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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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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육우(陸羽)의 《다경(茶經)(Tea Classic)》은 중국 차문화(茶文化) 역사에서 뿐만 아니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차에 관한 최초의 전문서적으로써 오늘날 차를 연구하는데 있어 반드시 읽어야 할 다도(茶道)의 경전이자 지침서(指針書)로 자리하고 있다. 《다경》의 저자 육우는 다성(茶聖)이라 일컬어지며 세계의 차문화를 발전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특히 그는 《다경》을 저술함으로써 차자(茶字)의 의미, 기구(器具), 제다(製茶), 자다(煮茶), 음다(飮茶), 행다(行茶) 등을 체계적으로 정립시켰고 차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심어주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2. 저자

(1) 성명:육우(陸羽)(733~804). 육우의 이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육우가 호숫가에 버려진 것을 거둔 지적선사(智積禪師)는 아이 이름을 짓게 되는데 《주역(周易)》 〈풍산점(風山漸)〉에 ‘큰기러기가 뭍에 나아간다. 그 깃은 거동에 쓸 수 있으니 길하다.[鴻漸于陸 其羽可用爲儀吉]’는 점괘와 연결하여 그의 성을 육(陸)씨라 하고, 이름은 우(羽), 또는 홍점(鴻漸)이라 지어주었다고 한다. 육우는 자신의 성씨에 대해 《당인설회(唐人設薈)》에서 “육씨 성은 자신을 길러준 지적선사의 속성인 육씨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2) 자(字)·별호(別號):자는 홍점(鴻漸) 또는 계자(季疵)이며, 호는 경릉자(竟陵子), 상저옹(桑苧翁), 동강자(東岡子), 동원선생(東園先生), 다산어사(茶山御使) 등이고, 일명 질(疾)이라고도 하였다.
(3) 출생지역:육우는 당 현종(唐玄宗) 개원(開元) 21년(733)에 경릉군(竟陵郡)(지금의 호북성(湖北省) 천문현(天門縣))에서 태어났다. 육우의 출생에 관한 기록은 전설 속에 전해져온다. 즉 청(淸)나라 도광(道光) 연간에 편집한 지방지인 《천문현지(天門縣誌)》에는 육우의 출신에 대해 ‘경릉군 복부주(覆釜州) 소재 용개사(龍蓋寺) 주지스님인 지적선사(智積禪師)가 서호(西湖) 물가에서 기러기 떼가 울고 있는 갓난아기를 날개로 감싸고 있는 것을 보고, 그 아기를 데려와 자신의 사찰에서 키웠다고 전해진다.
(4) 주요활동과 생애
육우는 복주(復州) 경릉군(竟陵郡) 출신으로, 3살 때 호숫가에 버려진 것을 용개사(龍盖寺)의 주지인 지적선사(智積禪師)가 거두어 길렀다. 육우가 어렸을 때 지적선사는 육우가 불경을 읽으며 승려가 되기를 기대했지만, 육우는 유교를 배우려고 하였다. 그는 말더듬이었지만, 웅변에도 능하였다. 그 뒤 육우는 절에서 도망하여 극단에 들어가 배우로 활약했으며, 천보(天寶) 연간에 경릉태수(竟陵太守) 이제물(李齊物)의 눈에 들어 그의 추천으로 학문을 배우게 되었다.
20세 때인 천보 11년(752)에는 유자(儒者)의 신분으로 격상되어 경릉태수 최국보(崔國輔)와 교분을 맺었고, 오늘날 하남성(河南省)의 신양(新陽) 일대와 파산(巴山) 협천(峽川) 등지를 주유(周遊)하며 차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였다.
