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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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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수리정온(數理精蘊)》은 청(淸)의 강희제(康熙帝)의 명에 따라 저술되고, 1723년에 출판된 《율력연원(律曆淵源)》의 일부로 산학에 관한 저술이다. 역법에 필요한 수학과 함께 실용 수학을 포함하고 있고 명말(明末)에 들어오기 시작한 서양수학, 특히 논리적 증명을 포함한 기하학도 함께 들어 있는 산서이다. 삼각법(三角法), 대수(對數) 등을 도입하고, 수표도 포함하고 있다. 조선에서 서양 천문학을 연구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잡과(雜科)의 하나인 음양과(陰陽科)에 속한 천문 분야의 시험 과목으로 정조 15년(1791)에 채택되었지만 너무 방대한 저서이므로 실질적인 영향은 매우 적은 학자들에게만 한정되었다.

2. 저자

여러 사람이 편집한 산서로 저자가 없다. 편집에 관련된 대표적인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1) 강희제(康熙帝)(1654~1722, 재위 1662~1772):예수회 신부 Ricci(利瑪竇, 1552~1610)가 1583년 중국에 들어온 이후 유럽 여러 나라의 신부들이 대량의 산서와 역법을 가지고 들어왔다. 이들에 기초하여 서광계(徐光啓)(1562~1633)는 서양역법에 필요한 수학을 포함한 《숭정역서(崇禎曆書)》를 편찬하고, 이어서 이천경(李天經)(1579~1659)이 136권으로 확대하여 《숭정역서(1635)》를 출판하였다. 한편 Adam Schall von Bell(湯若望, 1591~1666)은 《숭정역서》를 개편하여 새로운 역산서 《서양신법역서(西洋新法曆書)(1645)》 -이는 후에 《신법산서(新法算書)》로 개명됨– 를 출판하면서, 새로운 역법인 《시헌력(時憲曆)》을 같은 해에 시행하게 된다. 천문학에 대한 지식이 없는 양광선(楊光先)(1597~1669)이 1659년 정치적으로 《시헌력》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공격을 시작하여 《시헌력》을 정지시키고 탕약망은 흠천감(欽天監)에서 파면되었다. 그러나 1669년 Verbiest(南懷仁, 1623~1688)가 《시헌력》이 정확하다는 것을 보여, 강희제는 다시 서양 천문학과 서양수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강희제는 지도자가 정확히 모르고 10년을 허비한 일에 충격을 받아 Bouvet(白晉, 1656~1730), Gerbillon(張誠, 1654~1707), Pereyra(徐日升, 1645~1708), Thomas(安多, 1644~1709) 등에게 서양수학과 천문학을 정기적으로 배워 상당한 지식을 가지게 되었다. 새로운 이론을 통괄하는 책을 저술할 필요에 따라 강희제는 음악, 역법, 이들을 통괄하는 수학을 위하여 《율려정의(律呂正義)》, 《역상고성(曆象考成)》, 《수리정온(數理精蘊)》으로 이루어진 《율력연원(律曆淵源)》을 저술하라고 하고 이를 진두지휘하였다.
편집에 참여한 중요 인물은 성명, 생몰년, 자(字), 호(號) 순서로 나타낸다. 자세한 내용은 참고 문헌에서 찾을 수 있다.
① 윤지(允祉)(1677~1732):강희제의 삼남으로 강희제가 수학과 천문학을 배울 때 함께 배워서 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초명은 윤지(胤祉)이며, 《율력연원》 편찬을 주관하였다.
② 진후요(陳厚耀)(1648~1722):자는 사원(泗源), 호는 서봉(曙峯)이다.
③ 매각성(梅瑴成)(1681~1763):자는 옥여(玉汝). 호는 순재(循齋), 유하거사(柳下居士)이다. 매문정(梅文鼎)의 손자이다.
④ 하국종(何國宗)(?~1766):자는 한여(翰如)이다.
⑤ 명안도(明安圖)(1692?~1764):자는 정암(靜庵)이다.
