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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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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소문충공전집(蘇文忠公全集)》은 소식(蘇軾)의 시(詩)와 문(文)을 망라한 문집으로, 본래 남송(南宋) 효종(孝宗) 건도(乾道) 6년(1170)에 소식에게 문충공(文忠公)의 시호가 내린 후, 남송 왕종직(王宗稷)이 편찬하였다고 한다. 송나라 때는 또한 《유편증광노소선생대전집(類編增廣老蘇先生大全集)》, 《유편소문충공전집(類編蘇文忠公全集)》이 나왔으나, 현재 그 잔권(殘卷)이 전한다. 하지만 《소문충공전집》이라고 하면 대개 《동파선생전집(東坡先生全集)》을 말한다. 전집본(全集本) 《동파선생전집(東坡先生全集)》은 명나라 진명경(陳明卿) 교정본(訂正本)과 청나라 강희(康熙) 연간에 이 진명경 교정본을 저본으로 삼은 보한루본(寶翰樓本)이 나왔다. 이 텍스트는 75권이며, 이것을 《소문충공전집(蘇文忠公全集)》 혹은 《송소문충공전집(宋蘇文忠公全集)》, 《동파전집(東坡全集)》이라고 한다.

2. 저자

(1)성명:소식(蘇軾)(1037~1101)
(2)자(字)·별호(別號):자(字)는 자첨(子瞻)이다. 동파거사(東坡居士)라는 호를 사용하였으므로, 소동파(蘇東坡)라고 불린다.
(3)출생지역:미주(眉州) 미산(眉山)(현 사천성(四川省) 미산시(眉山市))
(4)주요활동 및 생애
소식은 북송 때 정치가이자 문인이며, 또한 서가(書家)이기도 하였다.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소순(蘇洵)의 장남으로, 그와 그의 아우 소철(蘇轍)도 함께 당송팔대가에 들었다.
가우(嘉祐) 2년(1057)에 진사가 되고, 복창현(福昌縣) 주부(主簿)를 역임한 후 영종(英宗) 때 중앙 조정에 들어가 대리평사(大理評事)‚ 전중승(殿中丞) 등을 역임하였다. 하지만 신종(神宗) 때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에 반대하다가 좌천되어, 항주(杭州) 통판(通判)으로 좌천되고, 그 후 여러 지방으로 자리를 옮겨 다녔다. 그러다가 원풍(元豊) 2년(1079)에 호주(湖州)로 옮겨가 있던 중, 이전의 시 속에 정치를 비방하는 말이 있다는 참언을 입어, 투옥되었다가 황주(黄州)(현 호북성(湖北省) 황주구(黄州區))로 좌천되었다. 좌천된 황주의 땅을 동파(東坡)라고 이름 짓고, 스스로 동파거사(東坡居士)라고 하였다. 원풍(元豊) 8년(1085) 신종이 붕어하고 철종(哲宗)이 즉위하여 구법당이 복권되자 소식도 한림학사 겸 시독(翰林學士兼侍讀)으로 기용되었다. 이때 재상 사마광(司馬光)이 신법을 완전히 폐지하려고 하자, 소식은 신법의 모역법(募役法) 등은 존속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사마광과 거리를 두게 되고, 원우(元祐) 4년(1089)에는 항주(杭州) 지주(知州)로 폄적(貶謫)되기도 하였다. 소성(紹聖) 원년(1094)에 다시 신법파가 득세하자 좌천되어 혜주(恵州)(현 광동성(廣東省))로 유배되고, 다시 62세의 때에 해남도(海南島)로 추방되었다. 66세 때인 1100년 철종이 붕어하고 휘종(徽宗)이 즉위하자 사면되어 도성으로 향하는 도중에 병을 얻었고, 이듬해(1101년) 상주(常州)(현 강소성(江蘇省))에서 몰하였다. 소식이 죽은 후 채경(蔡京)이 정권을 잡고 구법당을 탄압하여, 소식의 가족도 곤경에 처하였다.
