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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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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통지당경해(通志堂經解)》는 청(清)나라 납란성덕(納蘭性德)이 편찬했다고 전해지지만 서건학(徐乾學)과 관련이 있다고 하는 선진(先秦)시기부터 명대(明代)까지의 유가 경전의 해석과 관련한 저작을 모은 총서이다. 모두 138종과 납란성덕 자신이 지은 두 종을 포함하여 전체 140종 1800권으로 구성되었다.

2. 저자

(1) 성명:납란성덕(納蘭性德(1655~1685)), 서건학(徐乾學(1631~1694))
(2) 자(字)・별호(別號):납란성덕은 자가 용약(容若)이고, 호가 음수(飲水), 능가산인(楞伽山人)이다. 원래 이름은 납란성덕(納蘭成德)이나, 이후 태자(太子)인 보성(保成)을 피휘(避諱)하고자 납란성덕(納蘭性德)으로 개명하였다. 서건학은 자가 원일(原一), 호가 건암(健庵)이다. 동해선생(東海先生)이라고도 부른다.
(3) 출생지역:납란성덕은 경사(京師(현재 베이징시(北京市)))이고, 서건학은 강소(江蘇) 곤산(昆山(지금의 강소성(江蘇省) 곤산시(昆山市)))이다.
(4) 주요활동과 생애
납란성덕은 예허나라씨(葉赫那拉氏)이자, 만주정황기(滿洲正黃旗) 출신이다. 부친은 납란명주(納蘭明珠)(1635~1708)로, 무영전대학사(武英殿大學士)와 태자태사(太子太師)를 지낸 강희제(康熙帝)의 총신 중 하나이다. 어릴 때부터 문학에 소질이 있어 17세에 국자감(國子監)에 입학, 당시 국자감좨주인 서원문(徐文元)에게 칭찬을 듣고, 그의 형인 서건학(徐乾學)에게 소개 받는다. 18세에 거인(舉人), 19세에 공사(貢士)가 되고 21세에 진사(進士)가 된다. 당시 서건학을 스승으로 모시고 2년 동안 《통지당경해(通志堂經解)》를 편찬하여 강희제에게 칭찬을 듣고, 일등시위(一等侍衛)를 받고 여러 차례 순시에 참여했다. 사(詞)에 조예가 깊어 348수의 사를 남겼다. 강희(康熙) 24년(1685)에 병으로 사망하였다. 그의 나이 31세였다.
서건학은 강희 9년(1670)에 탐화(探花(3위))로 진사進(士)가 되었다. 내굉문원편수(內宏文院編修)를 거쳐 일강기거주관(日講起居注官), 《명사(明史)》 총재관(總裁官), 시강학사(侍講學士), 내각학사(內閣學士) 등을 거쳐 좌도어사(左都御史), 형부상서(刑部尚書)에 올랐다. 강희 30년(1691)에 탄핵을 받고 파직 후, 강희 33년(1694) 왕희(王熙), 장옥서(張玉書) 등의 추천으로 도서를 편찬하다 얼마 지나 사망하였고, 이후 복권하였다. 또한 장서가로 유명하며 그의 장서각은 전시루(傳是樓)이다.
(5) 주요저작:납란성덕의 저작으로는 《통지당경해(通志堂經解)》, 《녹수정잡식(渌水亭雜識)》, 《대역집의수언(大易集義粹言)》, 《사운정략(詞韻正略)》, 《금사초집(今詞初集)》, 《통지당집(通志堂集)》 등이 전해진다. 서건학의 저작으로는 《담원집(澹園集)》, 《독례통고(讀禮通考)》, 《문집(文集)》, 《외집(外集)》, 《우포집(虞浦集)》, 《사관집(詞館集)》, 《벽산집(碧山集)》, 《역대종묘고(歴代宗廟考)》, 《여지비고(輿地備考)》, 《여지기요(輿地紀要)》, 《여지지(輿地志)》, 《자치통감후편(資治通鑑後編)》, 《전시루송원판서목(傳是樓宋元板書目)》, 《전시루서목(傳是樓書目)》, 《교습당조약(教習堂條約)》 등이 있다. 또한 《명사(明史)》, 《대청회전(大清會典)》, 《대청일통지(大清一統志)》, 《세조장황제성훈(世祖章皇帝聖訓)》, 《태종문황제성훈(太宗文皇帝聖訓)》, 《통지당경해(通志堂經解)》, 《감고집람(鑑古輯覽)》, 《고문연감(古文淵鑑)》 등을 편찬하였다.

