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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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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양휘산법(楊輝筭法)》은 송(宋)나라의 양휘(楊輝)가 1274년에 완성한 《승제통변산보(乘除通變筭寶)》, 1275년에 완성한 《전무비류승제첩법(田畝比類乘除捷法)》, 《속고적기산법(續古摘奇算法)》을 묶어 출판한 산서(算書)이다. 그의 《상해구장산법(詳解九章算法)》(1261)과 함께, 중국 수학사에서 가장 우수한 업적을 낸 송원(宋元) 수학의 기초를 이룬 11~12세기의 수학적 업적에 대한 정보도 포함한 산서이다. 《산학계몽(算學啓蒙)》과 함께 조선과 일본 수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2. 저자

(1)성명:양휘(楊輝)(?~?)
(2)자(字)·별호(別號):자는 겸광(謙光)이다.
(3)출생지역:전당(錢塘)(현재 절강성(浙江省) 항주시(杭州市))
(4)주요활동과 생애
양휘가 《양휘산법》, 《상해구장산법》과 《일용산법(日用算法)》(1262)을 완성한 것 이외의 행적은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중국수학사 연구를 시작한 이엄(李儼)(1892~1963)은 19세기 막우지(莫友芝)가 소장한 《산법잡록(算法雜錄)》을 필사하여 《제가산법급서기(諸家算法及序記)》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이 책은 실전된 양휘의 《일용산법》에 진기선(陳幾先)이 쓴 발(拔)과 문제들의 일부를 포함하고 있다. 진기선의 발문에 따르면 양휘는 지방 관료로 일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금(金)나라(1115~1234)에 의하여 송(宋)나라가 강남으로 내려가 남송(南宋)(1127~1279)이 된 후 《구장산술(九章算術)》은 영계(榮棨), 포한지(鮑澣之) 등에 의하여 출판되었다. 한편 11세기 가헌(賈憲)은 《황제구장산경세초(黃帝九章算經細草)》, 유익(劉益)은 《의고근원(議古根源)》을 저술하여 방정식의 해법에 관한 기초를 이루었지만, 이들은 모두 실전되었다. 양휘는 《황제구장산경세초》를 저본으로 하여 《상해구장산법》(1261)을 저술하였다. 그는 이어서 《의고근원》에 기초하여 《양휘산법》의 방정식론을 구성하여 혼란기에 잊힌 중요 업적을 전해주었다. 유휘(劉徽)(3세기)는 《구장산술》에 주(注)를 단 후 새로운 측량법인 중차법(重差法)을 도입하였다. 이후에 이순풍(李淳風)(7세기)이 이를 따로 떼어내 《해도산경(海島算經)》이라는 이름으로 《십부산경(十部算經)》에 넣었다. 송대(宋代)에 출판된 《구장산술》에는 《해도산경》이 모두 빠져 있고 실제로 잊힌 책이었다. 양휘는 《해도산경》에 들어 있는 기하의 구조를, 닮은 직각삼각형의 성질을 사용하여 증명한 것을 《양휘산법》에 포함하였다.
이야(李冶)(1192~1279), 진구소(秦九韶)(1202~1261), 양휘, 주세걸(朱世傑)은 송원대(宋元代)의 4대 수학자로 알려져 있는데, 양휘에 대한 평가는 나머지 세 학자에 비하여 약간 낮게 평가하려는 학자들이 많다. 그러나 양휘의 저술이 없었다면 중국수학사의 중요한 부분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5)주요저작:《상해구장산법(詳解九章算法)》, 《일용산법(日用算法)》.

3. 서지사항

《양휘산법》은 1274~1275년에 저술되었지만, 현재 전해지는 판본은 1394년(명(明) 홍무(洪武) 27년) 고항근덕서당(古杭勤德書堂)에서 출판한 것이다. 《양휘산법》은 《승제통변산보》(1274), 《전무비류승제첩법》(1275, 소서(小暑)), 《속고적기산법》(1275, 동지(冬至)) 등 세 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모두 양휘의 서문으로 시작되고, 특히 마지막 책인 《속고적기산법》의 서문에 차례로 《상해구장산법》, 《일용산법》과 《양휘산법》의 앞의 두 권을 언급하고, 《속고적기산법》을 저술한 것을 드러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1394년 판본은 《속고적기산법》을 《전무비류승제첩법》 앞에 넣어놓았다.
