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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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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설문해자(說文解字)》는 《이아(爾雅)》, 《방언(方言)》과 함께 한자 자서(字書)의 기원을 이룬 서적이다. 자서는 한자의 자의(字義) 정보에 중점을 둔 것으로, 자음 정보에 중점을 둔 운서(韻書)와 구별된다. 곧 《설문해자》는 후한(後漢)의 허신(許愼)이 한자 약 9천 자에 대하여 문자의 성립을 설명하고 본의(本義)(문자의 원래 의미)를 구명(究明)한 가장 오래된 자서이다. 본문 14권, 서목(敍目) 1권이다. 줄여서 《설문》이라고 한다. 《설문해자》가 완성된 것은 영원(永元) 12년(100)인데, 그것이 조정에 진상된 것은 건광(建光) 원년(121)이다. 《설문해자》는 한자를 육서(六書)의 원리에 따라 분석하여, 의부(意符)의 구실을 하는 글자를 모두 부수자로 세우고, 그 부수자들을 철학적 원리에 따라 배열하였다.

2. 저자

(1)성명:허신(許愼)(30~124)
(2)자(字)·별호(別號):자(字)는 숙중(叔重)
(3)출생지역:예주(豫州) 여남(汝南) 소릉(召陵)
(4)주요활동과 생애
허신은 후한의 경학자이다. 그의 전(傳)이 《후한서(後漢書)》 〈유림전(儒林傳) 하(下)〉에 있다. 그는 성품이 순독(淳篤)하고, 젊어서부터 경적(經籍)을 두루 공부하여, 마융(馬融)이 늘 그를 추대하고 공경하였다. 당시 사람들이 그를 두고 말하길 “오경에 있어서는 허신과 쌍벽을 이룰 만한 이가 없다.[五經無雙許叔重]”라 하였다. 군(郡)의 공조(功曹)가 되고, 효렴(孝廉)으로 기용되었다. 재천(再遷)하여 효(洨)의 장(長)을 제수(除授)받았다. 집에서 졸(卒)하였다.
처음에 허신은 오경(五經)의 전(傳)과 설(說)의 장부(臧否)가 같지 않음을 보고, 이에 찬술하여 《오경이의(五經異義)》를 만들고, 또 《설문해자》 14편을 지었는데, 모두 세상에 전한다. 허신은 젊었을 때부터 경서에 통효하였으며, 허신보다 나이가 적었지만 뒷날 탁월한 학자로 세상에 이름이 알려진 마융(馬融)(79~166)도 그를 존경하였다고 한다. 허신에 대하여 말한 ‘시인평어’는 “오경무쌍허숙중(五經無雙許叔重)”이라 하였다. 허신은 우선 여남군(汝南郡)의 공조(功曹)가 되고, 이윽고 ‘효렴(孝廉)’으로 등용되었다. 전에 의하면 허신은 두 번째의 전임으로 효현(洨縣)의 장관이 되었고, 그것을 사직한 뒤에 향리에서 죽은 것이 된다. 《후한서》의 전만으로는 허신의 생애를 극히 개략적으로밖에 알 수가 없다. 그런데 허신의 아들 허충(許沖)이, 부친이 만든 《설문해자》를 조정에 헌상하면서 함께 올린 상표문(上表文)이 있다. 《설문해자》가 영원(永元) 12년(100)에 완성된 후 건광(建光) 원년(121), 병상에 있었던 허신은 아들 충을 대리자로 삼아 《설문해자》를 헌상케 하였다. 상표문 속에서 허충은 부친을 두고 ‘고태위남합좨주신(故太尉南閤祭酒愼)’이라 일컬었다. 태위남합좨주(太尉南閤祭酒)는 태위부(太尉府)의 속관(屬官)이다.
몰년(沒年)에 대하여는 《후한서》 〈서남이전(西南夷傳)〉에 “환제(桓帝) 때 야랑군(夜郞郡) 사람 윤진(尹珍)이 스스로 자신은 미개한 지역에 태어나 예의를 모른다고 생각하여, 마침내 여남 사람인 허신과 응봉을 따라 배워 경서와 도위(圖緯)(하도(河圖)와 위서(緯書)로 미래(未來)의 일과 점술(占術)에 관하여 기술(記述)한 책)를 수학하였다. 학업이 이루어지자 향리로 돌아가 아동에게 가르쳤다. 이에 남방 지역에 비로소 유학의 학풍이 있게 되었다.”라는 구절이 있어 환제 치세(147~167) 때까지 살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5)주요저작:《오경이의(五經異義)》, 《회남자주(淮南子注)》

