칙서(勅書)를 비롯하여 신료들의 주(奏)와 표(表), 계(啓) 등 동시대의 문서자료들이 대량으로 수록되어 있다. 또한 본서의 저자가 서술 대상 시대를 직접 체험했기 때문에 기록의 신뢰도와 사료적 가치는 매우 높다.

2. 저자


(1) 성명:심약(沈約)(441~513)
(2) 자자(字)·별호(別號):자는 휴문(休文)
(3) 출생지역:오흥(吳興) 무강(武康)(浙江 湖州 德清縣)
(4) 주요활동과 생애
심약은 강남의 명문인 오흥 심씨 집안 출신으로 남조 송에서 봉조청(奉朝請)으로 기가(起家)하여 정서기실참군(征西記室參軍), 안서진안왕법조참군(安西晉安王法曹參軍), 상서탁지랑(尙書度支郞) 등의 관직을 거쳐 제(齊)왕조에서는 동궁(東宮)으로 들어가 보병교위(步兵校尉), 태자가령(太子家令)을 지냈고, 사도우장사(司徒右長史), 황문시랑(黃門侍郎)에 이르렀다. 그는 이미 제나라 때부터 뛰어난 문재로 이름을 알렸고, 당시 황족인 경릉왕(竟陵王)의 초빙을 받아 그의 사저인 서저(西邸)에서 사조(謝脁), 범운(范雲), 임방(任昉), 그리고 소연(蕭衍)(훗날의 양무제) 등 당대의 명사들과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교유했다. 이때의 모임을 계기로 그는 소연과 친분을 쌓았다. 그는 소연이 형주자사(荊州刺史)로서 거병하여 제말(齊末)의 혼란을 수습하고 실권을 장악했을 때, 그에게 제위에 오를 것을 적극 권하기도 하였다. 소연이 즉위하여 양(梁)을 세우자 그는 중용되어 상서성(尙書省)의 요직인 상서복야(尙書僕射)에 임명되었고 건창현후(建昌縣侯)의 작위를 받았으며 이후 상서령(尙書令), 수도의 장관급인 단양윤(丹陽尹)을 거쳐 마지막에는 시중(侍中)에 이르렀다. 이 같은 관계에서의 성공은 그가 직언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기보다는 황제의 뜻에 부합하는 처신으로 일관했기 때문으로 평가된다. 말년에는 무제(武帝)로부터 제에서 양으로의 선양을 추진한 일을 부정했다는 의심을 받았고, 이로 인해 병이 악화되어 73세에 죽었다. 사후 신료들이 그에게 문(文)의 시호를 내릴 것을 청했으나 무제는 그가 정성을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은(隱)으로 고치도록 했다. 그는 사학 외에도 문학, 음운학에도 조예가 있어 이와 관련한 서적을 남기기도 했다.
(5) 주요저작
심약의 열전은 《양서(梁書)》와 《남사(南史)》에 각각 수록되어 있는데 이에 따르면 그는 본서 외에 《제기(齊紀)》, 《양무기(梁武紀)》, 《이언(爾言)》, 《시례(諡例)》, 《문장지(文章志)》, 《사성보(四聲譜)》 등을 지었고, 자신의 문집 100권을 남긴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 가운데 현존하는 것은 본서뿐이다. 그러나 명의 장부(張溥)(1602~1641)가 한에서 남북조, 수대까지 유명한 문인들의 시문을 집록한 《한위육조일백삼가집(漢魏六朝一百三家集)》에 심약집(沈約集)이라는 제명 하에 그의 시문들이 수록되어 있고, 이후 청의 엄가균(嚴可均)(1762~1843)이 남조 양대 문인들의 문장을 집록한 《전량문(全梁文)》에도 그의 문장들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통해 그의 문학과 사상을 확인할 수 있다.