세종이 조선의 역법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수학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중국의 역법 서적과 함께 산서 《계몽(啓蒙)》, 《양휘전집(楊輝全集)》, 《첩용구장(捷用九章)》을 들여온 것이 《세조실록(世祖實錄)》(세조 6년(1460) 6월 16일)에 나타난다. 《계몽》, 《양휘전집》은 각각 주세걸의 《산학계몽(算學啓蒙)》(1299), 《양휘산법》을 뜻하는데 《첩용구장》에 대한 정보는 찾을 수 없다.
한편 세종실록(世宗實錄)(세종 12년(1430) 3월 18일)에 호조(戶曹)의 산원(算員)을 뽑는 취재(取才) 과목으로 《상명산(詳明算)》, 《계몽산(啓蒙算)》, 《양휘산(楊輝筭)》, 《오조산(五曹算)》, 《지산(地算)》을 들어놓았다. 《상명산》은 원나라의 안지재(安止齋)의 《상명산법(詳明算法)》(1373), 《오조산》은 견란(甄鸞)(6세기)의 《오조산경(五曹算經)》을 뜻한다. 마지막 《지산》에 대한 정보도 찾을 수 없다. 후에 취재 과목은 《상명산법》, 《산학계몽》, 《양휘산법》으로 제한되었다.
1433년 5월 경주(慶州)에서 판간(板刊)한 《양휘산법》은 같은 해 8월에 경상감사가 세종에게 100권을 진상하여 집현전(集賢殿), 호조(戶曹), 서운관(書雲觀)(후의 관상감(觀象監)) 습산국(習算局)에 고루 나누어주었다고 세종실록(세종 15년(1433), 8월 15일)에 들어 있다. 이 판본은 조선에서 여러 차례 출판되었다. 한편 임진왜란 때 《산학계몽》과 함께 《양휘산법》 경주 판본을 일본으로 가지고 갔는데, 관효화(關孝和)(Seki Takakazu, ?~1708)는 이 판본의 필사를 1673년에 완성하였다. 이 두 산서는 에도시대(江戶時代)(1603~1867)에 이룬 일본 산학인 화산(和算)(wasan)의 기초를 이루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그는 《속고적기산법》을 제대로 된 순서인 제일 마지막에 넣었다. 이 필사본은 중국의 방대한 전통 산서의 영인본을 모은 중국과학기술전적통휘(中國科學技術典籍通彙)(1993) 수학권(數學卷)에 실려 있다.

4. 내용

양휘는 《양휘산법》을 저술하기 전에 이미 《상해구장산법》을 저술하여 유휘 이후에 《구장산술》의 가장 중요한 해설서를 남겼다. 불행하게도 《상해구장산법》은 〈방전(方田)〉, 〈속미(粟米)〉, 〈최분(衰分)〉, 〈소광(少廣)〉 등 네 개의 장이 실전되었다. 영락대전(永樂大全)(1408)에 일부가 인용되어 잊힌 부분의 정보를 엿볼 수 있다. 특히 〈소광〉장에 들어 있는 제곱근, 세제곱근의 해법의 확장도 취급한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상해구장산법》은 단순히 원본의 내용만 취급한 것이 아니다. 수학적 구조를 뜻하는 비류(比類)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구장산술》의 문항과 같은 구조를 가진 것으로 송대에 도입된 문제를 함께 취급하였다. 예를 들면 심괄(沈括)(1031~1095)이 그의 《몽계필담(夢溪筆談)》(1095)의 극적회원이술(隙積會圓二術)에서 도입한 유한급수의 합을 구하는 방법에서 시작된 삼각타(三角垜), 사각타(四角垜)를 〈상공(商功)〉장에서 다루었다, 한편 양휘는 《상해구장산법》에 이어 《상해구장산법찬류(詳解九章算法纂類)》를 지어 《구장산술》의 구장(九章)을 수학적 구조에 따라 승제(乘除), 호환(互換), 합율(合率), 분율(分率), 최분(衰分), 첩적(疊積), 영부족(盈不足), 방정(方程), 구고(句股) 등 9가지로 나누어 정리하였다. 양휘의 수학에 대한 구조적 접근은 높이 평가하여야 한다.
