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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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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곡량전(穀梁傳)》은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이라 부르는데, 일상적으로 《곡량춘추(穀梁春秋)》라고도 부른다. 모두 11권으로 유가(儒家)의 주요 경전 가운데 하나로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과 더불어 ‘춘추삼전(春秋三傳)’으로 꼽히는 《춘추》의 해설서이다. 이 책의 정확한 저자는 확인되지 않았는데, 공자(孔子)의 제자인 자하(子夏)가 곡량자(穀梁子)에게 구술(口述)해준 것을 곡량자가 글로 적었다고 하나, 《곡량전》은 명확하게 《공양전》의 영향을 받아서 성립됐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존재하기 때문에, 현행본의 모습이 만들어진 것은 《공양전》이 성립된 이후인 전한(前漢) 선제(宣帝) 시기로 파악되고 있다. 그 이전의 성립 경위는 확실히 밝혀져 있지 않다. 이 책은 주로 어록체(語錄體)와 대화체로 《춘추》의 의미를 풀이하면서 예악(禮樂)을 통한 교화(敎化)와 종법제도(宗法制度)의 당위성, 존왕(尊王) 사상 등을 주장하고 있다. 이 책의 해설서로는 진(晉)나라 때 범녕(范寧)이 편찬한 《춘추곡량전집해(春秋穀梁傳集解)》와 청(淸)나라 때 종문증(鍾文烝)이 편찬한 《곡량보주(穀梁補注)》 등이 있다.

2. 저자

(1)성명:곡량자(穀梁子)(?~?)
(2)자(字)·별호(別號):곡량숙(穀梁俶), 또는 곡량적(穀梁赤)·곡량희(穀梁喜)·곡량숙(穀梁淑)·곡량가(穀梁嘉)·곡량치(穀梁寘)라고도 불린다. 자는 원시(元始).
(3)출생지역:전국시대(戰國時代) 노(魯)나라
(4)주요활동과 생애
B.C. 4세기경 중국 주대(周代)의 유학자(儒學)로 자하(子夏)로부터 공자의 《춘추(春秋)》를 배우고,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을 지어 순자(荀子)에게 전하고 순자가 신배(申培)에게 전했다고 하는데, 이는 경학상(經學上)의 전설로서 신빙성이 적다. 한(漢) 무제(武帝)(재위 B.C. 141~B.C. 87) 즉위를 전후하여 황로(黃老)에 경도된 두태후(竇太后)의 전횡에 대항하던 세력은 유술(儒術)을 이용하여 정권 탈취를 노렸고 이런 대립은 마치 황노술(黃老術)과 유술(儒術)의 충돌로 비쳐지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유술이 승리하였고, 《한서(漢書)》 이후 사가(史家)들은 이것을 ‘파출백가독존유술(罷黜百家獨尊儒術)’이라고 이름하였다. 이 과정에서 공손홍(公孫弘)과 동중서(董仲舒)가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는데, 모두 공양학을 종지로 삼았다. 따라서 공양학은 무제(武帝) 이후 한나라의 주도적인 학문으로 자리 잡았고 그 상황은 선제(宣帝)(재위 B.C.74~B.C. 49)에 이르기까지 큰 변화가 없었다. 선제(宣帝)는 그의 출신배경과 정치적인 견해로 인해, 자신의 입장에 부합하는 학문을 찾아 나섰고 결국 곡량학을 선택한다. 실로 역사의 재현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무제(武帝)와 공양학(公羊學)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곡량학(穀梁學) 또한 선제(宣帝)라는 정치적 후원자를 만나 부상하게 된다. 이렇게 한초(漢初) 공양학과 곡량학은 지배권력의 의도가 반영된 선택에 의해 부침(浮沈)하였다.
(5)주요저작:《춘추곡량전》