3. 서지사항


본서는 남북조시대 강남 남조의 왕조들 가운데 하나인 송(420~479) 일대를 다룬 기전체 형식의 역사서이다. 그 명칭과 체제는 반고(班固)의 《한서(漢書)》를 계승하였다. 심약의 《송서》이전에도 송의 사적을 기록한 사서는 존재했다. 이미 남조 송에서 하승천(何承天), 산겸지(山謙之), 소보생(蘇寶生) 등이 송사(宋史)를 저술했는데 미완성으로 끝났고, 마지막에 서원(徐爰)이 《송서》 65권을 완성했다. 그 후 송에서 제로 왕조가 교체되고 나서 제 무제(齊武帝)는 영명 5년(487) 봄, 당시 저작랑(著作郞)에 있던 심약에게 명을 내려 《송서》를 찬술하게 했다. 이에 심약은 선행의 사본들을 참고하여 내용을 중수, 보충하고 이듬해 2월 기(紀)와 전(傳)을 완성하여 이를 상주했으며 이어서 지(志)를 완성했다. 본서는 전 100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가운데 본기 10권, 지 30권, 열전이 60권이다. 서술 시점은 동진 말기인 의희(義熙) 원년(405)에서 시작하여 송 순제(順帝) 승명(昇明) 3년(479)에서 끝맺었다. 동진 말기가 포함된 것은 송의 건국자인 유유(劉裕)(363~422)가 이때부터 두각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본서의 찬술 경위와 서술 원칙에 대해서는 심약이 이 책을 완성했을 당시, 제 무제에게 올린 표문에 상세하다. 이 표문은 현재 송서 권100 자서(自序)의 말미에 첨부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그는 본기와 열전, 지 외에도 표를 지은 것으로 되어 있는데, 현존하는 《송서》에 표는 없다. 이와 관련하여 당나라의 사가인 유지기(劉知機)는 본서를 평하면서 본기 10, 지 30, 열전 60이라고 하여 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를 감안하면 심약이 지었다고 하는 표는 《송서》가 최종적으로 완성될 무렵에 삽입되지 않았거나 남조 제에서 당 사이에 산일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한편 당대(唐代)에 남조의 정사들을 요약한 《남사(南史)》가 편찬되어 유행하게 되면서 《송서》는 점차 읽히지 않게 되었다. 그 결과 북송(北宋)에 이르러서는 권질에 누락이 발생하고 원문의 많은 부분이 산일되기에 이르렀다. 이에 북송 인종(仁宗) 가우(嘉祐)연간(1056~1063) 《남사》를 통해 《송서》를 교감하여 산일된 부분을 보충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때의 판본은 전하지 않는다. 현재 전하는 판본은 삼조체수본(三朝遞修本)(일명 삼조본(三朝本)), 명, 청시대 상숙(常熟) 모씨(毛氏)의 급고각(汲古閣)에서 간행한 십칠사(十七史), 남경국자감(南京國子監)(일명 남감(南監)), 북경국자감(北京國子監)(일명 북감(北監))의 이십일사(二十一史), 무영전(武英殿)의 이십사사(二十四史) 수록본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삼조본은 송, 원, 명 세 왕조에 걸쳐서 수정된 판본을 이용하여 중수(重修), 보각(補刻)된 판본을 말한다. 이후 민국시기에 상무인서관(商務印書館)에서 이십사사(二十四史)의 결락을 다른 판본들과 대조하여 보충하고 영인(影印)한 일명 백납본(百衲本) 이십사사(二十四史)가 간행되었고, 본서 역시 이 백납본 이십사사에 수록되었다. 백납본에서는 삼조본을 채택하였다. 1974년에는 북경(北京), 중화서국(中華書局)에서 이상의 판본들을 비교, 대조하여 원문을 교감하고, 표점한 점교본(點校本)이 간행되었고 오늘날에는 이 간행본이 가장 널리 활용되고 있다. 그리고 2018년 북경, 중화서국에서 이에 대한 수정본(修訂本)이 출판되었는데 기존 점교본의 표점이나 문단 구분 등의 오류를 수정하고 있고 참고가 된다.

4. 내용


본서의 기 10권은 송 8명의 황제에 대한 기록이며, 지는 율력(律曆), 예(禮), 악(樂), 천문(天文), 오행(五行), 부서(符瑞), 주군(州郡), 백관(百官)의 8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분량이 전체 100권 가운데 30권으로 이전의 정사에 비해 그 비중이 높다는 점이 특징이다. 더욱이 이들 각지의 서술 범위는 송 일대에 한하지 않고 멀리는 상고로부터 한(漢), 위(魏), 진(晉)에 이르기까지 즉 송 이전의 모든 시대를 포함하고 있다. 다만 본서에 경제사 관련 기록에 해당하는 식화지(食貨志)는 없다. 한편 부서지(符瑞志)는 기존의 정사에 없던 항목인데, 상고부터 송대에 이르기까지 발생한 상서로운 현상 및 길조로 여겨지는 동식물들의 출현 사례를 시대순으로 열거한 것이다.
열전의 경우 제99권에 송 문제(文帝)를 시해하고 황제가 된 황태자 유소(劉劭)와 시흥왕(始興王) 유준(劉濬)의 사적이 ‘이흉전(二凶傳)’이라는 표제 하에 수록되어 있으며, 제일 마지막인 제100권에는 ‘자서(自序)’라는 표제 하에 저자 집안의 가전(家傳) 및 본서의 편찬 경위, 그리고 제 무제에게 올리는 표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러한 구성은 이전의 정사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본서만의 특징이기도 하다. 한편 본서의 열전 가운데는 당시 중국 대륙에서 송왕조와 병립했던 북조 북위(北魏)의 역사도 별도의 항목으로 설정되어 서술되어 있다. ‘삭로전(索虜傳)’이 바로 그것이다. ‘삭로’란 머리를 땋은 오랑캐라는 의미로 북위에 대한 남조사람들의 적대의식과 모멸의 감정을 반영한 표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가운데는 북위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정사인 《위서(魏書)》에도 없는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송과 동시대 북위 역사의 이해해도 참고가 된다.

