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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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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괄지지(括地志)》는 당(唐) 태종의 넷째 아들 이태(李泰)가 주편하고, 소덕언(蕭德言) 등이 편찬한 지리서이다. 주(州)를 강(綱)으로 삼고 그 아래 행정구획인 1,551개 현(縣)의 연혁, 산천, 산물, 풍속, 인물, 고적, 고사 등을 기록하였다. 본서는 남송(南宋) 이후 산일되고, 청(淸) 가경(嘉慶) 2년(1797) 손성연(孫星衍)이 당송대 서적에 인용된 《괄지지》의 문장들을 찾아 정리한 집본(輯本)으로 전해진다.

2. 저자

(1) 성명:이태(李泰)(618~652), 소덕언(蕭德言)(558~654)
(2) 자(字)·별호(別號):이태의 자는 혜포(惠褒), 당 태종 이세민의 넷째 아들 위왕(魏王)이다. 최종 봉호는 복왕(濮王)이며, 시호는 공(恭)이다. 소덕언의 자는 문행(文行)이고, 시호는 박(博)이다.
(3) 출생지역:모두 옹주(雍州) 장안(長安)(현 중국 섬서성(陝西省))
(4) 주요활동과 생애
이태는 당 태종과 장손황후 사이에서 고조 무덕(武德) 원년(618) 태어나 의도왕(宜都王)·위왕(衛王)에 책봉되었으며, 정관 2년(628) 월왕(越王)으로 책봉되고 양주대도독(揚州大都督)을 제수 받았다. 이후 정관 10년(636) 위왕(魏王)으로 사봉(徙封)되었고, 상주도독(相州都督)을 제수 받았다. 본래 문학을 좋아하여 태종은 특별히 왕부(王府)에 문학관(文學館)을 따로 설치해 주었다. 태자 승건(承乾)을 못마땅해 하던 태종의 총애를 받으며 태자 지위를 기대했으나, 정관 17년(643) 태자 승건이 폐위되고 동생 치(治)가 태자로 책봉되면서 동래군왕(東萊郡王)으로 강등되었다. 정관 21년(647) 복왕(濮王)으로 진봉(進封)되었다. 고종 즉위 후 왕부를 다시 열고 특별한 대우를 받다가 영휘(永徽) 3년(652) 35세로 사망하였다. 태위(太尉)·옹주목(雍州牧)으로 추증되었다.
소덕언은 남조 제(齊)에서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를 지낸 소사화(蕭思話)의 현손(玄孫)이다. 경사(經史)를 두루 섭렵하고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정통했다. 남조 진(陳)에서 문음(門蔭)으로 입사(入仕)했다가 진나라 멸망 후 수(隋)나라에서 교서랑(校書郎)을 지냈다. 당(唐)나라가 수립되자 태자 이건성(李建成)의 세마(洗馬)가 되었다. 태종 정관 연간 저작랑(著作郞) 및 홍문관학사(弘文館學士)를 지냈고, 위왕 이태의 《괄지지》 편찬에 참여하였다. 이후 태자 이치(李治)의 시독(侍讀)을 지냈고, 무양현후(武陽縣侯)에 책봉되었으며 비서소감(祕書少監)까지 지냈다. 태상경(太常卿)으로 추증되었다.
(5) 주요저작:이태는 《복왕태집(濮王泰集)》 20권 이 있고, 소덕언은 《소덕언집(蕭德言集)》 30권이 있다.

3. 서지사항

《괄지지》는 《괄지상(括地象)》, 《위왕태곤원록(魏王泰坤元錄)》, 《위왕지기(魏王地記)》라고도 불리며 정관 연간의 상황을 반영하기에 《정관지기(貞觀地記)》, 《정관지지(貞觀地志)》라고도 한다. 태종 정관 12년(638) 위왕부(魏王府)의 사마(司馬) 소욱(蘇勗)이 위왕 태에게 《괄지지》 편찬을 주청하도록 권하였고, 태종으로부터 허락을 받은 이태는 저작랑(著作郞) 소덕언(蕭德言), 비서랑(祕書郞) 고윤(顧胤), 기실참군(記室參軍) 장아경(蔣亞卿), 공조참군(工曹參軍) 사언(謝偃) 등과 함께 편찬하기 시작하여 정관 16년(642) 완성한 후 태종으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본서는 아마도 북송이 멸망하고 남송이 건립되는 과정에서 산일되었을 것이라 추정된다. 남송대 이후부터는 《사기정의(史記正義)》 및 당과 북송대 서적에 인용된 《괄지지》의 일문을 인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 가경 2년(1797) 손성연이 당송대 사서에서 일문을 찾아내 8권으로 편찬하여 《대남각총서(垈南閣叢書)》에서 포함시켜 판각한 것이 최초의 《괄지지》 집본(輯本)이다. 이를 저본으로 삼아 황석(黃奭)의 《한학당총서(漢學堂叢書)》에 중각(重刻)되었고, 주기영(朱記榮)의 《괴려총서(槐盧叢書)》와 조원충(曹元忠)의 《남정례기(南菁禮記)》에는 일문 몇 개가 더 수록되었다. 1947년 대만(臺灣) 세계서국(世界書局)에서 《대남각총서》본에 기초하여 《괄지지신집(括地志新輯)》을 출판하였다. 1980년 중화서국에서 4권으로 편집하여 출판한 《괄지지집교(括地志輯校)》가 비교적 많이 활용되고 있다.

