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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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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하객(徐霞客)은 중국 명대(明代) 유기문학(遊記文學)의 대가이다. 그가 중국 각지를 30여 년간 여행하면서 기록한 서하객유기(徐霞客遊記)는 일기형식의 유람일기로, 60여만 자에 이르는 중국 최대의 유기문이다. 명산대천을 두루 섭렵하고 당시의 산천과 지형 및 문화생활상을 객관적으로 기록한 것이기에 명말(明末) 사회의 백과전서라 할 수 있다.

2. 저자

(1) 성명:서하객(徐霞客)(1587~1641)
(2) 자(字)·별호(別號): 본명은 홍조(弘祖) 혹은 굉조(宏祖) , 자는 진지(振之), 하객은 그의 호(號). 하일(霞逸)로도 불림.
(3) 출생지역 : 중국 강소성(江蘇省) 강음(江陰) 남양기(南暘岐)
(4) 주요활동과 생애
서하객은 명대의 걸출한 문인이자, 지리학자, 여행가, 탐험가이다. 중국 강음 오승(梧塍) 사람으로, 그의 시조는 북송 때 개봉부(開封府) 최고 행정관리인 부윤(府尹)을 지냈다. 항주(杭州), 소주(蘇州)를 거쳐 조부 때부터 남양기에 터를 잡았다. 어려서부터 고금의 역사 저작과 지리지, 산해도경(山海圖經) 등의 서적을 즐겨 읽으며 훗날 중국 유람의 토대를 쌓았다. 1603년 집안 노비들의 반란으로 이듬해 아버지를 여의고, 세상사에 대한 염증을 느껴 명산대천을 유람하고자 했다. 이듬해 1607년 모친의 격려에 힘입어 태호(太湖) 유람을 시작으로 중국 대장정에 올랐다. 1640년 최후의 유람지였던 운남(雲南)에서 두 발을 모두 쓰지 못하는 중병을 앓아 고향으로 돌아오기까지, 그는 중국 전역을 두 발로 누볐다.
명나라 숭정(崇禎) 9년(1636) 9월 중국 서남부로 유람을 갔을 때는 함께 했던 하인이 도망치고, 동행한 정문(靜聞) 스님마저 세상을 뜨는 등 고초를 겪었다. 식량부족과 도적 떼의 강탈 등을 겪으면서도 계속되던 유람은 도중에 얻은 족질(足疾)로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되자 1639년 9월 유람의 종지부를 찍었다. 30여 년의 유람을 끝으로 1641년 3월 8일, 고향에서 세상을 떠났다.
(5) 주요저작:〈소강기원(溯江紀源)〉, 〈반강고(盤江考)〉, 〈법왕연기(法王緣起)〉, 〈계산지목(鷄山志目)〉, 〈계산지략(鷄山志略)〉 등

3. 서지사항

《서하객유기(徐霞客遊記)》는 중국 유기문학의 최고의 성과이자, 명말 사회상을 반영한 백과사전이다. 서하객은 중국 각지를 유람하며 유람일기를 30여 년에 걸쳐 작성했다. 1607년 태호(太湖)에서 유람을 시작하여 중국 서남부 운남(雲南)에서 두 발을 전혀 쓰지 못하는 중병을 앓아 고향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여정을 작성한 것이다. 유람 기록은 며칠간의 일정을 한꺼번에 기록하는 경우도 간혹 있었으나 대체로 날마다 기록을 했으며, 유람을 마치고 귀향한 후 보완, 정리한 것이다. 1641년 서하객이 세상을 뜬 후, 전사(傳寫)되는 과정에서 전란의 화마를 겪으면서 분실되어 사라진 기록이 20여만 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서하객이 남긴 유람일기는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정리, 초록되었다. 때문에 서하객유기의 판본 및 체제와 내용에 따라 편집의 형태도 다양하다. 전해지고 있는 판본 가운데 비교적 완정한 틀을 가진 것으로 이개립본(李介立本), 해우박본(奚又溥本), 사고전서본(四庫全書本), 건륭간본(乾隆刊本) 등이 있다.
유람의 주요 지역은 천태산(天台山), 안탕산(雁蕩山) 오대산(五臺山), 항산(恒山), 화산(華山) 등의 중국 명산과 강소·산동·하북·산서·하남·호북·안휘·절강·복건·광동·강서·호남·광서·귀주·운남 등 16성(省)에 걸쳐 방대한 지역의 유람일기가 기록되어 있다.

