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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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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송(宋)‧요(遼)‧금(金)‧원(元) 4대의 역사를 강목체(綱目體)로 서술한 책으로, 원명(原名)은 ≪증수부주자치통감절요속편(增修附註資治通鑑節要續編)≫이다. 명(明)나라 선종(宣宗) 1432년(선덕(宣德) 7) 경에 유염(劉剡)이 편집(編輯)하고 장광계(張光啓)가 정정(訂正)한 것을 유문수(劉文壽)가 간행하였는데, 이것을 조선에서 간행한 것이다. 본서는 전 30권 15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희(朱熹)의 정통론에 기초하여 역대 왕위의 정삭(正朔)과 윤위(閏位)를 구분하고, 중국 4대 왕조를 정통(正統)과 비정통(非正統)으로 구분하여 포폄을 가하였다.

2. 편자

(1) 성명:유염(劉剡)(?~?)
(2) 자(字)·별호(別號):자는 용장(用章), 별호는 응강(應康)
(3) 출생지역:건녕부(乾寧府) 건양현(建陽縣)(현 중국 복건성(福建省) 건양시(建陽市))
(4) 주요활동과 생애
유염은 주희의 고향인 건양(建陽)에서 대를 이어 서방(書房)을 운영해온 집안 출신이다. 그는 1435년에 주희의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에 ≪발명(發明)≫‧≪고이(考異)≫ 등을 혼합하여 편집하였는데, 이 책은 그의 족형(族兄)인 유관(劉寬)에 의해 간행되었다. 또한 그의 숙조(叔祖)인 유문금(劉錦文)은 1337년에 예사의(倪士毅)가 집석(輯釋)한 ≪사서집석(四書集釋)≫의 초고를 간행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주희의 학문을 계승한 학자로 평가받는 송오(松塢) 왕봉(王逢)의 문인으로, 단순히 간행할 책을 교정하거나 편집하는 일에만 종사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명나라 초기에 주희의 고향인 신안(新安) 지역을 무대로 활동한 학자들에 의해 주희의 학문을 계승한 저술들이 건양 지역에서 간행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먼저 유염은 조선에서 초학 교재로 널리 읽힌 ≪상설고문진보대전(詳說古文眞寶大全)≫을 편찬하였다. 이 책의 ≪전집(前集)≫은 원(元)나라의 황견(黃堅)이 편찬한 ≪제유전해고문진보전집(諸儒箋解古文眞寶前集)≫을 교정해 편찬한 것이고, ≪후집(後集)≫은 황견이 편찬한 ≪제유전해고문진보후집(諸儒箋解古文眞寶後集)≫에 수록된 산문 30편과 원의 진력(陳櫟)이 편찬한 ≪비점백편고문(批點百篇古文)≫에 수록된 산문 100편을 합하여 편찬한 것이다. 이 책은 1437년을 전후로 하여 건양의 전문 출판업자인 첨종예(詹宗睿)에 의해 간행되었다.
이어 유염은 유리(劉履)의 ≪선시보주(選詩補註)≫ 14권과 호병문(胡炳文)의 ≪감흥시통(感興詩通)≫을 합편하여 ≪선시보주(選詩補註)≫ 15권을 편찬하였다. 유리의 ≪선시보주≫ 14권은 ≪선시보주≫ 8권, ≪선시보유(選詩補遺)≫ 2권, ≪선시속편(選詩續編)≫ 4권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유염은 ≪선시속편≫ 권4에 수록된 주희의 〈감흥시(感興詩)〉 20수를 별도로 떼어내고, 이를 김덕현(金德炫)이 교정한 호병문의 ≪감흥시통≫과 합편하여 ≪선시속편선시속편≫ 권5를 만들었다. 그가 편찬한 ≪선시보주(選詩補註)≫ 15권은 1437년에 첨종예에 의해 ≪풍아익(風雅翼)≫이란 이름으로 간행되었다.
또한 유염은 김덕현이 입수해 교정한 예사의(倪士毅)의 ≪중정사서집석(重訂四書輯釋)≫에 김이상(金履祥)의 ≪소의(疏義)≫‧≪지의(指義)≫, 주공천(朱公遷)의 ≪통지(通旨)≫‧≪약설(約說)≫, 정복심(程復心)의 ≪장도(章圖)≫, 사백선(史伯璿)의 ≪관규(管窺)≫, 왕원선(王元善)의 ≪통고(通攷)≫ 등을 합편하여 ≪사서통의(四書通義)≫를 편찬하였다. 이 책은 첨종예에 의해 ≪사서장도중정집석통의대성(四書章圖重訂輯釋通義大成)≫이란 이름으로 간행되었다.
그리고 유염은 1428년에 왕봉이 편찬한 ≪자치통감석의(資治通鑑釋義)≫를 증교(增校)하여 ≪소미가숙점교부음자치통감절요(少微家塾點校附音資治通鑑節要)≫를 편찬하였다. 이어 그는 증선지(曾先之)의 ≪십팔사략(十八史略)≫을 개정(改訂)하여 ≪입재선생표제해주음석십팔사략(立齋先生標題解註音釋十八史略)≫을 편찬하였는데, 이 책은 1430년에 우숙재(虞叔載)에 의해 ≪비점구두표제석문십팔사략(批點句讀標題釋文十八史略)≫이란 이름으로 간행되었다.
(5) 주요저작
유염이 편찬한 책으로는 ≪상설고문진보대전(詳說古文眞寶大全)≫, ≪선시보주(選詩補註)≫, ≪사서장도중정집석통의대성(四書章圖重訂輯釋通義大成)≫, ≪소미가숙점교부음자치통감절요(少微家塾點校附音資治通鑑節要)≫, ≪소미가숙점교부음자치통감절요(少微家塾點校附音資治通鑑節要)≫, ≪비점구두표제석문십팔사략(批點句讀標題釋文十八史略)≫ 등이 있다.