(5)주요저작:〈동파선생외집서(東坡先生外集序)〉에 따르면 소식의 저작으로 《남행집(南行集)》·《파량집(坡梁集)》·《전당집(錢塘集)》·《초연집(超然集)》·《황루집(黃樓集)》·《미산집(眉山集)》·《무공집(武功集)》·《설당집(雪堂集)》·《황강소집(黃岡小集)》·《구지집(仇池集)》·《비릉집(毗陵集)》·《난대집(蘭臺集)》·《진일집(眞一集)》·《민정집(岷精集)》·《염정집(掞庭集)》·《백곡명주집(百斛明珠集)》·《옥국집(玉局集)》·《해상노인집(海上老人集)》·《동파전집(東坡前集)》·《후집(後集)》·《동파구성집(東坡傋成集)》·《유취동파집(類聚東坡集)》·《동파대전집(東坡大全集)》·《동파유편(東坡遺編)》 등이 있었다. 소식은 서가(書家)로서도 유명하여 미불(米芾)·황정견(黄庭堅)·채양(蔡襄)과 함께 송나라 사대가(四大家)라고 일컬어진다. 대표작에 〈적벽부(赤壁賦)〉와 《황주한식시권(黄州寒食詩卷)》(《한식첩(寒食帖)》) 등이 있다.

3. 서지사항

《소문충공전집》은 소식의 시와 문을 망라한 문집이다. 소식의 시문은 남송 효종 건도 6년에 소식에게 문충공의 시호가 내린 후, 왕종직이 처음 편찬하였다고 한다. 또한 송나라 때는 《유편증광노소선생대전집》·《유편소문충공전집》도 편찬되었는데, 송나라 판본의 잔권이 전한다. 하지만 《소문충공전집》이라고 하면 대개 《동파선생전집》을 말한다. 《동파선생전집》의 판본은 상당히 많다.
소식의 시와 문이 아니라 시만을 편집한 문집도 별도로 전한다. 이 시집은 다시 분류식 편차본과 편년식 편차본의 두 종류가 있다. 먼저 분류본은 여조겸(呂祖謙)에게서 시작되어 왕십붕(王十朋)(1112~1171)에게서 집대성되었다고 하고, 편년본은 송나라 시원지(施元之)와 그의 아들 시숙(施宿)이 편찬한 것이 시초이다. 왕십붕 분류본을 ‘왕본(王本)’이라 하고 시씨 편년본을 ‘시본(施本)’이라고 한다. 청나라 강희 연간에 ‘시본’이 영인되어 나오기 전까지는 ‘왕본’이 주류를 이루었다.
송나라 판본이라고 전하는 왕십붕의 ≪집주분류동파선생시(集注分類東坡先生詩)≫는 명나라 때 송간본(宋刊本)을 영인(影印)한 것이다. 왕십붕의 서제(序題)는 ‘백가주(百家注)’라 하여 인용 주가(注家)의 수를 과장하였다. 이 계열에 속하는 ≪동파선생시집주(東坡先生詩集注)≫ 30권 목차 2권은 시의 제재(題材)에 따라 부류를 나누어 수록하고 주석들을 인용하였다. 조기(趙夔)의 서문에 따르면 50목(目)으로 분류했다고 하지만 실은 29목으로 되어 있고, 분류도 정밀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런데 ≪사고전서총목제요(四庫全書總目提要)≫에 따르면‚ 왕십붕의 문집 ≪매계집(梅溪集)≫에 본서 서문이 수록되어 있지 않고‚ 〈독소문(讀蘇文)〉 3칙(則)에 소식의 시에 관해 언급한 부분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이 서문이 왕십붕의 저작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고 의심하였다. 또한 체례(體例)가 ≪두시천가주(杜詩千家註)≫와 같은 점으로 보아, 두 책이 같은 시기에 서사(書肆)에서 간행된 듯하다고 추정하였다. 이 계열로는 명나라 때 모씨(茅氏) 간본(刊本)과 진명경(陳明卿) 간본(刊本)‚ 명간(明刊) 75권본‚ 청나라 때 가정(嘉靖) 연간의 강서(江西) 포정사(布政司) 중간본(重刊本) 등이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에는 신안(新安) 주종연(朱從延)이 강희(康熙) 37년(1698) 무렵 문정서원(文正書院)에서 중교(重校) 간각(刊刻)한 ‘주종연(朱從延) 중교본(重校本)’이 소장되어 있다. 이 책에는 강희 37년 고사립(顧嗣立)‚ 양선(樣瑄)‚ 주종연의 서문과 장주(長洲) 이추(李樞)의 후서(後序)가 있다.