《역상고성》의 편집에 관련된 인물로 아제도(阿齊圖), 하국동(何國棟)이 고측(考測), 하국주(何國柱)는 교산(校算)으로 들어 있다. 하국동, 하국주 모두 하국종의 형제이다. 아제도와 하국주는 1713년 청의 사신으로 조선에 들어와서 조선의 산학자와 만나고 싶다고 하였다. 이때 조선에서 가장 뛰어난 산서인 《구일집(九一集)》의 저자 홍정하(洪正夏)(1684~1727)와 《구고술요(句股術要)》의 저자 유수석(劉壽錫)이 이들을 만나 천원술(天元術)을 완벽하게 이해한 조선의 수학으로 산대와 천원술을 모르는 그들을 놀라게 한 것이 《구일집》의 〈잡록(雜錄)〉에 들어 있다.

3. 서지사항

1966년 양광선이 일으킨 분란이 정리된 후 서양 신부들의 입지가 강해지고 따라서 전통 중국 사상과 충돌이 일어나게 되었다. 강희제는 서양의 천문학, 측량법, 천문의기(天文儀器), 계산법 등을 받아들이면서 중국 전통 수학과 천문학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중국수학, 천문학과 서양수학, 천문학을 동시에 연구한 매문정(梅文鼎)(1633~1721)을 이광지(李光地)(1642~1718)를 통하여 만난 강희제는 중국 자체로 필요한 천문학, 음운학과 이들은 모두 수학 연구와 관계된 것을 인지하고 1713년 《율력연원》을 저술하라고 명을 내렸다. 이의 편집을 위하여 창춘원(暢春園)에 몽양재(蒙養齋)을 건립하여 이곳에서 《율력연원》 편찬을 진행하였다. 전국에서 산학과 천문학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을 모아 《율려정의》 5권, 《역상고성》 42권, 《수리정온》 53권 등 모두 100권으로 이루어진 《율력연원》을 강희제가 죽은 다음해인 1723년에 출판하였다.
《수리정온》은 상권 5권, 하권 40권과 삼각함수 수표인 팔선표(八線表) 2권, 대수, 즉 로가리듬(logarithm)의 상용 수표(數表)인 대수천미(對數闡微) 2권, 대수표(對數表) 2권, 팔선대수표(八線對數表) 2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 하권만 9줄로 이루어진 네 쪽을 한 쪽으로 영인한 것이 모두 1,225쪽이고, 수표는 두 쪽을 한 쪽으로 영인한 것이 1,246쪽으로 그 양이 방대하다. 이는 《흠정사고전서(欽定四庫全書)》 자부(子部) 〈천문산법류(天文算法類)〉에 들어 있다.
상편은 〈수리본원(數理本原)〉 1권, 〈기하원본(幾何原本)〉 3권, 〈산법원본(算法原本)〉 1권으로, 〈기하원본〉은 Euclid의 《원본(Elements)》과 관계가 없고, Pardies(1636~1673)의 기하 교과서인 《Elemens de Geometrie(1671)》를 저본으로 하여 편찬한 것이다.
하편은 〈수부(首部)〉 2권으로 유리수체(有理數體)의 연산을 정의한다. 이어서 〈선부(線部)〉 8권, 〈면부(面部)〉 12권, 〈체부(體部)〉 8권으로 1차식, 2차식, 3차 이상의 식 혹은 선분이나 직선, 평면 도형, 입체 도형 등으로 수학을 분류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말부(末部)〉 10권을 더하였다.
