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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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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역상고성후편(曆象考成後編)》은 두 번째 시헌역법서인 《역상고성(曆象考成)》에서 일・월식 예보의 정확도를 개선하기 위하여 케플러(Johannes Kepler(1571~1630))의 타원궤도를 채용하고 옹정 계묘년(1723)을 역원으로 삼아 태양, 달, 일・월식편을 새로 쓴 세 번째 시헌력법서이다.

2. 저자

(1) 성명:쾨글러(Ignatius Kögler(대진현(戴進賢), 1680~1746)), 페레이라(Andreas Pereira(서무덕(徐懋德), 1690~1743)), 명안도(明安圖(약1692~약1764)) 등.
(2) 자(字)·별호(別號):쾨글러(대진현)의 자는 가빈(嘉賓)이고, 페레이라(서무덕)의 자는 탁현(卓賢)이고, 명안도의 자는 정암(靜庵)이다.
(3) 출생 지역:쾨글러의 출생지는 독일 바이에른주 란츠베르크(Landsberg)이고, 페레이라의 출생지는 포르투갈이고, 명안도의 출생지는 몽고(현 내몽고)이다.
(4) 주요 활동과 생애
쾨글러는 독일 출신 예수회 선교사로, 1696년에 예수회에 들어갔다. 1712~1714년에 바이에른주에 있는 잉골슈타트(Ingolstadt) 대학교에서 수학과 히브리어를 가르쳤으며 1714년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1716년에 중국에 도착하였고 1717년에 북경으로 불려가 흠천감(欽天監)의 치리역법(治理曆法)을 맡았다. 옹정 3년(1725)에 서양인 최초의 흠천감감정(欽天監監正)이 되어 1746년 북경에서 사망하기까지 이어졌다. 옹정 9년(1731)에 예부시랑(禮部侍郎)이 되었다. 예수회에서는 1732년에 중국성구 교무순시원(中國省區敎務巡視員), 1738~1740년에 중국성구 부구장(中國省區副區長), 1741년 후에는 다시 순시원을 맡았다. 1723년에 〈황도총성도(黃道總星圖)〉, 1730년 이후에 《역상고성》의 일・월식 예보의 오차를 해결하기 위한 〈일전표(日躔表)〉와 〈월리표(月離表)〉, 1737년~1742년에 《역상고성후편》을 제작 편찬하였다. 1744년에는 기형무신의(璣衡撫辰儀)를 제작하고 항성을 관측하여 《의상고성(儀象考成)》을 편찬하였다. 자신의 관측 결과를 항상 유럽에 보내어 파리 과학원과 런던 왕립학회의 간행물에 발표하였으며, 후에 할러슈타인(Ferdinand Augustin Haller von Hallerstein(유송령(劉松齡), 1703~1774)) 등에 의해 정리 출판되어 다시 유럽에 소개되었다. 이밖에 주로 대수표(對數表(log표))와 그 용법을 소개한 《책산(策算)》을 저술하였다.
페레이라는 포르투갈 출신 예수회 선교사이다. 1716년에 중국에 도착하여 화남(華南(광동(廣東))과 광서(廣西)를 포함한 주강(珠江) 유역)에서 10여 년 동안 선교 활동을 하였다. 1732~1738년에 예수회 중국성구 구장(中國省區區長)을 맡았다. 옹정 2년(1724)에 북경으로 불려가 흠천감에서 쾨글러를 도왔으며, 옹정 6년(1728)에 흠천감감부(欽天監監副)가 되어 북경에서 사망할 때까지 15년 동안 봉직하였다. 쾨글러와 함께 《역상고성후편》을 편찬하였다.
명안도는 청소년기에 팔기관학(八旗官學)에서 교육을 받았고, 1710년경 흠천감에 들어가 전문적으로 천문역법과 산법을 배웠다. 1712년에 승덕(承德)(현 중국 하북성)의 피서(避暑) 행궁으로 가는 강희제를 생도의 신분으로 수행하여 산법을 배웠으며, 《역상고성》을 편찬할 때 흠천감오관정(欽天監五官正)의 직책으로 관측을 수행하였다. 1730년 이후 쾨글러가 〈일전표〉와 〈월리표〉를 새로 제작했을 때 그 의미를 아는 사람은 쾨글러와 페레이라를 빼고는 오직 명안도뿐이었다고 한다. 《역상고성후편》을 편찬할 때 매각성, 하국종, 쾨글러, 페레이라 등 7명과 함께 오관정의 직책으로 휘편(彙編)을 담당하였다. 《의상고성》 편찬 때는 옛 항성표의 경・위도에 세차(歲差)를 반영하는 방대한 양의 계산을 수행하였다. 강희제 때 〈황여전람도(皇輿全覽圖)〉의 제작을 위한 대지 측량에서 누락되었던 신강(新疆) 지역의 측량 사업이 1756년과 1759년에 다시 시행될 때 참여하였으며 이즈음에 흠천감감정이 되었다. 멱급수(冪級數) 전개식을 연구한 미완의 유고를 자식과 제자가 정리하여 완성한 《할원밀률첩법(割圓密率捷法)》이 전한다.
(5) 주요 저작:쾨글러의 주요 저작은 〈황도총성도〉, 《역상고성후편》, 《의상고성》, 《책산》, 《예감록(睿鑑錄)》이고, 페레이라의 주요 저작은 《역상고성후편》이고, 명안도의 주요 저작은 《역상고성후편》, 《할원밀률첩법》이다.

