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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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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홍무정운(洪武正韻)》은 명(明) 태조(太祖)의 칙령(勅令)을 받아 악소봉(樂韶鳳), 송렴(宋濂) 등 11명이 편찬하여 홍무(洪武) 8년(1375) 간행한 관운(官韻)이다.

2. 저자

(1) 성명:악소봉(樂韶鳳)(?~?), 송렴(宋濂)(1310~1381), 왕선(王僎)(?~?), 이숙윤(李叔允)(?~?), 주우朱右(1314~1376), 조훈(趙壎)(?~?), 주렴(朱廉)(?~?), 구장(瞿莊)(?~?), 추맹달(鄒孟達)(?~?), 손분(孫蕡)(1334~1389), 답록여권(荅祿與權)(?~?).
(2) 자(字)·별호(別號):악소봉의 자는 순의(舜儀), 송렴의 자는 경렴(景濂), 왕선의 자는 유도(幼度), 주우의 자는 백현(伯賢), 조훈의 자는 백우(伯友), 주렴의 자는 백청(伯淸), 구장의 자는 경부(敬孚), 손분의 자는 중연(仲衍), 답록여권의 자는 도부(道夫)이고 몽골족이다.
(3) 출생지역:저자 11명을 중국의 출신지역에 따라 나누면, 송렴・주우・주렴 3명은 절강(浙江), 왕선・이숙윤・답록여권 3명은 하남(河南), 악소봉은 안휘(安徽), 구장은 강소(江蘇), 조훈은 강서(江西), 손분은 광동(廣東)이고, 추맹달은 출신지역이 알려져 있지 않다.
(4) 주요 활동과 생애
《홍무정운》의 저자들은 주로 홍무 시기에 활동하였으며 《태조실록(太祖實錄)》, 《명사(明史)》 및 송렴의 저작 등에 저자들의 관직 및 활동과 관련된 간략한 기록이 전하고 있다. 이 중 악소봉과 송렴은 대표 저자라고 할 수 있는데, 악소봉은 한림시강학사(翰林侍講學士), 최찬관(催纂官), 국자좨주(國子祭酒) 등을 역임하였고, 송렴은 한림학사(翰林學士) 등을 역임하여 홍무 2년(1369)부터 9년(1376)까지 명의 국가 편찬 사업에 주로 책임자로 참여하였다.
(5) 주요저작:악소봉의 저작은 《석존선사공자악장(釋尊先師孔子樂章)》, 《대명일력(大明日曆)》, 《회란악가(回鑾樂歌)》 등. 송렴의 저작은 많은데, 그의 저작들을 묶어 1999년 절강고적출판사(浙江古籍出版社)에서 《송렴전집(宋濂全集)》이 출판되었다. 홍무 시기에는 칙령에 의해 일련의 편찬 사업이 이루어졌는데, 《홍무정운》 편찬자의 다수는 이 사업에 참여하였다. 왕선과 이숙윤은 《소감록(昭鑑錄)》 등의 편찬에 참여하였고, 주우, 조훈, 주렴은 《원사(元史)》, 《대명일력》 등의 편찬 사업에 참여하였다. 개인 저작으로는 주우의 《백운고(白雲稿)》, 주렴의 《이학찬언(理學纂言)》, 손분의 《통감전편강목(通鑑前編綱目)》, 《효경집선(孝經集善)》, 《이학훈몽(理學訓蒙)》, 《서암집(西庵集)》, 《화도집(和陶集)》 등이 있다.

3. 서지사항

이 책은 홍무 8년의 원각본(原刻本)이 16권 8책으로 간행된 이후 명대에 여러 차례 중간(重刊)되어 여러 판본이 전하고 있다. 대부분의 판본이 76운(韻)으로 되어 있지만, 80운로 되어 있는 판본도 일부 있다. 이 책은 중국의 운서(韻書)이지만 한국에서도 복각(覆刻)되어 간행하였다. 현재 전하는 규장각(奎章閣) 소장본은 영조(英祖) 46년(1770) 홍계희(洪啓禧)의 서(序)를 붙여 16권 5책의 목판본으로 간행한 것이다.