또한 ‘왕본(王本)’ 계열에는 《동파선생시집주(東坡先生詩集注)》 30권 목차 2권 이외에 《증간교정왕장원집주분류동파선생시(增刊校正王壯元集註分類東坡先生詩)》 25권이 있다. 《동파선생시집주》는 소식의 시를 29목(目)으로 분류하였으나 《증간교정왕장원집주분류동파선생시》(표제는 〈분류동파시(分類東坡詩)〉로 적기도 한다.)는 76목으로 분류하고 수계(須溪) 유진옹(劉辰翁)(1234~1297)의 비점(批點)을 달았다.
한편 청나라에 들어와 강희 연간에 송나라 시원지와 그의 아들 시숙이 편찬하고 고경번(顧景藩)이 주(注)를 붙인 ≪소시주(蘇詩注)≫(송간시고주소시(宋栞施顧注蘇詩)) 42권이 영인되어 나왔다. 이후 건륭 연간에 사신행(査愼行)의 ≪보주동파편년시(補注東坡編年詩)≫ 50권과 풍응류(馮應榴)의 《소문충시합주(蘇文忠詩合註)》 50권(1973)이 나오고‚ 가경(嘉慶) 말인 1820년 무렵에 왕문고(王文誥)의 《소문충시편주집성(蘇文忠詩編注集成)》 46권 총안(總案) 45권 부록(附錄) 12권이 나왔다. 한편 《소문충공시집(蘇文忠公詩集)》은 소식의 시집에 대해 청나라 기윤(紀昀)(1724~1805)의 비평(批評)을 붙여 간행한 책이다. 월성(粤省) 동성(東城) 한묵원(翰墨園) 장판(藏板) 기윤(紀昀)이 평점(評點)한 《소문충공시집(蘇文忠公詩集)》이 나온 이후, 1869년(동치 8)에는 온옥산방(韞玉山房)에서 종식재(踵息齋) 장판본(藏板本)을 이용하여 이 책이 간행되었다.
월성 동성 한묵원 장판본 《소문충공시집》은 사신행의 ≪보주동파편년시≫ 50권을 저본(底本)으로 하고 풍응류의 《소문충시합주》 50권을 참조하여 편차를 조정한 것에 기윤의 주묵(朱墨) 평점, 행간(行間)의 ‘협비(夾批)’와 서미(書眉)의 ‘미비(眉批)’를 붙인 책이다. 오란(吳蘭)과 그 문하생 진사전(陳士荃)이 교감(校勘)을 하였다. 권수(卷首)에 실린 기윤의 서문(1783년)에 따르면‚ 기윤은 1766년 5월부터 다섯 차례의 열람을 통해 평점을 붙였다고 한다. 기윤의 서문의 뒤에는 1834년(도광(道光) 14) 축주(涿州) 노곤(盧坤)의 서문이 있고‚ 뒤이어 가응(嘉應) 오란(吳蘭)이 작성한 〈범례(凡例)〉가 있다.
온옥산방에서 종식재 장판본을 이용하여 간행한 《소문충공시집》은 권수(卷首)에 풍응류의 손자 풍보기(馮寶圻)의 1870년(동치(同治) 9) 서문이 있는데, 풍응류의 《소문충두합주》 50권 수(首)2권 목록(目録) 1권, 50권 이후에 나온 왕문호(王文浩)의 ≪소문충시편주집성≫ 46권과 ≪총안(總案)≫ 45권을 수정‧보완한다고 표방하였다. 풍보기의 서문 뒤에는 풍응류의 1793년 〈자서(自序)〉와 전대흔(錢大昕)의 1795년 서문‚ 전당(錢塘) 오석기(吳錫麒)의 서문‚ 그리고 풍응류가 쓴 〈범례(凡例) 12칙(則)〉이 수록되어 있다. 권수(卷首)에는 ≪송사(宋史)≫에 수록된 소식의 본전(本傳)과 소철이 작성한 〈묘지명(墓誌銘)〉‚ 풍응류의 〈소문충시구주변정(蘇文忠詩舊註辨訂)〉‚ 왕종직 편찬의 소식 〈연보(年譜)〉(부조(傅藻)의 ≪기년록(紀年錄)≫ 전부(全附))‚ 소식의 회상(繪像)‚ 송 효종(宋孝宗)의 찬(贊)‚ 왕십붕의 서문‚ 〈백가주(百家註)〉에 포함된 주역자(註釋者)들의 성씨(姓氏)‚ 송(宋) 육유(陸游)의 것을 비롯한 역대 판본의 서발문(序跋文), 소장형(邵長蘅) 판본의 〈예언(例言)〉과 〈부록(附錄)〉‚ 사신행 판본의 〈예략(例略)〉과 〈부록(附錄)〉‚ 옹방강(翁方綱) 판본의 〈부목(附錄)〉 등 역대 자료를 함께 수록하였다. 권50의 말미에는 풍응류의 문인인 남창(南昌) 원신(袁紳)이 쓴 1790년 발문(跋文)과 본서의 간기(刊記)를 수록하였다.