1645년(인조(仁祖) 23년) 조선에 《시헌력》을 들여온 것이 《실록(實錄)》에 나타난다. 이어서 1646년 《서양신법역서》가 들어오고 관상감의 송인룡(宋仁龍)을 청나라에 보내 역산법(曆算法)을 배워오게 하였다. 《서양신법역서》에 들어 있는 수학은 《대측(大測)》, 《비례규해(比例規解)》, 《주산(籌算)》, 《팔선표(八線表)》, 《기하요법(幾何要法)》, 《측량전의(測量全義)》 등 20권인데 삼각함수와 구면기하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전혀 기하에 대한 이해가 없는 조선 학자들에게는 매우 어려운 책이었을 것이다. 한편 이지조(李之藻, 1565~1630)는 천주교 교리로 된 〈이편(理編)〉 10권과 서양 신부들, 서광계 등과 함께 번역한 책으로 이루어진 〈기편(器編)〉 10권을 모아서 《천학초함(天學初函)(1629)》을 출판하였다. 〈기편〉에는 Ricci와 서광계가 Euclid의 《Elements》 처음 6권을 번역한 《기하원본(幾何原本)(1607》과 《측량법의(測量法義)(1605)》가 들어있다. 한편 Ricci와 이지조가 Clavius(克拉維斯, 1537~1562)의 《Epitome Arithmeticae Practicae(1583)》를 저본으로 하고, 정대위(程大位)(1533~1606)의 《산법통종(筭法統宗)(1592)》을 첨가한 《동문산지(同文算指)(1613)》도 함께 들어 있다. 17세기 말 경 《천학초함》이 조선에 들어와 《동문산지》를 최석정(崔錫鼎)(1646~1715)이 《구수략(九數略)》에 인용하였다. 조태구(趙泰耈)(1660~1723)는 《기하원본》을 연구한 것이 그의 《주서관견(籌書管見)(1718》에 나타나서 양반들은 《천학초함》을 통하여 서양수학을 최초로 접한 것을 알 수 있다.
1723년에 출판된 《율력연원》은 1730년(영조(英祖) 6년)에 사은사(謝恩使)로 중국에 간 관상감의 일관(日官) 이세징(李世澄)이 들여왔다. 73책(冊)이라 하였는데 어떻게 세었는지 알 수 없다. 1737년 많은 관상감 관원들이 이를 참조하여 《역상고성》과 《수리정온》의 일부인 17책(冊)을 개간(開刊) 하였다. 1810년(순조(純祖) 10년)에 《역상고성》 한 질(帙)과 《수리정온》 한 질(帙)을 더 들여오고, 이어서 1850년(철종(哲宗) 1년), 1861년(철종 12년)에도 각각 《수리정온》을 들여왔다. 이들을 들여오는데 관여한 관상감 관원과 역관(譯官)들은 모두 가자(加資) 등의 상을 받은 것이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 나타난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이나 《승정원일기》에 동시에 언급된 산서는 《수리정온》이 유일한 것이다.
18세기 말 중국에서 송, 원의 수학이 재발견되어 《수리정온》의 방정식 이론이 크게 미치지 못하고 또 19세기 초에 주세걸(朱世傑)의 《사원옥감(四元玉鑑)(1303)》 연구의 결과로 《수리정온》의 입지가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아편전쟁(阿片戰爭)(1840~1842, 1856~1860) 이후 서양문물과 함께 미적분학, 대수학을 포함하는 서양수학이 들어오면서 초보 수준의 《수리정온》은 다시 서양수학의 기초를 세우는데 많이 활용되어 중국에서 여러 판본이 출판되었다.

4. 내용

전술한 대로 《수리정온》은 그 양이 방대하여 상세한 내용을 모두 밝힐 수 없다.
상편은 〈수리본원(數理本原)〉으로 시작한다. 중국의 역법과 수학이 하도(河圖), 낙서(洛書)부터 시작하여 구장(九章)으로 이어지고, 육예(六藝)의 하나로 지정된 것과 진한(秦漢) 이후에 혼천의(渾天儀)를 만든 장형(張衡)(78~139), 황극력(皇極曆)을 만든 유작(劉焯)(544~608), 대명력(大明曆)(462)을 편성한 조충지(祖冲之)(429~500) -‘조중지(祖中之)’로 적혀있다– 를 언급하였다. 중국의 전통 수학은 다른 학문과 마찬가지로 《역경(易經)》과 관련지어 설명하고 있다. 특히 계사(繫辭)는 거의 모든 산서에 인용된다. 소자(邵子)(소옹(邵雍), 1011~1077), 주자(朱子)(주희(朱熹), 1130~1200)의 이론에 따라 〈하도〉, 〈낙서〉를 소개하고, 〈주비경해(周髀經解)〉는 《주비산경(周髀算經)》에 들어 있는 주공(周公)과 상고(商高)의 대담을 넣어 중국 전통의 측량법을 언급하였다. 이는 강희제의 《역상고성》의 편찬 목적을 위하여 중국 전통 수학과 천문학의 역사를 나타내려 한 것이다.