3. 서지사항

허신은 ‘독체(獨體)’의 글자를 ‘문(文)’, ‘합체(合體)’의 글자를 ‘자(字)’라 불렀으므로 이 책의 제목은 곧 ‘문(文)과 자(字)를 해설한다.’는 뜻이 된다. 소전(小篆)을 위주로 하면서 고문(古文)과 주문(籒文)도 함께 수록하여 총 9천 353자를 실었는데, 중문(重文)(異體字)이 1,163자이다. 처음으로 부수 배열법을 창안하여 일부(一部)에서 해부(亥部)에 이르는 540부에 따라 글자들을 안배하였다. 그 부수법을 ‘시일종해(始一終亥)’라고 한다. 각 글자마다 먼저 자의(字義)를 풀이하고 다음으로 육서(六書)의 원리에 의거하여 자형(字形)을 분석하였다. 원본은 없어졌고, 현재는 대서본(大徐本)이라 불리는 서현(徐鉉) 교정본과 소서본(小徐本)이라 불리는 서해(徐鍇)의 《설문해자계전(說文解字系傳)》이 전한다. 대서본은 1963년 중화서국에서 영인하였고, 소서본은 사부총간(四部叢刊)에 들어 있다. 청대에 단옥재(段玉裁)의 《설문해자주(說文解字注)》, 왕균(王筠)의 《설문해자구두(說文解字句讀)》, 주준성(朱駿聲)의 《설문해자통훈정성(說文解字通訓定聲)》 등 탁월한 업적이 차례로 나왔다.

4. 내용

허신은 문자의 세계도 우주의 근원인 ‘一’에서 시작한다고 보아, ‘허서(許敍)’ 즉 허신의 〈설문해자서〉에서 “그 수(首)를 세움에 一을 세워 단(耑)으로 삼는다.[其建首也 立一爲耑]”라고 하였다. 허신은 ‘一’부(部)의 부수자인 ‘一’을, 우주의 처음에 도(道)가 의거해 존립하는 것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설문해자》의 ‘一’은 삼라만상의 근원으로, 거기서부터 천(天)과 지(地)가 나뉘고 만물이 산출된다. 따라서 이 ‘一’을 부수자로 하는 부(部)가 《설문해자》 첫머리에 있는 것은 《강희자전(康熙字典)》식 부수법이 필획수가 최소인 까닭에 ‘一部’로 시작하는 것과는 의미가 다르다. 《설문해자》는 ‘一’을 부수자로 하는 부(部)에 元·天·丕·吏의 네 글자를 수록하였다. 각 글자들의 설해(說解)에는 모두 “종일(从一)”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니, ‘一에 따른다.’라는 뜻이다.
《설문해자》는 540가지 부를 설치하여, 총 9,353글자를 수록하였다. 그 가운데는 ‘水’부의 ‘文四百六十五’, ‘艸’부의 ‘文四百四十五’, ‘木’부의 ‘文四百二十一’이라는 식으로, 4백 글자 이상을 수록한 부도 있으므로, 하나의 부에 수록될 실제 자수는 아주 적다. 540부 가운데 ‘文十’ 이상의 부는 전체의 5분의 1정도 밖에 되지 않고, ‘文二’의 부는 158부, ‘文一’의 부는 아래의 36부이다.
三·凵(감)·
·久·才·乇(탁)·
·克·彔(록)·耑(단)·丏(면)·
·
·易·莧(현)·能·
·燕·率·它(타)·
·四·五·六·七·甲·丙·丁·庚·壬·癸·寅·卯·未·戍·亥
한편 ‘東’이란 글자에 대해 《설문해자》는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動也. 從木. 官溥說, 從日在木中.” 〈6상 66b〉
東 “動이다. 木을 짜임요소로 한다. 관부(官溥)라는 사람의 설에 의하면, 해[日]가 나무[木] 가운데 있는 짜임이다.”
맨 앞의 ‘
’은 소전(小篆)이다. 《설문해자》는 이 서체를 기준으로 삼았다. 다음으로 ‘動이다’는 東의 본의(本義)를 부여한 훈고(訓詁)이다. ‘東’을 ‘動’이라 풀이한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 번째 이유는 ‘東(현대 중국어음 dōng)’과 ‘動(현대 중국어음 dòng)’은 발음이 같거나 혹은 극히 가깝다. 어떤 문자를 음이 같거나 비슷한 글자로 대체하여 풀이하는 방법을 ‘성훈(聲訓)’이라고 한다. 두 번째 이유는 오행설(五行說)이다. 오행설은 木·火·土·金·水의 추이(推移)·순환(循環)을 가지고 세계의 다양한 현상을 판단·예측하는 철학이다. 東의 방위는 木의 요소에 속하며, 계절 가운데 봄에 배당된다. 봄은 만물이 활동을 재개(再開)하여 초목이 싹트는 動의 계절이다. 그래서 東=春=動이라는 훈고가 성립한다.
하지만 갑골문의 ‘東’은 ‘重’과 모양이 비슷하다. 아마도 처음에 ‘동쪽’을 ‘重(현대 중국어음 zhòng)’과 같은 발음으로 불렀기 때문에 重의 모양을 빌려다 모양을 조금 바꾸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설문해자》의 해석과는 달리 東자는 가차자(假借字)였던 셈이다.
《설문해자》에 의하면 주(注)는 “물을 대다[灌也]”의 뜻이라고 한다. 이것이 주(注)의 본의이고, 주석서를 주(注)라고 부른 것은 후대의 일이다. 주자학이 발전한 원(元)·명(明) 시대에는 注보다 註라는 글자를 즐겨 사용하게 되었다. 또 《설문해자》는 “소(疏)는 ‘소통시키다’의 뜻이다.”라고 하였고, “소(疋)는 발인데, ‘기록하다’의 뜻이라고도 한다.[疋 足也 一曰疋 記也]”라고 풀이하였다. 따라서 소(疏)는 ‘소통시키다[疏通]’와 ‘기록하다[疏記]’의 뜻을 겸한다.
《설문해자》는 한자의 조자(助字)와 용자(用字) 원리를 육서(六書)의 원칙에 따라 정리하였다. 본래 《주례(周禮)》 〈지관(地官) 보씨(保氏)〉에 따르면, 귀족의 자제들은 여덟 살에 소학(小學)에 들어가 보씨(保氏)에게 육서(六書)를 배웠다고 하였으나, 이때의 육서는 서체(書體)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주례》에 주석을 붙인 후한 말기의 정현(鄭玄)은 정중(鄭衆)의 주를 인용하여, 상형(象形)·회의(會義)·전주(轉注)·처사(處事)·가차(假借)·해성(諧聲)을 육서라 하였다. 또 《한서》 〈예문지(藝文志)〉의 ‘소학(小學)’에서는, 보씨가 귀족자제들에게 상형(象形)·상사(象事)·상의(象意)·상성(象聲)·전주(轉注)·가차(假借)의 육서를 가르쳤으며, 그것들은 ‘조자(造字)의 근본’이라 하였다.허신의 《설문해자》 〈서(敍)〉도 이것을 인용하였다. 한편 당말(唐末) 오대(五代) 때 서개(徐鍇)는 육서에 대해, 단체(單體) 한자인 ‘문(文)’을 만드는 상형·지사, 복체(複體) 한자인 ‘자(字)’를 만드는 회의·형성, 용자(用字)(글자 활용) 원칙인 전주·가차 등 세 범주로 나누었다.