3. 서지사항

《역상고성후편》의 현존본은 건륭 7년(1742)에 무영전(武英殿)에서 판각한 ‘건륭 7년 간본(刊本)’, 건륭 43년(1778)의 《이조당사고전서회요(摛藻堂四庫全書薈要)》 초본(抄本), 건륭 46년(1781)의 《사고전서》본, 광서(光緖) 32년(1906) 여지서국(勵志書屋) 간본 등 4종이 알려져 있다.
건륭 7년 간본의 권두에는 옹정 8년(1730) 6월 28일에 흠천감감정이 역법의 수리(修理)를 주청한 사실부터 《역상고성후편》을 완성하고 판각하여 건륭제에게 서문을 청하였으나 서문 대신에 편찬 경과를 쓰도록 명한 건륭 7년 6월 2일의 칙지까지 편찬 전말(顚末)이 기록되어 있고, 또 같은 해 4월 12일에 재가받은 편찬자 52명의 명단이 있다. 총리(總理)는 장친왕(莊親王) 윤록(胤祿), 무영전감리(武英殿監理)는 화친왕(和親王) 홍주(弘晝), 휘편은 이부상서(吏部尙書) 고종(顧琮), 형부좌시랑(刑部左侍郞) 장조(張照), 공부우시랑(工部右侍郞) 하국종(何國宗), 홍려시경(鴻臚寺卿) 매각성(梅瑴成), 흠천감감정 진애(進愛), 흠천감감정 대진현, 흠천감감부 서무덕, 흠천감오관정 명안도 등 8명인데, 실질적인 저술자는 끄트머리의 대진현, 서무덕, 명안도이다. 그 뒤에 전체 10권의 목록이 있고, 각 권 앞에 상세 목록이 있다.
《이조당사고전서회요》본의 권두에는 전체 10권의 목록과 건륭 43년 2월에 《사고전서》 편수관이 쓴 서문이 있고, 그 뒤에 건륭 7년 간본의 것과 동일한 편찬 전말 및 편찬자 명단이 있으며, 각 권 앞에 상세 목록이 있다. 제1권을 제10,892권으로 하여 《사고전서회요》 안에서의 권차를 각 권의 첫머리에 기재하였다.
《사고전서》본은 자부(子部) 천문산법류(天文算法類) 추보지속(推步之屬)의 책으로 제792책에 수록되었다. 권두에는 전체 10권의 목록과 건륭 46년 10월에 《사고전서》 편수관이 쓴 서문이 있고, 편찬 전말과 편찬자 명단은 없다. 각 권 앞에 상세 목록이 있다. 《사고전서》본은 건륭 7년 간본에 비해 글자와 그림의 오류가 많다.
조선에서도 이 책을 간행하였다. 서울대학교 규장학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는(奎5205-v.1-8) 조선본 8권8책 목판본 《역상고성》 중에 〈일전표〉와 〈월리표〉가 《역상고성후편》의 내용이다.