3. 서지사항

본서는 머리에 1429년(선덕(宣德) 4)에 장광계(張光啓)가 쓴 서문이 붙어 있으나, 본서의 끝에 1432년(선덕 7)에 “선덕 용집 임자 맹추 길일 후학 유염 배서[宣德龍集壬子孟秋吉日後學劉剡拜書]”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선덕(宣德) 임자년(壬子年)인 1432년에 간행된 것으로 생각된다. 본서는 전 30권 15책으로 이루어졌으며, 각 권은 시대별로 왕조의 역사를 묶어 통시적 순서로 편찬하였다. 내용은 연월일(年月日)에 따라 서술되어 있고, 대자(大字)의 본문(本文)에 소자(小字)의 주(註)가 쌍행(雙行)으로 달려 있다. 가운데의 빈칸에는 왕명(王名)이 기록되어 있고, 판심(版心)은 ‘감속(鑑續)’으로 되어 있다.

4. 내용

본서는 중국 송(宋)‧요(遼)‧금(金)‧원(元) 4대의 역사서에 실려 있는 군신(君臣)의 행사(行事)와 공적(功績), 세(歲)‧월(月)‧일(日)‧시(時)의 선후(先後) 등을 정밀하게 고증하여 핵심 사건을 중심으로 요약해놓았다. 본서에는 국가의 흥망(興亡), 세상의 치란(治亂), 제왕과 장상의 언행과 정치의 득실(得失), 후비와 세자의 입폐(立廢)의 원류(源流), 보신(輔臣)과 현사(賢士)의 용사(用舍)와 출처(出處), 토지와 제도의 연혁과 재상(災祥) 등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시사(時事)에 절실한 장소(章疏)들과 민이(民彝)와 세교(世敎)에 관한 내용을 기록해놓아 참고하도록 하였다.
본서는 모두 30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1~11에는 960년(송(宋) 건륭(乾隆) 1)에서 1127년(송 정강(靖康) 2)에 이르는 167년의 역사가 송기(宋紀) 및 부록(附錄)에 요(遼)‧금(金)‧서요(西遼)라는 제목으로 기록되어 있고, 권12~26에는 1127년(남송(南宋) 건염(建炎) 1)에서 1279년(남송 상흥(祥興) 2)에 이르는 152년의 역사가 남송기(南宋紀) 및 부록(附錄)에 금(金)‧서요(西遼)‧하(夏)‧원(元)이라는 제목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권27~30에는 1279년(원(元) 지원(至元) 16)에서 1367년(원 지정(至正) 27)에 이르는 88년의 역사가 원기(元紀)라는 제목으로 기록되어 있다.
유염은 본서를 편찬하면서 주희(朱熹)가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에서 보여준 정통론을 곳곳에서 반영하였다. 그 예로 그는 요(遼), 금(金), 서요(西遼), 하(夏), 통일 이전까지의 원(元)의 역사를 송기(宋紀)와 남송기(南宋紀)에 부속시켜 놓음으로써 송(宋)과 남송(南宋), 통일 이후의 원(元)을 정통으로 여기는 역사관을 보여준 것을 들 수 있다. 이와 같은 그의 정통론은 그가 1428년에 ≪소미가숙점교부음자치통감절요≫를 편찬하면서 주희의 정통론에 기초하여 정통을 계승한 왕조나 인물에 대해 칭상하고, 비정통인 왕조와 그 인물에 대해서는 폄훼하는 것으로 일관한 것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5. 가치와 영향

