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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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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육선공주의(陸宣公奏議)》는 당(唐)나라 육지(陸贄)가 덕종(德宗) 시기 한림학사(翰林學士)와 재상 을 지내며 기초했던 제고(制誥), 주초(奏草) 그리고 주의(奏議)를 모아놓은 책이다. 《육선공한원집(陸宣公翰苑集)》, 《당육선공집(唐陸宣公集)》이라고도 부른다.

2. 저자

(1) 성명:육지(陸贄)(754~805)
(2) 자(字)·별호(別號):육지의 자는 경여(敬輿), 시호가 선(宣)으로 육선공(陸宣公)이라 칭한다.
(3) 출생지역:소주(蘇州) 가흥(嘉興)(현 중국 절강성(浙江省))
(4) 주요활동과 생애
대종(代宗) 대력(大曆) 6년(771) 18세 때 진사과(進士科)에 급제하여, 화주정현위(華州鄭縣尉)에 임명되었고, 이후 위남주부(渭南主簿), 감찰어사(監察御史), 한림학사(翰林學士), 사부원외랑(祠部員外郞), 고공낭중(考功郎中), 간의대부(諫議大夫), 중서사인(中書舍人) 등을 지냈다. 덕종(德宗) 건중(建中) 4년(783) 주차(朱泚)의 반란군이 장안까지 진격하여 덕종이 봉천(奉天)으로 피신할 때 황제를 수행하였다. 섬서의 양주(洋州)를 지나다가 황제 행렬에서 잠시 이탈되었을 때 그를 찾아오는 자에게 상금을 약속할 정도로 덕종의 총애와 신임을 받았다. 마침내 합류한 육지는 봉천에서 조서(詔書)의 기초를 맡았다. 정원(貞元) 7년(791) 병부시랑(兵部侍郎), 정원 8년(792) 중서시랑동평장사(中書侍郎同平章事)로서 재상의 직임을 맡아 폐정을 지적하며 늘 직언했고 민생안정에 힘썼다. 정원 10년(794) 호부시랑 배연령(裴延齡)의 모함으로 인해 태자빈객(太子賓客)으로 물러났다. 이듬해 충주별가(忠州別駕)로 좌천되어 그곳에서 10년간 지내며 외출도 하지 않고 저술활동도 삼갔다. 충주는 현재의 중경시(重慶市)로서 매우 덥고 열악한 환경에 질병마저 심한 곳이라 육지는 전해 내려오던 처방전들을 편집한 《육씨집헌방(陸氏集驗方)》 50권을 써서 백성들의 질병치료에 도움이 되도록 했다. 영정(永貞) 원년(805) 순종이 즉위하여 그를 등용하려 했지만 이미 사망한 뒤였다. 병부상서(兵部尙書)에 추증되었다.
(5) 주요저작:《육씨집험방(陸氏集驗方)》 등, 《전당시(全唐詩)》에 그의 시가 전해지고 있다.

3. 서지사항

제고(制誥) 10권, 주초(奏草) 6권 또는 7권, 중서주의(中書奏議) 6권 또는 7권으로 구성되어 있고, 별집(別集) 15권도 있었는데, 별집은 산일되었다. 주초와 주의로 구성되어 《육선공주의》라 했고, 제고를 더하여 《육선공한원집》, 《당육선공집》, 《한원집》, 《육선공전집(陸宣公全集)》 등으로 칭하기도 했다. 권수(卷數)는 판본에 따라 다르고, 제고·주초·주의의 작성 시기도 다르다. 제고 83편은 정원 연간 지은 것이고, 주초 32편은 재상에 임명되기 전에 지은 것이며, 중서주의 12편은 재상직에 있을 당시의 것이다.
주석본(註釋本)으로서 남송초(南宋初) 낭엽(郞曄)의 《주육선공주의(註陸宣公奏議)》 15권, 일본 관정(寬政) 2년(1790) 미장번(尾張藩) 사람 석천안정(石川安貞)의 《육선공전집주(陸宣公全集註)》 24권이 있다. 《사부총간(四部叢刊)》에는 해함분루장(海涵芬樓藏) 송간본(宋刊本) 영인본을 수록하였다. 청대 장패방(張佩芳)의 《육선공한원집주(陸宣公翰苑集注)》 24권이 있다. 《중국고적선본서목(中國古籍善本書目)》 저록에 근거하면 원(元)나라 지정(至正) 14년(1354) 취암정사간본(翠岩精舍刊本) 15권이 있고, 명(明)나라 홍치(弘治) 7년(1494)의 15권, 정덕(正德) 3년(1508)의 16권, 가정(嘉靖) 왕씨간본(汪氏刊本) 15권 등이 있다. 1960년 원나라 지정 연간의 간본에 기초하여 청말 유철랭(劉鐵冷)이 이를 보정했던 《평주육선공집(評註陸宣公集)》 15권을 대만중화서국(臺灣中華書局)에서 영인했고, 1977년 일본 급고서원(汲古書院)에서 석천안정의 역주본을 영인하여 《화각본한적문집(和刻本漢籍文集)》에 수록하였다.