4. 내용

《역상고성후편》은 첫 번째 시헌력법서였던 《서양신법역서(西洋新法曆書)》(1631~1635) 이후 100여 년이 지난 시점에 중국에서 처음으로 케플러의 타원 궤도를 채용하여 태양과 달의 운행 모형을 근본적으로 바꾼 세 번째 시헌력법서이다. 《서양신법역서》의 방잡함과 내적 모순을 두 번째 시헌력법서인 《역상고성》(1722)의 편찬으로 해결했는데도 1730년 6월의 일식 계산이 실제와 맞지 않게 되자, 그 이론적 기초인 티코브라헤(Tycho Brahe(1546~1601))의 체계를 버리고 당시 유럽에서 인정받고 있던 케플러의 제1, 제2법칙을 수용한 것이다. 이 책은 아래 표와 같이 태양과 달의 위치 및 일・월식 계산을 위한 이론, 계산법, 표로 구성되었다. 오행성과 항성은 다루지 않아서, 《역상고성》을 그대로 이용하게 하였다.
권차 권명 내용
권1 日躔數理 태양 이론
권2 月離數理 달 이론
권3 交食數理 일・월식 이론
권4 日躔步法, 月離步法 태양과 달 운행 계산법
권5 月食步法 월식 계산법
권6 日食步法 일식 계산법
권7 日躔表 태양 운행 계산용 표
권8~9 月離表 달 운행 계산용 표
권10 交食表 일・월식 운행 계산용 표

1730년 6월의 일식 후, 당초에는 쾨글러가 수년 전에 잉골슈타트 대학의 천문학 교수 그램마티치(N.Grammatici(약 1684~1736))한테서 받은 천문표에 기반하여 케플러의 법칙을 적용하고 옹정 계묘년(1723)을 역원으로 삼아 계산한 〈일전표(日躔表)〉와 〈월리표(月離表)〉를 《역상고성》의 뒤에 부록하는 데에 그쳤다. 그러나 이 표를 이해하는 사람이 극히 드물었다. 이에 1737년부터 태양과 달의 이론편과 계산법편을 상술(詳述)하였다. 그리고 일・월식의 정확한 예보를 위하여 교식 이론, 계산법, 표까지 새로이 저술하여 1742년에 완성한 것이 이 책이다. 《역상고성후편》이라는 명칭은 이 책이 《역상고성》의 연장선 위에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책에 오성편과 항성편이 부재하여 《역상고성》을 함께 사용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두 책이 밀접히 관련된다. 다만 태양과 달 운행 모형이 완전히 달라졌는데도 동질성을 역설한 것은 정치적인 상징성을 위한 것이다.
《역상고성후편》이 《역상고성》과 달라진 주요한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태양과 달의 운행을 이심원(離心圓) 및 여러 개의 주전원(周轉圓)으로 설명하던 데서 타원 궤도로 바꿈.
둘째, 평균운행도수를 본천(本天)상에서 주전원 중심의 운행 각도로 설명하던 데서 지구와 달 또는 지구와 태양을 연결한 선이 쓸고 지나간 타원 궤도의 면적으로 바꾸고 ‘면적도수[(積度)]’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함.
셋째, 평균운행도수와 실제운행도수 간 변환에 케플러 방정식 및 뉴턴(Isaac Newton(1642~1727))의 근사 계산법에 해당하는 기하학적 방법을 사용함.
넷째, 망원경을 이용한 정밀 관측으로 지반경차(地半徑差)와 청몽기차(淸蒙氣差)의 값이 현대 천문학의 수치에 가깝게 조정되고, 이에 따라 태양의 지심거리와 이심률이 상당히 정확해짐.
다섯째, 회귀년의 길이, 황적교각(黃赤交角), 태양과 달의 실제 반경과 지구 반경의 비, 시직경의 크기 등 천문 상수를 뉴턴과 카시니(Dominique Cassini(1625~1712)) 등의 새로운 값으로 바꿈.
여섯째, 달 운행의 보정항에 태양의 운행 속도, 태양과 달 사이 거리. 태양과 황백교점 사이 거리, 태양의 섭동 등에 따른 보정항들을 도입함.
일곱째, 황백교각의 변화를 계산하는 데에 뉴턴, 카시니 등의 성과를 도입함.
여덟째, 실삭망(實朔望)의 계산을 평삭망(平朔望)에 기반하던 데서 태양과 달의 실제운행도수를 가지고 직접 계산하는 것으로 바꿈.
아홉째, 식심(食甚) 시각의 준거를 태양과 달의 실황경(實黃經) 차에서 직선거리로 바꿈.


