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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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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당(唐)나라 때의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시문집(詩文集)이다. 당(唐)나라 목종(穆宗) 때인 장경(長慶) 연간(821~824)에 그의 벗인 원진(元稹)에 의해 50권으로 처음 간행되었는데, 목종의 연호를 따서 《백씨장경집(白氏長慶集)》이라고도 한다. 그 뒤 백거이 자신이 직접 75권의 문집을 완성하였는데, 전집(前集) 50권과 후집(後集) 25권이었다. 송나라 때 4권 분량이 사라져서 현재는 71권만이 전하고 있으며, 시는 총 2,800수가 전한다. 백거이의 시는 평이하고 통속적이며 심오한 내용을 알기 쉽게 표현하여 어떤 시든 노파라도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하며, 이 때문에 백거이의 작품에는 주석서가 전혀 없다. 중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유행하였다고 한다. 또 당대 현실 상황을 작품 속에 여실히 반영하였으므로 그를 ‘현실주의 시인’이라고 평가한다. 당나라 현종(玄宗)과 양귀비(楊貴妃)의 사랑을 노래한 장편시 〈장한가(長恨歌)〉와 〈비파행(琵琶行)〉이 아주 유명하다.

2. 저자

(1)성명:백거이(白居易)(772~846)
(2)자(字)·별호(別號):자는 낙천(樂天), 호는 향산거사(香山居士)
(3)출생지역:하남성(河南省) 정주(鄭州) 신정현(新鄭縣)
(4)주요활동 및 생애
백거이는 중국 중당(中唐) 때의 시인으로, 800년(29세) 최연소로 진사(進士)에 급제했고, 한림학사(翰林學士)·좌습유(左拾遺) 등의 직위에 발탁되었다. 그러나 815년 발생한 재상 무원형(武元衡) 암살사건에 관하여 직언을 하다가 조정의 분노를 사 강주사마(江州司馬)로 좌천되었다. 820년 헌종(憲宗)이 죽고 목종(穆宗)이 즉위하자 백거이는 낭중(郎中)이 되어 중앙으로 복귀했고, 이어 중서사인(中書舍人)의 직책에 올라 조칙(詔勅) 제작의 임무를 맡게 되었다. 822년 이후 항주자사(杭州刺史)·소주자사(蘇州刺史)를 역임한 뒤 비서감(秘書監)·형부시랑(刑部侍郞)·하남윤(河南尹) 등과 태자빈객분사(太子賓客分司)·태자소부분사(太子少傅分司)를 거쳤으며, 842년 형부상서(刑部尙書)를 끝으로 관직에서 은퇴했다. 백거이는 문학사적으로 ‘신악부운동(新樂府運動)’을 창도한 것으로 유명하다. ‘신악부’란 새로운 제목으로 시사(時事)를 읊은 악부(樂府) 형식의 시를 말하는데, 백거이와 벗 원진(元稹) 등은 두보(杜甫)가 이룩한 현실주의 시풍을 계승하여 민생의 고통을 시로 표현할 것을 제창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신악부운동이다.
(5)주요저작:미상(未詳)

3. 서지사항

장경 4년(824) 목종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원진에 의해 《백씨장경집》 50권이 편찬되었다. 10년 후인 835년, 백거이는 직접 60권본의 《백씨문집(白氏文集)》을 여산(廬山) 동림사(東林寺)에 봉납(捧納)했고, 이듬해 65권본을 동도(東都)의 성선사(聖善寺)에, 3년 후 67권 본을 소주(蘇州) 남선사(南禪寺)에 봉납했다. 842년에는 이전의 50권 이외에 후집(後集) 20권을 정리하였고, 845년에 5권 분량의 속후집(續後集)을 편찬함으로써 총 75권의 대집(大集)을 완성했다. 그러나 송나라 때 4권 분량이 사라지고 현재는 71권만이 남아 있다.
송나라 때 간행된 판본으로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은 남송(南宋) 소흥연간(紹興年間)에 절강(浙江)에서 간행된 71권본인데, 현존 최고(最古)의 판본이다. 이를 소흥본(紹興本)이라고 한다. 명대(明代)에 널리 통용된 백거이 문집은 1606년에 마원조(馬元調)에 의해 간행된 《백씨장경집(白氏長慶集)》이며, 청나라와 민국(民國) 시기에 걸쳐 가장 널리 통용되었다.
조선에서 간행된 백거이 문집으로는 1485년에서 1494년 사이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동활자본 《백씨문집(白氏文集)》 71권이 있고, 백거이의 오언율시, 칠언율시, 칠언절구 총 185수를 선록하여 간행한 《향산삼체법(香山三體法)》 등이 있다. 일본에서 간행된 대표적 판본은 나파도원(那波道圓)이 1618년 간행한 고활자본 《백씨문집》 71권이다.
20세기 이후 교점본(交點本), 전교본(箋校本), 교주본(校注本) 등은 모두 위에 소개한 소흥본, 마흥조본, 나파도원본을 저본으로 삼아 출간된 것이다.

