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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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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림청화書林淸話》는 청나라 말기의 학자 섭덕휘(葉德輝)가 10권 4책의 필기류 형식으로 엮어 1917년에 목판본으로 간행한 판본학・목록학 관련 저술이다.

2. 저자

(1) 성명:섭덕휘(葉德輝)(1864〜1927)
(2) 자(字)・별호(別號):자(字)는 환빈(煥彬), 호는 직산(直山) 또는 해원(郋園), 주정산민(朱亭山民)이란 별호를 사용하기도 했다.
(3) 출생지역:호남성(湖南省) 장사(長沙) 출신
(4) 주요활동과 생애
1892년에 진사(進士)에 합격한 후 이부주사(吏部主事)가 되었지만 얼마 있지 않아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섭덕휘의 가문은 대대로 유학(儒學)을 공부하였고 장서에 취미가 있었다. 장사(長沙)에 관고당(觀古堂)과 여루(麗樓)를 세우고 고서를 수집하여 그 안에 수장했다. 그의 장서 속에는 왕사정(王士禎)・공계함(孔繼涵)・유희해(劉喜海)・원영방(袁芳瑛) 등 청대 장서가들의 장서가 포함되어 있었다. 섭덕휘의 장서에는 송・원대의 판본도 있었지만, 명・청 이래의 정각본(精刻本)・정교본(精校本)・초인본(初印本) 및 초교본(鈔校本) 등이 핵심이었다. 특히 청나라 사람들의 별집(別集)은 그 수장이 비교적 온전하여 당대에 독보적이었다. 이는 그의 집이 호남성(湖南省)에 있어 강소성(江蘇省)이나 절강성(浙江省) 일대의 장서가들처럼 송・원대의 판본을 많이 접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근대 것을 하찮게 여기던 당시의 한계를 뛰어넘어 섭덕휘 장서만의 특색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장서는 그의 사후 일본으로 팔려갔다. 그는 여러 저술을 통해 판본학(版本學)과 목록학(目錄學)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겼다.
(5) 주요저작:《서림청화(書林淸話)》 10권, 《서림여화(書林餘話)》 2권, 《장서십약(藏書十約)》 1권, 《해원독서지(郋園讀書志)》 16권, 《관고당장서목(觀古堂藏書目)》 4권 등을 저술함.

3. 서지사항

《서림청화》는 1917년 처음 목판본으로 간행한 후 3차례의 수정을 거친 1920년에 간행된 관고당(觀古堂) 판본이 가장 좋다. 그 후 상해(上海)의 소엽산방본(掃葉山房本), 영인본 등이 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오류가 발견되었기 때문에 오류를 바로잡고 교정하는 작업이 잇따라 출현하였다. 1936년 중국 학자인 이미(李洣)는 《문란학보(文瀾學報)》 제2권 제2기에 《서림청화교보(書林淸話校補)》라는 글을 발표했다. 《서림청화》의 오류를 바로잡고 빠진 부분을 보충하는 작업이었는데, 아쉽게도 앞의 2권만을 완성하였다. 이미에 앞서 일본 판본학자인 나가사와 기쿠야(長澤規矩也)는 1933년 일본에서 창간된 《서지학》이라는 잡지에 《서림청화규무병보유(書林淸話糾繆幷補遺)》라는 글을 발표했다. 그중 권1〜권3은 《서지학》 제1권 제1기에, 권4는 제3기에, 권6〜권7은 제7권 제4기에, 권8〜권10은 제5기 및 제6기에 실렸다. 그런데 그 사이에 이미의 《교보》가 있었기 때문에 나가사와 기쿠야는 남의 성과를 가로챈다는 혐의를 피하기 위해 권6부터는 교감기의 체제를 바꿨다. 이 때문에 권6은 앞의 4권의 교감기와 그 형식이 달라졌다. 또한 《서림청화》 권5는 명대의 판본에 대한 설명이 많은데, 자신도 별도의 《명대간서연표(明代刊書年表)》를 편집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뒤로 미뤄놓는 바람에 권5는 남겨놓았다. 나가사와 기쿠야가 《서림청화》의 오류를 바로잡고 빠진 것을 보완했던 작업은 주로 원서를 찾아 대조하고 누락된 것을 보완하고 오류를 바로잡았던 것인데, 그의 작업에도 명백한 오류가 있었다.
《서림청화》의 정리본으로는 1957년 고적출판사본(古籍出版社本)과 중화서국본(中華書局本)이 가장 빠르다. 이 책은 1920년에 간행된 섭덕휘의 관고당본(觀古堂本)을 저본으로 연활자로 간행한 것인데, 《서림여화(書林餘話)》와 이미의 《교보(校補)》를 부록으로 했다. 다음으로는 1988년 대만(臺灣)의 양가락(楊家駱)이 주편(主編)한 《중국학술명저(中國學術名著)》 제3집 중 《중국목록학명저(中國目錄學名著)》 제2집 제1책으로 간행된 《서림청화》가 있다. 세계서국(世界書局)에서 간행했다. 《서림여화》가 첨부되어 있을 뿐만이 아니라, 이미와 나가사와 기쿠야가 바로잡고 보충한 것을 편집하여 책 뒤에 붙여놓았다. 이후에도 몇몇 출판사들이 계속해서 《서림청화》를 점교(點校)하여 출판했는데, 그중에서 자석(紫石)의 점교본(1999)에는 《서림청화》의 특징과 문제점, 그리고 판본에 이르기까지 자세한 설명을 붙인 해제가 함께 실려 있다.