또한 소식의 저술을 모은 별도의 계통으로 《동파선생외집(東坡先生外集)》이 있다. 《중편동파선생외집(重編東坡先生外集)》 86권 10책이 명나라 만력(萬曆) 36년(1608) 제남강씨간본(濟南康氏刊本)으로 전한다. 권1부터 권10까지는 시(詩), 권11부터 권81까지는 문(文), 권82부터 권85까지는 사(詞), 권86은 〈시안(詩案)〉이며, 《연보(年譜)》가 〈목록(目錄)〉의 앞에 놓여 있다. 시는 시대순으로 배열하였고, 문은 문체(文體)에 따라 분류하였다. 문은 부(賦)·율부(律賦)·경의(經義)·논(論)·책(策)·잡저(雜著)·사평(史評)·명(銘)·게(偈)·찬(贊)·송(頌)·표장차자(表狀劄子)·계장(啟狀)·청사(青詞)·소(疏)·악어(樂語)·상량문(上梁文)·판(判)·축문(祝文)·제문(祭文)·설(說)·기(記)·서인(序引)·비(碑)·서(書)·보망(補亡)·행장(行狀)·전(傳)·제발(題跋)·잡기(雜記)·소간(小簡) 등이다.

4. 내용

앞서 말했듯이 《소문충공전집》은 본래 남송 효종 건도 6년에 소식에게 문충공의 시호가 내린 후, 남송 왕종직이 편찬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후대에는 대개 《동파선생전집》을 말한다.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이 계열의 《동파선생전집》이 소장되어 있는데, 26책으로 되어 있다. 그 목차를 보면 다음과 같다.
〈목록(目錄)〉, 〈송사소문충공전(宋史蘇文忠公傳)〉(탈탈(脫脫) 찬(撰)), 〈동파선생연보(東坡先生年譜)〉(왕종직 편(編)) 〈동파묘지명(東坡墓地銘)〉(소식 찬), 〈총목(總目)〉 권1 제1책 부(賦), 권2~3(제1책) 논(論), 권4~5(제2책) 논(論), 권6(제2책) 경의(經義), 권7(제3책) 이영진독(邇英進讀)·강연진기(講筵進記)·책문(策問)·잡책(雜策), 권8(제3책) 책략(策略), 권9(제4책) 책별(策別), 권10(제4책) 서(序)·기(記), 권11~12(제5책) 기(記), 권13(제5책) 전(傳), 권14~15(제6책) 묘지(墓誌), 권16(제6책) 행장(行狀), 권17(제6책) 비(碑), 권18(제7책) 비(碑), 권19(제7책) 명(銘), 권20(제7책) 송(頌)·잠(箴), 권21(제8책) 찬(贊), 권22(제8책) 찬게(贊偈), 권23(제8책) 표장(表狀), 권24(제9책) 표장(表狀), 권25~26(제9책) 주의(奏議), 권27~29(제10책) 주의(奏議), 권30~32(제11책) 주의(奏議), 권33~35(제12책) 주의(奏議), 권36~37(제13책) 주의(奏議), 권38(제13책) 제칙(制勅), 권39(제14책) 제칙(制勅), 권40~41(제14책) 내제(內制), 권42~44(제15책) 내제(內制), 권45(제15책) 악어(樂語), 권46~47(제16책) 계(啓), 권48(제16책) 서(書), 권49(제17책) 서(書), 권50~51(제17책) 척독(尺牘), 권52~54(제18책) 척독(尺牘), 권55~57(제19책) 척독(尺牘), 권58~60(제20책) 척독(尺牘), 권61 제21책(척독(尺牘)), 권62(제21책) 청사(靑詞)·소문(疏文)·축문(祝文), 권63(제21책) 제문(祭文), 권64(제22책) 잡저(雜著), 권65(제22책) 평사(評史), 권66(제22책) 제발(題跋), 권67~69(제23책) 제발(題跋), 권70~71(제24책) 제발(題跋), 권72(제24책) 잡기(雜記), 권73(제25책) 잡기(雜記), 권74(제25책) 사(詞), 권75(제25책) 사(辭).