양휘가 구조적 접근을 끝낸 후 저술한 책이 《양휘산법》이므로, 《상해구장산법》을 보충하는 책이어서 《양휘산법》은 철저하게 구조적으로 배열된 산서는 아니다.
《승제통변산보》는 다시 〈산법통변본말(筭法通變本末)〉, 〈승제통변산보〉, 〈법산취용본말(法筭取用本末)〉 등 세 권으로 나뉘어져 있다. 〈산법통변본말〉은 〈습산강목(習筭綱目)〉으로 시작하여 곱셈부터 개방법까지 공부하는 순서를 들고 이어 《구장산술》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였다. 산대를 사용하는 곱셈, 나눗셈의 기본과 간편셈을 다루었다. 〈법산취용본말〉에서 양휘는 자연수를 인수의 곱으로 나타내어 이들의 곱을 인수들의 곱으로 계산하는 것을 취급한다. 서양의 정수론(整數論)은 일찍부터 소인수분해(素因數分解)에 기초하여 발전하였는데, 양휘의 인수분해는 동양 수학에서 유일한 경우이다. 소수(素數)에 대한 개념이 들어있지만, 이를 발전시키지는 못하였다.
《전무비류승제첩법》은 전술한 실전된 유익의 《의고근원》에 기초하여 상, 하 두 권으로 저술하였다. 《구장산술》 이래 모든 산서는 덧셈과 뺄셈의 산대 계산은 당연한 것으로 하고 곱셈과 나눗셈으로 시작한다. 곱셈은 직사각형의 넓이로 도입하고, 자연수의 곱셈에서 소수(小數)의 곱셈으로 확장한다. 도량형에 의한 소수 표시와 함께 이들을 최소 단위로 변환하여 자연수의 곱셈으로 변환하는 것도 포함한다. 농업사회인 고대 중국은 평면 도형을 모두 세금의 가장 중요한 대상인 밭의 형태로 생각하여 전(田)자를 어미에 붙여 나타낸다. 여러 평면 도형의 넓이와 그 근삿값을 구하고 이를 응용하여 등차급수의 합도 함께 계산하고 이들에 대한 증명을 도형으로 나타낸 것이 〈상권(上卷)〉이다. 〈하권(下卷)〉은 《오조산경》에서 넓이에 관한 세 문항을 논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한 변이 1인 정사각형의 대각선의 길이인 2≈1.4를 방오사칠(方五斜七)로 나타내었는데, 근삿값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것과 함께 이를 사용할 수 있는 범위를 언급한 것이 첫째 문항이다. 나머지 두 문항은 정의가 분명하지 않은 것을 지적하였다. 문항 6∼11은 일반 2차 방정식, 즉 1차항이 있는 2차 방정식의 이론이다. 제곱근은 주어진 정사각형의 넓이에서 한 변을 구하는 것인데 동양의 2차 방정식은 두 변 a,b를 가지는 직사각형의 넓이 ab와 두 변의 차 혹은 합 a-b,a+b를 주고 두 변을 구하는 문제로 도입하였다. 이때 도형을 그려서 방정식을 구성한 후 방정식의 해를 구한다. 2차 방정식의 근과 계수의 관계를 생각하면 쉽게 유추할 수 있다. 당시의 방정식은 모두 상수항을 한 변으로 하고 1차항, 2차항의 합 혹은 차를 한 변, 즉 a2x2+a1x=a0의 형태로 되어있다. 천원술을 사용하여 구성한 다항방정식은 px=0형태이다. 《구장산술》의 제곱근, 세제곱근을 구한 방법은 정사각형, 정육면체를 분할을 사용하여 가장 높은 자릿수부터 차례로 근의 자릿수를 구한다. 이를 가헌(賈憲)은 석쇄개방법(釋鎖開方法)이라 불렀다. 이에 들어있는 기본은
y+a2=y2+2ay+a2,(y+a)3=y3+3ay2+3a2y+a3
