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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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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보천가(步天歌)》는 수(隋)의 단원자(丹元子) 또는 당(唐) 개원년간(開元年間)의 왕희명(王希明)이 전천의 중국 성수(星宿)를 삼원(三垣)과 이십팔수(二十八宿)의 체제에 따라 그 위치와 모양을 설명하기 위해 작성한 칠언시(七言詩)이다.

2. 저자

(1) 성명:단원자(丹元子(?~?)) 또는 왕희명(王希明(?~?))
(2) 자(字)·별호(別號):미상
(3) 출생지역:미상
(4) 주요활동과 생애
저자로 생각되어온 단원자는 수(隋)에서, 왕희명은 당(唐)의 개원년간(開元年間)(713~741)에 활동한 흔적만 단편적으로 남아 있을 뿐, 그들의 생몰년, 출생지역, 주요활동 및 주요저작 등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북송(北宋)의 구양수(歐陽修) 등이 찬술한 《신당서(新唐書)》의 〈예문지(藝文志) 천문류(天文類)〉에는 “왕희명 단원자 《보천가》 1권[(王希明丹元子步天歌一卷)]”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 목록에 실려 있는 다른 책들의 서술 양식과 비교해보면, 이것은 왕희명이 《단원자보천가》라는 책을 지었음을 뜻한다. 같은 책의 오행류(五行類)에는 “왕희명 《태일금경식경》 10권(개원 중 조찬)[(王希明太一金鏡式經十卷)((開元中詔撰))]”이라고 되어 있어서, 왕희명이 《태일금경식경》을 당(唐)의 개원년간에 저술한 것으로 되어 있다.
한편, 《보천가》의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판본인 《통지(通志)》 〈천문략(天文略)〉의 서문에서 저자 정초(鄭樵)는, 《보천가》는 수의 단원(子)라는 은자가 지었으며, 그 후 왕희명이 《한서(漢書)》 〈천문지(天文志)〉와 《진서(晉書)》 〈천문지〉를 참고하여 《보천가》의 주석을 달았는데, 《신당서》가 이를 오해하여 왕희명을 저자로 삼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5) 주요저작:《보천가》 외 미상

3. 서지사항

《보천가》는 당(唐) 초기에 출간된 것으로 보이나, 현존하는 가장 이른 판본은 남송(南宋)의 정초가 1161년에 편찬한 《통지》 〈천문략〉에 《단원자보천가(丹元子步天歌)》라는 제목으로 들어 있다. 정초는 “이 책은 다만 천문대에만 전해오고 민간에는 전해오지 않았으며 천문점성가들이 이를 비밀로 해왔다. 세상에 몇 가지 판본이 있으나 오류가 심하다.”라고 하였다. 명(明)나라 중엽 이후 민간 금지령이 약간 완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민간에 유통되는 것은 매우 드물었다. 원래 《보천가》에는 성도(星圖)도 들어 있었지만, 《통지》에 수록될 때에 이미 그러한 성도는 망실된 것으로 보이고, 그 이후 판본에서는 그것이 출간될 당시 구할 수 있었던 성도를 덧붙여서 출간되었다. 또한 후대의 《보천가》 가결은 《통지》 〈천문략〉에 수록된 판본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자구의 개수나 문구가 서로 조금씩 다르지만 그 차이는 크지 않다.
명말청초(明末淸初)에 유럽의 천문학의 영향을 받은 《숭정역서(崇禎曆書)》 이후 중국의 전통 성수와 위치와 모양이 달라진 것이 많아서 개작된 보천가가 생겨났다. 작자에 관해 이설이 많은 《경천해(經天該)》가 매문멱(梅文鼏)이 1689년에 지은 《중서경성동이고(中西經星同異考)》에 수록되어 있다. 매문멱은 여기에 근남극성(近南極星)에 관한 보가(補歌)를 덧붙여서 《서보천가(西步天歌)》라고 명명했다. 민간에 유통된 또 다른 판본은 하군번(河君藩)의 《천문대성보천가요결(天文大成步天歌要訣)》이다. 성도와 가결은 전통적인 것이고 신법(新法)의 변동 내역을 주석하였다. 1742년에 청(淸)에서 출간된 《협기변방서(協氣辨方書)》의 〈성도보천가(星圖步天歌)〉에는 가결은 단원자의 《보천가》이나 성도는 신법(新法)으로 바뀌었다. 1844년에 청(淸)에서 출간된 《흠정의상고성속편 (欽定儀象考成續編)》의 〈성도보천가(星圖步天歌)〉는 성도와 가결이 모두 신법으로 새로 창작되었다.
조선(朝鮮)에서 유행한 《보천가》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조선 초기에 출간된 《보천가》인데, 같은 내용이 세종대의 이순지(李純之(1406~1465))가 편찬한 《천문류초(天文類抄)》에도 그대로 실려 있다. 고려 태조 왕건(王建)(재위 918~943)의 이름을 피휘(避諱)하여 건성(建星)을 입성(立星)이라고 적은 점, 1161년에 완성된 《통지》의 저자인 정초가 지은 ‘천하기몰(天河起沒)’이 실려 있는 점, 그리고 《통지》가 공민왕 13년(1364)에 《옥해(玉海)》와 함께 고려에 전해졌다는 《고려사(高麗史)》의 기록, 그리고 1390년대에 출현한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의 성도가 함께 들어 있는 점 등을 근거로 이 《보천가》의 가결은 1364년 이후, 성도는 1396년 이후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둘째, 유럽 천문학의 영향을 현실화하기 위해 1792년에 김영(金泳(1749~1817))이 기존 《보천가》에 들어 있던 성도만을 1743년에 청(淸)으로부터 조선으로 들어온 《협기변방서》 권10에 삽입되어 있던 것으로 교체하여 새로운 《보천가》를 출간하였다.
셋째, 1754년에 청(淸)에서는 플램스티드의 별목록을 기초로 《흠정의상고성(欽定儀象考成)》이 완성되었고, 1844년에는 중국 전통의 성수(星宿)를 회복시키기 위해 《흠정의상고성속편(欽定儀象考成續編)》이 출간되었다. 《흠정의상고성》은 1766년에 조선에 전해졌고, 《흠정의상고성속편》도 수입되었다. 1862년에 이준양(李俊養(1817~1886?))과 남병길(南秉吉(1820~1869))이 취재(取才) 시험에 활용하기 위해 《흠정의상고성속편》 권3의 〈성도보천가(星圖步天歌)〉를 전재하고 권31과 32의 ‘천한계도(天漢界度)’의 내용을 바탕으로 ‘천하기몰(天河起沒)’을 작성하여 《신법보천가(新法步天歌)》란 이름으로 출간하였다.

