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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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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춘추(春秋)》는 주(周)나라 제후국 역사의 통칭이다. 각 제후국에도 《춘추》가 있었는데 오직 노(魯)나라의 《춘추》만이 전해와 노나라의 《춘추》를 지칭하게 되었다. 중국 춘추시대(春秋時代) 노나라 은공(隱公) 원년(元年)(B.C. 722)에서 애공(哀公) 14년(B.C. 481)까지 12대(代) 242년 동안의 역사(歷史)를 편년체(編年體)로 기록한 것이다. B.C. 5세기 초에 공자(孔子)(B.C. 552~B.C. 479)가 노나라에 전해지던 사관(史官)의 기록을 직접 편수(編修)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학(儒學)에서 오경(五經)의 하나로 여겨지며, 동주(東周) 시대의 전반기를 춘추시대(春秋時代)라고 부르는 것도 이 책의 명칭에서 비롯되었다.
공자(孔子)가 자기의 관점을 선양하고자 노나라에 전해지던 기록을 스스로의 역사의식과 가치관에 따라 새롭게 편수(編修)한 것으로 알려진 것이 오늘날의 《춘추(春秋)》이다. 그러므로 《춘추》는 공자의 사상을 꿰뚫어볼 수 있는 사서이다. 즉 공자는 당시 현실을 보고 하나의 정치 방침 즉 정명(正名)을 제시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군군(君君) 신신(臣臣) 부부(父父) 자자(子子)’로 명실상부하고 각자가 자기의 본분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춘추》는 존왕양이(尊王攘夷)의 정신을 가지고 있으며, 필법에 직서와 은휘의 독특한 품격을 지니고 있다.

2. 편자

(1)성명:공구(孔丘)(B.C. 551~B.C. 479)
(2)자(字)·별호(別號):자는 중니(仲尼), 보통 존칭하여 공자(孔子)라 부른다.
(3)출생지역:중국 춘추시대 노국(魯國) 곡부(曲阜) 창평향(昌平鄕) 추읍(鄒邑)
(4)주요활동과 생애:
제자백가 중 유가(儒家)의 시조이다. 19세 때인 B.C. 533년 노나라 계씨의 창고 관리직이 되었다. B.C. 517년 삼환씨(三桓氏)의 제거에 실패한 소공(昭公)과 함께 제(齊)나라로 갔다가 관직 등용에 실패한 뒤 노나라로 되돌아왔다. 51세 때인 B.C. 501년에 노나라의 정공(定公)에게 중용(重用)되어 56세에 대사구(大司寇)로 재상이 되었다. 하지만 노나라의 정치에 실망하고 벼슬을 버리고 자신의 경륜을 펼치기 위해 길을 나서 위(衛), 조(曹), 송(宋), 정(鄭), 진(陳), 채(蔡), 초(楚)를 방문하였다. 그 후 공자는 14년간 문하생들을 데리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유세(遊說)를 계속하며 이상실현을 꾀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는 B.C. 484년 69세 때 그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고향에 돌아가 제자들의 교육에 전념한다.
(5)주요저작:《역경(易經)》, 《서경(書經)》, 《시경(詩經)》, 《예기(禮記)》 등.

3. 서지사항

공자는 사실을 간략히 기록했을 뿐 비평이나 설명은 철저히 삼갔는데, 포폄(褒貶)의 원칙에 따라 용어를 철저히 구별하여 서술하였다. 그 필법에 있어서도 직서와 은휘라는 독특한 품격을 가지고 있다. 사람이 죽었을 때도 대상이나 명분에 따라 ‘시(弑)’와 ‘살(殺)’을 구분하고, 다른 나라를 쳐들어갔을 때도 ‘침(侵)’, ‘벌(伐)’, ‘입(入)’, ‘취(取)’ 등의 표현을 구분해 사용했다. 노 은공(魯隱公)이 대부 공자 휘(翬)에게 시해(弑害)되고, 환공(桓公)이 제후(齊侯)에게 장살(戕殺)당한 것을 “훙(薨)하였다.”고 써서 은휘를 하고, 천토(踐土)의 회맹(會盟)은 실제로는 제후(諸侯)가 주(周)나라의 천자(天子)를 부른 것이지만 《춘추》에서는 그 사실을 피해서, “천자가 하양(河陽)으로 수렵을 나갔다.”라고 기록하였다. 이는 천자가 신하의 부름에 응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서 직서하지 못하고 은휘를 한 것이다. 이렇게 명분(名分)에 따라 기록하는 것을 ‘춘추필법(春秋筆法)’·‘춘추사필(春秋史筆)’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공자는 이런 사안들을 들어서 당세(當世)의 법통을 바로잡는 기준으로 삼았다.