사용하는데, 가헌은 이들의 계수를 구하는 방법으로 현재 조립제법으로 알려진 방법으로 구할 수 있음을 보이고 이를 가헌이 증승개방법(增乘開方法)이라 한 것을 《상해구장산법찬류》에 들어놓았다. 동양 수학에서 다항식의 나눗셈은 다항식을 xn으로 나누는 것만 다루었다. 서양 수학의 영향을 받은 《수리정온(數理精蘊)》(1723)에 다항식의 나눗셈이 들어 있지만 조립제법이나, 다항방정식 p(x)=0의 근 a, 즉 p(a)=0x-ap(x)의 인수라는 관계는 알지 못하였다. 유익이 그의 《의고근원》에서 두 방법을 일반 2차 방정식에 적용하여 풀고 그 관계를 정확히 나타낸 것을 양휘는 자세히 기술하였다. 양휘는 다른 송원대(宋元代)의 산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가헌의 개방법들을 언급하지 않았다. 20세기에 들어와 후자의 방법을 증승개방법이라 하였다. 차 a-ba+b합 에서 합, 차를 구하는 법을 다루는데 이는 2차 방정식의 근의 공식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고법(古法)이라 부른다. 이로 미루어 초기 2차 방정식은 이 방법으로 해결한 것으로 추정된다. 문항 12∼26은 위의 응용으로 여러 도형에 적용하였다. 문항 23은 4차 방정식인데 증승개방법의 기본인 증승법이 들어 있다.
《속고적기산법》도 상, 하권으로 제목이 나타내듯이 수학과 관계되는 여러 종류의 문제들을 다루었다. 유휘가 쓴 《구장산술》의 서문에 복희(伏羲)의 팔괘(八卦)에서 출발하여 역법(曆法), 율려(律呂), 양의사상(兩儀四象)의 원리가 이에 기초하고, 이어서 구장(九章)으로 수학의 기원이 형성되었다고 하였다. 동양의 산서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문장은 《주역(周易)》의 〈계사(繫辭) 상〉 제9장에 나오는 “인이신지(引而伸之) 촉류이장지(觸類而長之) 천하지능사필의(天下之能事畢矣)(〈여러 현상에서〉 끌어내고 확장하여 그 구조를 밝혀내면 천하의 모든 일을 할 수 있게 된다.)”의 인이신지 촉류이장이다. 유휘가 수학을 구조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역법(易法)에서 하도(河圖)와 낙서(洛書)는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양휘는 《속고적기산법》의 《상권》을 이들에서 생성되는 종횡도(縱橫圖)로 시작한다. 송대의 상수학(象數學)을 완성한 소옹(邵雍)(1011~1077), 주희(朱熹)(1130~1200)의 주장에 반하여 양휘는 유목(劉牧)(1011~1064)을 따라 오행생성도를 낙서(洛書), 3차 마방진을 하도(河圖)라 하고 3차 마방진이 수학적으로 구성되는 것을 보였다. 4~10차 마방진과 여러 종류의 변형도 구성하였다. 《손자산경(孫子算經)》(4~5세기)에 처음 취급된 연립 1차합동식(合同式)을 다루었다. 기원전 20세기경 도입된 간지(干支)는 현재까지 통용되고 있고, 기원전 3세기경 도입된 오음(五音)과 12율(十二律)로 중국 음계가 구성되었다. 이들을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과 연결하는데 특히 오음과 십이율의 조합과 간지를 연결한 것을 납음(納音)이라 한다. 심괄은 납음법을 《몽계필담》의 악율(樂律)에 인용하였다. 양휘는 이들의 관계도 수학적으로 구성할 수 있음을 육십갑자납음기례(六十甲子內音起例)(內音=納音)에서 보였다. 원시적인 함수관계, 합성함수의 개념이 나타난다. 정곡법(正斛法)이라는 제목으로 곡물 부피의 단위를 자세히 다루었다. 이어서 제곱근과 세제곱근의 근삿값을 구하는 방법은 송대 《변고통원(辯古通源)》에서 인용하였다.
