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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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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번천문집》의 저자 두목(杜牧)은 당(唐)나라 말기의 시인이자 산문가이다. 본서는 전 20권으로 두목의 외조카인 배연한(裴延翰)이 부(賦) 3편, 시 258수, 산문 197편 등 모두 458편을 편차(編次)한 것이다. 권말에 후인들이 외집(外集)과 별집(別集)을 추가하면서 수록된 시가 436수로 늘어났다.

2. 저자

(1) 성명:두목(杜牧)(803~852)
(2) 자(字)·별호(別號):자는 목지(牧之), 호는 번천거사(樊川居士).
(3) 출생지역:경조(京兆) 만년(萬年)(현 중국 섬서성(陝西省) 서안(西安)).
(4) 주요활동과 생애
두목은 재상을 지낸 두우(杜佑)의 손자로 명망 있는 집에서 태어났으나, 조부와 부친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면서 가세가 기울어 불우한 소년시절을 보냈다. 26세 때 과거에 급제한 후 관찰사 심전사(沈傳師)를 따라 홍주(洪州)와 선주(宣州) 등지에서 막료로 일했다. 31세 때에는 다시 우승유(牛僧孺)의 부름을 받아 양주(揚州)로 가서 풍류를 즐겼다. 이후 장안으로 돌아와 감찰어사(監察御使), 비부원외랑(比部員外郞) 등의 관직을 지냈다. 40세 때 당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다시 황주자사(黃州刺史)로 좌천되었다가 6년만에 조정으로 돌아와 사훈원외랑(司勳員外郞), 사관수찬(史館修撰) 등을 역임했다. 만년에는 조부 두우의 별장을 수리해 머무르며 외조카인 배연한에게 《번천문집》을 엮어줄 것을 부탁했고,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장안의 자택에서 향년 5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두목의 문학 창작은 시부(詩賦)와 산문을 망라했다. 두목과 함께 만당(晩唐)의 ‘이두(李杜)’로 일컬어진 이상은(李商隱)은 그의 시 〈두사훈(杜司勳)〉에서 “봄을 아파하고 이별을 아파하는 데 마음을 쓴 것은 인간 세상에 오직 두목뿐[刻意傷春復傷別 人間惟有杜司勳]”이라며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고 자신의 불우함을 개탄하는 내용이 많았던 두목의 문학 세계를 평가한 바 있다.
(5) 주요저작:《번천문집(樊川文集)》, 《손자주(孫子注)》

3. 서지사항

《번천문집》은 두목의 호인 번천거사에서 이름을 딴 것으로, 모두 20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1은 시부(詩賦), 권2~4는 시, 권5~20은 산문을 실었다. 이후 송나라 사람이 두목의 시로 전해지는 작품을 더 수집해 ‘번천외집(樊川外集)’과 ‘번천별집(樊川別集)’ 각 1권씩을 더했는데, 여기에는 진위가 불분명한 것까지 포함되어 정밀한 교감이 필요하다. 《번천문집》의 판본으로는 명나라 때 송본(宋本)을 번각(翻刻)한 것을 영인한 사부총간(四部叢刊)본과 청나라 때 양수창(楊壽昌)이 송본을 영인한 경소원(景蘇園)본이 널리 알려져 있다. 특기할 만한 사실은 1440년에 조선에서 《번천문집협주(樊川文集夾注)》를 간행해 현존하는 최초의 《번천문집》 간본으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남송(南宋) 때 나온 선본(善本)을 저본으로 한 것이어서 자료 가치가 대단히 높다. 다만 협주본은 두목의 산문을 수록하지 않아 완정한 《번천문집》 판본으로 보기는 어렵다. 문연각(文淵閣) 사고전서(四庫全書)에 편입된 《번천문집》은 협주본과 반대로 산문만 수록했다.

