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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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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안자춘추(晏子春秋)》는 중국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제(齊)나라의 재상인 안영(晏嬰)(?~B.C. 500)과 관련된 언행록을 정리한 것이다. 〈내편(内篇)〉 6권과 〈외편(外篇)〉 2권으로 도합 8권 215장이다. 중국 산동성(山東省) 은작산한간(銀雀山漢簡)의 발견으로 연구자들은 《안자춘추》의 성서(成書) 시기를 전국시대 중기나 후기로 보게 되었다.
안자(晏子)는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의 정치가이다. 제나라 영공(靈公)과 장공(莊公), 경공(景公) 3대에 걸쳐 몸소 검소하게 생활하며 나라를 바르게 이끌었다. 관중(管仲)과 더불어 훌륭한 재상으로 후대까지 존경을 받았다. 그는 제나라가 강씨제(姜氏齊)에서 전씨제(田氏齊)로 교체되는 혼란기를 직접 체험한, 공자(孔子)와 비슷한 춘추 말기의 동시대인이다. 《안자춘추》의 기록을 통해 안자와 공자가 서로 존경하기도 하였으나 대립하고 충돌하였던 기묘한 관계였음을 알 수 있다. 안자는 학술·사상면에서 소속이 복잡하여 후대 학자들의 견해에 따라 소속이 유가와 묵가를 오간다. 이러한 이유는 그의 언론과 사상에 어느 하나의 제자학(諸子學)에 고정시킬 수 없는 부분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제자학이 충분한 파벌을 이루기 전인 춘추시대의 인물을 구류십가(九流十家)에 열입(列入)시키는 것이 무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 저자

(1)성명:안영(晏嬰)(?~B.C. 500)
(2)자(字)·별호(別號):이름은 영(嬰), 자는 중(仲)이다. 시호는 평(平)으로 보통 평중(平仲)이라고도 불리며, 안자(晏子)라고 존칭되기도 한다.
(3)출생지역:내주(萊州) 이유(夷維)(현 산동성(山東省) 내주시(莱州市) 평리점(平里店))
(4)주요활동과 생애
B.C. 556년 아버지 안환자(晏桓子)(안약(晏弱))가 죽고 그 뒤를 이어 제나라의 대부가 되었다. 영공·장공·경공을 섬겼으며, 식탁에 고기가 나오는 것이 매우 드물었으며, ‘30년 동안 호구(狐裘) 한 벌을 입고, 제사 시에도 돼지고기가 적어 제기인 두(豆)를 덮지 않았다.’라는 고사가 있을 정도로 근검절약을 솔선수범하였고, 백성들의 생활에 관심이 많아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이러한 덕에 최저(崔杼)가 장공을 살해했을 때 장공의 시체 위에 엎드려 곡을 했지만,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또한 사령(辭令)에 뛰어났고, 충간(忠諫)을 올려 제후들 사이에서 명성이 높았다. B.C. 517년 혜성이 나타나 두려워 떨고 있는 경공에게 세금을 경감할 것과 형벌을 줄일 것, 신하의 말에 귀를 기울일 것 등을 충고했다. 이 같은 충직한 성품 때문에 관중과 함께 제나라의 명신으로 일컬어진다. 안자에 관한 이야기를 모은 《안자춘추(晏子春秋)》가 있다.
(5)주요저작:미상.

