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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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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열국지(列國志)》는 중국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를 배경으로 한 중국 역사연의류(歷史演義類) 통속소설이다. 특히 송원대(宋元代)에 유행하였던 화본소설(話本小說)을 토대로 명대(明代)에 여소어(余邵魚)가 《춘추열국지전(春秋列國志傳)》을 꾸몄고, 또 명말에는 풍몽룡(馮夢龍)이 이를 바탕으로 다시 《신열국지(新列國志)》를 편찬하였다. 그 후 청대(淸代)에 이르러 채원방(蔡元放)이 약간의 수정과 첨삭을 가하여 다시 《동주열국지(東周列國志)》를 만들어냈다. 보통 《동주열국지》를 축약하여 《열국지》라 부르기도 한다.

2. 저자

(1) 성명:《춘추열국지전》의 편찬자는 여소어(余邵魚)(미상(未詳), 약 1566년 전후), 《신열국지》의 편찬자는 풍몽룡(馮夢龍)(1574~1646), 《동주열국지》의 편찬자는 채원방(蔡元放)(미상(未詳), 청초의 저명한 문학가).
(2) 자(字)·별호(別號):여소어의 자는 외재(畏齊). 풍몽룡의 자는 유룡(猶龍), 이유(耳猶), 자유(子猶), 호는 향월거고산인(香月居顧散人), 고곡산인(顧曲散人), 용자유(龍子猶), 오하사노(吳下詞奴), 고소사노(姑蘇詞奴), 전전거사(箋箋居士), 강남첨첨외사씨(江南詹詹外史氏), 상보(翔甫), 무원야사씨(茂苑野史氏), 묵감재(墨轗齋) 등 다수. 채원방은 본명이 채오(蔡奡)이고 자가 원방(元放)이다. 호는 야운주인(野雲主人), 칠도몽부(七都夢夫).
(3) 출생지역:여소어는 복건성(福建省) 건양현(建陽縣), 풍몽룡은 강소성(江蘇省) 소주(蘇州), 채원방은 강녕(江寧)(현 강소성(江蘇省) 남경(南京)).
(4) 주요활동과 생애
여소어는 명대 중엽 가정(嘉靖) 연간(1522~1566)과 융경(隆慶) 연간(1567~1572)에 활동했던 문학가이며 또 당시 저명한 출판가인 여상두(余象斗)의 숙부이다. 그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다. 대략 1566년 전후에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풍몽룡은 천성이 호탕하고 글재주가 뛰어나 일찍부터 청루주점(靑樓酒店)을 드나들며 기녀와 풍류를 즐기며 염문을 뿌리기도 하였다. 풍몽룡 삼형제 가운데 형 몽계(夢桂)는 그림에 능하였고, 동생 몽웅(夢熊)은 시문에 능해 ‘오하삼몽(吳下三夢)’으로 널리 알려졌다. 한때는 명대의 문인 이탁오(李卓吾)의 문학진화론 학설에 크게 심취되기도 하였다. 그러한 연유에서 그는 민간문학과 소설의 가치에 대해 높게 평가하는 문학사관을 가지게 되었다. 또 그는 과거에 연이어 낙방하다가 숭정(崇禎) 3년(1630)에야 겨우 공생(貢生)이 되었다. 벼슬은 숭정(崇禎) 연간(1628~1644)에 단도훈도(丹徒訓導)를 지냈고 말년에는 복건성에서 수녕지현(壽寧知縣)을 지냈다. 명나라 부흥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명나라가 망하자 순사(殉死)하였다고 전해진다.(청나라 군대에 살해되었다는 설도 있다.)
채원방은 청나라 건륭(乾隆) 연간(1736~1795)을 전후해 남경(南京)에서 민간문학가로 활동한 문인이다. 그는 《동주열국지》를 간행한 것 외에도 《수호후전(水滸後傳)》에 평어를 단 인물이다.
(5) 주요저작:여소어의 주요 저작으로는 《춘추열국지전》이 있으며 기타 저작과 문단 활동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풍몽룡의 저작으로는 경사류(經史類) 9종, 단편화본류(短篇話本類) 3종, 장편연의류(長篇演義類) 3종, 필기소설류(筆記小說類) 6종, 필기류(筆記類) 19종, 산곡(散曲) 등 5종, 민가류(民歌類) 4종, 기타 6종 등이 있다. 전 분야에 가히 만능작가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작품이 다양하다. 대표작에 민가가요집 《괘지아(掛枝兒)》와 《산가(山歌)》가 있고, 희곡으로는 《쌍웅기(雙雄記)》와 《만사족(萬事足)》이 있다. 또 단편소설집으로 《유세명언(喩世明言)》과 《경세통언(警世通言)》 및 《성세항언(醒世恒言)》 등이 있으며, 장편소설로는 《증보삼수평요전(增補三遂平妖傳)》과 《신열국지》 및 《정사유략(情史類略)》 등을 개편하였다. 그 외의 작품으로 《소부(笑府)》, 《고금담개(古今譚槪)》, 《지낭(智囊)》, 《묵감재정본전기(墨轗齋定本傳奇)》 등이 다수 있다. 채원방은 풍몽룡의 108회본 《신열국지》를 골격은 그대로 둔 채 오류를 수정하고 자신이 쓴 서문(序文)과 독법(讀法)을 맨 앞에 삽입하였으며 비주(批注) 형식을 띤 평어(評語)를 달아 편찬하였다. 이 책이 나온 후 풍몽룡의 《신열국지》는 자취를 감췄다. 그 외 알려진 저작은 보이지 않는다.