4. 내용

당나라 중기 덕종조의 정치·경제 전반에 관한 중요한 사료이다. 찬자가 대력(大曆) 14년(779) 덕종의 즉위와 함께 한림학사가 되었고, 정원 8년(792) 4월부터 10년(794) 11월까지 재상을 지내면서 작성한 제고, 주초, 주의를 모아놓은 것이므로 덕종시기 통치와 관련한 내용을 광범위하게 포함하고 있다. 이 시기의 재정, 사회, 군사정황, 번진할거(藩鎭割據) 등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회흘(回纥), 토번(吐蕃)과의 관계도 서술되어 있어 당시의 대외관계를 살펴보는 데 참고할 만한 자료이다.

5. 가치와 영향

덕종 시기 양세법(兩稅法)이 시행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제개혁을 논했던 상주문 〈균절부세휼백성육조(均節賦稅恤百姓六條)〉는 양세법 이해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료이다. 육지의 상주가 반드시 전부 덕종에게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지만 시정에 대한 직언과 설법에서 육지의 정치에 대한 강한 책임감과 정열이 독자에게 감명을 준다. 소위 명신(名臣)의 주의(奏議)로서, 또한 치국을 논하는 자에게는 일종의 귀감으로써 높이 평가되었다. 본서에서 육지는 사륙병려체(四六騈儷體)의 문장을 사용했는데, 병려체를 수록하지 않는 《신당서(新唐書)》에도 육지의 문장을 10여 편 채록하고 있어 그 가치를 알 수 있다. 사마광(司馬光)의 《자치통감(資治通鑑)》은 주소(奏疏) 39편을 채록하였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사람이 하는 일이 이치에 맞는데 천명이 혼란을 내리는 경우는 아직 없었다. 사람이 하는 일이 혼란스러운데 천명이 평안을 내리는 경우 역시 아직 없었다.[人事理而天命降亂者 未之有也 人事亂而天命降康者 亦未之有也]” 〈주초(奏草) 2 논서천행지유장(論敍遷幸之由狀)〉
• “사람의 재능과 행실은 예로부터 완전함을 갖추기가 드물어 진실로 장점이 있다면 반드시 단점도 있다. 만약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보충하면 천하에 쓰이지 못할 사람이 없지만, 단점을 따져서 장점을 버리면 천하에 버리지 않을 선비가 없다.[人之才行 自昔罕全 苟有所長 必有所短 若錄長補短 則天下無不用之人 責短舍長 則天下無不棄之士]” 〈중서주의(中書奏議) 1 청허대성장관거천속리장(請許臺省長官舉薦屬吏狀)〉
• “일이 성공한 것이라면 곧바로 옳다고 말하지 말고 반드시 그 성공한 이유를 찾아야 하며, 일이 실패한 것이라면 곧바로 옳지 않다고 말하지 말고 반드시 그 실패한 이치를 찾아야 한다.[言事之得者 勿即謂是 必原其所得之由 言事之失者 勿即謂非 必窮其所失之理]” 〈중서주의(中書奏議) 1 청허대성장관거천속리장(請許臺省長官舉薦屬吏狀)〉
(2) 색인어:육선공주의(陸宣公奏議), 육선공한원집(陸宣公翰苑集), 당육선공집(唐陸宣公集), 육지(陸贄), 덕종(德宗), 제고(制誥), 주초(奏草), 주의(奏議)
(3) 참고문헌
• 조선시대의 사상과 문화(고혜령 등, 집문당)
• 陸贄評論(王素, 南京大學出版社)
• 〈信息與權力從《陸宣公奏議》看唐后期皇帝、宰相與翰林學士的政治角色〉(葉煒, 中國史學會, 2014)
• 〈潘仁《唐丞相陸宣公奏議纂註》刊行考〉(谷口明夫, 《中国中世文學研究》 32, 1997)
• 〈朝鲜王朝正祖與《陸宣公奏議》〉(張光宇, 《文學遺産》 5, 2015)

【김호】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3.10.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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