3. 서지사항

《통지당경해》는 《구경해(九經解)》라고도 한다. 선진(先秦), 당(唐), 송(宋), 원(元), 명(明) 시기의 유가 경전을 수록한 총서이다. 책 명칭에서 통지당(通志堂)은 납란성덕의 실명(室名)으로 이외에도 《통지당집(通志堂集)》 등에 사용되었다. 경해(經解)는 경에 대한 해설을 가리킨다. 주소류(注疏類)가 이러한 범주에 포함된다.
일반적으로는 이 총서는 강희 19년(1680)에 판각되었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최근 연구에 의하면 강희 30년(1691) 8월 전후에 서건학의 고향인 곤산에서 완성된 것으로 파악된다. 또한 이 책이 납란성덕에 의해 편찬되었다 하더라도 서건학, 주이준(朱彝尊), 엄승손(嚴繩孫), 고미(顧湄), 육원보(陸元輔) 등의 도움을 받았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한당(漢唐) 경전(經典)과 관련한 훈고(訓詁)의 내용은 《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에 모여 있고, 청대(清代)의 고증학(考證學)은 《황청경해정속편(皇清經解正續編)》에 정리되어 있다. 이 총서는 그 사이 중 주로 송대(宋代)와 원대(元代)의 유서(遺書)를 모은 것으로 앞에서 말한 두 책을 잇는 징검다리와 같은 책이라 할 수 있다.
현존하는 판본으로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강희 19년(1680) 통지당(通志堂) 초각본(初刻本)이고, 또 하나는 동치(同治) 12년(1873) 월동서국(粵東書局)의 중각본(重刻本)으로, 양광염운사(兩廣鹽運使)인 파릉(巴陵) 사람 종겸균(鍾謙鈞(1803~1874))이 강희본을 근거로 번각하였다. 판각이나 교감이 초판보다 못하다는 평이다. 1969년 대북(臺北) 대통서국(大通書局)에서 초간본을 영인하였다. 2011년 광릉서사(廣陵書社), 2015년 문물출판사(文物出版社), 2019년 북경연산출판사(北京燕山出版社)에서 초각본을 영인하여 출판하였다.

4. 내용

《통지당경해(通志堂經解)》는 선진(先秦) 시기이긴 하지만 위서(僞書)로 의심되는 《자하역전(子夏易傳)》, 당대(唐代)의 《모시지설(毛詩指說)》, 《경전석문(經典釋文)》 등 몇 가지 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송(宋)・원(元)・명대(明代)의 경전 해설을 모은 것이다. 모두 138종 1682권을 포함하고 있다. 목록상 역(易) 39종・서(書) 19종・시(詩) 11종・춘추(春秋) 35종・삼례(三禮) 12종・효경(孝經) 4종・논어(論語) 2종・맹자(孟子) 3종・사서(四書) 8종・총경해(總經解) 7종 등의 세부 항목으로 나누었다. 《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 및 《사고전서(四庫全書)》에서의 목록 순서와 비교해보면 춘추와 삼례의 순서가 바뀌어 있고, 효경이 사서류보다 앞서 있으며, 논어・맹자가 사서류에서 따로 분리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십삼경 중 이아(爾雅)를 포함시키지 않았다. 《합정산보대역집의수언(合訂删補大易集義粹言)》 80권과 《예기진씨집설보정(禮記陳氏集說補正)》 38권 등 두 책은 납란성덕이 지은 것으로, 각각 역(易)과 삼례(三禮) 부분 말미에 포함시켰다. 송・원 경해를 모아 그리 가치가 없다고 간주되는데다가, 희구본(稀覯本) 중심으로 수집했으므로 소식(蘇軾)・소철(蘇徹)의 경해나 《사서오경대전》 등 송・원・명의 주요 경해서를 수록하지 않았다
《통지당경해》에 대해 건륭 연간의 옹방강(翁方綱)은 목록(目錄)을 별찬(別撰)해서 판본에 대해 상세히 밝혔고, 민국 초 관문영(關文瑛)은 《통지당경해제요(通志堂經解提要)》에서 각 서적의 원류와 개요, 찬술 취지 등을 종합적으로 논했다.