4. 내용

《춘추(春秋)》는 1,800여 조(條)의 내용이 1만 6,500여 자(字)로 이루어져 있어 간결한 서술을 특징으로 한다. 내용상으로 사회 상황보다 정치 활동이 많아 정치사라고 할 수 있다. 제 환공(齊桓公)과 진 문공(晉文公)의 패업에 관한 것 이외에 전쟁 40%, 회맹 20% 및 일식 등의 자연현상 10%, 제사와 수렵, 축성 등의 잡다한 것 10%를 기록하였다.
기록도 은공 이후의 12제후를 차례로 연(年), 계(季), 월(月), 일(日)로 나누어 명확한 시간을 표시하여 편년사의 시초라 할 수 있으며, 또한 제후를 중심으로 삼아 기전체(紀傳體)의 기원이 되기도 한다. 노나라의 역사만이 아니라 각국의 역사도 기록되어 있어 편년사로서 통사(通史)이기도 하다.
《춘추》는 명분(名分)에 따라 용어들을 엄격히 구별하여 서술하였고, 내용이 매우 간단하게 기록되어 의미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때문에 수많은 학자들이 이해를 돕고자 그 의미를 해석하고 풀이하는 주석서(註釋書)인 ‘전(傳)’을 지어 ‘춘추학(春秋學)’이 생겼다. 반고(班固)(32~92)의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서는 《춘추》에 대한 전(傳)이 모두 23가(家) 948편(篇)이나 된다고 기록하였다. 이 가운데 전국시대(戰國時代)에 공양고(公羊高)가 지은 《공양전(公羊傳)》, 곡량숙(穀梁俶)(곡량적(穀梁赤)이라고도 함)의 《곡량전(穀梁傳)》, 좌구명(左丘明)의 《좌씨전(左氏傳)》을 ‘춘추삼전(春秋三傳)’이라 한다. 《공양전(公羊傳)》과 《곡량전(穀梁傳)》은 경문(經文) 해석 중심이고, 《좌씨전(左氏傳)》은 《춘추》에 기록된 사실(史實)에 대한 역사적이고 실증적인 해석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춘추》에 관한 주요 주석서로는 당대(唐代) 육순(陸淳)의 《춘추집전석례(春秋集傳釋例)》·《춘추집전변의(春秋集傳辨疑)》·《춘추미지(春秋微旨)》, 송대(宋代) 손복(孫腹)의 《춘추존왕발미(春秋尊王發微)》, 왕석(王晳)의 《춘추황강론(春秋皇綱論)》, 유창(劉敞)의 《춘추권형(春秋權衡)》, 호안국(胡安國)의 《춘추전(春秋傳)》, 원대(元代) 정단학(程端學)의 《춘추본의(春秋本義)》, 조방(趙汸)의 《춘추사설(春秋師說)》·《춘추금쇄시(春秋金鎖匙)》·《춘추집전(春秋集傳)》, 명대(明代) 육찬(陸粲)의 《춘추호전고오(春秋胡傳考誤)》·《춘추호전변오(春秋胡傳辨誤)》, 청대(淸代) 고동고(顧棟高)의 《춘추대사표(春秋大事表)》·《여도(輿圖)》, 홍양길(洪亮吉)의 《춘추십론(春秋十論)》, 혜사기(惠士奇)의 《반농춘추설(半農春秋說)》, 모기령(毛奇齡)의 《춘추속사비사기(春秋屬辭比事記)》·《춘추모씨전(春秋毛氏傳)》, 임춘부(林春傅)의 《춘추경전비사(春秋經傳比事)》, 장응창(張應昌)의 《춘추속사변례편(春秋屬辭辨例編)》, 학의행(郝懿行)의 《춘추설략(春秋說略)》, 조탄(趙坦)의 《춘추삼전이문전(春秋三傳異文箋)》, 이부손(李富孫)의 《춘추삼전이문석(春秋三傳異文釋)》 등이 있다.

5. 가치와 영향

오경(五經) 가운데 하나이다. 본래는 단행본이었지만 지금은 주석서인 춘추삼전(春秋三傳)의 부속 형태로 전하고 있다. 《춘추》는 본래 노나라의 궁정연대기(宮廷年代記)였는데, 여기에 공자(孔子)가 독자적인 역사의식과 가치관을 가지고 필삭(筆削)을 가함으로써 단순한 궁정연대기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이다. 《춘추》의 경문은 《좌씨전》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시대 이래로 《좌씨전》을 유교의 주요 경전으로 삼고 애독하였다.
중국사학사에서는 《춘추》가 등장함으로써 종래 관서(官書)만이 존재하던 추세를 깨고 개인이 만든 역사서가 나왔다는 점과, 처음으로 편년체 형식을 갖춘 역사서를 갖게 된 것을 의의로 들 수 있다. 역사 편찬 방법을 제시하여 훗날 역사가에게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또한 인사(人事)를 중시하여 천도(天道)로 역사의 변화를 해석하고 역사의 변화를 인사로 해석한 점이 주목된다.

6. 참고사항

(1)명언
• “여름 5월에 정백(鄭伯)이 단(段)을 언(鄢)에서 이겼다.[夏五月 鄭伯克段于鄢]” 〈노 은공(魯隱公) 원년(元年)〉
• “여름에 장공(莊公)이 제(齊)나라를 토벌하여 자규(子糾)를 제의 임금으로 들여보내고자 하였는데, 제나라 소백(小白)이 먼저 제나라로 들어갔다.[夏 公伐齊納子糾 齊小白入于齊]” 〈노 장공(魯莊公) 9년〉
• “14년 봄에 서쪽 대야(大野)에서 사냥하다가 기린(麒麟)을 잡았다.[十有四年春 西狩獲麟]” 〈노 애공(魯哀公) 14년〉
(2)색인어:공자(孔子) 춘추학(春秋學) 춘추삼전(春秋三傳) 공양전(公羊傳) 곡량전(穀梁傳) 좌씨전(左氏傳), 춘추필법(春秋筆法), 춘추사필(春秋史筆)
(3)참고문헌
• 春秋左傳注(楊伯峻, 中華書局)
• 春秋左傳正義(北京大學出版社)
• 春秋公羊傳注疏(北京大學出版社)
• 春秋穀梁傳注疏(北京大學出版社)
• 春秋左氏傳(정태현 역주, 전통문화연구회)
【서영수】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0.08.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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