23세에 경릉으로 돌아온 후 청탄역(晴灘驛) 석호(石湖) 옆 동강촌(東岡村)에 정착하고서 그동안 수집한 차에 관한 자료를 정리하였는데 이것이 후일 《다경》을 저술하는 기초적인 자료가 되었다. 28세 때에 안사(安史)의 난 피난민을 따라 호주(湖州)에 도착한 육우는 저산(渚山) 묘희사(妙喜寺)에서 당대의 시인이자 차에 대한 지식이 풍부했던 시승(詩僧) 석교연(釋皎然)과 망년지교(忘年之交)를 맺는다. 이 기간에 당시의 맹교(孟郊), 장지화(張志和), 유장경(劉長卿), 이야(李冶) 등 유자의 명사들과 사귀기도 했다. 이로부터 육우의 생활은 호주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죽은 후에도 이곳에서 묻힌다. 따라서 후세 사람들은 호주를 육우의 제2의 고향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석교연의 권유로 육우는 다시 초계(苕溪)로 이주하고 《다경》에 대한 원고정리와 연구에 몰두하게 된다. 29세인 상원(上元) 2년(761)에 육우는 자서전 《육문학자전(陸文學自傳)》을 완성했다. 그는 이 자서전에서 《군신계(君臣契)》 3권, 《원해(源解)》30권, 《남북인물지(南北人物誌)》 10권, 《오흥역관리(吳興歷官記)》 3권, 《호주자사기(湖州刺史記)》 1권, 《다경(茶經)》 3권, 《점몽(占夢)》 3권을 지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33세 때인 영태(永泰) 원년(元年)(765)에 육우는 당시의 32주(州), 군(郡) 등지의 차에 관한 실제 답사 및 고찰을 통해 《다경》의 초고(初稿)를 완성하게 된다. 41세 때인 대력(大歷) 8년(773)부터 호주자사(湖州刺使)로 부임한 안진경(顔眞卿)이 《운해경원(韻海鏡源)》 360권을 편찬하는데 승(僧) 석교연(釋皎然)과 함께 이 편찬 작업에 동참하게 된다. 안진경은 육우에게 삼계정(三癸亭)이라는 다정(茶亭)을 지어줄만큼 친교가 두터웠다. 대력(大歷) 9년(774)에 안진경의 《운해경원(韻海鏡源)》이 완성되었고, 이 작업에서 육우는 차에 관계된 자료를 수집하여 그 내용을 자신의 저서인 《다경》 〈칠지사(七之事)〉편에 보충 편집하였다.
육우는 48세에 건중(建中) 원년(元年)(780)에 비로소 《다경》을 탈고하고 완성하였다. 세계 최초 차(茶)의 전문서적일 뿐만 아니라 지침서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다경》은 육우가 십 수 년에 걸쳐 작업한 성과인 것이다. 67세(799)에 호주로 돌아와 건당별(建塘別)(혹자는 청당별)에서 기거하였으며, 72세(804) 겨울에 호주에서 생을 마쳤다.
육우의 생애에 관해서는 《당서(唐書)》 〈육우전(陸羽傳)〉에도 “육우는 차를 좋아하여 《다경》 3편을 지었는데 차의 근원, 차의 도구, 차 만들기, 차의 그릇, 차 끓이기, 차 마시기, 차의 고사, 차의 생산지, 차의 생략, 차의 그림을 모두 갖추었다. 이 저서가 출간된 이래 천하 사람들이 차 마시기에 대해서 더욱 잘 알게 되었다.[羽嗜茶 著 《經》 三編 言茶之源 之具 之造 之器 之煮 之 飮 之事 之出 之略 之圖尤備 天下益知飮茶矣.]”라고 기록되어 있다.
육우의 전기(傳記)와 관련된 문헌은 《신당서(新唐書)》 권196 〈육우전(陸羽傳)〉, 《문원영화(文元英華)》 권793, 《육문학자전(陸文學自傳)》, 《봉씨문견기(封氏聞見記)》, 《대당전재(大唐傳載)》, 《전다수기(煎茶水記)》, 《당국사보(唐國史補)》 〈육우득성씨(陸羽得姓氏)〉, 신문방(辛文房)의 《당재자전(唐才子傳)》 권3 〈육우(陸羽)〉, 《당서(唐書)》 〈은일전(隱逸傳)〉, 피일휴(皮日休)의 《다중잡영(茶中雜咏)》, 진사도(陳師道)의 〈다경서(茶經序)〉, 이유정(李維楨)의 〈다경서(茶經序)〉, 서동기(徐同氣)의 〈다경서(茶經序)〉, 동승서(童承舒)의 〈육우찬(陸羽贊)〉 등이 있다.
(5) 주요 저작
육우가 남긴 저작(著作)에는 약 57종이 있으며 그중 현존(現存) 저작 17종, 집존(輯存) 저작 13종, 망일(亡佚) 저작 22종, 존의(存疑) 저작 3종, 기타(其他) 2종이 있다. 이외에 육우는 안록산의 난(755~763)이 중원을 휩쓸 즈음 〈사비시(四悲詩)〉를 짓고, 유전(劉展)과 강회(江淮)지방을 돌아보고 〈천지미명부(天地未明賦)〉를 지었다. 육우는 29세인 상원 2년(761)에 자서전 《육문학자전(陸文學自傳)》을 완성했다. 그는 이 자서전에서 《군신계(君臣契)》 3권, 《원해(源解)》 30권, 《남북인물지(南北人物誌)》 10권, 《오흥역관리(吳興歷官記)》 3권, 《호주자사기(湖州刺史記)》 1권, 《다경(茶經)》 상중하 3권, 《점몽(占夢)》 상중하 3권 등을 지었다고 하였다. 이외에 《강표사성보(江表四姓譜)》8권, 《고저산다기(顧渚山茶記)》2권, 《저산기(渚山記)》, 《혜산기(惠山記)》, 《호구산지(虎邱山志)》, 《수품(水品)》, 《훼다론(毁茶論)》, 《교방록(敎坊錄)》, 《당오승시(唐五僧詩)》, 《영은천축이사기(靈隱天竺二寺記)》등의 저서를 남겼다.

