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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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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남송(南宋)의 소흥(紹興) 연간(1131~1162)에 정초(鄭樵)가 편찬한 역사서로 십통(十通)의 하나이다. 상고의 삼황(三皇) 이후 수(隋)나라까지 기전체(紀傳體)로 된 통사로 종합 문화사적인 역사서이다. 저자는 역사는 왕조 중심의 단대사(斷代史)를 배제하고, 사회 전체를 중심으로 한 통사(通史)를 주로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통사 형식인 《사기(史記)》의 체제를 모방하였는데 《통지(通志)》의 〈제기(帝紀)〉, 〈열전(列傳)〉, 〈연보(年譜)〉는 삼황으로부터 수(隋)나라, 당(唐)나라에 이르는 전장제도(典章制度)를 기록한 정서(政書)이다. 《통전(通典)》, 《문헌통고(文獻通考)》와 함께 삼통(三通)으로 일컬어진다. 이 책은 청(淸)나라의 장학성에 의해 그 가치가 재평가되었다. 특히 정사(正史)의 여러 〈지(志) 〉에 해당하는 ‘20략(略)’은 그가 가장 힘을 기울인 것으로, 그 사론(史論)의 가치는 높이 평가되고 있다.

2. 저자

(1)성명:정초(鄭樵)(1104~1162)
(2)자(字)·별호(別號):자는 어중(漁仲), 자호는 계서일민(溪西逸民) 또는 협제선생(夾漈先生).
(3)출생지역:송나라 흥화군(興化軍) 보전(莆田)
(4)주요활동과 생애
과거 시험에 응시하지 않으면서 30여 년 동안 협제산(夾漈山)에 은거해 독서와 저술에 몰두했다. 일찍이 명산대천을 유람하면서 기이하거나 오래된 사실들을 수집했고, 장서가를 만날 때마다 머무르면서 모든 책을 완독한 뒤에야 떠났다. 예악과 문자, 천문, 지리, 충어(蟲魚), 초목, 방서(方書) 등 많은 학문에 정통했다. 그의 학문 연구는 크게 4단계로 나누는데 16세 협제산에 들어간 후, 송 고종 건염(建炎) 3년(1129)까지 주로 《시(詩)》, 《서(書)》를 중점적으로 읽고, 《예(禮)》, 《악(樂)》에 관한 것을 읽었다. 이 시기 《시변망(詩辨妄)》을 지어 학계(學界)에 영향을 크게 끼쳤고, 소흥 11년(1141) 이전까지는 문자학에 전념하였다. 대표적으로 《이아주(爾雅注)》, 《본초성서(本草成書)》 등을 지어 동식물에 관한 지식을 학습했다. 소흥 18년(1148)까지는 주로 도서목록과 교수학에 전념하여 저서가 대단히 많아, 단편을 포함 95종에 권수로 되어 있는 것은 50종 584권, 454편으로 권수가 표시되지 않는 것도 35종에 달한다.
고종(高宗) 소흥(紹興) 연간에 왕륜(王綸) 등의 천거로 우적공랑(右迪功郞) 등에 임명되었고, 이어 예부와 병부의 가각(架閣)을 지냈다. 어사(御史)의 탄핵을 받아 감남악묘(監南岳廟)로 옮겼다. 입조하여 추밀원(樞密院) 편수관(編修官) 등을 지냈다. 사학(史學)에 있어서는 충분히 사료를 검토할 것을 주장하면서 통사(通史)를 중시했다. 사마천(司馬遷)을 존숭하고 반고(班固)를 폄하했다. 또한 음양오행재이(陰陽五行災異)의 설에 대해서도 요학(妖學)이라 하여 배척했다.
(5)주요저작:저서에 모공(毛公)과 정현(鄭玄)의 설을 공박한 《시전변망(詩傳辨妄)》과 《이아주(爾雅注)》, 《통지(通志)》, 《본초성서(本草成書)》, 《협제유고(夾漈遺稿)》, 《육격오론(六經奧論)》 등이 있다.