〈기하원본〉은 점에서 시작하여 선분, 면, 체를 정의하고 삼각형, 원, 평행선의 간단한 성질과 다각형과 내접, 외접원을 사용하여 원과 타원의 넓이. 간단한 입체도형과 그 부피를 다루었다. 이때 Cavalieri(1598~1647) 원리를 사용하였다. 중국수학은 직각삼각형의 이론인 구고술(句股術)과 《해도산경(海島算經)》을 제외하면 기하학이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구고술은 거의 대수적으로 해결하고 《해도산경》에 나오는 닮은 삼각형의 성질도 넓이로 접근하였다. 닮은 삼각형 -‘동식(同式)’이라 하였다– 의 성질은 여러 곳에서 응용되어 비례관계가 중요한 주제로 취급되었다. 이를 사용한 측량법도 간단히 취급한다. Euclid의 《기하원본》과 달리 용어의 통일, 논리적인 접근 등이 모두 부족하여 〈기하원본〉은 처음 기하를 접근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힘든 책이었을 것이다.
〈산법원본〉은 약간의 분수에 대한 것을 제외하면 자연수의 구조를 논한 것이다. 약수, 배수, 소수(素數)– ‘수지근(數之根)’이라 함 –와 비례식의 대수적 성질을 다루었다. 특히 기하에 많이 응용되는 연비례식, a:b=b:c를 자세히 다루었지만 이도 자연수만으로 접근하여 제한적이다. 비(比)를 통하여 유리수를 이해하였는데 2가 무리수라는 것을 정확한 증명 없이 설명하고 등차수열, 등비수열을 간단히 취급하였다.
하편은 〈수부(首部)〉로 시작하는데, 이는 도량형의 단위와 자연수와 분수의 사칙연산을 필산으로 취급한다.
〈선부(線部)〉는 비례와 비례배분 등을 모두 5권에 걸쳐 자세히 다루고 나서 《구장산술(九章筭術)》의 〈영부족(盈不足)〉장에 해당되는 것을 〈영뉵(盈朒)〉으로 8권에서 취급한다. 이 방법은 이중가정법(rule of double false position)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단순가정법(rule of simple false position)은 고대 이집트에서 사용되었다. 영부족법은 Leonardo Pisano(=Fibonacci)의 저서 《Liber Abaci(1202)》에 El chataieym, 즉 Khitai(=거란(契丹)=요(遼))를 사용하여 중국에서 건너온 것을 나타내었다. 이를 《동문산지》에 각각 차쇠호징(借衰互徵), 첩차호징(疊借互徵)이라 하고, 이는 바로 영뉵법과 같은 것을 나타내었는데 《수리정온》에는 〈영뉵〉을 앞에 넣고, 〈차쇠호징〉, 〈첩차호징〉을 넣었다. 1차 연립방정식은 《구장산술》의 〈방정(方程)〉장에서 행렬로 표시하고 소거법을 사용하여 해를 구하였다. 이를 〈선부〉의 마지막 권에서 취급한다. 중국산서는 모두 각 방정식을 열로 나타내었는데 《수리정온》은 행으로 나타내었다. 비례를 제외하면 〈선부〉는 중국 전통수학의 대응되는 분야의 구조와 같다.