3. 서지사항

《다경》의 저술 연대는 대체로 761년, 764년, 775년, 780년경 등의 주장들이 나오고 있지만, 오늘날의 학자들은 《茶經》의 저술연대에 대해 761년을 초고본(初稿本), 764년, 775년을 수정본(修正本), 780~781년을 완성본(完成本)으로 보고 있다.
육우의 《다경(茶經)》은 상·중·하 3권으로 되어 있으며, 글자 수가 6,210여 자로 되어있다.
상권에는 〈일지원(一之源)〉 〈이지구(二之具)〉, 〈삼지조(三之造)〉, 중권에는 〈사지기(四之器)〉, 하권에는 〈오지자(五之煮)〉, 〈육지음(六之飮)〉, 〈칠지사(七之事)〉, 〈팔지출(八之出)〉, 〈구지략(九之略)〉, 〈십지도(十之圖)〉로 구성되어 있다.

4. 내용

(1) 《다경》 상권 : 〈일지원(一之源)〉에서는 ① 차나무, 잎, 꽃, 씨, 줄기, 뿌리 ② 차(茶)의 문자사(文字史) ③ 차(茶)이름 ④ 자생(自生)과 재배(栽培) 적지 ⑤ 차나무 심기 ⑥ 차움의 질 ⑦ 차의 효능, ⑧ 차 따기, 차 만들기 ⑨ 차의 부담스러움 ⑩ 인삼 생산지 등을 기록하였다. 〈이지구(二之具)〉에서는 채다(採茶)에서 제다(製茶)를 보관하기까지 필요한 공구(工具) 15가지의 종류 및 분류, 도구의 내용 및 병차(餠茶) 가공, 도구의 특징 등 제다(製茶)에 필요한 다구를 설명하였다. 〈삼지조(三之造)〉에서는 ① 찻잎을 따는 시기[採茶時期] ② 찻잎을 따는 요령[採茶要領] ③ 차를 만드는 과정[造茶過程] ④ 차싹의 선별법[茶芽選別法] ⑤ 찻잎 변별상[辨別上]의 주의할 점 등 다엽(茶葉)의 채적(採摘) 및 제조기술(製造技術)을 열거했다.
(2) 《다경》 중권 : 〈사지기(四之器)〉에서는 병차(餠茶)를 갈아 찻가루를 준비하고 물을 끊여 차를 타 마신 다음 다시 그릇들을 정리하기까지의 다기(茶器)로서, 자다기물(煮茶器物) 및 음다기물(飮茶器物) 등 차를 끓이고 마시고 병차를 건조하는데 필요한 24種의 명칭, 형태, 규격, 사용법 등 찻그릇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3) 《다경》 하권 : 〈오지자(五之煮)〉에서는 ① 알맞게 굽기 ② 봉투에 간직하기, 찻가루 만들기 ③ 불지필 숯과 땔감의 선택 ④ 물의 선택 ⑤ 찻물 끓이기 ⑥ 간 맞추기 ⑦ 찻가루 넣기 ⑧ 나누어 따르기 등 팽다용(烹茶用) 물의 품제 등을 기록하였다. 〈육지음(六之飮)〉에서는 ① 음다역사(飮茶歷史)의 개략(槪略) ② 패습(悖習)에 가까운 당대(唐代) 음다상황(飮茶狀況) ③ 채다에서 음다(飮茶)까지의 아홉 가지 어려움 ④ 사람 수에 따른 행다기법(行茶技法) 등과 음다시 좌객의 수에 따른 다완 수와 음다방법 등에 대하여 논하였다.
〈칠지사(七之事)〉에서는 상고(上古)부터 당대(唐代)까지 차에 관한 고사를 서술하였는데, 역사적 인물들을 중심으로 차와 관련 있는 43위(位)를 들고 있으며, 45종의 서목(書目)을 인용하여 서술하고 있다. 경(經)·사(史)·자(字)·집(集)은 물론 각종 전설(傳說), 우언(寓言), 시부(詩賦), 소설(小說), 본초(本草), 식경(食經), 지지(地志), 방제(方劑)와 불교(佛敎), 도교(道敎)의 저술까지 도합 48칙(則)이 실려 있다. 여기에는 차의 효능, 차생활 정신, 채다(採茶), 조다(造茶), 음다(飮茶), 차죽(茶鬻) 및 병차(餠茶), 차명(茶名)과 차 생산지, 차의 품질, 차연(茶宴), 제수품으로 사용된 차, 차와 관련된 시(詩)·사(詞)·가(歌)·부(賦), 차를 이용한 민간요법 등 다양한 기록들을 인용하여 기록하였다.
〈팔지출(八之出)〉에서는 당시 차산지와 품질 및 등급에 대해 기술한 것으로, 차 생산지를 8대 다구(茶區)에서 생산되는 품질에 따른 차의 등급을 상(上), 차(次), 하(下), 우하(又下)의 4등급으로 분류하여 품평하였다. 특히 31지역은 현(縣)과 산곡(山谷)까지 구체적으로 서술하였다. 〈구지략(九之略)〉은 차사(茶事)를 행 할 때에 제다공구(製茶工具), 자다기물(煮茶器物) 중 일부는 장소와 상황에 따라 생략할 수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십지도(十之圖)〉에서는 〈일지원〉에서 〈구지략〉까지의 전문을 써서 차사(茶事)를 행할 때 어려움이 없도록 하였다.

