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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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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주집(中州集)》은 금(金)·원(元) 두 왕조를 섬겼던 원호문(元好問)이 편찬한 금대(金代) 시가총집(詩歌總集)이다. 금·원 교체의 상황에서 시를 통해 역사를 보존한다는 이시존사(以詩存史)의 취지로 금 왕조 시인들의 행적과 시가 작품을 기록하여 후대에 전하려는 데 편찬의 목적이 있었다.

2. 편찬자

(1) 성명:원호문(元好問(1190년 8월 10일~1257년 10월 12일))
(2) 자(字)·별호(別號):자는 유지(裕之), 호는 유산(遺山)으로 세칭 유산선생이라 칭함
(3) 출생지역:태원(太原) 수용(秀容(현재의 중국 산서성(山西省) 흔주(忻州)))
(4) 주요활동과 생애
학경(郝經)의 〈유산선생묘명(遺山先生墓銘)〉에 따르면 원호문의 선조는 자발(柘拔(혹은 탁발(拓跋))) 위(魏)의 후예라 하며, 증조부 원춘(元春(혹은 元椿)) 때 흔주에 정착했다. 부친 원덕명(元德明)은 당시 시명(詩名)이 있어 《동암집(東岩集)》을 남겼다. 삼형제 중 셋째로 태어나 생후 7개월 때 숙부 원격(元格)의 양자가 되었다. 7세에 시를 지어 신동으로 불렸고, 11세 때 노택(路擇)에게 글을 배우기 시작하여, 14세 때 능천(陵川) 땅의 학진경(郝晉卿)을 사사(師事)하여 19세 때 학문을 이뤘다. 16세 때부터 과거에 응시했으나 계속 낙방하는 가운데 몽고군의 침략으로 형제를 잃고 국가가 위난에 처하는 상황에 처했다. 정우(貞佑) 2년(1214) 과거에 응시하기 위해 변경(汴京)에 머물며 조병문(趙秉文), 양운익(楊雲翼), 뇌연(雷淵), 이안(李晏) 등 당시 명사와 교류하며 《기산(箕山)》, 《원로현금대(元魯縣琴臺)》 등 많은 시가를 창작하여 시명(詩名)을 얻었다.
흥정(興定) 5년(1221) 32세에 진사과(進士科)에 급제하나 ‘원씨당인(元氏黨人)’이라는 무고(誣告)로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정대(正大) 원년(元年(1224)) 35세 때, 조병문의 추천으로 굉사과(宏詞科)에 급제하여 국사원 편수(國史院編修)를 제수 받고 변경에 머물렀다. 이듬해 관직 생활에 염증을 느껴 고향집이 있는 등봉(登封)으로 돌아와 머물면서 〈두시학(杜詩學)〉을 저술했다. 그후 하남(河南)과 남양(南陽) 등지의 현령(縣令)으로 선정을 베풀다가, 상서성 영사(尙書省令史), 좌사도사(左使都事), 상서성 좌사원외랑(尙書省左司員外郞) 등의 중앙 관직을 역임하고 한림 지제고(翰林知制誥)에 이르렀다.
천흥(天興) 2년(1233) 몽고군이 변경을 포위하자 애종(哀宗)이 변경을 버리고 피신한 사이에, 최립(崔立)이 군대를 이끌고 변경을 장악한 후 몽고에 항복을 청했다. 이때 왕약허(王若虛) 등과 함께 마지못해 최립의 공덕비문을 찬(撰)했는데, 이 일로 ‘명절(名節)’을 더럽혔다는 세간의 비판을 받았다. 같은 해 4월 몽고의 중서령(中書令)이었던 야율초재(耶律楚材)에게 왕약허 등 금왕조의 인재 54명을 추천하였고, 금이 망한 후 산동(山東) 요성(聊城)으로 압송되어 2년간 죄수 생활을 하다 관씨현(冠氏縣)에 거주했다. 이 때, 나라가 망하는 과정을 목도하면서 ‘이시존사(以詩存史)’의 사명감을 갖고 《중주집》을 편찬하기 시작했다. 야율초재는 원호문을 존중했지만 원왕조의 관직에 나가지 않고 저술과 창작에 전념했다. 원 헌종(憲宗) 2년(1252)에 쿠빌라이를 알현하면서 치국(治國)을 위해 유학(儒學)을 존중하고 유학자를 등용하도록 청했다. 그리고 헌종 7년(1257) 향년 68세로 획록우사(獲鹿寓舍)에서 생을 마쳤다.
(5) 주요저작:시 1380여 수, 사(詞) 380 여 수, 산곡(散曲) 6수,산문 250여 편, 소설 《속이견지(續夷堅志)》 4권 202편, 《중주집(中州集)》 10권,《당시고취(唐詩鼓吹)》 10권,《유산악부(遺山樂府)》 5권 등이 있음. 작품집으론 《유산선생문집(遺山先生文集)》, 《원유산선생전집(元遺山先生全集)》(청(清 )광서(光緖) 독서산방(讀書山房) 중간본(重刊本))등이 있다. 그리고 실전(失傳) 된 저작으로 《금기(錦機)》, 《동파시아(東坡詩雅)》, 《두시학(杜詩學)》, 《시문자경(詩文自警)》, 《임진잡편(壬辰雜編)》, 《금조군신언행록(金朝君臣言行錄)》, 《남관록(南冠錄)》, 《집험방(集驗方)》, 《고물보(故物譜)》 등이 있다.