한편 《증간교정옥장원집제가주분류동파선생시(增刊校正玉壯元集諸家註分類東坡先生詩)》 25권 76목(目)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권1 기행(紀行)(92수), 권2 술회(述懷)(6수)·회고(懷古)(2수)·고적(古跡)(37수)·시사(時事)(2수), 권3 궁전(宮殿)(17수)·성우(省宇)(8수)·능묘(陵廟)(4수)·분영(墳塋)(3수)·거실(居室)(14수)·당우(堂宇)(41수), 권4 성곽(城郭)(2수)·벽오(壁塢)(2수)·전포(田圃)(8수)·종족(宗族)(5수)·부녀(婦女)(11수)·선도(仙道)(16수)·석노 상(釋老上)(40수), 권5 석노 하(釋老下)(16수)·사관(寺觀)(59수), 권6 탑(塔)(4수)·절서(節序)(43수)·몽(夢)(10수)·월(月)(17수), 권7 우설(雨雪)(46수)·풍뢰(風雷)(8수)·산악(山岳)(36수), 권8 강하(江河)(10수)·호(湖)(26수)·천석(泉石)(31수)·계담(溪潭)(10수), 권9 지소(池沼)(3수)·주집(舟楫)(2수)·교량(橋梁)(3수)·누각(樓閣)(27수)·정사(亭榭)(45수), 권10 원림(園林)(57수)·과실(果實)(9수)·연음 상(燕飮上)(27수), 권11 연음 하(燕飮下)(17수)·시선(試選)(8수)·서화 상(書畵上)(63수), 권12 서화 하(書畵下)(51수)·연(硯)(8수)·음악(音樂)(11수), 권13 기용(器用)(10수)·등촉(燈燭)(3수)·식물(食物)(5수)·주(酒)(12수)·차(茶)(12수)·금조(禽鳥)(13수)·수(獸)(4수)·충(蟲)(2수)·어(魚)(6수)·죽(竹)(3수)·목(木)(11수), 권14 화(花)(79수)·채(菜)(5수)·균점(菌簟)(1수), 권15 투증(投贈)(27수)·희증(戱贈)(32수), 권16 간기(簡寄)(59수)·회구 상(懷舊上)(23수), 권17 회구 하(懷舊下)(13수)·심방(尋訪)(17수)·수답 상(酬答上)(59수), 권18 수답 중(酬答中)(91수), 권19 수답 하(酬答下)(143수), 권20 혜황(惠貺)(35수)·송별 상(送別上)(39수), 권21 송별 중(送別中)(75수), 권22 송별 하(送別下)(56수)·유별(留別)(14수)·경하(慶賀)(15수), 권23 유상(遊賞)(56수)·사렵(射獵)(5수)·제영 상(題詠上)(32수), 권24 제영 하(題詠下)(42수)·의약(醫藥)(3수)·복상(卜相)(2수)·상도(傷悼)(49수)·절구(絶句)(12수)·가(歌)(10수)·행(行)(5수), 권25 잡부(雜賦)(94수).
소식은 산문에서 고문을 크게 발전시켜,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소식은 글짓기를 행운유수(行雲流水)처럼 하여, 즐기고 웃으며 성내고 욕하는(희소노매(嬉笑怒罵)) 말이라도 모두 글로 쓸 수 있다고 했는데, 〈문설(文說)〉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내 글은 일만 섬 되는 샘물이 땅을 가리지 않고 모두 흘러나오는 것과 같다. 평지에서는 도도하고 골골하여, 하루에 천 리를 간다 해도 어렵지가 않다. 그러다가 석산의 굽이진 곳을 만나면, 사물에 따라 형태를 부여받아 어떤 형태로 될지 알지 못한다. 알 수 있는 것은 늘 마땅히 가야 할 곳으로 가고 늘 그치지 않을 수 없는 곳에서 그치는 식이라는 것일 따름이다. 그 밖의 것은 나도 알 수가 없다.[吾文如萬斛泉源 不擇地皆可出 在平地 滔滔汨汨 雖一日千里無難 及其與石山曲折 隨物賦形而不可知也 所可知者 常行于所當行 常止于不可不止 如是而已矣 其他雖吾亦不能知也]” 소식은 각종 양식의 문체에서 이러한 문체미학을 실현하였다고 평가된다.