3. 서지사항

《안자춘추》에 대하여 청대(淸代)의 손성연(孫星衍)은 안자가 죽은 후 그의 빈객들이 그의 행실과 사적을 모아 만든 것으로 보고 있다. 《안자춘추》는 원래 유향(劉向)의 《별록(別錄)》에는 8편이라 하였으나 그의 아들 유흠(劉歆)의 《칠략(七略)》에는 7편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는 “《안자(晏子)》 8편이다.[晏子八篇]”라 하며, 주석에 “이름은 영, 시호는 평중, 제 경공의 재상이었다. 공자가 ‘남과 교유하는 것을 잘하였다.’라고 칭찬하였다. 열전이 있다.[名嬰 諡平仲 相齊景公 孔子稱善與人交 有列傳]”라 하였고,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 와 《당서(唐書)》 〈경적지(經籍地)〉에는 7권으로 기록되어 있다. 지금의 《안자춘추》는 명대(明代) 금사각(錦沙閣) 각본(刻本)에는 〈내편〉 6편, 〈외편〉 2편이었던 것을 뒤에 손성연(孫星衍)이 명대(明代) 심계남(沈啓南) 각본을 저본으로 주석과 음의를 달아 전래된 것이다. 오늘날의 통행본으로는 장순일(張純一)의 교주본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이는 《신편제자집성(新編諸子集成)》본의 묵가(墨家)에 열입(列入)되어 실려 있다. 사고전서(四庫全書) 문연각본(文淵閣本)은 내용이 의외로 탈장·오간·착간이 많아 무려 12장이 빠져 있고, 그 외에는 편장의 순서도 엇바뀐 것이 많다.
청대 이래 소수의 연구자들이 《안자춘추》를 위서(僞書)로 보는 경우도 있었고, 또한 그 성서 시기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았다. 갑론을박이 진행되던 중, 1972년 산동성(山東省) 임기현(臨沂縣) 은작산(銀雀山) 1호 한(漢)나라 무덤에서 다량의 죽서(竹書)가 발견되었는데 그 가운데 《안자춘추》 16장이 출토되고, 이어서 1973년, 하북성(河北省) 정현(定縣)의 중산회왕(中山懷王) 유수(劉修)의 무덤과 1977년 안휘성(安徽省) 부양현(阜陽縣)에서 발굴된 서한(西漢) 여음후(汝陰侯) 하후조(夏侯灶)의 무덤에서 《안자춘추》 관련 죽간이 발견되었다. 세 차례 출토된 죽간은 모두 서한(西漢) 시기의 것으로 이 중 안휘성(安徽省) 부양현(阜陽縣)의 것이 문제(文帝) 시기로 가장 이르다. 그 다음은 산동성(山東省) 임기현(臨沂縣) 은작산묘(銀雀山墓)로 무제(武帝) 시기의 것이다. 시간적으로 가장 늦은 것은 하북성 정현의 중산회왕 유수 무덤으로 선제(宣帝) 시기이다. 수량이 가장 많고 비교적 온전한 형태인 것은 산동성 임기현 은작산에서 출토된 것이다. 정리 결과 모두 102매의 죽간이었는데 온전한 것들도 있고 훼손되어 있는 것도 있다. 그 내용은 16장이다. 그중 병우건(騈宇騫)의 《은작산죽간안자춘추교석(銀雀山竹簡晏子春秋校釋)》이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이로 인해 위서 논란은 종지부를 찍었고, 성서 시기도 전국 중기나 후기로 연구자들의 의견이 모아졌다.
그 외 안자와 《안자춘추》에 대한 연구와 정리는 왕경생(王更生)의 《안자춘추금주금담(晏子春秋今注今譚)》이 비교적 많은 자료를 제공해주고 있으며, 우리나라에 소장되어 있는 고판본으로는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안자춘추(晏子春秋)》(목판본, 광서(光緖) 원년(1875), 4책, 음의(音義) 상하), 《안자춘추(晏子春秋)》(부(附) 황이주(黃以周) 교감기(校勘記) 상(上)·하(下), 목판본, 광서 원년(1875), 21책), 《안자춘추음의(晏子春秋音義)》(목판본, 상·하 2권 1책)가 알려져 있다.