3. 서지사항

중국 남송(南宋) 때인 소흥 31년(1161)에 완성된 200권의 기전체(紀傳體)의 역사서로 〈제기(帝紀)〉 18권, 〈후비전(后妃傳)〉 2권, 〈연보(年譜)〉 4권, 〈약(略) 〉 52권, 〈세가(世家)〉 3권, 〈종실전(宗室傳)〉 8권, 〈열전(列傳)〉 98권, 〈재기(載記)〉 8권, 〈사이전(四夷傳)〉 7권으로 이루어졌다. 상한(上限)은 모두 상고로부터 시작하고 하한(下限)은 어떤 것은 수(隋)까지, 어떤 것은 당(唐)까지이나 모두 전후를 관통하는 것이므로 《사기(史記)》 이후의 또 하나의 기전체 통사이다.
《통지》의 편찬방법은 ‘회통(會通)’의 정신을 잘 체현한 것이다. ‘회(會)’란 횡적인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모든 학술 내용을 한 책에다 모은다는 것이며, ‘통(通)’이란 종적인 것으로 고대부터 아래로 쭉 연결되는 것을 가리킨다. 전체적 입장에서 역사를 보아야 하기 때문에 통사의 체제가 가장 적합한 사서의 체제라 하였다.
《통감(通鑑)》, 《통감기사본말(通鑑記事本末)》과 더불어 송(宋)나라 사학(史學)의 대표작이다. 특히 20략이 주목이 되는데 정초는 자서에서 “신은 천하의 대학술을 총괄하여 그 강목을 분류하여 략(略)이라 명명하였는데, 20략입니다. 수백 년간의 헌장과 학자들의 업적이 모두 여기에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약(略)은 그 대강을 나열한 것”이라고 했는데, 곧 역대의 전장제도와 학술문화를 문류(文類)로 나누고 그 강목을 분류하여 그 변화과정을 탐구한 것이다. 제도와 학술을 논술하였는데, 그 기원과 변화를 기록하였다. 또한 20략은 상고에서 당대(唐代), 어떤 곳은 북송(北宋) 시대까지 다루었다. 정초가 새로 개발한 전문 문화사 영역이라 할 수 있는 문류는 《육서략(六書略)》, 《칠음략(七音略)》, 《교수략(校讎略)》, 《도보략(圖譜略)》, 《금석략(金石略)》의 5략이다.
후세에 당(唐)나라의 두우(杜佑)가 찬한 《통전(通典)》과 원(元)나라의 마단림(馬端臨)의 《문헌통고(文獻通考)》와 더불어 삼통(三通)이라 한다.