4. 내용

책의 가장 앞에는 원진이 쓴 서문이 있다. 시 본문은 백거이가 직접 자신이 지은 시의 내용을 분류한 바에 따라, 풍유(諷喩)·한적(閑適)·감상(感傷)·잡률(雜律)로 구성되어 있다. 풍유의 시는 민중의 고통을 반영하고 귀족의 사치를 폭로하며 옳지 못한 전쟁에 반대하는 내용으로 신악부운동을 대표하는 작품들이다. 한적은 평정한 마음의 경계를 나타낸 시들이며, 감상은 비환(悲歡)과 이합(離合)에 대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표현한 시들이다. 잡률은 근체시(近體詩)로 각종 시체의 율시를 가리킨다. 한적과 잡률에 속한 시는 경물(景物)의 유희에 빠진 작품들도 있지만, 대체로 평이하고 자연스러운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권1~권4는 풍유(諷諭)에 해당하는 시, 권3~권4는 신악부(新樂府), 권5~권8은 한적(閑適), 권9~권12는 감상(感傷)에 해당하는 시이다. 권13~권38은 잡률에 해당하는 시이다. 권39 이후부터 권71까지는 각종 산문이 수록되어 있다.

5. 가치와 영향

《백거이집》은 1,200년경 고려 무신란(武臣亂) 직후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림별곡(翰林別曲)》에 그 이름이 등장하고 있다. 특히 임춘(林椿)·이규보(李奎報) 등이 그의 시문을 가장 좋아하였다고 한다. 백거이가 유교를 공부하면서도 불교까지 섭렵한 점이 고려 시대 문인들의 취향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조선 중기 허균(許筠)의 〈노객부원(老客婦怨)〉은 백거이의 〈모별자(母別子)〉와 내용이 흡사하고, 권필(權韠)의 〈충주석(忠州石)〉은 백거이의 〈청석(靑石)〉과 주제도 흡사하고 풍자의 대상도 동일하다. 임진왜란을 겪고 사상적으로 혼란하던 시기에 포용적인 백거이의 시가 이들의 취향에 맞았던 것으로 보인다.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은 백거이의 고시(古詩)와 주희(朱熹)의 시를 뽑아 《이가시선(二家詩選)》이라는 선집(選集)을 편찬하였다. 그런데 우리나라 시인들의 백거이 애호는 풍유(諷諭)에 해당하는 작품보다는 한적(閑適)에 해당하는 작품에 치우쳤다고 할 수 있다.

6. 참고사항

(1)명언
• “하늘이 영원하고 땅이 유구해도 다할 때 있겠지만, 이 한은 끝없이 이어져 끊길 날 없으리라.[天長地久有時盡 此恨綿綿無絶期]” 〈장한가(長恨歌)〉
• “나와 그림 서로 말없이 쳐다보니, 막내가 큰형을 마주하고 있는 듯하네.[形影黙相顧 如弟對老兄]” 〈제구사진도(題舊寫眞圖)〉
• “새소리는 어디서든 똑같지만, 듣는 이의 마음 때문에 차이가 나는 듯하네.[鳥聲信如一 分別在人情]” 〈문조앵(聞早鶯)〉
(2)색인어:백거이집(白居易集), 백씨장경집(白氏長慶集), 백씨문집(白氏文集), 백거이(白居易), 원진(元稹), 신악부운동(新樂府運動), 풍유(諷喩), 한적(閑適), 감상(感傷), 잡률(雜律)
(3)참고문헌
• 백거이 한적시전-나 이제 흰구름과 더불어(김경동‧이의강 외 역주, 성균관대출판부)
• 백거이 한적시전-매여있지 않은 배처럼(김경동‧이의강 외 역주, 성균관대출판부)
• 〈韓國漢文學에서의 白居易文學의 受容樣相〉(허권수, 《한문학보》26, 우리한문학회)
• 〈고려·조선 문인의 백거이에 대한 인식〉(이봉상, 《동방한문학》39, 동방학문학회)
• 〈백씨장경집 해제〉(이은주,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백거이 문집의 성립과정과 제판본〉(김경동, 《중국학보》77)
【이성민】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0.08.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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