5. 가치와 영향

《설문해자》 부수법은 철학적 관념에 따른 것이었다. 남조(南朝) 양 무제(梁武帝) 때 태학박사 고야왕(顧野王)이 왕명을 받아, 《설문해자》를 바탕으로 저술하였다. 《설문해자》의 부수에서 11부를 없애고 13부를 증가시켜 총 542부 16,917자를 수록하였다. 각 글자마다 반절(反切)로 음을 달고 고서를 인용하여 풀이하였다. 사부총간(四部叢刊)에 원간본(元刊本)을 영인하여 두었고, 총서집성(叢書集成)에 원본의 잔권(殘卷)을 수록하였다.
《설문해자》의 부수법은 그 뒤 여러 방식으로 개편되었다. 청나라 때 강희제(康熙帝)의 명으로 이루어진 《강희자전》에서는 5만여 글자를 214부수로 분류하고, 부수를 필획의 순으로 늘어놓았다. 대만, 일본과 한국은 대개 이 《강희자전》식 부수법을 따른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그것을 재조정하였다. 1953년의 《신화자전》은 189부를 세웠고, 1986~1993년의 《한어대사전(漢語大詞典)》은 200부를 세웠다. 《강희자전》 부수법은 글자를 빨리 찾기 위해 고안한 것이다.
19세기 초에 단옥재는 한문고전을 종횡으로 인용하여 후한의 허신이 지은 《설문해자》를 풀이하여 《설문해자주(說文解字注)》를 저술하고 직접 간행하였다. 이를 ‘단주(段注)’라고 한다. 《설문해자》나 《설문해자주》는 소전(小篆)의 글자체를 한자의 초형(初形)으로 보고 한자의 짜임과 의미를 탐색한 것이므로 한자의 본의를 잘못 파악한 것이 있다. 갑골학의 권위자 호후선(胡厚宣)(Hú Hòuxuān)은 1951년에 갑골 출토 이후 50년을 경과한 단계를 총괄하면서 “갑골문의 발견과 연구에 의하여 《설문해자》 가운데 적어도 10분의 2, 3이 정정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허신의 이 책 속에는 종교적 미신의 색채와 철학적 주관에 의한 견해들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허신이 숫자와 간지(干支) 글자를 해석한 것은 마치 완벽한 음양오행설과도 같다.……그의 책은 ‘天人之際(하늘과 사람의 관계)를 궁구하고 고금(古今)의 변(變)(변화)에 통하여 일가(一家)의 언(言)을 이룬 저술’이라고는 말할 수 있으나, ‘과학적인 문자학의 저술’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 문자학이 한자의 초형(初形)(초창기 형태)·초의(初義)(초창기의 의미)를 추구하고 또 거기에서부터 자의(字義)(글자의 의미)의 변천과정을 구명(究明)하는 것을 주요한 임무의 하나로 하는 한, 《설문해자》는 이미 문자학의 최전선에 설 수가 없다. 하지만 《설문해자》는 근대 이전의 고전적 사유를 부수법과 성훈 등 여러 고전적 문자학 체계와 방법론 속에 반영하고 있다. 고전적 사유의 체계를 이해하려면 《설문해자》와 《설문해자주》를 공부할 필요가 있다.