5. 가치와 영향

이 책은 앞에서 언급한 바대로 청대 초기에 편찬된 유가 경전의 총서로, 그 전에 발간된 《십삼경주소》와 이후 완원(阮元)의 《황청경해(皇清經解)》를 이어주는 경전 해설 모음집으로서 가치를 갖는다 할 수 있다. 섭덕휘(葉德輝)는 《서림청화(書林清話)》에서 《통지당경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다. “주관한 사람에게 뛰어난 견식이 없었고, 학파별로 비난이 심하여 무릇 제가의 경해에 있어 정주학파가 아니면 삭제해 버리고 채록하지 않았다. 또한 판각본 중에 근거로 삼을 만한 송・원의 구본이 있었는데도 전혀 교감을 하지 않았다. 하작(何焯)이 비열(批閱)한 《목록》의 주석을 보면 당시에 얼마나 대충대충 했는지 알 수 있다.”
정조 때 이덕무(李德懋)는 《청장관전서(青莊館全書)》 〈앙엽기(盎葉記)〉 ‘경해조목(經解條目)’에서 서건학의 서문을 일부 인용하였다. 또한 그는 모기령(毛奇齡)의 《논어계구록(論語稽求錄)》 서문으로부터 “시위 납란성덕이 교정하여 인각한 경해도 수만 권이다.[(而侍衛成德) (校刻經解數萬卷)]”을 인용하고, 안어(按語)를 붙여 무술년(1778) 사은 겸 진주사 서장관 심염조(沈念祖)(1734~1783)가 《통지당경해》를 연경에서 구입해 왔다고 밝혔다. 정조는 규장각 각신이나 초계문신들에게 《고금도서집성》과 《통지당경해》의 열람을 권유했다. 그렇지만 정조는 《통지당경해》의 경해를 인증하지 않았다. 순조 때의 성해응(成海應(1760~1839))은 〈서경해목록후(書經解目錄後)〉에서, 《통지당경해》가 실학에도 고징(考徵)에도 도움되지 않는 책들을 수록했다고 비판했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애석하다. 그 책이 유통되어 전해진 날이 오래되어, 열 중에 하나둘만이 남아 있다. 나는 일찍이 친구 진대암(秦對巖), 즉 진송령(秦松齡(1637~1714))과 주죽타(朱竹垞), 즉 주이준(朱彝尊(1629~1709))에게 책을 소장한 집에서 구매할 것을 부탁하여 그중에서 얻어낸 것이 있었지만, 조판이 이미 망가지고 끊어지고 빠져서 끝까지 읽을 수 없었다. 초본(鈔本)은 오류가 더욱 심하여, 그중에도 완전하여 오류가 없는 것은 또한 10개 중에서 하나둘도 못 구하였다. [惜乎其書流傳日久 十不存一二 余向屬友人秦對巖 朱竹垞購諸藏書之家 間有所得 雕版旣漫漶斷闕 不可卒讀 鈔本譌謬尤多 其間完善無譌者 又十不得一二]” 《통지당경해》 〈납란성덕서(納蘭性德序)〉
• “짐이 납란성덕이 지은 서문을 보았는데 강희 12년(1673)이었다. 당시 성덕의 나이를 계산해 보면 어린아이였다. 어떻게 경술에 능통할 수 있었단 말인가? 지난번에 서건학이 성덕을 대신하여 《통지당경해》를 판각했던 일에 대해 들었다. 그래서 군기대신에게 성덕의 출신본말을 자세히 조사하게 하였다. 그 결과 성덕이 강희 11년 임자과 거인에 합격했고, 12년 계축과 진사에 합격했지만 겨우 16세였음을 알았다. 서건학은 임자과 순천 향시의 부고관이었는데, 그 때문에 그가 합격했던 것이다.