5. 가치와 영향

《역상고성후편》의 가장 큰 의의는 동아시아 천문 역법에 처음으로 케플러의 제1, 제2법칙을 도입했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뉴턴, 카시니 등의 방법론 및 망원경의 이용으로 천문 상수를 개선함으로써 태양과 달의 위치 계산 및 일・월식 예보의 정확성을 제고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철저히 역산(曆算)의 관점에 입각하여, 본디 태양을 한 초점에 둔 케플러의 타원 궤도를 지구가 한 초점인 것으로 바꾸고, 케플러의 제3법칙이나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 등 역산에 크게 필요치 않은 내용은 전혀 소개하지 않았다.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전반까지 유럽 천문학의 발전을 철저히 중국식 역산의 관점에서 선별하고 변형하여 소기(所期)의 성과를 달성한 것이다. 그 결과로 우주관에 대한 새로운 사상과 관념이 도입되지 못한 것은 아쉬운 점이다.
조선은 영조 21년(1745)에 이 책을 완질로 구해와서 관상감의 업무와 학습에 사용하였다. 철종 11년(1860)에 관상감제조(觀象監提調) 남병길(南秉吉(1820~1869))이 저술한 《시헌기요(時憲紀要)》, 이듬해의 《추보첩례(推步捷例)》, 그 이듬해에 남병철(南秉哲(1817~1863))이 저술한 《추보속해(推步續解)》 등이 당시 조선에서 이 책을 완전히 이해하여 역산에 사용하였음을 보여준다.

6. 참고사항

(1) 천문 상수와 태양 운행 모형
• 황도 경사각이 《역상고성》의 23도 29분 30초에서 23도 29분으로 30초 줄어듦.
• 이심률이 《역상고성》의 양심차(兩心差) 0.0358977의 절반인 0.01794885에서 0.01690000으로 줄어듦.
• 태양의 평균 지심(地心) 거리로 카시니(Dominique Cassini(카서니(卡西尼), 갈서니(噶西尼), 1625~1712))의 값인 지구 반경의 20,626배를 채택하여, 코페르니쿠스의 값인 《역상고성》의 1142배보다 정확해짐.
• 태양 운행 모형이 《역상고성》의 제2주전원[(均輪)] 모형에서 타원 모형으로 바뀜.
• 역원이 《역상고성》의 강희 갑자년(1684)에서 옹정 계묘년(1723)으로 바뀜.
• 회귀년의 길이[(歲實)]가 《역상고성》의 365.2421875일에서 뉴턴의 값인 365.24233442일로 바뀜.
(2) 색인어:역상고성후편(曆象考成後編), 시헌력(時憲曆), 천문역법(天文曆法), 건륭제(乾隆帝), 타원궤도, 케플러Johannes Kepler(각백이(刻白爾), 개보륵(開普勒)), 카시니Dominique Cassini(카서니(卡西尼), 갈서니(噶西尼)), 쾨글러(Ignatius Kögler(대진현(戴進賢))), 페레이라(Andreas Pereira(서무덕(徐懋德))), 명안도(明安圖)
(3) 참고문헌
• 《中國科學技術史 天文學卷》(陳美東, 科學出版社, 2003, 708~718쪽)
• 《中國數學史大系》 第7卷(吳文俊 主編, 北京師範大學出版社, 2000, 456~466쪽)
• 〈역상고성후편〉(전용훈, 《조선시대 서학 관련 자료 집성 및 번역・해제 2》, 경인문화사, 2020)
• 〈曆象考成後編提要〉(石云里, 《中國科學技術典籍通彙 天文卷》 第7冊, 下南敎育出版社, 1994)
• 《시헌력의 완성, 역상고성후편에 기술된 태양의 운동》(강민정・김슬기・서원모・이면우・최승언, 교육과학사, 2023)

【강민정】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3.10.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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