5. 가치와 영향

《다경》은 1,000년 이상 차(茶)의 경전(經典)으로서 위상을 누리고 있다. 그동안 차의 제조 방법이나 음다풍속은 상전벽해(桑田碧海)라고 해야 할 만큼 변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경》의 위상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다. 다성(茶聖)이라 일컫는 육우는 세계의 차 문화를 발전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육우는 생을 마친 후 1,200년이 지난 오늘날 까지도 변함없이 차인들의 마음속에 다신(茶神) 또는 다성(茶聖)으로 숭상 받고 있으며, 후세인들은 그의 형상을 기리며 다문학(茶文學)의 선구자(先驅者)이자 차정신의 선각자(先覺者)로서 높이 추앙(推仰)하고 있다.
《다경》은 차가 약용(藥用)으로서 음용되던 상황에서 기호음료(嗜好飮料)로 전환하고, 또한 소수의 음용자로부터 대중화되는 과도기(過渡期)에서 차문화를 정립하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불후의 저작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다경》 〈일지원〉에서 “차는 정행검덕한 사람에게 마땅하다.[茶之爲用 爲飮最宜 精行儉德之人]”는 정신적 지표를 제시하여, 차가 단순한 기호음료가 아니라 정신문화적인 음료라는 것을 환기시킴으로서 이후 동양 3국에서 차의 정신문화사에 큰 영향을 주었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차는 그 맛이 지극히 차가운 성질이 있다. 마시기에 가장 마땅한 사람은 정행검덕(精行儉德)한 사람이다.[茶之爲用 味至寒 爲飮最宜 精行儉德之人]” 〈일지원(一之源)〉
• “차를 마시게 된 것은 신농씨(神農氏)부터이다.[茶之爲飮 發乎神農氏]” 〈육지음(六之飮)〉
• “차에는 〈채다(採茶)에서 음다(飮茶)까지〉 아홉 가지의 어려움이 있다.[茶有九難]” 〈육지음(六之飮)〉
• “차를 오랫동안 마시면,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한다.[茶茗久服 令人有力悅志]” 〈칠지사(七之事)〉
• “‘茗’은 쓴 차인데 맛이 달면서 쓰다. 약간 차고 독이 없으며, 부스럼을 다스리고, 소변에 이롭다. 가래 갈증 신열을 없애고, 사람으로 하여금 잠을 적게 자게 한다.[茗苦茶 味甘苦 微寒無毒 主瘻瘡 利小便 去痰渴熱 令人少睡]” 〈칠지사(七之事)〉
(2) 색인어:육우(陸羽), 다경(茶經), 정해검덕(精行儉德), 다유구난(茶有九難), 채다(採茶), 조다(造茶), 음다(飮茶), 칠지사(七之事).
(3) 참고문헌
• 다경(유수현, 도서출판 士林)
• 다도철학(정영선, 너럭바위)
• 다경강설(姜育發, 차와사람)
• 다경(姜育發, 남탑산방)
• 茶經圖說(치우치핑, 김봉건 譯, 이른아침)
• 〈茶經에 나타난 唐代 製茶工具考察〉(김진숙, 《韓國茶學會誌》, 2008)
• 〈唐代의 飮茶文化〉(김진숙, 《韓國茶學會誌》, 2007)
• 〈茶經 중 飮茶用器 考〉(김진숙, 《韓國茶學會誌》, 2006)
• 〈唐代 文人의 茶道觀 硏究:육우를 중심으로〉(서정임, 원광대 박사논문, 2009)
• 〈茶經 四之器 風爐에 새겨진 銘文에 관한 硏究〉(유수현, 국제차문화학회 제14집, 2010)
• 〈《茶經》飮茶風俗 飜譯上의 문제〉(유수현, 제55회 경주차학술대회, 2012)
• 〈茶經의 ‘茶有九難’에 대한 硏究〉(유수현, 원광대 석사논문, 2010)
• 〈宋代 《宣和北苑貢茶錄》에 관한 연구〉(유수현, 원광대 박사논문, 2014)
【유수현】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0.08.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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