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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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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군재독서지(郡齋讀書志)》는 중국 남송(南宋)의 저명한 목록학자이자 대장서가인 조공무(晁公武)(1105~1180)가 중국의 전통적인 분류체계인 사부분류법을 적용하여, 당시 남양(南陽)의 대장서가인 정헌맹(井憲孟)에게 받은 서적과 자신의 가장서적(家藏書籍) 가운데 복본을 제외한 24,500여 권 1,459부를 대상으로 소흥(紹興) 21년(1151)에 편찬한 해제목록이다.

2. 저자

(1) 성명:조공무(晁公武)(1105~1180)
(2) 자(字)·호(號):자는 자지(子止)이다. 박식하고 견문이 넓어서 해내(海內)라는 별명이 있으며, 변경(汴京)의 소덕방(昭德坊)이라는 곳에 거주하여 소덕선생(昭德先生)이라고도 부른다.
(3) 출생지역:남송(南宋) 거야(鉅野) 사람으로, 지금의 산동성(山東省) 하택시(菏澤市) 거야현(鉅野縣)에서 태어났다.
(4) 주요활동과 생애
조공무는 북송(北宋) 숭녕(崇寧) 4년(1105)에 태어나서 남송(南宋) 순희(淳熙) 7년(1180)에 76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당대의 유명한 문장가인 조충지(晁冲之)의 아들이다. 조공무의 가문에는 대대로 많은 서적이 전해졌으며, 서적의 교감에도 매우 정평이 났다. 남송 고종(高宗) 소흥(紹興) 2년(1132)에 진사가 되었고, 관직은 부문각직학사(敷文閣直學士)와 임안소윤(臨安少尹) 등에 이르렀다. 악가(岳珂)의 《정사(桯史)》에 “융흥(隆興) 2년(1164)에 탕사퇴(湯思退)가 재상에서 파직되고 홍적(洪適)이 조서(詔書)의 초안을 쓰면서 평어(平語)를 쓰자 시어사(侍御史) 조공무가 홍적을 공격하였으니 조공무 역시 매우 강직한 선비이다.”라고 그의 성품을 기록하였다. 그는 소흥(紹興) 11년(1141)부터 소흥 17년(1147)까지 사천전운사(四川転運使)인 정헌맹(井憲孟)의 소속 관료가 되었다. 정헌맹은 유명한 장서가로서 자기 집안의 서적을 조공무에게 주었는데, 그는 여기에 자신의 가장서적을 합하여 직접 교감하고 개요를 정리하여 이 해제목록을 편찬한 것이다. 당시 조공무가 영주(榮州)의 지방관으로 있었으므로, 군재(郡齋)란 명칭을 넣어서 《군재독서지(郡齋讀書志)》라 명명하게 되었다. 조공무는 건도(乾道) 6년(1170)까지 사천(四川)을 중심으로 지방관을 역임하였으며, 벼슬을 마친 후에 사천성(四川省) 가정부(嘉定府)에서 7년을 보내다가 순희(淳熙) 7년(1180)에 생을 마쳤다.
(5) 주요저작:《소덕문집(昭德文集)》, 《계고후록(稽古後錄)》, 《석경고이(石經考異)》, 《노자통술(老子通述)》 등 많은 저작을 남겼으나, 현재 《군재독서지(郡齋讀書志)》만 전한다.

