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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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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 책은 원나라(元) 초기에 대사농서(大司農司)에서 편찬한 관찬서로서 지원(至元) 계유(癸酉)년에 한림학사 왕반(王磐)이 서문을 썼지만, 구체적인 찬자(撰者)의 이름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이 책은 북위(北魏) 이래의 농업기술을 총결한 것으로 원대 황하유역 농업의 회복과 발전에 큰 작용을 했다. 이 책은 《왕정농서(王禎農書)》, 《농상의식촬요(農桑衣食撮要)》와 함께 원대 3대 농서라고 칭해진다.

2. 저자

대사농사에서 책이 편찬된 시기는 대략 지원(至元) 10년(1273)이며, 편찬자는 맹기(孟祺), 창사문(暢師文), 묘호겸(苗好謙) 등으로 알려지고 있다. 서광계는 그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초고의 주된 편찬자를 맹기라고 하였다. 맹기는 일찍이 산동(山東) 동서도(東西道) 권농부사(勸農副使)를 역임했으나 《신원사(新元史)》에도 마찬가지로 그가 농서를 저술했다는 기록은 없다. 다만 《농상집요》 권2의 〈구곡의 풍토와 모시와 목면에 대한 논의[論九穀風土時月及苧麻木綿]〉 부분에는 원문에 그의 이름이 명기된 것으로 보아 집필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에 반해 《원사(元史)》 〈창사문전(暢師文傳)〉에는 지원 23년(1286)에 창사문이 편찬된 《농상집요》를 조정에 헌납했으며, 〈세조본기(元世祖本紀)〉에는 이 해에 대사농사에서 《농상집요》를 제로(諸路)에 반포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창사문을 당시 편찬 책임자로 여기고 있다. 혹자는 지원 10년에 《농상집요》를 공동의 명의로 편집한 후에 경학에 조예가 깊은 창사문이 수정했던 것이 아닌가라고 추측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연대 역시 왕반이 서문을 쓴 시점과 부합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원사(元史)》의 신뢰성을 제기하는 자도 있다.

3. 서지사항

본서는 뽕나무 재배와 양잠을 매우 중시하여, 그 분량이 책의 1/3을 차지한다. 그와 함께 저마, 면화재배 등 경제작물의 비중이 높고 약초나 과채류에 대한 서술도 2, 3배로 증가하였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인용한 문헌을 엄격하게 시대의 순서에 따라 배열하여 기술지식의 변화과정을 이해하기 쉽게 했으며, 그 문헌 중 미신내용은 대부분 삭제하였다. 특히 풍토론에 입각하여 재배에 적합하지 못하다는 지적에 대해, 새로 유입된 작물의 전파를 방해하는 행위라고 비판하고 있는 것이 주목된다.
본서의 전파는 광범위하여 모두 20여 종의 판본이 있다. 원각본은 원초(元初)와 연우(延祐)(1314~1320) 이후 여러 차례 중각되었지만, 그 실물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명대(明代) 장사설(張師說)의 전원경제본(田園經濟本)과 호문환(胡文煥)의 격치총서본(格致叢書本) 역시 일본에서만 발견되고 중국에서는 남아 있지 않다. 현재 통용되고 있는 것은 모두 《영락대전(永樂大全)》 당시 편집되었던 청 건륭 연간의 무영전총서(武英殿叢書) 취진판본(聚珍版本)이다. 본래 무영전의 활자인서(活字印書)는 건륭 시기에 비롯된 것이 아니라 저명한 《고금도서집성》을 인쇄하여 옹정제 때 완성된 동활자였다. 이 책을 인쇄한 후 동활자를 무영전에 보관했는데, 옹정제 때 동전이 귀한 상황에서 도적이 훔쳐가 사라져버렸다. 건륭 때에는 무영전총서를 인쇄할 활자가 없어 목활자로 인쇄했으며, 각 관청과 사가(私家)에서 모방하여 출판함으로써 책이 널리 전파되었다. 이 목활자 역시 무영전에 보관했는데, 근무하는 위병이 난방용으로 사용하면서 ‘진보(珍寶)’는 사라져 버렸다. 그 후 상해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던 원각본이 발견되었는데, 그것은 지원 5년(1339)에 판각하여 명대에 보완한 고본(孤本)으로 1979년에 영인하여 학술계의 큰 반응을 일으켰으며, 이것이 대자원간본(大字元刊本)이다. 1983년 중국 농업출판사가 출판한 석성한(石聲漢)의 《農桑輯要校注》는 청 건륭 연간에 복각한 무영전취진판본(武英殿聚珍版本)을 저본으로 했으며, 반면 1988년 무계유(繆啓愉)는 상해도서관에서 수집한 원각대자본(元刻大字本)을 교석하여 《원각농상집요교석(元刻農桑輯要校釋)》을 출판하였다.