5. 가치와 영향


본서는 내용의 기술에 있어서 저자가 자신의 문장으로 사실을 정리하여 서술하기 보다는 당시의 공문서 즉 황제의 명령문서인 책서, 조서, 칙서, 신료의 상언문서인 장(章), 표(表), 주(奏), 계(啓) 등의 자료들을 그대로 채록하는 방식을 취했다. 더욱이 이들 자료들은 당시에 유행한 변려문으로 작성되어 이전의 《사기(史記)》나 《한서(漢書)》에 비해 문장의 이해에 있어서 난해한 부분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존하지 않는 당시의 문서자료들이 본서 내에 상당수 보존되어 있기 때문에 사료적 가치가 높다.
여덟 부문의 지는 송왕조 뿐만 아니라 위진(魏晉)시대의 사적을 다수 포함하고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시대가 더 올라가는 것도 있다. 그 결과 본서는 송왕조 일대를 다룬 단대사(斷代史)임에도 불구하고 그 지는 일종의 ‘통사(通史)’로서의 성격이 짖다. 이 때문에 남송(南宋)시대의 학자들은 본서의 지가 시대 설정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또한 부서지에 대해서는 經에 부합하지도 않고 무익한 것이라 비판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이러한 서술방식 덕분에 고대 중국의 예악, 제도, 문물 등의 연혁과 변천과정을 통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삼국시대의 역사를 정리한 정사인 《삼국지(三國志)》에 지가 없기 때문에 본서의 지는 삼국시대의 제도와 문물의 이해에 있어서도 불가결한 자료가 된다. 또한 본서의 지에 수록된 진대(晉代)의 예제, 관제, 주군(州郡)에 대한 기술은 훗날 당에서 《진서(晉書)》를 편찬할 때 《진서》의 예지(禮志), 직관지(職官志), 지리지(地理志)에 상당수가 그대로 반영되었다. 그러나 오히려 《송서》 쪽이 더 상세한 부분이 많다. 한편 본서의 부서지는 이전 시대의 정사에서는 보이지 않는 본서만의 창안이다. 현존하는 정사들 가운데 이와 유사한 성격의 지를 수록한 문헌으로는 본서 이후, 등장한 《남제서(南齊書)》 상서지(祥瑞志), 《위서(魏書)》 영징지(靈徵志) 등이 있다.
본서의 제100권에 수록된 저자의 자서는 오흥 심씨 집안의 시조부터 심약 본인에 이르기까지의 세계(世系)와 각 세대별 인물들의 사적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남북조시대 명문 사족가문의 가계와 대한 인식과 가전(家傳)의 기술방식을 파악할 수 있다.
본서는 남조 송 약 60년간의 치세를 다루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분량이 100권으로 후한 200년을 다룬 《후한서(後漢書)》 120권에 버금간다. 이 같은 분량의 방대함으로 인해 널리 읽히지 못했고, 당대(唐代)에 기존의 남조 정사들을 요약한 《남사》가 편찬되면서 본서를 압도하게 되었다.

6. 참고사항


(1) 명언
‧ “그 지(志)가 위진(魏晉)의 것을 모두 수록하고 있으니 (시대의) 설정에 있어서는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반마(班馬)[사마천과 반고]의 역사서술 체제로 따져보면 결점이라 할 수 없다. (다만) 부서지(符瑞志)를 창안한 것으로 말하자면 경(經)에도 맞지 않고 무익하여 불필요하게 덧붙인바가 심하다.[其志兼載魏晉 失於限斷 揆以班馬史體 未足爲疵 至其所創符瑞一志 不經且無益 其贅甚矣]” 《중흥관각서목(中興館閣書目)》
‧ “심약(沈約)이 한(漢), 위(魏) 이래의 것들을 배열함에 가장 상세하다. 당나라 사람들이 이를 취하여 진(晉)의 기록을 보충한 연후에 역대의 고사들을 알고 고찰 할 수 있게 되었다.[至沈約比次漢魏以來 最爲詳悉 唐人取之 以補晉記 然後歷代故實 可得而推]” 섭적(葉適), 《습학기언(習學記言)》
(2) 색인어: 송서(宋書), 심약(沈約), 자서(自序), 송사(宋史), 남제(南齊), 무제(武帝), 영명(永明), 남사(南史)
(3) 참고문헌
‧ 宋書 標點校勘本(中華書局)
‧ 宋書全譯(二十五史全譯, 漢語大詞典出版社)


【양진성】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0.08.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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