《하권》은 연립 1차방정식을 먼저 다룬다. 《장구건산경(張邱建算經)》(5~6세기)에 나오는 3원 1차부정방정식인 백계문제(白鷄問題)와 같은 형태의 문제를 취급한다. 양휘는 비례문제를 호환(互換)이라는 이름으로 취급한다. 비례배분을 최분 혹은 차분(差分)이라 하는데 특히 합이 주어진 αk들이 차례로 αn:αn+1=α:β인 경우 각 αk를 구하는 문제를 mn차분술이라 하고 이를 구하는 법도 함께 다루었다. 평면 도형의 넓이를 다시 취급하고 마지막으로 《해도산경》의 중차법을 닮은 직각삼각형의 성질을 사용하여 증명을 넣어 설명하였다. 닮은 삼각형은 17세기 서양 수학이 들어오면서 도입되었지만 빗변을 공유하는 두 직각삼각형의 경우 빗변을 대각선으로 하는 직사각형의 넓이를 사용하여 이들 닮은 삼각형들의 변들 사이의 관계를 쉽게 구하였다. 《구장산술》부터 이 방법이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양휘가 이 방법으로 증명을 보인 것은 중국 산서에 처음 나타난다.

5. 가치와 영향

양휘를 제외한 송원대의 4대 수학자들의 업적은 명대(明代)에 거의 잊히게 되었다. 《양휘산법》과 《상해구장산법》도 오경(吳敬)의 《구장상주산법비류대전(九章詳注算法比類大全)》(1488)까지는 제대로 전달이 되었다. 정대위(程大位)(1533~1606)는 오경의 산서를 많이 참고하였지만 그의 《산법통종(算法統宗)》(1592)은 양휘의 수학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중국 수학은 18세기 말경에 다시 송원대의 수학을 연구할 때까지 급격한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송 초기의 사찰미(謝察微)가 그의 《산경(筭經)》에서 구장명의(九章名義)라는 제목 아래 〈속미(粟米)〉, 〈영부족(盈不足)〉장을 각각 〈속포(粟布)〉, 〈영뉵(盈朒)〉으로 바꾸어 놓은 것을 정대위는 그대로 인용하였다. 19세기 중엽 이전의 조선의 모든 양반 수학자들이 이에 따른 것으로 보아, 이들은 습산강목에 구장의 이름을 들어놓은 《양휘산법》을 제대로 연구하지 않은 것이 틀림없다. 왜란과 호란을 겪으면서 조선의 산학은 거의 멸실되었지만 김시진(金始振)(1618~1667)의 노력으로 《산학계몽》은 1660년에 중간되고 또 정철(鄭澈)(1536~1593)의 손자인 정양(鄭瀁)(1600~1668)의 집에서 《양휘산법》을 구하게 되어 두 산서를 복원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조선의 가장 위대한 수학자인 홍정하(洪正夏)(1684~1727)는 이들 두 산서에 들어 있는 구조를 통하여 송원대의 가장 중요한 업적인 방정식론을 그의 《구일집(九一集)》(1713~1724)에 재구성하였다. 이원술(二元術)부터 사원술(四元術)을 이용한 고차 연립방정식을 제외하면 방정식의 구성과 그 해법의 구조를 완전히 밝혀내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서도 증승개방법의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이를 19세기에 도입된 루피니Ruffini(1765~1822)와 호너Horner(1789~1837)의 조립제법으로 설명하였다. 홍정하는 제법이 아니고 승법으로 그 구조를 밝혀내어 11세기의 업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양휘의 10차 마방진에 오류가 있는 것도 최초로 밝혀내었다. 《속고적기산법》의 마방진들은 최석정(崔錫鼎)(1646~1715)의 마방진 연구의 기초가 되었다.