4. 내용

《안자춘추》는 총 8편 215장으로 1편부터 6편까지를 〈내편(內篇)〉, 7편과 8편을 〈외편(外篇)〉으로 나누고, 매 장별로 그 장의 내용을 요약하여 밝힌 장별 제목이 있다. 〈내편〉은 제1편 〈간상(諫上)〉(25장), 제2편 〈간하(諫下)〉(25장), 제3편 〈문상(問上)〉(30장), 제4편 〈문하(問下)〉(30장), 제5편 〈잡상(雜上)〉(30장), 제6편 〈잡하(雜下)〉(30장)이고 〈외편〉은 제7편 〈중이이자(重而異者)〉(27장), 제8편 〈불합경술자(不合經術者)〉(18장)이다.

5. 가치와 영향

《안자춘추》는 안자가 죽은 후 그의 빈객들이 그의 어록과 행실을 모아 만든 것으로 보고 있다. 《안자춘추》를 읽은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 〈열전〉에서 맨 앞에 〈백이숙제열전(伯夷叔齊列傳)〉을 두고, 그 다음으로 〈관안열전(管晏列傳)〉을 두었으며, 안자가 살아 있다면 그를 위하여 말채찍을 잡는 천한 일도 즐겨할 정도로 그를 흠모한다고 표현하였다. 그리고 《안자춘추》에 수록된 고사는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이나 《일성록(日省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등에 수록된 사례가 종종 보이는데, 이는 조선시대 조정 중대사를 결정하는데 있어 《안자춘추》의 고사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각종 개인 문집에도 안자춘추 고사를 인용하거나 수록한 사례가 자주 보인다. 특히, 부부간에 주고받는 서신에도 《안자춘추》의 고사가 인용된 것을 보면 조선시대에 매우 폭넓게 수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안자의 활동시기가 춘추시기임을 고려하면 《안자춘추》는 고대 중국어의 변천 과정 중 비교적 이른 시기에 해당하는 저작물이다. 《안자춘추》는 왕에게 간언 또는 문답의 형식으로 당시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내용이 담겨져 있어 문학적·역사적·문화적인 가치를 평가받고 있고, 당시의 언어를 살펴보는 데 유용한 어학 자료이기도 하다.

6. 참고사항

(1)명언
• “가령 현자가 항상 지키게 한다면 태공(太公), 환공(桓公)이 항상 지키게 될 것이요, 용맹한 이가 항상 지키게 한다면 장공(莊公), 영공(靈公)이 항상 지키게 될 것이니, 이 몇몇의 군주가 항상 지키기로 든다면 우리 임금님께서 어떻게 이 자리를 얻어 오를 수 있었겠습니까.[使賢者常守之 則太公桓公將常守之矣 使勇者常守之 則莊公靈公將常守之矣 數君者將守之 則吾君安得此位而立焉]” 〈내편(內篇) 간상(諫上)〉
•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자에게는 재능을 감추고, 자기를 알아주는 자에게는 자기의 뜻을 편다.[士者詘乎不知己 而伸乎知己]” 〈내편(內篇) 잡상(雜上)〉
• “개 나라에 사신으로 왔다면 개구멍으로 들어가겠지만, 지금 저는 초(楚)나라에 사신으로 왔으므로 개구멍에 들어가는 것은 마땅치 않습니다.[使狗國者 從狗門入 今臣使楚 不當從此門入]” 〈내편(內篇) 잡하(雜下)〉
(2)색인어:안자(晏子), 안자춘추(晏子春秋), 은작산죽간안자춘추교석(银雀山竹简晏子春秋校释), 안자춘추금주금담(晏子春秋今注今譚) 안영(晏嬰), 중(仲), 평(平), 평중(平仲).
(3)참고문헌
• 晏子春秋今註今譯(王更生 註譯, 商務印書館)
• 銀雀山竹簡晏子春秋校釋(駢宇騫 編, 書目文獻出版社)
• 晏子春秋譯注(盧守助, 上海古籍出版社)
• 晏子春秋(임동석, 동문선)
• 〈≪晏子春秋≫ 成書時期考〉(허성도, 한국중국학회)
【서영수】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0.08.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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