본서는 조선시대에 ≪송감(宋鑑)≫이라는 이름으로 간행되어 널리 읽혔다. 본서는 1452년(문종 2)에 목판으로 ≪신간부주자치통감절요속편(新刊附註資治通鑑節要續編)≫라는 서명(書名)에 ≪송감(宋鑑)≫이라는 표제(表題)를 붙여 30권 14책(충남대도서관에는 소장)이 간행되었다. 또한 본서는 중종(中宗) 연간(1506~1544)에 초주갑인자(初鑄甲寅字)로 간행된 것(국립중앙도서관 소장)을 시작으로, 무신자(戊申字)(고려대, 연세대도서관 소장) 계유자(癸酉字)(고려대도서관 소장) 등의 금속활자, 그리고 목활자(木活字)(경기대도서관 소장)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간행되었다. 또한 조선왕조실록에는 1431년(세종 13) 1월 12일에 경연에서 ≪송감(宋鑑)≫을 읽은 것을 시작으로 1779년(정조 3) 12월 5일에 이르기까지 역대 왕들이 경연에서 본서를 강독한 기록이 보인다.
위와 같이 조선시대에 본서가 널리 읽히게 된 배경에는, 조정에서 청(淸)나라의 중국지배를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대명의리론(對明義理論)과 관련이 있다. 이는 화이론적 세계관에 기초해 역사에서 정통(正統)과 윤위(閏位)를 구별하여 정통(正統)에만 정당함을 부여하는 주희의 정통사관에서 나온 것으로, 조선의 학자들은 본서가 주희의 정통사관의 핵심 내용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 예로 이만도(李晩燾)(1842~1910)의 문집인 ≪향산집(響山集)≫ 권7에 수록된 〈송감쇄론(宋鑑瑣論)〉을 들 수 있다. 그는 이곳에 문과에 급제한 뒤 옥당에 재직하면서 본서를 읽고, 송대의 주요 역사적 사건, 특히 의리적(義理的) 포폄(褒貶)이 요구되는 부분에 대한 논설들을 모아놓았다. 따라서 본서는 유염이 편찬한 ≪소미가숙점교부음자치통감절요≫와 함께 청의 중국지배를 정당화하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제기된 대명의리론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이 책은 성리의 오묘함을 발명한 것이 해와 달처럼 밝아 스스로 편리하게 읽도록 한 것이다.[此書發明性理之奧 昭如日星 得以自便讀.]”〈선시속편발(選詩續編跋)〉
• “공자‧증자‧자사‧맹자 등 1성 3현의 ≪사서(四書)≫는 주자에 이른 이후에야 환하게 세상에 밝혀졌다.[孔曾思孟 一聖三賢四書 至朱子而後 洞然燦明於世]”〈중정집석원류후지(重訂輯釋源流後誌)〉
• “이 책은 주희의 ≪강목(綱目)≫에 따라 소열황제(昭烈皇帝)가 한(漢)의 정통을 이은 것으로 하였다. 그러므로 공명(孔明)이 흥사(興師)한 것은 ‘벌위(伐魏)’라고 고쳐 쓰고 위병(魏兵)이 범경(犯境)한 것은 ‘입구(入寇)’라고 고쳐 쓴 연후에, 명분이 바르고 언어가 순조로우며 정위(正僞)의 분간이 절로 분명하게 되었다.[今依朱子綱目 以昭烈紹漢之統 故於孔明興師 則改書伐魏 而魏兵犯境 則改書入寇然後 名正言順 而正僞之辨 自明矣]”≪소미가숙점교부음자치통감절요(少微家塾點校附音資治通鑑節要)≫
(2) 색인어:유염(劉剡), 증수부주자치통감절요속편(增修附註資治通鑑節要續編), 소미가숙점교부음자치통감절요(少微家塾點校附音資治通鑑節要), 정통사관(正統史觀), 대명의리론(對明義理論)
(3) 참고문헌
• 新刊附註資治通鑑節要續編(목판본, 충남대 도서관)
• 增修附註資治通鑑節要續編(초주갑인자본, 국립중앙도서관)
• 增修附註資治通鑑節要續編(무신자본, 고려대도서관)
• 고문진보 연구(정재철, 문예원)
• 〈17세기 후반 정통론의 강화와 ≪자치통감절요≫의 보급(허태용, ≪한국사학사학보≫ 2, 2000)
• 〈중국도서의 수입과 학문적 수용 -명초 건양의 서림학자 劉剡의 편찬서를 중심으로〉(정재철, ≪동방한문학≫ 66, 2016)
【정재철】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0.08.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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