6. 참고사항

(1)명언
• 《승제통변산보》 상권 〈습산강목(習算綱目)〉에서 승, 제, 개방법을 언급한 다음, “그 구조를 끌어내면 어려움을 제거할 수 있다.[引而伸之 其機殆無窮盡矣]” 《승제통변산보》 상권 〈습산강목(習算綱目)〉
• “1차항이 있는 일반 2차 방정식의 해법인 정부손익의 법을 인용한다.[引用帶從開方 正負損益之法]” 《전무비류승제첩법》 〈서(序)〉
• 주공(周公)이 설정한 것으로 전해지는 지도자 교육의 기본 과목인 육예(六藝)(오례(五禮), 육악(六樂), 오사(五射), 오어(五馭), 육서(六書), 구수(九數))에 들어있는 수학부터 이순풍의 《십부산경》까지 역사와 함께 일찍부터 역대 명현들은 모두 수학을 중하게 여겼다는 것으로 《속고적기산법》의 서문을 시작한다.“육예를 설정할 때 수학은 그 중에 하나로 들어있다. 황제 때 대부 예수는 수학을 창시하고 이어 주공은 구장을 구성하였다. 그 후 유휘는 《해도산경》을 찬하고 한 대 견란은 《주비산경(周髀算經)》과 《오경산술(五經算術)》에 주를 달았다. 당(唐)의 이순풍은 이들의 산법을 교정하여 《십부산경》을 구성하였다. 옛날부터 역대 명현들은 모두 수학을 중히 여겼다.[夫六藝之設數學居其一焉 昔黃帝時大夫隸首創此藝 繼得周公署九章 戰國則有劉徽譔海圖 至漢甄鸞註周髀五經 唐李淳風校正諸家算法 自昔歷代名賢皆以此藝爲重迄]” 전통을 중시하는 동양에서 수학을 연구하여야 하는 이유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대목이다. 《속고적기산법》 〈서(序)〉
• 《양휘산법》 경주본을 출판하면서 경상관찰사 신인손(辛引孫)(1384~1445)이 세종에게 바치는 발문을 인용한다.
“무릇 산수의 법은 범사에 응용이 되고 또 육예의 하나이므로 반드시 배워야한다. 송의 양휘는 제가의 수학을 모아 양휘산법을 지어 수학의 입문을 이루었다. 가감귀손의 방법에서 이들의 구조를 알아내면 모든 것이 명백해지므로 후학들의 귀범을 이룰 수 있게 해준다.[夫筭數之法切於世用而居於六藝之一不可不學也 有宋楊輝筭法數卷集諸家而折衷眞數學之閫 奧加減歸損之術伸引變通之用無不詳悉而明備可爲後學之龜範也 今觀察使 臣辛引孫敬奉]”
“가감귀손”의 가감(加減)은 덧셈, 뺄셈이 아니고, 이들은 모두 곱셈과 나눗셈의 산대 계산 간편셈들이다. 신인손은 《승제통변산보》의 일부만 언급하였다. 그러나 산학(算學) 대신에 수학(數學)이라고 한 것은 매우 특이한 일이다. 신인손(辛引孫)의 〈발(跋)〉
(2)색인어:양휘산법(楊輝筭法), 양휘(楊輝), 수학적 구조, 유익의 방정식론, 마방진(魔方陣).
(3)참고문헌
• 夢溪筆談(沈括, 臺灣商務印書館)
• 易學啓蒙(朱熹, 金珍根역, 청계출판사)
• 周易集註(明文堂)
• 中國科學技術典籍通彙 數學卷(郭書春 주편, 하남교육출판사)
• 中國數學史大系 副卷第二卷 中國算學書目彙編(吳文俊 주편, 북경사범대학출판사)
• 中國歷代算學集成(靖玉樹 編勘, 산동인민출판사)
• 楊輝의 納音法(홍성사 외, 한국수학사학회지 24(3)(2011))
• Hong JeongHa’s Tianyuanshu and Zhengcheng Kaifangfa (Hong Sung Sa 외,
Journal for History of Mathematics 27(3)(2014))
【홍성사】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0.08.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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