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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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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진침(陳忱)의 《수호후전(水滸後傳)》은 명대 사대기서(四大奇書) 가운데 하나인 《수호전(水滸傳)》의 속편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조정에 귀순한 양산박(梁山泊)의 영웅호걸 가운데 살아남은 30여 명의 운명과 그 뒤를 잇는 새로운 영웅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원작을 넘어서는 속편은 없다는 속설을 증명하듯 저마다 남다른 108호한(好漢)의 사정을 담고 있는 《수호전》의 방대하고도 치밀한 구성을 넘어서는 속편은 흔치 않으나, 40회로 이루어진 진침의 《수호후전》은 숱한 속편들 중에서도 고유한 예술성을 인정받는 수작으로 손꼽힌다. 더욱이 《수호전》이 북송 말기의 사회상을 충실히 묘사하며 역사소설로서의 면모를 강하게 드러낸다면, 《수호후전》은 북송에서 남송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전환기에 해외로의 발전을 묘사한다는 점에서 소설적 허구를 강력하게 지향하는 특색을 보인다.

2. 저자


(1) 성명:진침(陳忱)(?~?)
(2) 자(字)·별호(別號):자(字)는 하심(遐心), 또는 경부(敬夫), 호(號)는 안탕산초(雁宕山樵)
(3) 출생지역:절강(浙江) 오정(烏程)(현(現) 절강성(浙江省) 호주(湖州))
(4) 주요활동과 생애
명말청초(明末淸初) 절강(浙江) 오정(烏程) 사람인 《수호후전》의 저자 진침은 안탕산초(雁宕山樵)라는 호에서도 짐작되는 바와 같이 속세를 버리고 산중에 은거한 절개 있는 선비로 일찍이 섭환주(葉桓奏), 고염무(顧炎武), 귀장(歸壯) 등과 교유하며 경은시사(驚隱詩社)의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청나라 순치제(順治帝) 연간에 반청복명(反淸復明)의 기치를 내세운 정성공(鄭成功)이 남명(南明)의 군대와 힘을 합쳐 금릉(金陵)(현 남경(南京))을 포위하자 이에 자극을 받고 〈의두소릉수경(擬杜少陵收京)〉을 지은 바 있다. 이후 청나라 군대가 이를 진압하고 거사에 호응한 강남 지역의 향민들을 체포하고 처벌하였으므로 진침도 도망쳐 사방으로 몸을 숨겨야 했다. 《수호후전》 또한 이때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북송이 멸망하고 남송이 세워졌으나 뜻있는 선비들이 나라의 동량으로 쓰이지 못하고 해외로 떠돌 수밖에 없는 현실을 소설적 허구에 빗댄 셈이다. 《수호후전》 제1회에 보이는 다음과 같은 서시(序詩)는 진침의 비분강개한 심정을 절절하게 토로한 것으로 보인다. “만대의 역사에 끝없는 원한이니, 백발로 외로이 등불 앞에 옛 글을 이어 쓰노라.[千秋萬歲恨無極 白髮孤燈續舊編]”
(5) 주요저작:진침은 《수호후전》 외에 《속이십일사탄사(續二十一史彈詞)》도 지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현재는 전하지 않는다. 그러나 저자의 이와 같은 작품 경향은 전통 사회 문인의 강력한 사관의식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증거라 할 것이다.

3. 서지사항


《수호후전》의 필자는 처음에 ‘고송유민(古宋遺民)’으로 알려져 있었고, 안탕산초가 이에 대해 명 만력(萬曆) 무신년(戊申年)(1608)에 평을 썼다고 전한다. 그러나 현재 영국박물관에 소장된 판본에 이 책이 청 강희(康熙) 3년 갑진년(甲辰年)(1664)에 처음 출간되었다는 기록이 있고 안탕산초는 진침의 호이므로, ‘고송유민’이라는 필명과 무신년의 서평은 모두 진침 자신의 가탁(假託)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책이 지어진 연대는 대개 순치(順治)에서 강희로 넘어가는 시대로 추정된다. 진침의 《수호후전》은 원래 8권 40회에 이르는데 청나라 건륭(乾隆) 연간 강소(江蘇) 말릉(秣陵)(現 남경(南京))에서 활동했던 채원방(蔡元放)이 이를 다시 10권 40회로 나누어 정리한 뒤 출간하였다. 채원방은 기존의 책들을 체재를 바꾸어 출간하였는데, 그 새로운 편집 체재의 책들이 더욱 인기를 끌었다.