4. 내용

《괄지지》는 본래 정문(正文) 550권, 서략(序略) 5권으로 구성되었으나 산일되었기 때문에 전체 내용을 모두 알 수는 없다. 《괄지지집교(括地志輯校)》를 근거로 살펴보면 권수(卷首)의 서략은 본래 5권으로 구성된 서략의 일문을 모은 것으로 조위(曹魏) 이래 진(晉)·북위(北魏)·북주(北周)·수(隋)·당(唐)으로 이어지는 행정구획을 정리하고, 《정관십삼년대부(貞觀十三年大簿)》를 근거로 전국을 10개 도(道), 358개 주(州), 41개의 도독부(都督府), 1,551개의 현(縣)으로, 다음 해인 정관 14년(640) 고창(高昌)을 평정하여 2개 주와 6개 현을 추가했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권2부터 권4까지는 주를 중심으로 그 아래 각 현의 건치 연혁과 지리형세, 고적(古跡), 구거(溝渠), 풍속(風俗), 산물(産物), 인물(人物), 고사(故事) 등을 소개하였다. 전체 358개 주 가운데 옹주(雍州)의 장안현(長安縣)·만년현(萬年縣)을 비롯한 18개 현을 시작으로 화주(華州), 의주(宜州), 동주(同州) 등 총 157개 주와 서역(西域)·북적(北狄)·동이(東夷)에 관한 기사들을 집록하였는데, 수도 장안과 낙양을 중심으로 그에 인접한 화북지역에 관한 내용이 장강 이남지역 보다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5. 가치와 영향

당 현종 개원 24년(736) 편찬된 장수절(張守節)의 《사기정의(史記正義)》는 본서에 근거하여 고대의 지명을 해석했고, 당송시대 편찬된 《통전(通典)》, 《초학기(初學記)》, 《태평어람(太平御覽)》, 《태평환우기(太平寰宇記)》 등에서도 본서의 지리 관련 내용들을 비교적 많이 인용하였다. 손성연은 본서가 육조시대의 지리서를 많이 수록하고 《원화군현도지(元和郡縣圖志)》의 선구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하였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와 고야왕(顧野王)의 《여지지(與地志)》를 계승하고, 당 헌종 원화 연간 이길보(李吉甫)가 편찬한 《원화군현도지》 및 북송 태종시기 악사(樂史)가 편찬한 《태평환우기》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된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정관 13년 국가의 호적에는 무릇 주가 358개이다.……무릇 현은 1,551개인데 〈정관〉 14년에 이르러 서쪽으로 고창을 평정하고 서주도호부 및 정주와 6현을 두어 모두 360개 주이며 서술한 것에 따라 10도로 삼는다.[貞觀十三年大簿 凡州三百五十八……凡縣一千五百五十一 至十四年西克高昌 又置西州都護府及庭州並六縣 通前凡三百六十州 依叙之爲十道也]” 〈《괄지지집교》 권수(卷首) 〈서략(序略)〉〉
• “운양릉은 한(漢) 구익부인릉이다. 옹주 운양현 서북쪽으로 58리에 있다. 효무제 구익 조첩여는 소제의 어머니로서 제나라 사람이며 성은 조이다. 어려서 깨끗하고 조용한 것을 좋아했는데 6살 때 병을 앓아 오른손이 굽었고 음식은 조금만 먹었다. 점술가가 ‘동쪽에 귀인이 있다’라고 말하여 추천으로 얻었다. 불러 만나보니 용모가 매우 아름다웠다. 무제가 그 손을 펴서 옥구를 얻었다.[雲陽陵 漢鉤弋夫人陵也 在雍州雲陽縣西北五十八里 孝武帝鉤弋趙婕妤 昭帝之母 齊人 姓趙 少好清靜 六年臥病 右手卷 飲食少 望氣者云 東方有貴人 推而得之 召見 姿色甚佳 武帝持其手伸之 得玉鉤]” 〈《괄지지집교》 권1 〈옹주(雍州) 운양현(雲陽縣)〉〉
• “옛날 장성은 등주 내향현 동쪽으로 75리에 있었고, 남쪽으로는 양현에 들어가며 북쪽으로는 익망산에 연해 있었는데 흙이 없어 돌로 쌓아 견고했다. 초양왕이 남쪽 땅을 제압하고 중국의 강자가 되려고 다툴 때 북쪽에 성을 줄지어 많이 쌓아 화하를 대적하고 방성이라고 불렀다.[故長城在鄧州內鄉縣東七十五里 南入穰縣 北連翼望山 無土之處 累石爲固 楚襄王控霸南土 爭強中國 多築列城於北方 以適華夏 號爲方城]” 〈《괄지지집교》 권4 〈등주(鄧州) 내향현(內鄉縣)〉〉
• “고구려의 치소는 평양성으로 본래 한나라 낙랑군 왕검성인데, 즉 옛날 조선 땅이다.[高驪治平壤城 本漢樂浪郡王儉城 卽古朝鮮也]” 〈《괄지지집교》 권4 〈만이(蠻夷)〉〉
(2) 색인어:괄지지(括地志), 이태(李泰), 위왕(魏王), 정관(貞觀), 지리(地理), 도(道), 주(州), 현(縣)
(3) 참고문헌
• 括地志輯校(賀次君, 中華書局)
• 括地志新輯(王恢, 世界書局)
• 東京大學史料編纂所藏〈括地志〉殘卷(中華書局)
• 〈括地志殘卷所存曲阜城史料古辨〉(楊爲剛, 歷史地理 23, 2008)

【김 호】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3.10.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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