3. 서지사항

《열국지》는 본래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을 저본으로 《국어(國語)》, 《전국책(戰國策)》, 《오월춘추(吳越春秋)》, 《사기(史記)》, 《자치통감(資治通鑑)》 등의 문헌을 참고로 만들어진 책이다. 특히 여소어는 송원대 화본소설인 《칠국춘추평화(七國春秋平話)》와 《진병육국평화(秦幷六國平話)》를 근거로 《춘추열국지전》을 만들었는데 현존하는 판본은 만력(萬曆) 34년(1606)에 간행된 8권본인 《신간경본춘추오패칠웅전상열국지(新刊京本春秋五霸七雄全象列國志)》와 만력(萬曆) 43년(1615)에 간행된 12권본인 《신준진미공선생비평춘추열국지(新䥴陳眉公先生批評春秋列國志)》 2종이 있다. 《춘추열국지전》은 당시 저명한 출판가인 여상두가 출판한 것이다. 또 명대 말기에는 풍몽룡이 이를 바탕으로 다시 108회 80만 자의 방대한 《신열국지》(묵감재신편(墨憨齋新編)이라 적혀있고 본문은 10행 22자로 되어 있다. 이른 판본은 1643년 개편본이 있다.)를 편찬하였다. 그 후 청대에 이르러서 채원방이 《신열국지》의 바탕에 약간의 수정과 첨삭을 가하여 《동주열국지》(23권 100회본으로 12행 26자이다. 권수에 채원방의 서문이 있고 출간연도는 1736년이다.)를 만들어냈다. 청대(1700년대)에 채원방의 《동주열국지》가 출간된 후에는 가장 보편적인 통용본으로 부각되어 광범위하게 보급되었다.

4. 내용

여소어의 《춘추열국지전》에서는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주나라를 개국하는 부분부터 시작하여 진(秦)나라가 6국을 병합하고 천하를 통일하는 시기까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후에 풍몽룡의 《신열국지》에서는 서주(西周)의 개국과 흥망 시기를 삭제하고 동주(東周)의 시기만을 기술하였다. 다시 말해 주 선왕(周宣王) 39년(B.C. 789)부터 진 시황(秦始皇) 26년(B.C. 221)까지 약 550여 년간 춘추전국시대의 역사를 배경으로 삼아 꾸민 대하실록소설이라 할 수 있다. 그 후 채원방은 풍몽룡의 108회본 《신열국지》의 골격은 그대로 둔 채 부분적인 보완과 평점을 가하여 《동주열국지》라고 이름으로 다시 출간하였다.
이 책에는 주 유왕(周幽王)과 포사(褒姒),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 공자(孔子)와 그 제자 이야기, 오 부차(吳夫差)와 월 구천(越句踐), 손자(孫子)와 오자(吳子), 초 회왕(楚懷王)과 굴원(屈原), 여불위(呂不韋)와 진 시황 등 난세 속에서 자신의 삶을 펼쳤던 수많은 영웅호걸들의 이야기가 농축되어 기술되어 있다. 이 책에는 대략 백여 편의 일화와 수백 개의 고사성어가 삽입되어 있어 독자로 하여금 흥미를 배가시킨다.