〈면부(面部)〉는 서양에서 들어온 기하의 구조와 관계되어 새로운 것이 상당히 많이 포함되어있다. 먼저 제곱은 정사각형의 넓이로 도입하고 제곱근은 역연산으로 도입한다. 송, 원대에 이룩한 천원술을 통한 방정식의 구성과 증승법(增乘法)을 사용한 다항방정식의 해법인 증승개방법(增乘開方法)을 이해 못한 당시의 중국 수학자들은 서양에서 들어온 제곱근을 구하는 간편 필산법(筆算法)을 사용하였
다. 또 직사각형의 넓이와 두 변의 합이나 차를 주고 두 변 a,b를 구하는 일반 2차방정식도 중국의 고법, (a±b)24ab=(ab)2을 사용하여 구하는 것과 함께, 2차방정식의 해법도 증승개방법을 사용하지 않아 체계적이지 못하다. 《구장산술》의 마지막 장인 〈구고(句股)〉장은 증명을 포함하지 않고 구고술을 서술하는데, 《수리정온》의 〈구고〉는 증명을 포함하고 있다. 직각삼각형의 세변의 합, 차, 넓이 등에 대한 조건을 주고 변들을 구하는 구고술은 전통수학에서 방정식의 이론을 설명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 문제도 대수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증명을 포함한 기하로 접근하여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평면도형 중에서 가장 간단한 삼각형도 직각삼각형을 제외하면 전통수학에서 제대로 취급할 수 없었다. 정삼각형의 높이가 무리수이므로 삼각형은 기피하게 되었다. 《기하원본》과 같이 《수리정온》도 삼각형의 성질을 자세히 다루었다. 유휘는 지름이 2인 원에 내접하는 정6각형부터 시작하여 차례로 내접 정2n×6각형 (n5) 넓이의 근삿값이 3.14(π)임을 밝혀내었다. 《수리정온》은 〈할원(割圓)〉에서 위의 n=33의 경우까지 생각한 정다각형의 한 변의 길이를 구하여 원주율을 소수점 아래 12자리까지 구하였다. 마찬가지로 원에 내접정사각형, 외접정삼각형, 외접정사각형부터 시작하여 같은 결과를 얻어내었다. 삼각함수도 원의 한 호의 시점 C에서 원의 접선과 중심 B와 호의 종점 D를 잇는 직선이 이루는 삼각형 BCH와 D에서 반지름 BC에 내린 수선이 만난점을 A라 할 때 AD, CH, BH, AC를 각각 중심각의 정현(正弦), 정절(正切), 정할(正割), 정시(正矢)라 하고, 중심각의 여각(餘角)에 대하여 같은 방법으로 구한 것들을 원래 중심각의 여현(餘弦), 여절(餘切), 여할(餘割), 여시(餘矢)라 하고, 이들을 통틀어 중심각 CBD의 팔선(八線)이라 한다. 동심원의 같은 중심각에 대한 이들의 값은 비례함을 곧 알 수 있다. 당시에 팔선은 원의 반지름과 함께 생각하였으므로, 이들의 수표도 반지름을 주고 이에 대응하는 값을 나타낸 것이 팔선표이다. 따라서 엄격한 의미에서 팔선과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삼각함수는 다르지만 편의상 이들을 삼각함수의 값이라 한다. 특수각의 삼각함수 값을 구하고 이들의 응용을 취급한다. 삼각함수의 성질로 정현과 여현의 관계, 배각의 공식, 반각의 공식을 포함하고 그 응용을 취급한다. 닮은 삼각형과 팔선표를 이용한 측량법을 상세히 취급하여 구고술과 《해도산경》의 측량법을 크게 확장하였다. 이어서 다각형, 원의 문제를 다루고, 지름을 주고 원에 내접, 외접하는 정다각형의 한 변과 넓이를 구한다. 정다각형의 변과 넓이의 관계, 또 이들과 원의 관계를 다룬다.
〈체부(體部)〉는 〈면부〉와 같이 정육면체부터 시작한다. 세제곱근과 일반 3차방정식의 해법도 송, 원대의 수학에서 벗어나 구조적이지 못하다. 이는 매문정의 《소광습유(少廣拾遺)》를 인용하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조선 수학자들은 이들을 무시하였다. 3차원 도형을 직선체(直線體) 곡선체(曲線體)로 나누어 취급한다. 타원과 마찬가지로 타원체도 도입하고 곡면체의 부피를 제대로 다루었다. 정다면체와 구(球)에 내접, 외접하는 정다면체의 관계 및 정육면체와 구의 관계도 〈면부〉의 원과 정다각형의 확장으로 취급하였다. 전통수학에서 유한급수의 합은 대응되는 평면도형의 넓이, 입체의 부피와 관계를 지어 다루었는데 《수리정온》도 같은 방법을 사용하여 퇴타(堆垜)를 〈체부〉에서 논하였다.