4. 내용

동북서남으로 나눈 이십팔수(二十八宿)와 태미원(太微垣), 자미원(紫微垣), 천시원(天市垣)의 삼원(三垣)을 합쳐 전천을 31개 구역으로 나누어 총 283개의 성수(星宿) 1,464,개의 별을 분속시키고 각 구역에 딸린 성수(星宿)의 위치와 모양 등을 칠언시(七言詩)로 묘사하여 성수(星宿)를 암송하기 편하게 하였다.

5. 가치와 영향

한대(漢代)의 중궁(中宮) 및 내외관(內外官) 체계, 《진서(晉書)》 〈천문지(天文志)〉의 중궁(中宮) 및 이십팔사(二十八舍) 체계를 이어 수당(隋唐) 시기의 삼원(三垣) 및 사방칠수(四方七宿) 체계를 정립하였다. 이 체계는 나중에 《통지(通志)》, 《송사(宋史)》를 거쳐 중국의 표준적인 성수(星宿) 체계가 되었다. 조선에서는 세종 12년(1430)부터 음양학 취재(取才) 시험에 《보천가(步天歌)》가 편입되어 조선 전 시대에 걸쳐 많은 영향을 주었다.

6. 참고사항

(1) 명언
• “《보천가》는 시구(詩句) 속에 성도가 있고 말 아래에 천상이 나타난다.”[步天歌 句中有圖 言下見象]” 《통지(通志)》 〈천문략(天文略)1 천문서(天文序)〉
• “하루는 《보천가》를 얻어 읊어보았는데, 때는 가을이요 달도 없는 맑은 하늘이 물과 같은데 한 구절을 길게 읊으니 별 하나가 눈에 맺혔고 사흘 밤이 안되어 하늘의 별들이 모두 가슴속에 들어 있게 되었다.[一日得步天歌而誦之 時素秋無月 淸天如水 長誦一句 凝目一星 不三數夜 一天星斗 盡在胸中矣]” 《통지》 〈천문략1 천문서〉
• “남북 두 별 곧게 걸렸고, 가운데 평도(平道), 위 천전(天田). 모두 검은 별 양쪽으로 서로 나란해. [南北兩星正直懸 中有平道上天田 總是黑星兩相連]” 《보천가(步天歌)》 〈각수(角宿)〉
(2) 색인어:보천가(步天歌), 단원자(丹元子), 왕희명(王希明), 신법보천가(新法步天歌), 이순지(李純之), 김영(金泳), 이준양(李俊養), 남병길(南秉吉)
(3) 참고문헌
• 步天歌硏究(周曉陸, 中國書店)
• 中國恒星觀測史(潘鼐, 學林出版社)
• 〈朝鮮傳本《步天歌》考〉(石云里, 《中国科技史料》 19, 1998)
• 〈조선 초기 《보천가(步天歌)》와 《천문류초(天文類抄)》의 성립에 대한 연구〉(안상현, 《한국우주과학회지》 26(4), 2009)
• 〈《신법보천가》 연구〉(안상현, 《한국우주과학회지》 26(4), 2009)
• 〈1792년 관상감이 출간한 새로운 《보천가(步天歌)》의 기원〉(안상현, 《한국과학사학회지》 37(1), 2015)

【안상현】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3.10.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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