3. 서지사항

반고(班固)(32~92)가 편찬한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를 참고해보면 ‘《곡량전》 11권’이라 했고 그 주석에 ‘곡량자(穀梁子)의 저작이며 노(魯) 사람이다. 곡량자의 이름은 희(喜)이다.’라고 되어 있다. 뒤에 전대소(錢大昭)는 《한서변의(漢書辨疑)》에서 곡량희는 마땅히 곡량가(穀梁嘉)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육덕명(陸德明)은 《경전석문(經典釋文)》의 서록에서 곡량적(穀梁赤)이라 하고, 전국시대(戰國時代) 진(秦)나라 효공(孝公)때의 사람이라 했다. 양사훈(楊士勛)이 《곡량의소(穀梁義疏)》를 저작할 때 완효서(阮孝緖)의 설을 취하며 곡량숙(穀梁俶)을 곡량숙(穀梁淑)으로 하고 그 설명에 ‘자(字)는 원시(元始)이고 노(魯)나라 사람이다. 일명 적(赤)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한사람인 곡량자(穀梁子)의 이름이 6가지로 기록되어 있다. 이상과 같이 저작자의 이름이나 신분이 확실하지 않고 저작 연대도 의문점이 많다.
양사훈은 《곡량의소(穀梁義疏)》에서 ‘곡량숙은 자하(子夏)에게 《춘추》를 학습하고 경문에 의거해 전(傳)을 지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곡량숙이 공자(孔子)의 문하생인 자하의 제자라면 자하와 동시대이거나 조금 뒤의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곡량전 안의 문장을 보면 이미 ‘곡량자’라는 칭호가 있고 자하보다 후대의 사람인 ‘심자(沈子)’와 ‘시자(尸子)’가 인용되었는데, 심자는 전국시대 사람이며 《공양전(公羊傳)》에도 인용되어 있고 시자는 시교(尸佼)로 상앙(商鞅)의 스승이다. 이들이 활동한 시기는 비록 확실하게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자하보다 한참 후대라는 점에 문제가 있다.
곡량(穀梁)의 전수와 관련된 최초의 기록은 《사기(史記)》 〈유림열전(儒林列傳)〉으로 하구(瑕丘)의 강생(江生)이 《곡량춘추(穀梁春秋)》를 만들었는데 공손홍(公孫弘)부터 사용하여 일찍이 그 의를 비교하고 마침내 동중서(董仲舒)가 사용했다고 하였다. 당(唐)나라의 육덕명(陸德明)은 삼전(三傳)에 편찬 순서에 대하여 “좌구명(左丘明)이 중니(仲尼)에게서 받고, 공양고(公羊高)는 자하(子夏)에게서 받았고, 곡량적(穀梁赤)은 후세에 전해 들었다.”라고 하였다.
《곡량전(穀梁傳)》의 전수가 명확히 드러나는 것은 전한(前漢)의 선제(宣帝) 전후부터인데, 이것은 선제가 《곡량전》에 호의적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전의 《곡량전》은 전한(前漢)초기로 여겨지는 강공(江公)(강생(江生)) 이후 소수에게 계승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선제(宣帝)는 《곡량전》에 대한 집착 때문에, 당시의 전승자 채천추(蔡千秋)에게 명하여, 낭관(郎官) 10인에게 《곡량전》을 전수시켜 《곡량전》의 성행을 계획했다. 이를 전후로 하여 유향(劉向)등의 저명한 학자도 《곡량전》을 배웠다. 선제(宣帝)는 공양학(公羊学)과 곡량학(穀梁学)의 이동우세(異同優劣)를 정할 목적으로 석거각(石渠閣)에서 학자들에게 논의를 시켰지만 선제(宣帝)의 취향이 영향을 끼쳐, 곡량학이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이것이 《곡량전》의 최전성기로 이후 점차적으로 침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공양전》에 밀리게 된다.

4. 내용

유가 13경의 하나인 《춘추곡량전》은 ‘천도(天道)’를 중시하는 전통을 이어 풍부한 ‘천론(天論)’ 사상을 담고 있다. ‘천’은 《곡량전》 전체 사상 체계 중 최고의 범주이며, 인간 사회 질서의 합법성과 신성성(神聖性)의 근원이다. 《곡량전》의 ‘천론’은 ‘천상(天象)’, ‘천질(天秩)’, ‘천의(天意)’, ‘법천(法天)’ 등 4가지 층차를 포괄한다. 목록은 다음과 같다. 〈춘추곡량전서(春秋穀梁傳序)〉, 제1편 은공시대(隱公時代), 제2편 환공시대(桓公時代), 제3편 장공시대(莊公時代), 제4편 민공시대(閔公時代), 제5편 희공시대(僖公時代), 제6편 문공시대(文公時代), 제7편 선공시대(宣公時代), 제8편 성공시대(成公時代), 제9편 양공시대(襄公時代), 제10편 소공시대(昭公時代), 제11편 정공시대(定公時代), 제12편 애공시대(哀公時代) 등이다.