…… 이는 서건학이 모아 집록한 것을 성덕의 이름으로 출판하게 하고, 이를 빙자하여 이름을 팔고 명예를 구했음을 더욱 증명하는 것으로 권세에 영합하는 도구가 되었을 뿐이다. 저 서건학과 성덕 두 사람은 품행에 있어 본래 배울 만한 것이 없다. 그러나 이 책은 제가의 책들을 모두 모아놓아 내용이 아주 풍부하므로 실로 육경을 표장할 만한 것이다. 짐은 사람 때문에 말을 폐할 수 없었다. 그래서 관신들에게 명하여 책판이 문드러지고 잘리고 빠진 것들을 보간하여 온전하게 하고 오류를 정정하여 완전하게 함으로써 유림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하였다.[朕閱成德所作序文系康熙十二年 計其時成德年方幼穉 何以即淹通經術 向時即聞徐乾學有代成德刊刻通志堂經解之事 茲令軍機大臣詳查成德出身本末 乃知成德於康熙十一年壬子科中式舉人 十二年癸醜科中式進士 年甫十六 徐乾學系壬子科順天鄉試副考官 成德由其取中……更可證爲徐乾學所裒輯 令成德出名刊刻 俾藉此市名邀譽 爲逢迎權要之具耳 夫徐乾學 成德二人 品行本無足取 而是書薈萃諸家 典贍賅博 實足以表章六經 朕不以人廢言 故命館臣將版片之漫漶斷爛闕者補刊齊全 訂正訛謬 以臻完善 嘉惠儒林]” 건륭제(乾隆帝) 《통지당경해》 보간(補刊) 상유(上諭)
• “《경해》는 죽타 주이준과 담포 서건학의 소장 서적을 다 수집하고, 거기다 수수의 조추악, 무석의 진대암, 상숙의 전준왕, 모부계, 온릉의 황유태 장서를 빌려 모은 것으로 140여 종이나 된다. 《자하역전》부터 당나라 사람의 저술은 겨우 2, 3종이고 그 나머지는 대부분이 송・원 제유의 찬술이다. 명나라 사람의 저술도 1, 2종이 끼여 있다. 정말로 유학과 경학의 거창한 숲인 것이다. 이 책은 간행된 지 벌써 100년이 넘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있는 줄을 까마득히 몰랐다. 해마다 사신이 끊임없이 오가지만, 사오는 책이라고는 오직 연의소설이거나 《팔가문초》와 《당시품휘》 따위일 뿐이다.[經解者 朱竹坨彜尊 與徐憺圃乾學 搜憺圃竹坨所藏 又借秀水曹秋岳 無錫秦對岩 常熟錢遵王 毛斧季 溫陵黃兪邰之藏 得一百四十種 自子夏易傳外 唐人之書 僅二三種 其餘皆宋元諸儒所撰述 而明人所著 間存一二 眞儒家之府藏 經學之淵藪也 此書刊行已百年 而東方人漠然不知 每年使臣冠蓋絡繹 而其所車輸東來者 只演義小說及八大家文抄 唐詩品彙等書]” 이덕무(李德懋) 《청장관전서(青莊館全書)・입연기하(入燕記下)》
(2) 색인어:납란성덕(納蘭性德), 서건학(徐乾學), 통지당경해(通志堂經解), 구경해(九經解), 청대(清代), 강희제(康熙帝)
(3) 참고문헌
• 通志堂經解(廣陵書社)
• 서림청화(섭덕휘 저. 박철상 역, 푸른역사)
• 《通志堂經解》及其書版入藏内府考(楊國彭, 故宮博物院院刊)
• 正祖의 經解와 明清 經說・說文學 書籍(심경호, 대동문화연구원 국제학술대회)

【신원철】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3.10.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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