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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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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익(趙翼)이 1800년 36권으로 엮은 이 책은 청대(淸代) 3대 역사서의 하나이다. 정사인 22史에 대해 각각의 특징과 문제점을 조목별로 고증하면서 자신의 논평을 달았다. 그 내용은 근대 동양사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2. 저자

(1)성명:조익(趙翼)(1727~1814)
(2)자(字)·별호(別號):자는 운송(雲崧)·운송(耘松)‚ 호는 구북(甌北)
(3)출생지역:중국 강소성(江蘇省) 상주부(常州府) 양호(陽湖)
(4)주요활동과 생애
조익(趙翼)이 생존했던 시기는 옹정(擁正), 건륭(乾隆), 가경제(嘉慶帝)의 치세로 청나라의 극성기에 해당한다. 특히 건륭제 시기는 문화의 극성기로 예수회 선교사들을 통해 서양의 학문·기술이 전래되고, 중국 문화가 유럽에 널리 알려지는 등 국제 교류도 확대되었을 뿐만 아니라, 고증학의 극성기로 이를 배경으로 《사고전서(四庫全書)》가 편찬되고 《명사(明史)》가 완성되는 등 국가적 편찬사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조익은 상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신동(神童)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재명(才名)을 떨쳤다. 1750년 거인(擧人)이 되었고, 1754년 내각중서(內閣中書)를 제수 받고 군기처(軍機處)에 들어갔다. 1761년 진사(進士)에 급제하고 전시(殿試)에서 장원에 내정되었으나‚ 건륭제(乾隆帝)의 뜻으로 3등인 왕걸(王杰)과 석차를 바꾸었다. 한림원(翰林院) 편수(編修)가 되어 《통감집람(通鑑輯覽)》 등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지방관으로 나가 치적을 남겼으며, 청조(淸朝)가 미얀마에 군대를 파병했을 때 여기에 참여하였다. 이후 그는 주로 변경의 지방관으로 임명되었다. 1772년 어머니를 모신다는 이유로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1787년 대만에서 임상문(林爽文)의 난이 발생하자 민절총독(閩浙總督) 이시요(李侍堯)의 막료가 되어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워 천거되었으나‚ 고사하고 안정서원(安定書院)에서 강론과 저술에 전념하였다. 당시 그는 절동(浙東)의 산수를 유람하면서 시(詩)를 지어 원매(袁枚), 장사전(蔣士銓)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였다. 1812년 향년 88세로 죽었다.
《이십이사차기》는 그가 은퇴한 이후 십여 년이 지난 뒤에 세상에 나왔다. 1795년 초고가 완성된 것으로 보이며, 1800년에 증보판이 나왔는데, 여기에는 《명사》 부분이 보충되었으며, 고증학 대가인 전대흔(錢大昕) 서문도 실렸다. 그의 〈소인(小引)〉에 “한가롭게 지내다 보니 마땅하게 할 일이 없어 책을 펼치는 것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다.……다만 역대의 사서(史書)는 그 사실이 분명하고 뜻 또한 깊지 않아 전체를 죽 훑어보는 것이 편하다. 이에 이것들을 취급하는 것을 일과로 삼고 있다. 얻은 바가 있으면 문득 별지(別紙)에다 수시로 적어두었더니, 시일이 오래 쌓이다 보니 마침내 상당한 분량이 되었다.”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그가 평소에 정사(正史)를 읽으며 고증했던 내용을 정리하여 이를 편찬하였음을 알 수 있다.
(5)주요저작:《해여총고(陔餘叢考)》, 《황조무공기성(皇朝武功紀盛)》, 《첨폭잡기(簷曝雜記)》, 《견북시화(甄北詩話)》, 《견북집(甄北集)》 등.