3. 서지사항

《군재독서지》의 판본은 원주본(袁州本)과 구주본(衢州本)의 2종류가 있다. 원주본(袁州本)은 조공무의 문인 두거붕(杜擧鵬)이 촉(蜀)에서 교간(校刊)한 4권본에 의거한 판본을 말하고, 구주본(衢州本)은 조공무의 문인인 요응적(姚應績)이 같은 시기에 4권본을 저본으로 하여 자신의 소장서에 기록되었던 독서기를 증보하여 판각한 20권본에 의거한 판본을 말한다. 원주본은 조희변(趙希弁)의 교감을 거친 후에 오랫동안 세상에 전해지지 않다가 청나라 강희(康熙) 61년(1772) 해녕(海寧)의 진사증(陳師曾)이 구초원본(舊鈔袁本)을 얻어서 간행하여 세간에 유통되었으며, 뒤에 《사고전서(四庫全書)》에 수록되었다. 원주본과 구주본을 비교할 경우 판본 상에 차이가 있는데, 학계에서는 구주본을 선본으로 평가하고 있다. 1930년대에 이르러 국립북평고궁박물원(國立北平故宮博物院)에서 남송(南宋) 순우(淳佑) 원주본(袁州本)이 발견되어 함분루(涵芬樓), 만유문고(萬有文庫) 등에서 영인하였고, 1990년 상해고적출판사(上海古籍出版社)에서 나온 《군재독서지교증(郡齋讀書志校證)》이 있는데 왕사종(汪士鍾)의 구주본을 저본으로 하고 함분루(涵芬樓)에서 영인한 남송 원주본을 합교한 것으로 비교적 완비된 교점본(校點本)으로 평가하고 있다.

4. 내용

이 《군재독서지》는 목록의 분류상 《수초당서목》, 《직재서록해제》와 함께 사장목록(私藏目錄)으로 분류할 수 있다. 《사고전서》에 수록된 원주본(袁州本) 《군재독서지》의 분류체계는 경부(經部), 사부(史部), 자부(子部), 집부(集部)로 구성된 사부분류법을 채용하였다. 경사자집의 제1분지인 부(部)에는 총론(總論)을 두어 경사자집의 개요와 해당 유목을 나열하고 있으며, 제2분지인 유(類)에서는 해당 유목에 속하는 저록을 유목별로 구분하여 저자의 선후학 순으로 배열하고, 도서의 서명 풀이, 저자 소개, 내용 및 가치에 대한 평가, 위작에 대한 고증, 판본 논의 등에 이르기까지 수록 도서에 대해서 충실하게 해제를 작성하였다. 경부(經部)는 역류(易類), 서류(書類), 시류(詩類), 예류(禮類), 악류(樂類) 등 10개, 사부(史部)는 정사류(正史類), 편년류(編年類), 실록류(實錄類), 잡사류(雜史類), 위사류(僞史類) 등 13개, 자부(子部)는 유가류(儒家類), 도가류(道家類), 법가류(法家類), 명가류(名家類), 묵가류(墨家類) 등 16개, 집부(集部)는 초사류(楚辭類), 별집류(別集類), 총집류(總集類) 등 4개, 총 43개의 유목으로 구성되었다.