4. 내용


양산박의 일원으로 과거 조정에 귀순하였으나 부당한 대우를 참지 못해 관직을 떠난 원소칠(阮小七)이 다시 양산박을 찾아 송강(宋江) 등 과거의 동료들에게 제를 올리고 다시금 ‘체천행도(替天行道)’의 기치를 높이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원소칠은 간신 채경(蔡京)의 수하인 장간판(張干辦)을 살해한 뒤 도망치다가 손신(孫新), 고대수(顧大嫂) 등 옛 동료들을 만나게 된다. 송강의 죽음 이후 중원 각 지역에 흩어졌던 양산박의 옛 영웅들은 등운산(登雲山)과 음마천(飮馬川) 등을 근거지로 삼고 다시금 속속 결집하기 시작한다. 이때 태호(太湖)에 은거했던 이준(李俊)이 봉기하자 화봉춘(花逢春), 낙화(樂和), 호패(湖覇) 등 호한들이 뜻을 같이 하게 된다. 이들은 부패한 조정과 금나라의 남침에 항거하고 무도한 간신배들을 물리치는 데 힘을 다하지만, 결국 중원의 미래에 드리운 암운을 피하지 못하고 해외로 떠나 섬라국(暹羅國)에서 이상향을 건설한다.

5. 가치와 영향


진침은 고송유민(古宋遺民)이라는 필명으로 《수호후전》을 지었다. 이는 그가 송나라, 명나라 등 한족 왕조의 정통성을 강조하는 입장에 선 문인이었음을 증명한다. 망국의 신하로서 이민족 왕조에서 은거라는 방식을 선택한 저자는 《수호후전》이라는 허구 서사의 창작을 통해 현실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정치적인 이상 세계의 모습을 추구했다 할 것이다. 그러나 《수호후전》의 문학적 가치는 이러한 주제 의식의 부각에 있지 않다. 《수호전》 이후 수많은 속편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작품이 원작에 미치지 못하는 아류의 범작이었던 반면, 《수호후전》의 생생하면서도 섬세한 인물 묘사와 흡인력 있는 사건의 전개, 설득력 있는 서사 구성은 《수호전》의 후광을 벗어나는 진침의 고유한 세계관을 여실히 보여준다. 또한 이 작품이 순치제와 강희제(康熙帝)의 교체기에 처음 출간되었던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저자가 이 허구 서사를 통해 반청복명에 대한 희망과 남명 정권에 대한 이상을 구현하려고 했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로 보인다. 《수호후전》은 《수호전》의 주제를 계승하면서도 명말청초 문인 지식인의 뚜렷한 정치지향과 민족의식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중국 근대서사인 셈이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옛 사람이 이르기를, 《장자》는 분노를 담은 책이요, 《서상기(西廂記)》는 그리움을 담은 책이요, 《능엄경(楞嚴經)》은 깨달음을 담은 책이요, 《이소(離騷)》는 슬픔을 담은 책이라 했다. 지금 《수호후전》에서 비분강개하여 떨치고 일어난 뭇 영웅들에 대해 쓴 것은 《장자》의 분노를 얻음이요, 아녀자들이 시름겨워 원망하는 마음을 쓴 것은 《서상기》의 그리움을 얻음이요, 중원을 잃고 해외로 떠돌 수밖에 없는 처지를 쓴 것은 《이소》의 슬픔을 얻음이며, 목려탄과 단로궁의 경계와 비유는 《능엄경》과 같은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昔人云 南華是一部怒書 西廂是一部想書 愣嚴是一部悟書 離騷是一部哀書 今觀後傳之群雄之激變而起 是得南華之怒 婦女之含愁斂怨 是得西廂之想 中原陸沈 海外流放 是得離騷之哀 牧犡灘丹露宮之警喩 是得楞嚴之悟]” 《수호후전》 〈서언(序言)〉