4. 내용

〈서하객유기〉는 중국 동쪽으로는 바다를 건너 낙가산(落迦山)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국경에 미쳤으며, 남쪽으로는 광동(廣東)의 나부산(羅浮山)을 돌아보고, 북쪽으로 반산(盤山)에 다다랐다. 그는 평생 동안 지금의 북경, 남경 등지의 도시를 유람하는 한편, 〈유천태산일기(遊天台山日記)〉, 〈유안탕산일기(遊雁蕩山日記)〉, 〈유오대산일기(遊五臺山日記)〉, 〈유항산일기(遊恒山日記)〉, 〈유화산일기(遊華山日記)〉, 〈유태산일기(遊泰山日記)〉, 〈유황산일기(遊黃山日記)〉, 〈유여산일기(遊廬山日記)〉, 〈유숭산일기(遊嵩山日記)〉, 〈유무이산일기(遊武彛山日記)〉, 〈유백악산일기(遊白岳山日記)〉, 〈유태화산일기(遊太和山日記)〉, 〈유구리호일기 遊九鯉湖日記〉 등의 명산 유람일기를 남겼다. 아울러 복건 지역의 유람일기인 〈민유일기(閩遊日記)〉, 강서 지역의 유람일기인 〈강우유일기(江右遊日記)〉, 호남 지역의 유람일기인 〈초유일기(楚遊日記)〉, 광서 지역의 유람일기인 〈월서유일기(粵西遊日記)〉 1~4, 〈검유일기(黔遊日記)〉 1~2, 운남 지역의 유람일기인 〈전유일기(滇遊日記)〉 1~13 등이 있다.

5. 가치와 영향

《서하객유기》는 30여 년간의 유람으로 탁월한 경물묘사와 정감을 서술했다는 점에서 유기문학의 대표작이라 하겠다. 한편 지리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현지답사에 의한 실증적인 조사로 산계(山系)와 수계(水系)를 과학적으로 논증했다. 이로써 중국 각지의 지리적 분포와 특징 및 용도를 기술하고 기후환경과 식물의 상관관계를 밝히는 등 실증적 자료로도 가치 있는 기록물이다.
지질학적 관점에서도 귀중한 성과를 거두었다. 서하객은 호남성에서 운남성에 이르는, 중국의 대표적인 카르스트 지형을 유람하면서 이에 대한 많은 기록을 남겼다. 특히 카르스트 지형에서 나타나는 종유동을 100여 곳이나 탐험하여, 그 종유동의 구조 및 크기와 깊이를 상세히 기록하여 그 생성원리를 과학적으로 설명했다. 이는 카르스트 지형에 대한 세계적 보고로 평가받고 있다.
역사학적 관점에서도 대단히 중요한 사료를 제공하고 있다. 당시는 후금(後金)의 침공이 이어지고, 농민기의와 이자성(李自成)의 난 등으로 정치적 혼란이 극심하던 때였다. 이 시기 중국 각지를 유람했던 서하객은 다양한 계층의 생활상과 민중의 참상 등을 사실적으로 기록하여 명말 사회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했다.
서하객은 각지의 신화와 민간전설을 풍부하게 소개하고, 각지의 역사적 인물, 이를테면 제갈량(諸葛亮)이나 안진경(顏眞卿), 유종원(柳宗元), 주희(朱熹) 등의 유적과 분묘를 탐방하고 비문을 탁본하는 등 많은 자료를 수집·정리했다.
소수민족 연구에 있어서도 풍부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그가 유람한 호남성과 광서성, 귀주성, 운남성은 소수민족이 대거 거주하고 있는 곳이다. 유람 중 그는 요족(瑤族), 장족(壯族), 묘족(苗族), 이족(彛族), 납서족(納西族) 등의 다양한 생활상과 풍속, 생산물 등을 상세히 소개했다. 소수민족에 대한 문헌자료가 드문 상황에서 그의 자료는 가치 있는 기록으로 평가받고 있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서하객 선생께서는 고염무(顧炎武), 황종희(黃鍾禧), 왕부지(王夫之) 등보다 먼저 태어났으며, 그의 충실하고도 근면한 작업, 진지한 지식 탐구는 그들보다 넘쳤으면 넘쳤지 결코 모자람이 없다. 이렇게 본다면 선생은 질박한 학풍의 선구자가 아니겠는가.[然霞客先生 生於顧黃王諸公之前 而其工作之忠勤 求知之眞摯 殆有過之 無不及焉 然則先生者 其爲樸學之眞祖歟]” 〈중인서하객유기급신저년보서(重印徐霞客遊記及新著年譜序)〉
• “이것은 유람 다닌 곳을 기록한 것인데, 눈에 보이는 대로 적었으며, 일부러 아름답게 수식하여 글을 짓지 않았다.……산수의 정취는 진실로 기세등등한 권세가가 겸하여 지닐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또한 지위에 있는 자가 마땅히 듣고서 경계로 삼아야 하리라.[此記所遊歷 直書卽目 非有意藻繪爲文章也……山水之趣 誠非高牙大纛者所可兼而有 此又在位者所當聞而知戒也]” 〈서서하객유기후(書徐霞客遊記後)〉
(2) 색인어:서하객유기(徐霞客遊記), 서하객(徐霞客), 유기문학(遊記文學), 명말(明末) 백과전서, 지리학자, 탐험가, 유람일기, 소수민족연구
(3) 참고문헌
• 서하객유기(김은희·이주노 옮김, 소명출판사)
• 徐霞客硏究古今集成(呂錫生, 中國書籍出版社)
• 徐霞客遊記(徐弘祖, 上海古籍出版社)
• 徐霞客硏究文集(南京師範大學地理系, 江蘇敎育出版社)
• 徐霞客及其遊記硏究(楊載田, 中國文史出版社)
【김은희】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0.08.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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