한편 소식은 정치의 현안과 관련하여 여러 책(策)을 올렸는데, 그의 책은 《동파책(東坡策)》으로 엮어 유포되었다.

5. 가치와 영향

소식의 시문은 중국 문학가들만이 아니라 한국과 일본의 문인-지식인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 또한 소식의 시문은 화제(畫題)로 사용된 것도 많다. 《남송원화록(南宋院畵錄)》에 따르면 심진(沈津)이 엮은 《이은록(吏隱錄)》에 소식의 칠언절구 〈동파〉 시를 화의로 삼은 그림이 있었다고 한다. 소식은 스스로를 야인(野人)이라 했지만 후대 사람은 이은(吏隱)의 예로 본 것이다.
한국의 경우 고려 중엽까지 불교가 성했으므로 문학과 도학과의 관계는 그리 문제 삼지 않았다. 고려 중엽에 심미론과 효용론을 조화시킨 소식(蘇軾)의 문장이 수용되었는데, 당시는 심미적 측면이 더 선호된 듯하다. 이규보(李奎報)(1168~1241)는 전주에서 동파문집을 간행할 때 〈전주신조동파문집발미(全州新雕東坡文集跋尾)〉를 지어, 소식의 부섬(富贍)한 속사(屬辭)와 회박(恢博)한 용사(用事)를 배워야 한다고 했다. 고려 말에 성리학이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차츰 도학과 문학의 일치를 이념으로 삼게 되었다. 이로써 한유의 문장이 더 존중되기에 이르렀지만, 일부 문인들은 소식의 활달한 정신세계, 나아가 유불 통섭의 사상에 공감을 지녔다. 소식의 문집 가운데 《증간교정옥장원집제가주분류동파선생시》 25권 20책은 소식의 시를 76목으로 분류하고 유진옹이 비점을 달아 간행한 책인데, 조선에서도 복간되었다. 조선 전기에는 30권본 《동파시집주》보다 분류항목이 세분화되고 유진옹의 비점이 있는 25권본의 이 책을 선호한 것이다. 16세기 초의 유희춘(柳希春)(1513~1577)은 자제들의 문학 수업에 관해 훈계하여, “한유의 글, 유종원의 글, 소동파의 글 가운데 웅위하고 명쾌한 것을 익혀라.”라고 하였다. 조선후기의 강세황(姜世晃)은 소식의 문학적 성취와 정신지향에 공감하였을 뿐 아니라 그와 생년 간지가 같다는 점에서도 각별한 친근감을 느꼈다. 강세황은 소식의 〈연강첩장도시〉에 차운한 〈차동파연강첩장도(次東坡煙江疊嶂圖)〉를 남겼는데, 최성대(崔成大)는 강세황의 시가 그림보다도 낫고 시적 견해 또한 뛰어나 두 방면에서 모두 독자적인 경지를 개척했다고 평가했다. 김정희(金正喜)의 경우는 특히 소식의 유불 통섭에 공감하였다.
일본의 경우는 승려들에 의해 학소(學蘇)의 전통이 이어져, 오산(五山)의 승려 대악(大岳)(1345~1423)이 소시(蘇詩)를 공부하면서 적어 둔 《한원유방(翰苑遺芳)》(소운(笑雲) 편 《사하입해(四河入海)》)의 수록은 시고주(施顧注)를 인용하여 두었기 때문에 북경대도서관이나 대만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이 일부 불에 타 알 수 없는 부분을 기워 복구하는데 이용되었다.