4. 내용

이 책은 평성(平聲), 상성(上聲), 거성(去聲)을 각각 22부(部)로 나누었으며, 입성(入聲)은 10부로 되어 있다. 분운(分韻)은 일반적으로 76운이며, 성모(聲母) 체계는 31류(類)로 구성되어 있다. 평성은 음양(陰陽)으로 나뉘지 않았고, 입성운(入聲韻)은 10부로 독립되어 ‘-p, -t, -k’ 운미(韻尾)가 명확하게 구분되며 ‘-m, -n, -ŋ’ 운미의 양성운(陽聲韻) 10부와 대응하고 있다. 또한 유성 장애음의 무성음화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탁음(濁音)과 청음(淸音)이 구분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근대 북방관화(北方官話)를 반영하는 대표적인 운서인 《중원음운(中原音韻)》(1324)과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편찬 당시의 상황과 “일이중원아음위정(壹以中原雅音爲定)”이라는 서문序文의 기록을 통해 볼 때, 《홍무정운》은 특정한 방언이 아닌 14세기 당시 중원의 표준음에 기반을 두고 있기는 하지만, 또 한편으로 음운체계에서 현대 오어(吳語)의 특징도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어서, 《집운(集韻)》, 《증수호주예부운략(增修互註禮部韻略)》 등 전통적인 운서의 영향 하에서 당시 명초(明初)의 수도인 남경(南京)에서 통용되던 관화(官話) 표준음의 실제 상황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5. 가치와 영향

이 책은 명대(明代) 초기 국가사업으로 편찬되어 중국어의 표준음을 제시한 흠정운서(欽定韻書)로서 당시 관화의 실제 상황을 일정 부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있다. 다만 반영하는 음계(音系)를 비롯한 여러 부분에서 많은 문제점이 있었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오랜 기간 광범위하게 사용되지 못하였다. 이 책은 명대 초기에 명조(明朝)의 권위를 상징하는 운서로서의 위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조선에서 운서 편찬의 모델로 높이 평가되었고 중국한자음 학습에 최고의 권위를 가진 책으로 간주되어 문과고시(文科考試) 때 과시(課試)하기도 하였다. 단종(端宗) 3년(1455) 신숙주(申叔舟) 등이 《홍무정운》의 형식과 내용을 그대로 두고 그 자음(字音)을 훈민정음으로 표기한 《홍무정운역훈(洪武正韻譯訓)》을 간행하였는데, 이 책에서 제시된 정음(正音)은 조선시대에 간행된 운서와 한학서(漢學書)에 중국어 규범음으로 제시되었다. 이처럼 《홍무정운》은 《예부운략(禮部韻略)》, 《고금운회거요(古今韻會擧要)》 등과 함께 조선시대에 가장 애용된 중국운서의 하나이며, 훈민정음으로 중국의 한자음을 표기한 우리나라의 운서와 한학서에 규범이 되었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중원의 표준음으로 옛 운서를 교정하다.[壹以中原雅音爲定]” 〈홍무정운원서 (洪武正韻原序)〉
• “승문원이 아뢰기를, “중국에서 반포한 《홍무정운》은 음의와 자법이 모두 갖추어져 있는데, 이는 본래 고황제(高皇帝)가 천하에서 동일 문자를 쓰게 하기 위하여 창제한 책입니다. 이제 이 책을 간행하고 널리 배포하여, 사자관(寫字官) 등으로 하여금 익히게 함으로써 멋대로 써서 정자와 다른 폐단이 없도록 하여야 합니다.”라고 하니, 이를 따랐다.[承文院啓曰 中朝所頒洪武正韻 音義字法皆備 原係高皇帝同文天下 創制之書也 今宜開刊此書 印出廣布 使寫字官等傳習 俾無任筆失眞之弊 從之]” 〈인조실록(仁祖實錄) 31권〉
• “《홍무정운》이 후인들에게 남긴 계시는 다른 운서들이 갖추지 못한 것이다. 《홍무정운》이 간행된 후 바로 우호적인 이웃 나라에서 오랜 기간 동안 널리 퍼져 전하였는데, 이러한 깊고 큰 국제적인 영향도 다른 운서들은 이루지 못한 것이다.[《洪武正韻》留給後人的啓示是其他韻書不俱備的。《洪武正韻》刊行後卽在友好鄰邦廣泛長期流傳, 如此深遠的國際影響也是其他韻書達不到的。]” 〈洪武正韻硏究(甯忌浮, 上海辭書出版社), 후기(後記)〉
(2) 색인어:홍무정운(洪武正韻), 명(明) 태조(太祖), 흠정운서(欽定韻書), 중원아음(中原雅音), 증수호주예부운략(增修互註禮部韻略), 관화(官話), 홍무정운역훈(洪武正韻譯訓)
(3) 참고문헌
• 中國古代韻書(趙誠, 中華書局)
• 洪武正韻硏究(甯忌浮, 上海辭書出版社)
• 洪武正韻硏究(崔玲愛, 臺灣大學 博士論文, 1975)
• 〈《洪武正韻》與明初官話音系〉(葉寶奎, 《厦門大學學報》 1, 1994)
• 〈洪武正韻의 認識의 時代的 變貌〉(李崇寧, 《金亨奎博士 頌壽紀念論叢》, 1971)

【신용권】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3.10.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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