〈말부(末部)〉에서 다항식을 나타내는 방법인 차근방비례(借根方比例), 줄여서 차근방(借根方)을 도입한다. 덧셈, 뺄셈, 등호를 각각 .-,=으로 나타내고 - 덧셈 기호 +는 중국어 십(十)자와 구별하기 위하여 ‘’로 대치함 –, 상수, x,x2,x3,x4,x5은 진수(眞數), 근(根), 평방(平方), 입방(立方), 삼승방(三乘方), 사승방(四乘方) 등으로 하여 다항식 2-3x+4x2-5x3+6x4-7x5을 2眞數-3根4平方-5立方6三乘方-7四乘方과 같이 나타내는 것이 차근방이다. 이들의 사칙연산은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것과 같다. 천원술은 음의 지수를 포함하는 유리다항식도 나타내고 나눗셈은 αxκ로 나누는 것 밖에 없지만 차근방은 임의의 다항식으로 나누는 것도 도입하였다. 〈체부〉에서 도입한 3차 이하의 방정식의 해법을 4차 이상으로 확장하고, 차근방을 사용하여 2차부터 임의의 차수의 다항방정식의 해법을 취급하였지만 매문정의 《소광습유》의 방법을 그대로 유지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전통수학 1차 방정식은 방정식을 구성하지 않고 주어진 조건을 변형하여 “αx=b” 형태로 하여 a,b를 각각 법(法), 실(實)이라 하고 나눗셈으로 해를 구한다. 《수리정온》도 차근방을 사용하여 방정식을 구성하는데 〈선부〉, 〈면부〉, 〈체부〉로 나누어 1차부터 고차 방정식을 구성하였다. 이들 방정식은 천원술의 ρ(x)=0의 형태가 아니고 모두가 ρ(x)=α (ρ(x)는 상수항을 포함하지 않고, a는 상수) 형태이다. 지금까지 논한 방법에서 약간 벗어난 문제 46문항을 37권 〈난제(難題)〉에 모아놓았다. Newton(牛頓, 1642~1727), Leibniz(萊布尼茲, 1646~1716) 등의 수학이 중국에 들어오기 전의 천문학에서는 정확한 측정과 계산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삼각함수를 이용한 측정도 가능한 한 정확한 수표, 즉 유효숫자의 자릿수가 많아야 하고 따라서 계산도 복잡해졌다. 실제로 〈팔선표〉는 아홉 자리로 되어있다. 이들의 계산을 위하여 도입된 것이 대수(對數)이다. Napier(訥白爾·納披爾, 1550~1617)는 대수를 도입하였을 뿐 아니라, Napier Bones라 알려진 계산기도 발명하였는데 매문정이 이를 주산(籌算)이라 번역하였다. 제38권 〈대수비례(對數比例)〉는 Napier와 함께 상용대수표와 대수의 성질을 연구한 Briggs(巴里知斯, 1561~1630)를 함께 언급하고, 대수(對數)를 논하였다. 비례자(比例尺)의 구성과 그 응용을 제39, 40권 〈비례규해(比例規解)〉에서 다루었다. 이는 상편 제4권과 《숭정역서》와 《산법신서》에 함께 들어있는 Rho(羅雅谷, 1593~1638)가 역찬(譯撰)한 《비례규해(比例規解)》에 기초하여 서술한 것이다. 특히 간평의(簡平儀)의 절기선(節氣線), 시각선(時刻線), 평지일구법(平地日晷法)에서 일구(日晷), 즉 해시계의 시각, 절기선 등을 자세히 다루어 관상감의 관원들에게 〈비례규해〉는 가장 중요한 자료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팔선표〉는 10초(秒) 단위로 잰 각들의 팔선(八線)의 값을 9자리, 즉 반지름이 1억인 팔선의 값, 〈대수표〉는 다섯 자릿수들의 대수값을 지표와 가수(假數)를 함께 나타내어 가수부분은 10자리까지 주어지고 〈팔선대수표〉도 마찬가지이므로 매우 정확한 근삿값을 나타낸 수표이다.