5. 가치와 영향

《열국지》는 중국역사의 격동기이자 사상의 황금기였던 춘추전국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기술한 소설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특히 역사 속 수많은 영웅호걸의 삶과 죽음은 역사적 가치보다도 인문학적 가치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그러기에 《열국지》는 인문학은 물론 인간학(人間學)의 보물창고와 같은 책이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朝鮮時代) 이래 역사연의류 소설은 국내에 유입되어 많은 환영을 받았는데 그중에서 가장 많이 환영을 받은 중국 3대 연의류 소설이 바로 일명 《열국지》라 부르는 《동주열국지》와 《초한지(楚漢志)》라 부르는 《서한연의(西漢演義)》 그리고 《삼국지(三國志)》라 부르는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이다. 그중 《열국지》는 춘추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하였고, 《초한지》는 진나라의 흥망성쇠와 한(漢)나라의 건국과정을 배경으로 삼았으며, 《삼국지》는 후한(後漢) 말기와 위(魏)나라를 거쳐 진(晉)나라 건국까지를 배경으로 기술한 역사소설이다.
조선 개국 이후 문인들 사이에서는 중국에 대한 신지식과 신진문화 및 사상에 대한 학문적 욕구가 강하게 일어났다. 이러한 시기, 문체가 딱딱하고 난해한 경서나 역사 및 철학 서적보다는 흥미로운 연의류 소설이 독자들의 구미를 더 돋웠다. 연의류 소설을 읽음으로써 중국의 역사 및 신지식 그리고 각종 학문을 쉽게 습득할 수 있었기에 특히 임진왜란을 전후해서는 연의류 소설이 급속히 전파되어 독자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열국지》는 조선시대 이래 《삼국지》, 《초한지》와 함께 국내 문단에 많은 영향을 끼친 소설 중의 하나이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천고(千古)의 흥하고 망하는 국면을 두루 살펴보면, 모두 조정에서 충신과 간신을 등용하는 것에 달려 있다.[總觀千古興亡局 盡在朝中用佞賢]” 〈겸육국혼일여도(兼六國混一輿圖) 호시황건립군현(號始皇建立郡縣)〉
• “선행이 가득 찬 연후에 복이 따르고, 악행이 가득 찬 연후에 재앙이 따르는 법이다.[善盈而後福 惡盈而後禍]” 〈포인속죄헌미녀(褒人贖罪獻美女) 유왕봉화희제후(幽王烽火戱諸侯)〉
• “군자는 위태로운 나라에는 머물지 않고, 〈정치와 풍속이〉 혼란한 왕조는 받들지 않는다.[君子不居危國 不事亂朝]” 〈악양자노체중산갱(樂羊子怒餟中山羹) 서문표교송하백부(西門豹喬送河伯婦)〉
• “천하의 일은 이치가 무력을 누르는 것이 정상이 되고, 무력이 이치를 누르는 것은 변고가 되니 왕명(王命)이 있는 곳이 이치가 모이는 곳이다. 일시의 강약은 무력에 달려 있지만, 천고(千古)의 승부는 이치에 달려있다.[天下之事 理勝力爲常 力勝理爲變 王命所在 理所萃也 一時之强弱在力 千古之勝負在理]” 〈위후삭항왕입국(衞侯朔抗王入國) 제양공출렵우귀(齊襄公出獵遇鬼)〉
(2) 색인어:춘추열국지(春秋列國志), 신열국지(新列國志), 동주열국지(東周列國志), 여소어(余邵魚),풍몽룡(馮夢龍), 채원방(蔡元放), 통속소설(通俗小說), 연의류소설(演義類小說),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3) 참고문헌
• 東周列國志(대만 세신출판사)
• 明代小說史(齊裕焜, 浙江古籍出版社)
• 中國古代小說百科全書(中國古代小說百科全書編輯委員會, 中國大百科全書出版社)
• 200種中國通俗小說述要(吳邨, 홍콩 中華書局)
• 東周列國志(김구용 역, 민음사)
• 열국지 교양강의(신동준, 돌베개)
• 중국 고전소설의 전파와 수용(민관동, 아세아문화사)
• 중국고전소설총목제요(江蘇省社會科學院 明淸小說硏究中心 編, 오순방 외 역, 울산대학교출판부)
• 중국소설사략(魯迅 著, 정범진 역, 범학도서)
• 중국소설사의 이해(중국소설연구회편, 학고방)
【민관동】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0.08.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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