5. 가치와 영향

《춘추곡량전》은 공자 《춘추》의 명분과 의리를 내세워 《춘추》의 경문을 해설한 것으로 고문학(古文學)의 최고서라 일컬어진다. 《곡량전》은 강한 명분론의 입장에서 왕도(王道)와 패도(霸道)의 다르다고 주장하고 패도를 배척하는 경향이 강하다. 명분이나 의리가 무엇인가를 살피기 위해서 한번은 필독해야 할 경서(經書)이다.
신라(新羅)의 대학자이자 유학자인 홍유후(弘儒侯), 설총(薛聰)의 최대의 공적은 육경(六經)과 구경(九經)을 우리말로 읽고 그것을 후생들에게 가르쳤으며 구결(口訣)을 통하여 그것을 후세에까지 전하였다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의 기본 교과서인 구경(九經)과 육경(六經)이 무엇인가? 《삼국사기(三國史記)》를 쓰게 한 인종(仁宗)(1123~1146) 당시에 학교에서 배우는 경은 바로 구경(九經)이었으니, 즉 “《주역(周易)》⋅《상서(尙書)》⋅《주례(周禮)》⋅《의례(儀禮)》⋅《예기(禮記)》⋅《모시(毛詩)》⋅《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이었고, 공자의 육경(六經)은 한나라 때에 이르러 결국 삼경(三經)(《시경》, 《서경》, 《주역》)⋅삼례(三禮)(《주례》, 《의례》, 《예기》)⋅삼전(三傳)(《좌씨전》, 《공양전》, 《곡량전》)의 구경(九經)으로 변하게 되었다.
고려(高麗) 시대 인종(仁宗)(1123~1146) 연간의 식목도감(式目都監)에서 상정한 학식(學式)에 보면, 무릇 경이란 《주역》⋅《상서》⋅《주례》⋅《의례》⋅《예기》⋅《모시》⋅《춘추좌전》⋅《공양전》⋅《곡량전》을 각각 하나의 경으로 하고 《효경》과 《논어》는 반드시 겸하여 통달하게 하되 모든 학생들에게 과업은 《효경》과 《논어》를 함께 1년, 《상서》와 《공양전》과 《곡량전》은 각각 2년 반, 《주역》과 《모시》와 《주례》와 《의례》는 각각 2년, 《예기》와 《좌전》은 각각 3년 동안 배우는데, 먼저 《효경》과 《논어》를 읽고 다음으로 여러 경을 읽게 하였다고 한다.

6. 참고사항

(1)명언
• “〈《춘추(春秋)》의〉 한 글자의 포장(褒奬)이 화곤(華袞)을 받는 것보다도 영광스러웠고, 한마디의 폄하가 시장에서 맞는 회초리보다도 치욕스러웠다.[一字之褒 寵踰華袞之贈 片言之貶 辱過市朝之撻]” 〈춘추곡량전서(春秋穀梁傳序)〉
• “춘추의 의리는 미더운 것은 미더운 대로 전하고 의심스러운 것은 의심스러운 대로 전하는 것이다.[春秋之義 信以傳信 疑以傳疑]” 〈노 환공(魯桓公) 5년〉
• “장사 지내는 날이 이미 잡혀 있으니, 비 때문에 중지하지 않는 것이 예법이다. 비 때문에 장사 지내지 못하는 것은 상사(喪事)를 예제(禮制)로써 하지 않는 것이다.[葬旣有日 不爲雨止 禮也 雨不克葬 喪不以制也]” 〈노 선공(魯宣公) 8년〉
(2)색인어:곡량전(穀梁傳), 곡량자(穀梁子), 곡량숙(穀梁俶), 곡량적(穀梁赤), 곡량희(穀梁喜), 곡량숙(穀梁淑), 곡량가(穀梁嘉), 곡량치(穀梁寘)
(3)참고문헌
• 春秋穀梁傳注疏(范寧 集解楊士勛 疏, 中華書局)
• 春秋穀梁傳譯注(承載, 上海古籍出版社)
• 春秋穀梁傳(上海古籍出版社)
• 春秋穀梁傳(남기현 해역, 자유문고)
• 춘추곡량전(박성진, 지식을만드는지식)
【서영수】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0.08.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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