3. 서지사항

《중주집》의 주요 판본은 간행된 시기에 따라, 원각본(元刻本), 명각본(明刻本), 청각본(淸刻本), 민국본(民國本),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후 배인본(排印本) 등으로 나뉘어진다. 원각본으로는 몽고 헌종(憲宗) 5년(1255) 《을묘신각본(乙卯新刊本)》과 원(元) 지대(至大) 3년(1310) 《평수조씨진덕재각체수본(平水曹氏進德齋刻遞修本)》이 있고, 명각본으로는 명(明) 선덕(宣德) 9년(1434) 《광근서당본(廣勤書堂本)》, 홍치(弘治) 9년(1496) 《이한본(李瀚本)》, 명말 《모진급고각본(毛晉汲古閣本)》이 있다. 청각본으로는 청(清) 《사고본(四庫本)》과 광서(光緖) 7년(1881) 《독서산방본(讀書山房本)》이 있으며, 민국(民國) 시기에는 《무진동씨송분실영원본(武進董氏誦芬室影元本)》, 《사부총간본(四部叢刊本)》, 《중화서국배인본(中華書局排印本) 》 등이 있다.
일본 남북조시대(1336—1392) 때 《중주집》이 각인(刻印)되어 전해지다가, 연보(延宝) 2년(1674)에 명 ‘선덕각본(宣德刻本)’을 근거로 중간(重刊)하고, 다시 명치(明治) 41년(1908) 근등원수(近藤元粹)가 평정(評定)한 3차 간행이 이뤄졌다.
그밖에 명 정가수(程嘉燧)와 청 서우(徐魷)의 선본(選本)이 있었으나 전하지 않으며, 2018년 중화서국(中華書局)에서 출판된 장정(張晶)의 󰡔중주집교주(中州集校注)󰡕 총 8책은 《중주집》의 체례(體例), 판본(板本)의 유전(流傳), 교감(校勘), 평점(平點) 등에 대한 근래 약 20여 년의 연구 성과를 반영한 결과로 평가된다.