5. 가치와 영향

서양수학과 중국의 전통수학을 함께 논한 《수리정온》은 여러 가지 단점을 가지고 있다. 명대에 잊힌 송, 원대의 수학을 논할 수 없었고, 서양수학도 측정과 계산을 위주로 하는 천문학을 위한 수학으로 제한되고, 기하는 저본의 수준이 낮고 대수는 아직 정립되기 이전의 것들만 취급하고 양이 방대하여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단행본이 《수리정온》이다. 그러나 비례와 그 응용, 삼각함수의 도입과 그 응용, 계산을 위한 대수(對數)의 도입, 삼각형과 원을 기초로 하여 논리적인 증명에 대한 어느 정도의 개념 확립 등은 전통수학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을 것은 틀림없다. 삼각함수를 사용한 측량법과 천문학 등도 그 수표, 즉 〈팔선표〉의 자릿수를 너무 크게 잡아서 재출판이 불가능해져 그 활용이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조선에서 홍대용(洪大容)(1731~1783)이 그의 저술 《주해수용(籌解需用)》에 삼각측량법을 도입하였지만 수표가 없어서 전혀 이어지지 못하였다. 그가 《수리정온》의 개방법을 제대로 이해한지는 알 수 없지만 《산학계몽》의 방정식을 증승개방법으로 푼 것만 《주해수용》에 넣은 것도 흥미 있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수표가 없는 대수(對數)도 의미 없는 일이 되어 조선의 산서에는 전혀 취급되지 않았다. 《수리정온》에 들어있는 〈기하원본〉으로 기하를 시작하는 일도 거의 불가능하였고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것과 Euclid의 《기하원본》이 같은 책인 줄 알았다. 중국은 18세기 말에 송, 원대의 수학이 재발견되어 특히 천원술부터 사원술까지 연구가 되었지만 일부 수학자들은 《수리정온》의 차근방(借根方)으로 이를 접근하여 많은 오류를 범하였다. 조선 산학자로 이상혁(李尙爀)(1810~?)은 그의 저술 《차근방몽구(借根方蒙求)》에서 《수리정온》의 모든 분야에서 문제를 선택하여 차근방으로 방정식을 구성하였다. 그는 천원술의 우수성을 인지하여 이후에는 천원술을 주로 사용하였다. 유수석은 그의 《구고술요》에 천원술로 구성한 방정식을 사용하였는데 남병길(南秉吉)(1820~1869)은 《수리정온》의 영향을 받아 《구고술요도해(句股術要圖解)》를 저술하여 원저를 많이 손상시켰다. 청의 장돈인(張敦仁)(1754~1834)은 《수리정온》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 천원술을 사용하여 7세기에 왕효통(王孝通)이 고차방정식을 다룬 가장 오래된 산서인 《집고산경(緝古筭經)》의 해설서 《집고산경세초(緝古筭經細艸)(1803)》를 저술하였다. 남병길은 차근방을 사용하여 《집고산경》의 세초인 《집고연단(緝古演段)》을 저술하였다. 한편 이상혁과 남병길은 《수리정온》과 중국 산서들을 종합하여 《산학정의(算學正義)(1867)》를 출판하였다. 방정식의 이론에 관한 《수리정온》의 영향은 홍정하의 《구일집》과 비교하면 전혀 조선 산학의 발전에 기여한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수리정온》의 서문에 해당하는 〈수리본원(數理本原)〉은 다음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는 수학을 연구해야 하는 동기로 많이 회자되었다.“상고적 일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나온 후 팔괘(八卦), 구주(九疇)가 만들어지고 수학도 같은 이치로 시작되었다. 하도와 낙서는 천지의 상서에 대응하였으나 성인을 말미암아 세상에 나왔고, 수학은 만물의 이치를 궁구하였으나 성인을 통해 분명함을 얻었다.[粵稽上古 河出圖洛出書 八卦是生 九疇是敍 數學亦於是乎肇焉 蓋圖書應天地之瑞 因聖人而始出 數學窮萬物之理 自聖人而得明也]”라고 하였다 〈수리본원(數理本原)〉.
중국 수학의 기초를 이룬 유휘(劉徽)와 이후의 수학자를 전혀 언급하지 않고, 수학을 분명히 힌 성인도 없다. 실제로 《수리정온》은 위의 논지와 전혀 상관없이 편찬되었다.