‧ “청수오에서 모집한 장정과 투항한 만병을 합치니 모두 삼천 여 명이었으므로 다섯 개의 군영으로 나눈 뒤 대오를 정비하고 각 처에 초소를 설치하였다. 일일이 중원의 법도에 따라 대둑의 깃발을 세우니 군대의 기강이 눈에 띄게 새로워졌다. 또한 그 곳 사람에게 물었다. “사룡이 있을 때는 섬에서 송사와 세금은 어떻게 처리하였는가?” 그 곳 사람이 대답하기를, “사룡은 형장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무거운 죄라면 절굿공이로 짓찧어 죽이고 가벼운 죄라면 쌀을 바치게 했지요.” 이준이 낙화를 시켜 법을 반포했다. 사람을 죽인 자는 목숨으로 갚고, 도둑질한 자는 곤장 칠십 대에 처하며, 세금은 십분의 일을 바치도록 하는 법이었다. 사람들이 모두 감사하며 우러러 보았다.[淸水澳招集的壯男 投降的蠻兵 共有三千多人 分派五營 設立隊伍哨把 一依中國法度 造作旗幟大纛 煥然一新 又問土人 沙龍在日 島內凡有訟獄錢糧是怎地施行 土人答道 沙龍不用刑杖, 若法重罪 把木舂舂死 輕者罰米穀 錢糧到收成時平分 李俊命樂和頒下律領 殺人者償命 奸盜杖七十 錢糧行什一之法 百姓盡皆感仰] 《수호후전》 11회
‧ “시진이 고개를 돌려 북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안타깝게도 비단실로 수놓은 듯 아름다운 강산이 이제 동남쪽의 반쪽 벽만 남았구려. 고향은 어디이며, 조상의 묘는 어디인고? 멀리 떨어져 아득한 바람과 안개 속에 잠겨있네. 이제 보니 조씨네 종실도 시씨네 자손과 별 다를 것이 없소. 이처럼 막막한 풍경을 마주하다니, 오늘에 이르러서는 매한가지로 탄식뿐이구려.” 연청이 말했다. “동남쪽의 이 반쪽짜리 벽마저 없었으면 그 마음이 얼마나 더 상했겠습니까?”[柴進回頭向北道 可惜錦繡江山 只剩得東南半壁 家鄕何處 祖宗墳墓 遠隔風煙 如今看起來 趙家的宗室比柴家的子孫也差不多了 對此茫茫 只多得今日一番歎息 燕靑道 譬如沒有這東南半壁 傷心更當何如] 《수호후전》 38회
(2) 색인어:진침(陳忱), 수호후전(水滸後傳), 후전(後傳), 수호전(水滸傳), 양산박(梁山泊), 섬라국(暹羅國), 채원방(蔡元放)
(3) 참고문헌
‧ 후수호지(이원길 역, 신원문화사)
‧ 후수호전(요녕민족출판사 편, 박물서관)
‧ 역주 후수호전(조주연, 다운샘)
‧ 중국 고소설 작가고증학 원론(구양건, 김수연 역, 소명출판)
‧ 한국 소장 중국통속소설의 판본목록과 해제(민관동 외 공저, 학고방)
‧ 水滸後傳(古本小說集成編委會 編, 上海古籍出版社)
‧ 連環畵水滸後傳(陳沈, 戴敦邦 外 畵, 內蒙古人民出版社)
‧ 水滸後傳(陳沈, 鳳凰出版社)


【문현선】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0.08.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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