4. 편찬 과정과 체례

‘중주(中州(현재 하남성(河南省) 일대))’는 금 왕조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었다. 따라서 ‘중주의 문예 정수(精髓)를 모아 알린다’는 의미로 《翰苑英華中州集》 혹은 《中州鼓吹翰苑英華集》으로 이름을 짓고, 통칭하여 《중주집》이라 했다.
그 체례는 ‘십간(十干)’에 따라 총 10권으로 구성되었고, 금대의 시인 총 249명의 행적을 기록한 ‘소전(小傳)’과 시 2059수, 그리고 ‘소전’이 없이 현종(顯宗)과 장종(章宗)의 시 각 2수와 1수를 첫머리에 수록하였다. 특히 ‘신집(辛集(제8권))’ 목록에 ‘별기(別起)’라는 두 글자가 방주旁注되어 있어서, 갑집(甲集)~경집(庚集(1~7권))까지는 ‘정집(正集)’, 신집(辛集)~계집(癸集(8~10권))까지는 ‘속집(續集)’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아울러 《중주악부(中州樂府)》 1권을 덧붙여 사인(詞人) 36명의 사 115수와 《중주집》의 ‘소전’과 중복되지 않은 5명의 ‘소전’을 수록하였다.
《중주집》의 편찬은 두 차례에 걸쳐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먼저 1233년(44세) 5월~10월까지 약 5개월 간 요성(聊城)에 억류되어 있을 때 상형(商衡)이 제공한 《국조백가시략(國朝百家詩略)》에 근거하여 1~7卷까지를 편찬한 것과, 이후 1235년(46세) 관씨(冠氏)로 거처를 옮긴 후부터 조진옥(趙振玉)의 도움으로 간행되었던 1249년(60세)까지 약 10년 간 전(前)7권에 대한 보완과 후(後)3권에 대한 후속 편찬이 이뤄진 것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작가의 ‘소전’과 시가작품을 수록하는 일관성을 보이지만, 배열 방식은 시간 순서에 따른 배열과 분야에 따른 배열 등으로 양분되어 일관성을 보이지 못한다. 즉, 제1권 ‘우문대학허중(宇文大學虛中)’부터 제9권 ‘마순경(馬舜卿)’까지는 대체로 시간 순서에 따르고 있지만, 제9권 ‘마순경’조 이후부터 제10권까지는 ‘제상(諸相), 장원(壯元), 이인(異人), 은덕(隱德), 삼지기(三知己), 남관오인(南冠五人), 부견(附見)’ 등 분야별로 배열되어 있다. 또한, 제8권에 74명, 제9권에 56명 등 전체 249명의 기록 중 약 52%의 인물이 제8과 제9권에 집중되어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5. 내용과 가치

《중주집》의 내용은 금대 시인 249명의 행적을 기록한 ‘소전’과 시가 작품으로 이뤄져 있다. 특히 ‘이시존사(以詩存史)’의 취지에서 볼 때, ‘소전’에 기록된 내용은 역사기록의 성격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편폭은 30자 이하부터 250자 이상까지 다양하며, 작가의 행적을 중심으로 자호(字號), 관적(貫籍), 재질(才質), 학문(學問), 사승(師承), 과거(科擧), 관력(官歷), 서화(書畫), 시문창작의 득실, 일사(逸事), 수학(修學), 위인(爲人), 교유(交遊), 취미(趣味), 저작(著作), 후계(後繼), 세속(世俗) 등 상당히 광범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
때문에 《사고전서총목(四庫全書總目)》에서는 “대체적으로 시를 통해 역사를 보존하는데 주안점을 두었기 때문에, 다른 각도와 측면에서 바라보는 관점을 드러내어 하나의 격에 얽매이지 않았다.[大致主于藉詩以存史 故旁見側出 不主一格]”라고 하여, 정사(正史)와는 다른 사료적 의미를 부여했다. 가령 희종(熙宗)을 시해하고 황위에 오른 해릉왕(海陵王) 완안량(完顔亮)을 ‘음독낭오(淫毒狼鷔(간악하고 악랄한 금수와 같다))’라 평한 실록(實錄)을 ‘백가일신야(百可一信耶(백 중 하나 정도 믿을 만하다))’라 비판한 가익겸(賈益謙) ‘소전’(권9)의 기록은, 이런 점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즉 ‘소전’의 기록은 금대의 사회·문화·예술은 물론이고, 당시의 정치적 상황이나 몽고와의 전쟁 관계를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또한 ‘소전’의 기록 중엔 해당 인물이 남긴 시문의 창작적 특징과 성과에 대한 비평, 원호문이나 당대 명사의 창작에 대한 이론, 혹은 금대 문단의 득실에 대한 평가 등이 풍부하게 담겨있다. 일례로 채규(蔡珪)의 ‘소전’(권1)에서 “국초의 문사였던 우문허중(宇文虛中), 채송년(蔡松年), 오격(吳激) 등은 뛰어난 인물이라 아니 할 수 없지만, 모두 송(宋)의 유신(遺臣)이라서 본조(本朝)의 문사로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본조의 문파(文派)는 정보(正甫)를 우두머리로 하고 당회영(黨懷英), 조병문(趙秉文) 등이 뒤를 이었다고 할 수 있다[國初文士如宇文太學蔡丞相呉深州之等 不可不謂之豪杰之士 然皆宋儒 難以國朝文派論之 故斷自正甫爲正傳之宗 黨竹溪次之 禮部閑閑公又次之]”라고 한 기록은 이런 면을 잘 보여준다.
특히, 해당 인물의 창작적 특징이나 비평 뒤에 관련된 시구(詩句), 시편(詩篇), 시제(詩題) 등을 예시하여, 의미를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게 했다. 가령 유첨(劉瞻)의 시를 평하여 ‘야일(野逸)’하다 했는데, “‘부엌엔 콩깍지를 태우는 냄새요, 우물가엔 떨어진 참죽 꽃향기라네’와 같은 시가 많다[如厨香炊豆角 井臭落椿花之類爲多]”(권2)라는 예시를 더해, 원호문 자신이 내린 평가를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했다. 이처럼 《중주집》의 ‘소전’은 금대 문학과 원호문 비평이론 연구의 지평을 넓히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음에도, 현재까지 중요하게 다뤄지지 못한 연구의 미개척 분야로 남아있다.
끝으로 《중주집》엔 오격(呉激)의 〈송한봉각사고려(送韓鳳閣使髙麗)〉(권1), 위도명(魏道明)의 〈고려관편량정(髙麗館偏凉亭)〉(권8) 등과 같이 고려에 사신으로 왕래하면서 목도한 고려의 풍속과 풍광 혹은 감회를 담은 시가 작품도 소수 수록되어 있다는 점도 함께 밝힌다.