6. 참고사항

(1)명언
• “一:이것은 최초의 태극이니, 道는 一에서 세워져, 천지를 조분(造分)하며 만물을 화성(化成)한다. 一에 속하는 모든 것은 一을 따른다. 일은 고문(古文)의 一이다.[一 維初大極 道立於一 造分天地 化成萬物 凡一之屬皆从一 弌 古文一]” 〈1上 1a〉
• “玉:돌로서 아름답고 오덕(五德)이 있는 것이다. 윤택이 있으며 그로써 따스함은 인(仁)의 방도이다. 결이 있어 바깥으로부터 안을 알 수 있는 것은 의(義)의 방도이다. 그 소리가 천천히 앙양(昂揚)되어 전일하여 그로써 멀리 들리는 것은 지(智)의 방도이다. 굽어지지 않고 부러지는 것은 양(勇)의 방도이다. 날카로운 각(角)이 있으면서 뒤틀리지 않는 것은 결(絜)(=潔)의 방도이다. 세 옥이 연결됨에서 형상을 취한다. 곤(丨)은 그것을 꿰뚫음이다. 무릇 옥(玉)의 종류는 모두 옥(玉)에 따른다. 옥은 고문(古文)의 옥(玉)이다.[玉 石之美有五德者 潤澤以溫 仁之方也 鰓理自外可以知中 義之方也 其聲舒揚 專以遠聞 智之方也 不撓而折 勇之方也 銳廉而不忮 絜之方也 象三玉之連 丨其貫也 凡玉之屬皆从玉
古文玉]” 〈1上 19a〉
• “亥:해[荄(풀싹)]이다. 10월에 미미한 양(陽)이 일어나, 성대한 음(陰)과 접한다. 상(二)을 따른다. 상(二)은 고문 上의 글자이다. 한 사람은 남자, 한 사람은 여자이다. 을(乙)을 따른다. 자(子)를 품고서 해해(咳咳)하는[달래는] 형태를 본떴다. 《춘추전》에 말하길 ‘해(亥)는 두 개의 머리에 여섯 개의 몸이 있다.’고 하였다. 무릇 해(亥)에 속하는 것들은 모두 해(亥)를 따른다. 𢁓은 문(古文)의 해(亥)로, 해(亥)는 시(豕)이니, 시(豕)와 같다. 해(亥)로서 자(子)를 낳아, 다시 일(一)로부터 일어난다.[
荄也 十月 微昜起 接盛
从二 二 古文上字也 一人男 一人女也 从乙 象褱子咳咳之形也 春秋傳曰 亥有二首六身 凡亥之屬皆从亥 𢁓 古文亥 亥爲豕 與豕同 亥而生子 復从一起]” 〈14하 44a〉
(2)색인어:설문해자(說文解字), 허신(許愼), 설문해자주(說文解字注), 단옥재(段玉裁), 부수법(部首法), 시일종해(始一從亥), 육의(六義), 성훈(聲訓).
(3)참고문헌
• 說文入門(賴惟勤 監修, 說文會編, 大修館書店)
• 訓讀說文解字注(尾崎雄二郞, 東海大學出版會)
• 설문해자통론(陸宗達 저, 김근 역, 계명대 출판부)
• 한자학 설문해자의 세계(阿辻哲次 저, 심경호 역, 이회문화사)
• 설문해자주 부수자 역해(염정삼, 서울대학교출판부)
【심경호】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0.08.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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