또 동파 연보에는 전(傳)의 〈기년록(紀年錄)〉, 왕종직의 〈연보〉, 시숙의 〈동파선생연보〉 등 세 가지가 있으나 가장 믿을 만한 것은 시숙의 연보이다. 이것도 근년까지 전해오지 않다가, 소시(蘇詩)에 밝아 그림 속에 그 경지(境地)를 담았다고 하여 중국에까지도 유명한 강호(江戶)시대 화가인 도미오카 뎃사이(富岡鐵齋)가 초(抄)해 둔 것이 발견되어, 소시(蘇詩) 연구에 큰 공헌을 하였다. 이 점은 《소시일주(蘇詩佚注)》(倉田淳之助·小川環樹 편)의 풀이말과, 정건(鄭騫)의 〈송간시고주소동파시제요(宋刊施顧注蘇東坡詩提要)〉를 보면 자세하다.

6. 참고사항

(1)명언
• “무릇 천지간 만물은 각각 주인이 있기에, 진실로 나의 소유가 아니라면 터럭 하나라 해도 가질 수 없으나, 오직 강가의 맑은 바람과 산간의 밝은 달은, 귀로 그것을 들어 소리가 되고 눈으로 그것을 보아 색을 이룬다. 그것을 취해도 금하는 이 없고, 그것을 써도 다하지 않으니, 이는 조물주의 다함없는 창고로서 나와 그대가 함께 즐기는 것이로다.[且夫天地之間 物各有主 苟非吾之所有 雖一毫而莫取 惟江上之淸風 與山間之明月 耳得之而爲聲 目遇之而成色 取之無禁 用之不竭 是造物者之無盡藏也 而吾與子之所共樂]” 〈적벽부(赤壁賦)〉
• “예전부터 작은 샘 하나가, 먼 산 뒤쪽에서부터 흘러 와, 성벽을 뚫고 취락을 거쳐 가는데, 흐름도 나쁘고 쑥과 뜸이 웃자라 있다. 그 끝은 가(柯)씨의 연못, 열 이랑에 고기 새우 득실했다만, 금년은 한발로 샘이 말라, 마른 물풀이 갈라진 흙덩이에 붙어있더니, 간밤 남산에 구름이 일어, 비가 쟁기 날을 덮을 만큼 내리고, 찰랑찰랑 본래의 물길을 찾아 흐르니, 내가 묵은 풀 제거함을 알아준 듯도 하다. 진흙 속의 미나리도 지난 해 뿌리가 있어, 한 치 정도 아아 그것만은 남아 있다. 눈 같은 싹은 어느 때나 트려나, 봄 비둘기 울 무렵엔 미나리회를 먹을 수 있겠지. [自昔有微泉 來從遠嶺背 穿城過聚落 流惡壯蓬艾 去爲柯氏陂 十畝魚鰕會 歲旱泉亦竭 枯萍粘破塊 昨夜南山雲 雨到一犁外 泫然尋故瀆 知我理荒薈 泥芹有宿根 一寸嗟獨在 雪芽何時動 春鳩行可膾]” 8수 연작시 〈동파(東坡)〉 제3수
(2)색인어:소식(蘇軾), 동파(東坡), 소문충공전집(蘇文忠公全集), 동파선생집(東坡先生集), 소문충시합주(蘇文忠詩合註), 동파선생시집주(東坡先生詩集注), 증간교정왕장원집주분류동파선생시(增刊校正王壯元集註分類東坡先生詩), 소문충공시집(蘇文忠公詩集), 왕십붕(王十朋),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유진옹(劉辰翁)
(3)참고문헌
• 集註分類東坡詩 附 經進東坡文集事略(四部叢刊初編縮本 52, 臺灣商務印書館)
• 蘇軾全集校注(張志烈·馬徳富·周裕鍇 主編, 河北人民出版社)
• 蘇軾文集(蘇軾(北宋) 撰, 孔凡禮 校點, 北京大學出版社)
• 蘇軾(近藤光男 編譯, 漢詩選 11, 集英社)
• 蘇軾(山本和義, 中国詩文選 19, 筑摩書房)
• 蘇東坡詩選(小川環樹·山本和義 編譯, 岩波文庫)
• 蘇東坡集(小川環樹·山本和義 編著, 中國文明選 2, 朝日新聞社)
• 蘇東坡詩集(小川環樹·山本和義 共編·譯注, 筑摩書房)
• 禅喜集(飯田利行 譯, 国書刊行会)
【심경호】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0.08.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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