4. 내용

섭덕휘가 《서림청화》를 지은 직접적인 동기는 섭창치(葉昌熾)의 《장서기사시(藏書紀事詩)》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그 자신이 말하고 있다. 《장서기사시》 7권은 고금의 장서가들의 업적을 시를 통해 밝혀놓은 책이다. 위로는 황실로부터 아래로는 승려・상인・기생에 이르기까지 사라진 사적들을 찾아내 시 속에 자세히 주석을 달고 알려지지 않은 공적을 밝혀냈다. 그러나 《장서기사시》의 대상은 판본에만 한정되었고 출판의 원류와 교감가(校勘家)들의 장고(掌故)에는 이르지 못했다. 섭덕휘는 《서림청화》의 편찬을 통해 《장서기사시》의 이런 단점을 보완하려 하였다. 《서림청화》는 전통적인 필기(筆記) 형식으로 썼으며 10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1권에서는 출판과 장서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특히 판본에 관한 장서가들의 기록은 지금도 많은 학자들이 참고하고 있다. 책(冊), 권(卷), 본(本), 엽(葉), 부(部), 함(函), 판본(板本), 판편(板片) 등 책과 출판에 관련된 용어들의 의미와 유래도 자세히 밝혀놓았다.
2권에서는 출판과 관련된 각종 개념과 유래를 설명하였다. 절초본(節鈔本)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건상본(巾箱本)이란 무엇이고 누가 무슨 목적으로 만들었을까? 서사(書肆)는 언제 생겨났으며, 언제 유행했는가? 목판본에 권점(圈點)을 표기한 것은 언제부터인가? 목판본에 사용되는 글자체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가? 불법복제를 금지한 것은 언제부터인가? 송대의 유명한 출판업자인 여씨(余氏)와 진씨(陳氏)는 어떤 책들을 출판했는가? 조선의 출판문화와 비교해가며 읽어볼만한 내용들이다.
3권에서는 송대의 관판본(官板本)과 서원본(書院本), 사가판본(私家板本)과 가숙본(家塾本), 그리고 방각본(坊刻本)의 출판 현황을 열거하였다. 출판의 주체에 따라 분류한 것이다. 송대 출판의 개략을 살펴볼 수 있다.
4권에서는 원대의 관판본(官板本), 사가판본(私家板本), 방각본(坊刻本)의 출판 현황을 열거하였다. 특히 건안(建安) 여씨(余氏)를 계승하여 원대부터 명대에 이르기까지 가장 많은 출판을 한 섭씨(葉氏)의 광근당(廣勤堂)에 대해서는 자세히 서술하였다. 원대 출판의 개략을 살펴볼 수 있다.
5권에서는 명대의 출판을 개괄하고 있다. 명대의 관판본, 사가판본, 방각본은 물론이고 수장가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었던 명품들에 대해서도 기술하고 있다. 명판본은 조선시대에 꾸준히 수입되었고, 수많은 서적들이 공사(公私)의 서가에 현전하고 있다.
6권에서는 송본의 출판과 유통에 관해 깊이 있게 서술하고 있다. 송대 국자감에서는 학자들이 종이와 인쇄비를 내면 책을 인쇄해 주었다는 이야기, 송판본에 찬도(纂圖), 호주(互注), 중언(重言), 중의(重意)라는 표제가 있으면 선비들의 과거 준비용 책이었다는 이야기, 송판본의 패기(牌記)에 관한 이야기, 송판본의 서체(書體)에 관한 이야기, 송판본의 판식에 관한 이야기, 송판본을 인쇄한 종이에 관한 이야기, 송판본의 가격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7권에서는 원판본의 서체, 원대 출판의 주체, 원대의 출판비용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명대 출판의 문제점을 나열하고, 고체자(古體字)를 사용하고 출판비용이 저렴했다는 명대 출판의 특징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특히 명대를 대표하는 출판사였던 모진(毛晉)의 급고각(汲古閣)에 대해 집중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모진은 장서가이자 출판가였는데, ‘어떤 장사도 모씨(毛氏)에게 책을 파는 것만 못하다’는 유행어가 생겨날 정도였다. 급고각에서 출판된 서적은 중국뿐만이 아니라, 조선에도 무수히 유통되었다.
8권에서는 활자본의 유래와 함께 명대에 활자 인쇄로 이름 있던 난설당(蘭雪堂), 회통관(會通館) 및 안국(安國)에 대해 이들의 계보에서부터 출판한 서적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또한 조선과 일본의 활자인쇄도 개괄하고 있다. 이 밖에도 투인본(套印本), 회도(繪圖) 서적, 총서(叢書)에 대해서도 그 유래와 대표적인 서적들을 들고 있다.
9권에서는 청대 출판을 개괄하는 내용이다. 내부에서 간행한 흠정서(欽定書)의 목록을 열거해 놓았다. 이 밖에도 납란성덕(納蘭性德) 《통지당경해》 출판의 전말, 완원 《십삼경주소》 출판의 전말, 건가(乾嘉) 연간의 총서 현황 등에 관해 기술하고 있다.
10권에서는 위조된 송판본, 송대의 판금서적, 주자가 서적의 출판을 탄핵한 일, 명대 이래의 필사본, 옛 사람들이 책을 베낄 때 폐지를 사용한 이야기, 여자가 필사한 서적에 관한 이야기, 장서가의 장서인 등에 이르기까지 서적의 유통에 관해 누락된 이야기들을 정리하였다.