5. 가치와 영향

이 《군재독서지》는 중국 목록학사상 최초로 해제를 붙인 사가장서목록(私家藏書目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며, 송나라 이전의 주요 전적(典籍)을 수록하고, 특히 당나라와 북송시기의 전적을 잘 정리하여 여러 방면에서 학술적 가치를 지닌 사가목록의 보배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이 《군재독서지》는 조공무가 직접 보고 검증한 서적을 수록하여, 해제의 내용이 신뢰할 만하고 비교적 높은 사료적 가치와 학술적 가치를 지녔다. 진진손(陳振孫)은 《직재서록해제(直齋書錄解題)》의 편찬 시 이 《군재독서지》의 그 체례를 답습했으며, 그 해제 내용을 그대로 인용한 경우도 있었다. 남송 말년의 유명한 왕응린(王應麟)의 《곤학기문(困學紀聞)》과 《옥해(玉海)》에도 상당히 인용되었으며, 《사고전서총목(四庫全書總目)》의 편찬 시에 근거 자료로 삼을 정도로 중국 목록학사 상에서 《군재독서지》의 위치는 확고하며, 후대 목록의 편찬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 《군재독서지》는 국내에도 유입이 되어서 서형수(徐瀅修)(1749~1824)의 《명고전집(明臯全集)》, 정조(正祖)(1752~1800)의 《홍재전서(弘齋全書)》, 성해응(成海應)(1760~1839)의 《연경재전집(硏經齋全集)》, 서유구(徐有榘)(1764~1845)의 《풍석전집(楓石全集)》, 정약용(丁若鏞)(1762~1836)의 《경세유표(經世遺表)》와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김정희(金正喜)(1786~1856)의 《완당전집(阮堂全集)》, 이규경(李圭景)(1788~1863)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등 조선 후기 여러 학자의 저작에서 거론된 점으로 보아 당시의 학자들과 호서가들에게 널리 열람되었으며, 조선시대 해제목록의 편찬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겠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정헌맹이〉 평소에 조공무와 우정이 돈독했는데, 하루는 그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내가 늙어서 곧 죽을 듯하네. 평생 소장한 책을 매우 비밀스럽게 간직하고 아꼈네. 돌아보니 자손이 어리고 연악해서 스스로 무언가를 이루지는 못하겠네. 자손들이 명예를 좋아하면 귀한 사람에게 빼앗길 테고, 그들이 재물에 욕심을 내면 부자들에게 팔려서 이 책을 보존할 수 없을까봐 걱정일세. 이제 이 책을 전부 자네에게 맡기니 훗날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에게 주게. 그렇지 못하면 자네 자신이 이 책을 가지게.’ 공무가 황송해 하면서 그 말을 따랐다.[宿與公武厚 一日貽書曰 某老且死 有平生所藏書 甚秘惜之 顧子孫稚弱 不自樹立 若其心愛名 則爲貴者所奪 若其心好利 則爲富者所售 恐不能保也 今擧以付子 他日其間有好學者 歸焉 不然 則子自取之 公武惕然 從其命]” 《군재독서지》 〈서(序)〉
(2) 색인어:조공무(晁公武), 군재독서지(郡齋讀書志), 사부분류법, 사가장서목록(私家藏書目錄), 정헌맹(井憲孟)
(3) 참고문헌
• 《經世遺表》(丁若鏞)
• 《郡齋讀書志》(晁公武, 欽定四庫全書, 臺灣: 商務印書館, 1986)
• 《郡齋讀書志》(晁公武, 文淵閣 四庫全書 電子版(網上版)
• 〈《郡齋讀書志》의 목록기술방식에 대한 연구〉(李尙鏞, 《書誌學硏究》 63, 2015. 9)
• 〈《郡齋讀書誌》淺談〉(孫猛, 《中國索引》 2(4), 2006. 6)
• 《明臯全集》(徐瀅修〉)
• 《四庫全書總目提要》(文淵閣 四庫全書 電子版(網上版)).
• 〈송대 문헌의 수집과 정리를 통해서 본 사가목록서에 대한 고찰〉(徐元南, 《중국어문학논집》 47, 2007. 12)
• 〈宋代私家書目《郡齋讀書誌》考析〉(張素霞, 《前沿》 7, 2005. 7)
• 《與猶堂全書》(丁若鏞)
• 《硏經齋全集外集》(成海應)
• 《五洲衍文長箋散稿》(李圭景).
• 《阮堂全集》(金正喜)
• 〈井度、趙希弁對《郡齋讀書誌》的貢獻〉(金光洙, 《河南圖書館學刊》 4(31), 2011. 8)
• 〈晁公武及其《郡齋讀書誌》〉(孟昭晉, 《山東圖書館季刊》 2, 1988. 7)
• 〈《晁公武與《郡齋讀書誌》〉(方誌昭, 《贛圖通訊》 1, 1985. 4)
• 〈淺論《郡齋讀書誌》在古籍版本學史上的貢獻〉(劉國珺, 《古籍整理研究學刊》 6, 1990. 12)
• 《楓石全集》(徐有榘)
• 《弘齋全書》(正祖)

【이상용】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3.10.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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