3. 서지사항

《사기(史記)》에서 《명사(明史)》까지 정사(正史)의 문제점을 조목별로 쓴 고증서이다. 차기(箚記)의 ‘차(箚)’는 ‘찰(札)’과 동자(同字)로 통용된다. 찰(札)은 간찰(簡札)로서, 여기에 글을 써서 찬집(簒集)하였던 것을 찰기 즉 차기라고 하였다. 이러한 형식은 송대(宋代)에서는 고이(考異)라고 하였는데 차기는 청대에 들어와서 서명으로 쓰였다.
조익은 22사라고 하였지만 그 내용에는 《구당서(舊唐書)》와 《신당서(新唐書)》, 그리고 《구오대사(舊五代史)》와 《신오대사(新五代史)》를 비교 고찰하였기 때문에 실제적으로는 24개의 정사를 전부 다루었다. 본서는 각 정사의 잘잘못을 조목별로 나누어 상세히 검토하면서 대중들에게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을 소개하고 있다. 한 예로 《후한서(後漢書)》와 《신구당서(新舊唐史)》의 환관(宦官) 부분은 지금 중국 환관을 연구하는 데 필독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4. 내용

본서의 《삼국지(三國志)》 부분을 예로 들면, 그 조목은 〈후한서삼국지서법부동처(後漢書三國志書法不同處)(《후한서》와 《삼국지》 서법(書法)이 같지 않은 곳)〉, 〈삼국지서법(三國志書法)(《삼국지》의 서법)〉, 〈삼국지다회호(三國志多迴護)(《삼국지》에는 말을 돌려 비호하는 것이 많다)〉,……〈삼국지입전번간부동처(三國志立傳繁簡不同處)(《삼국지》에서 열전을 만드는 데에 번잡하고 간략함이 같지 않은 내용)〉, 〈삼국지오처(三國志誤處)(《삼국지》에서 틀린 내용)〉, 〈순욱곽가이전부회처(荀彧郭嘉二傳附會處)(순욱(荀彧)과 곽가(郭嘉)의 두 열전에 부회(附會)한 부분)〉, 〈진수논제갈량(陳壽論諸葛亮)(진수(陳壽)가 제갈량(諸葛亮)을 논하다)〉, 〈배송지삼국지주(裴松之三國志註)(배송지(裵松之)의 《삼국지》 주석)〉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른 부분의 정사 역시 《삼국지》처럼 주요 문제점을 뽑아 서술하고 있다. 다른 고증 역사서와 달리 각각의 논제에 대해 실증을 하고 자신의 논평을 개진하고 있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이는 근대 역사 연구방법과 유사하다.

5. 가치와 영향

일본 동양사학의 창립자인 교토대학의 나이토고난(內藤湖南)에게 큰 영향을 주었으며, 우리나라 동양사학계에서도 이 책을 중시하고 있다.
정사에 대한 정확한 해석은 중국사 연구의 기본 바탕이 되기 때문에 정사에 대한 철저한 고증작업이 역대 끊임없이 이루어져 왔다. 특히 청대에 들어 이러한 작업은 전성기를 맞이하는데, 왕명성(王鳴盛)의 《십칠사상각(十七史商榷)》, 전대흔(錢大昕)의 《이십이사고이(二十二史考異)》, 조익의 《이십이사차기》는 청나라 건륭(乾隆) 가경(嘉慶) 시대 고증사학의 3대 명저라고 칭해지고 있다. 특히 이 책은 《한서(漢書)》의 안사고(顔師古)의 주석에 비견되고 있으며, 이 책 하나로 22사를 섭렵한 효과를 갖는다는 평을 받고 있다.

6. 참고사항

(1)명언
• “강좌 지방의 세족에는 공신이 없었다.[江左世族無功臣]” 〈권12〉
• “북주, 수, 당은 모두 무천에서 나왔다.[周隋唐皆出自武川]” 〈권15〉
• “한 군중에 다섯 황제가 있었다.[一軍中有五帝]” 〈권22〉
(2)색인어:조익(趙翼), 해여총고(陔餘叢考), 차기(箚記), 고증사학 3대 명저
(3)참고문헌
• 二十二史箚記校證(王樹民 校證, 中華書局)
• 國譯漢文大成 권7 續經子史部 제3집(笹川種郞‧公田連太郞 譯幷注)
• 이십이사차기(전5책)(박한제 역, 소명)
【이효재】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0.08.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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