4. 내용

《농상집요》는 송대 이전의 농서와는 달리 농상(農桑)을 중심에 두고 서술하고 있다. 북위(北魏)의 《제민요술》에는 양잠의 비중이 단지 3%였던데 반해 남송의 《진부농서(陳旉農書)》 단계에 이르면 25%로 급증한다. 그것이 원대 《농상집요》에 이르면 더욱 증가되어 30%로 증가했을 정도로 양잠의 비중이 급증한다. 게다가 그 내용도 개별 농민들이 쉽게 이해하고 응용할 수 있도록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농상집요》는 모두 6만여 자 전후로 되어 있으며, 7권 10편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즉 전훈(典訓), 경간(耕墾), 파종, 재상(栽桑), 잠상, 과채(瓜菜), 과실, 죽목(竹木), 약초(藥草)와 자축(孶畜) 등 10편이다. 《농상집요》의 주된 내용은 “경사제자(經史諸子)에서 두루 채용한 것”으로, 전대 중요한 농서의 풍부한 유산을 계승하고 있다. 책의 절반 가까이는 《제민요술》에서 나온 것이며, 나머지는 《범승지서(氾勝之書)》, 《사민월령(四民月令)》, 《무본신서(務本新書)》, 《사농필용(士農必用)》과 《한씨직설(韓氏直說)》 등 모두 북방에 적용되었던 농서이다. 아울러 전대(前代)의 저서에서 인용한 것 이외에도 새로 추가한 내용에는 “신첨(新添)”이란 두 글자를 표기하여 덧붙이고 있다.
앞 시대의 농서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미신이나 황당무계한 내용의 편명이 없다는 사실로 보아 본서는 실용적인 가치가 높은 농서였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본서는 《제민요술》 중의 참된 농업생산과 관련된 각종 기술지식을 전부 포함하고 있으며, 그 내용도 방대하고 체계도 완비되어 있어 일종의 종합농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본서의 끝부분에서 〈세용잡사(歲用雜事)〉란 항목을 두어 월별 생활 및 생산의 중요사항을 다시 한 번 더 나열하여 점검하고 있는 것도 인상 깊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중원에 도입된 지 오래지 않은 작물이거나 특이한 농업기술로 재배된 작물의 경우, “신첨(新添)”이란 말을 덧붙여 풍토론(風土論)을 극복하였다는 점이 주목된다. 기술된 내용으로 미루어볼 때 본서는 황하 유역의 사람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송(宋) 멸망 전에 편집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5. 가치와 영향

《농상집요》의 자료 선택은 엄격하며 실용적 가치가 매우 높다. 《사고전서총목제요(四庫全書總目提要)》에서는 “상세하면서 거칠지 않으며, 간단하면서 요점이 있고, 농가 중에서 근본을 잘 설명하였다.”라고 하였다. 석성한은 《농상집요》에 대해 중국의 가장 오래된 관찬 농서로서 농업생산 기술지도서로 잘 응용을 할 수 있게 편집되었다고 하였다.
이 책이 지원(至元) 연간에 간행된 후, 인종(仁宗) 연우(延祐) 연간에 또 절강행성(浙江行省)에서 간행되었고, 영종(英宗)·명종(明宗)·문종(文宗) 및 순제(順帝) 때에도 보급하도록 영을 내렸으며, 지순(至順) 3년(1332)에는 간행본이 1만 권에 달했다는 것은, 이 책이 중국 농업생산에 있어 많은 영향을 끼쳤음을 보여준다. 이외에 《농상집요》는 또한 고려(高麗) 말에 유입되어 조선(朝鮮) 초 농서편찬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재상(栽桑)·양잠 기술은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6. 참고사항

(1)명언
• “각 지역에서 비슷한 농시(農時)에 작물을 재배하는 것은, 실로 비파의 기러기발을 아교로 붙여서 곡조를 내지 못하는 것과 같다.[苟比而同之 殆類夫膠柱而鼓瑟矣]” 〈파종(播種) 구곡풍토급종시시월(九穀風土及種蒔時月)〉
• “아침에 말을 타고 달리는 것은 곡식의 힘이고, 낮에 달리는 것은 물의 힘이다.[旦起騎穀 日中騎水]” 〈자축(孳畜) 마(馬)〉
• “하지 이후에 삼을 심으면, 개[狗]마저 (삼밭에) 숨을 수 없다.[夏至後 不沒狗]” 〈파종(播種) 마(麻)〉
(2)색인어:농잠(農桑), 전훈(典訓), 파종(播種), 양잠(養蠶), 죽목(竹木), 약초(藥草), 자축(孶畜), 세용잡사(歲用雜事).
(3)참고문헌
• 中國農書槪說(惠富平·牛文智 著, 西安地圖出版社)
• 中國農學書錄(王毓瑚 編著, 中華書局)
• 農業古籍版本叢談(肖克之, 中國農業出版社)
• 麗元代의 農政과 農桑輯要(최덕경 외, 동강)
• 농상집요 역주(최덕경 역주, 세창출판사)

【최덕경】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3.10.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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