5. 가치와 영향

《서림청화》는 중국 출판문화 전반을 비교적 깊이 있게 다룬 최초의 저작으로 출판과 판본에 관한 수많은 물음을 던지고 대답한다. 그 특징을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서림청화》는 고서의 판본에서 사용되는 각종 용어와 명칭을 고증하고 그 근원을 추적하였다. 예를 들면 책(冊)・권(卷)・본(本)・엽(葉)・부(部)・함(函)・판본(板本)・판편(板片) 등의 명칭이 언제부터 시작되었고, 절초본(節抄本)・건상본(巾箱本)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으며, 서사(書肆)는 언제 생겨났고, 그림이 있는 책은 언제 시작되었는가 하는 것 등이다.
둘째, 《서림청화》는 중국 고대 서적 출판에 관한 각종 전문지식을 비교적 체계적으로 논술한 최초의 저작이다. 역대 목판본의 규격과 비용 등을 비롯하여 서적의 수장・교감・판각・인쇄・장정・구입・감별・보존 등의 분야에 대해서도 비교적 자세하게 서술하였다.
셋째, 《서림청화》는 역대 출판기관과 그 곳에서 출판한 서적들의 차이점을 비교하고 우열을 논하였다. 예를 들면 역대 관각(官刻)・사각(私刻)・방각(坊刻)・초본(鈔本)의 유통과 전승은 물론, 장서가로부터 각공(刻工)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성명과 공적에 대해 가능한 한 자세하게 고증하고 비교하였다. 역대 개인 출판가들의 출판 현황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하였다.
《서림청화》가 처음 간행된 것은 1917년이므로 우리나라엔 일제강점기에 유입되었다. 판본 및 목록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보았던 책이다. 이는 한중일 삼국이 동일하였다. 그만큼 판본 및 목록 연구에 중요한 책이다.

6. 참고사항

(1) 명언
• “돈을 모으는 일은 책을 모으는 것만 못하고, 책을 모으는 일은 음덕을 쌓느니만 못하다는 말이 있지만, 책 모으는 일과 음덕 쌓는 일을 겸하면서도 돈 모으는 일과 다름없는 게 하나 있다. 바로 책을 출판하는 일이다.[積金不如積書 積書不如積陰德 是固然矣 今有一事 積金如積陰德 皆兼之而又與積金無異 則刻書是也]” 《서림청화(書林淸話)》 권1 〈총론각서지익(總論刻書之益)〉
• “책을 수장하는 일은 법서(法書)나 명화를 수장하는 일과 다르다. 자손들이 읽을 수 있다면 남겨주지만, 읽지 못한다면 자신의 대에 흩어져 버리므로 이 또한 인생에서 매우 통쾌한 일이다. 이것이 내 평소 지론이다.[藏書與 藏法書名畵不同 子孫能讀貽之 不能讀則及身散之 亦人生大快意事 此吾生平所持論也]” 《서림청화》 권10 〈장서가편호송원각지벽(藏書家偏好宋元刻之癖)〉
• “대개 애첩과 미비(美婢)를 책과 맞바꾸는 일이 멋진 풍류인 것 같지만 사실은 살풍경(殺風景)에 가까운 일이다. 이는 송판본을 좋아하는 벽(癖)이 고황에까지 파고들어 그렇게 인정 없는 행동을 한 것이다. 아마 이치로는 논변할 수 있는 일이 아닐 것이다.[夫以愛妾美婢換書事 似風雅 實則近於殺風景 此則佞宋之癖 入於膏肓 其爲不情之擧 殆有不可理論者矣]” 《서림청화》 권10 〈장서가편호송원각지벽〉
(2) 색인어:섭덕휘(葉德輝), 서림청화(書林淸話), 각서(刻書), 장서(藏書), 판본(版本), 서사(書肆), 급고각(汲古閣)
(3) 참고문헌
• 《書林淸話》(紫石 点校, 北京燕山出版社)
• 《서림청화-중국을 이끈 책의 문화사》(박철상 역, 푸른역사)

【박철상】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3.10.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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