• 《수리정온》에서 정의한 팔선의 값은 원의 반지름 (r)이 주어진 경우에 현재 사용하는 삼각함수 값의 r배이다. 그러나 이들 두 함수의 기본 성질은 그대로 통용된다. 특수각의 삼각함수 값과 일반각의 팔선의 값을 구하는 방법을 〈육종삼요(六宗三要)〉에서 다루었다. “서양 역산가들이 할원팔선표를 만들었다. 지름이 주어진 원에 내접하는 (정(正))6, 4, 10, 3, 5, 15각형을 육종(六宗)이라 하는데, 이들의 한 변이 대응되는 각 (30°,45°,18°,60°,36°,12°)의 통현이 되어, 각 변의 길이의 절반이 대응되는 정현의 값이 된다. 이들 정다각형의 한 변을 구하여 팔선(八線)의 값을 모두 구할 수 있다” [西洋曆算家作割圓八線表 始自圓內容六邊四邊十邊三邊五邊十五邊各曰六宗 蓋用圓徑求各等邊形之一邊爲相當弧之通弦 以爲立表之原]”
이어서 삼요(三要)는 정현과 여현의 관계, 배각, 반각의 공식을 사용하여 여러 각의 수표를 계산할 수 있음을 나타내었다. 일반각의 팔선표의 계산을 위하여 삼각함수의 여러 성질을 이용하는 간요(簡要)도 함께 들어놓았다. 〈육종삼요(六宗三要)〉
∙〈대수비례(對數比例)〉의 서문에서 Napier와 Briggs를 언급한 다음, 대수의 효용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논하였다.“〈Briggs의 수표가〉 중국에 들어오면서 곱셈과 나눗셈은 덧셈과 뺄셈으로, 제곱은 두 배 따라서 제곱근은 절반, 세배는 세제곱을 따라서 3으로 나누면 세제곱근을 구하고 이는 n제곱과 n제곱근에 그대로 적용된다, 항상 가수로 진수를 구할 수 있어서 복잡한 승제를 가수로 쉽게 구할 수 있다. 이것이 수표의 원리이다.[始至中國 其法以加代乘 以減代除 以加倍代自乘 故折半卽開平方 以三因代再乘 故三歸卽開立方 推之至於諸乘方 莫不皆以假數相求而得眞數 蓋爲乘除之數甚繁而以假數代之甚易也 其立數之原]” 〈대수비례(對數比例)〉
∙18세기 말 이야(李冶)(1192~1279)의 《측원해경(測圓海鏡)(1248)》과 《익고연단(益古演段)(1259)》의 세초(細草)를 《수리정온》의 차근방으로 달아서, 천원술의 구조를 제대로 밝히지 못하여 혼란을 주었다. 전술한 장돈인과 주세걸의 《사원옥감(四元玉鑑)(1303)》에 세초를 단 심흠배(沈欽裴) 등은 《수리정온》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천원술을 복원하였다. 장돈인의 《집고산경세초》의 간술(簡述)에 전통수학을 서법(西法)에 따라 해석하는 잘못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고서를 서양에서 들어온 법에 따라 헛되이 비교하고 엉성하게 해석하면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만들어진다.[較之妄以西法疏釋古書者 眞有霄壤之判]” 《집고산경세초》
(2) 색인어:수리정온(數理精蘊), 강희제(康熙帝), 서양수학(西洋數學), 기하(幾何), 비례(比例), 삼각함수(三角函數), 대수(對數), 차근방(借根方), 필산(筆算), 수표(數表)
(3) 참고문헌
• 中國科學技術典籍通彙 數學卷 三(郭書春 主編, 河南敎育出版社)
• 中國數學史大系 第七, 八卷(吳文俊 主編, 北京師范大學出版社)
• 御製數理精蘊(景印文淵閣四庫全書 子部 天文算法類)
• 曆算全書(梅文鼎, 景印文淵閣四庫全書 子部 天文算法類)
• 新法算書(景印文淵閣四庫全書 子部 天文算法類)
• 〈從《律曆淵源》的編纂看康熙時代的曆法改革〉(韓琦, 世界華人科學史 學術硏討論文集)
• 承政院日記(http://sjw.history.go.kr); 朝鮮王朝實錄(http://sillok.history.go.kr)
【홍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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