6. 참고사항

(1) 명언
• “백년의 역사 기록을 하늘이 남겨 주셨으니, 빈 산 향해 품어 안고 눈물을 머금고 바라본다.[백년유고천류재(百年遺稿天留在), 포향공산엄루산(抱向空山掩淚看).)” 〈유산집《遺山集》 권13 〈자제중주집후오수(自題中州集後五首)〉 제5수〉
• “독서의 목적은 藝文을 지으려 데 있지 않고, 관리가 되는 목적은 재물을 키우려는 데 있지 않다. 오직 여러 학문에 통달할 수 있어야 한다.[讀書不爲藝文, 選官不爲利養, 唯通人能之.]”〈 《중주집(中州集)》 ‘학선생천정(郝先生天挺) 소전(小傳)’〉
• “(독서함에) 음과 뜻에 통하지 않는 것이 있으면 백방으로 찾아다니며 통달해 알게 되어야 비로소 멈췄다. 하나라도 의심되는 일이 있으면 그걸 풀기 위해 십년도 마다하지 않았다.[音義有不通者, 捜訪百至, 必通而後已, 有一事闕十年者].” 〈 《중주집(中州集)》, ‘계남시로신원(溪南詩老辛愿) 소전(小傳)’〉
(2) 색인어:원호문(元好問), 이시존사(以詩存史), 중주(中州), 국조백가시략(國朝百家詩略), 금·원문학(金元文學)
(3) 참고문헌
• 中州集校注 全八冊 (張静, 中華書局, 2018)
• 中州集硏究 (胡傳志, 南京大學, 1995)
• 中州集文化意義再評價 (胡傳志, 《晉陽學刊》 第2期, 山西省社會科學院, 1994)
• 中州集作家小傳的文学價値 (裴興榮, 《忻州師範學院學報》 第23卷 第3期, 忻州師範學院, 2007)
• 从中州集作家小傳看元好問的詩學思想 (裴興榮, 《江蘇大學學報(社會科學版)》 第14卷 第1期, 江蘇大學, 2012)
• 中州集版本及流傳考述 (張靜, 《江蘇大學學報(社會科學版)》 第15卷 第6期, 江蘇大學, 2013)

【지세화】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3.10.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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