4. 내용

두목이 활동했던 만당(晩唐) 시기는 당나라가 급속히 내리막길을 걷던 때로서, 각종 사회적 모순이 표면화되면서 문인 사회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번천문집》에 실린 두목의 시문(詩文) 458편에는 대체로 이러한 사회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내용이 많다. 그는 《통전(通典)》의 저자인 조부 두우의 영향을 받아 경세치용(經世致用)의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부국강병의 방도를 고민하면서 정치, 경제, 군사 방면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번천문집》에는 문학에 대한 그의 입장도 잘 드러나 있다. 그는 시에서는 이백(李白), 두보(杜甫), 이하(李賀)를 추종했고, 산문에서는 한유(韓愈)와 유종원(柳宗元)의 ‘고문운동(古文運動)’ 정신을 계승하고자 했다. 그래서 시에서는 사회 현실에 대한 감개를 호방한 기풍으로 노래했고, 산문에서도 시사(時事)에서 보고 느낀 바를 날카롭고 시원스럽게 펼쳐보였다. 다만 장기간 막부(幕府)를 전전하며 실의의 나날을 보낸 탓에 기루(妓樓)를 드나들며 방탕한 생활을 했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5. 가치와 영향

두목은 만당(晩唐)을 대표하는 문인으로, 그의 시문을 수록한 《번천문집》은 그가 임종 전에 손수 외조카인 배연한에게 정리를 부탁한 것이다. 이를 토대로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에 적어도 네 종류의 《번천문집》 판본이 유통되었으며, 대표적인 것으로 《번천문집》에 자세한 주석을 붙인 《번천문집협주(樊川文集夾注)》를 들 수 있다. 특히 《번천문집》 권6에는 신라인으로 당나라에서 활약한 장보고(張保臯)와 정년(鄭年)의 전기를 싣고 있어 우리 역사 연구에도 좋은 참고자료가 된다. 《번천문집》에 실린 두목의 시문은 신라 말기에는 한반도로 유입되었을 것으로 보이며, 고려 문종 때의 이규보(李奎報)는 두목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왕조실록》의 ≪연산군일기≫를 보면 “문장이 두목과 같은 자를 선발하라.”는 내용이 있고, 영사시(詠史詩)에 능했던 두목의 시 가운데 〈제사호묘(題四皓廟)〉와 같은 작품은 전후로 네 차례나 언급된 것으로 보아 두목의 시문은 조선의 문인들에게 폭넓은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평가된다. 《번천문집》은 비교적 이른 시기에 일본으로도 전해졌다. 경소원본의 서문에 따르면 일본 에도 막부의 아키야마(楓山) 문고에 송본 《번천문집》이 소장되어 있다가 일실되었다고 한다. 또 현대 일본의 중고생용 교과서에 두목의 시 〈강남춘(江南春)〉, 〈산행(山行)〉, 〈증별(贈別)〉 등을 실어 두목의 시를 비중 있게 다루었다.

6. 참고사항

(1) 명구
• “진나라 사람은 스스로 슬퍼할 겨를도 없었기에 후인들이 그들을 슬퍼했다. 후인들이 그들을 슬퍼하면서도 거울로 삼지 않는다면, 그보다 더 후인들이 다시 그 후인들을 슬퍼하게 될 것이다.[秦人不暇自哀而後人哀之 後人哀之而不鑑之 亦使後人而復哀後人也.]” 권1, 〈아방궁부(阿房宮賦)〉
• “노래하는 여인은 망국의 한을 모르고, 강 건너에서 오히려 〈후정화〉를 부르네.[商女不知亡國恨 隔江猶唱後庭花]” 권4, 〈박진회(泊秦淮)〉
• “장보고의 나이는 서른 살이고 정년의 나이는 열 살이 어려, 장보고를 형이라고 불렀다. 모두 싸움을 잘하여 말을 탄 채로 창을 휘둘렀는데, 본국인 신라와 당나라 서주에서 능히 대적할 사람이 없었다.[保臯年三十 鄭年少十歲 兄呼保臯 俱善鬪戰 騎而揮槍 其本國與徐州 無有能敵者]” 권6, 〈장보고정년전(張保臯鄭年傳)〉
(2) 색인어:두목(杜牧), 번천문집(樊川文集), 번천문집협주(樊川文集夾注), 장보고(張保臯), 이상은(李商隱), 아방궁부(阿房宮賦), 이하집서(李賀集序), 산행(山行)
(3) 참고문헌
• 중국 시와 시인(당대편, 이병한 외, 사람과책)
• 조선시대 간행 중국문학 관계서 연구(김학주, 서울대학교출판부)
• 樊川文集(上海古籍出版社)
• 杜牧集繫年校注(吳在慶, 中華書局)
• 杜牧詩選(胡可先, 中華書局)
• 杜牧(荒井健, 筑摩書房)
• 杜牧研究: 杜牧における政治と文学(高橋未来, 東京学芸大学出版会)
【김준연】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0.08.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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