4. 내용

《통지》의 〈연보(年譜)〉는 곧 흠정(欽定) 정사의 연표이다. 《통지》의 〈연보〉는 삼황(三皇)에서 당 고조(唐高祖) 무덕(武德) 원년(618)까지 다루었다. 《춘추》 이전은 세보(世譜)로 하여 세계(世系)만 나열하고 《춘추》이후의 사실만 연보로 하였는데, 노은공(魯隱公) 원년부터 연도별로 표를 만들었다.
‘약(略)’은 정사의 서지(書誌)에 해당한다. 〈씨족략(氏族略)〉은 성씨의 내력, 〈육서략(六書略)〉은 한자의 성립, 〈칠음략(七音略)〉은 한자의 음운과 성조, 〈천문략(天文略)〉은 천문학, 〈지리략(地理略)〉은 지리, 〈도읍략(都邑略)〉은 역대 도성에 관한 내용, 〈시략(諡略)〉은 시호, 〈기복략(器服略)〉은 고대 제사의 청동기 관련, 〈악략(樂略)〉은 《시경(詩經)》에 근거한 악제(樂制) 관련, 〈예문략(藝文略)〉은 학술서의 발전과 차이, 〈교수략(校讐略)〉은 서적 교정의 역사, 〈도보략(圖譜略)〉은 서적의 도판, 〈금석략(金石略)〉은 금석학, 〈재상략(災祥略)〉은 재해와 상서, 〈곤충초목략(昆蟲草木略)〉은 곤충식물학, 〈예략(禮略)〉은 예(禮), 특히 오례(五禮), 〈직관략(職官略)〉은 관직의 역사, 〈선거략(選擧略)〉은 인재 등용의 역사, 〈형법략(刑法略)〉은 형벌의 사용, 〈식화략(食貨略)〉은 경제활동의 역사에 대한 기록이다.
20략의 두드러진 성과는 ‘천하의 대학술을 총괄하여 그 강목을 분류한 것’으로서 광범하게 수집한 역대 자료를 종합정리하고 20략으로 구분하여 매 약(略)마다 또 문류를 구별하여 조리를 정연하게 한 것이다. 예를 들어 〈곤총초목략〉은 온 세상의 수많은 종류의 동식물을 초류(草類), 소류(蔬類), 도량류(稻梁類), 목류(木類), 과류(果類), 충어류(蟲魚類), 금류(禽類), 수류(獸類)로 나누어 강목을 설정하여 일목요연하게 분류하였다. 정초는 전장제도와 학술문화를 문류로 분류하여 조리가 분명하게 하여 조사하기 편하게 했다. 그뿐만 아니라 사물의 성질을 판명하는데 도움을 주었으며 각 문류마다 원류와 변화를 고찰하여 그 기본 원리를 파악하여 각기 하나의 학문 분야를 형성하게 했다.
〈씨족략〉에서는 성씨를 32개로 구분하고 각 성씨의 유래를 분석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사람이 출생하면 성을 주었고 토지를 분배하면서 씨를 명하였다. 남자는 씨로 부인은 성으로 호칭하였다. 씨는 귀천을 구분하는 것으로 천한 자는 씨가 없다. 성은 혼인을 구분하는 것으로 동씨이성(同氏異姓)은 혼인이 가능하나, 동성이씨(同姓異氏)는 혼인할 수 없다. 3대 이후 성씨가 합쳐져서 하나가 되어 모두 혼인을 구별하는 기준이 되었고 지리가 귀천을 밝히는 기준이 되었다.”고 정의하였다. 이것은 중국 성씨의 기본원리를 연구할 때 선진의 종법제도 및 그 흥망성쇠를 이해하는 열쇠로서 이용될 수 있다. 정초는 또 씨족학보의 성쇠와 관리 등용제도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명확히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문류를 구분하여 연구하는 방법을 대단히 강조하여, 문류를 구분해야만 전문 학문이 형성될 수 있으며 아울러 각 학문을 자극하여 수준을 제고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음을 지적하였다.
〈도보략〉 1권은 그 당시에 상존해 있던 각종 지도, 천문도, 역사인물상 및 각종 문화제도의 설명도 등 206권과 이미 망실된 각종 도보 175건도 기록하고 있다. 그는 도보와 문장 양쪽을 모두 중시해야만 정확한 실상을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금석략〉 1권은 송대에 출토가 증가한 고대의 기물(器物)과 그것에 새겨진 문자를 저록하고 해석한 것으로 금석명문과 같은 문물사료가 지니는 가치에 주의를 기울여 중국 금석학 확립에 기여했다.
〈곤충초목략〉 2권은 실학 정신을 발양하기 위해 각종 동식물의 명칭 및 그 체형, 생리, 용도 등을 기록한 것이다. 그는 송대 성행한 의리학(義理學)과 사장학(辭章學)도 반대했으며, 서적을 통한 지식은 실천과 결합되어야 확실한 것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재상략〉을 두어 오행상응(五行相應)의 설을 없애고 그 요괴(妖怪)함을 끊었으며, 〈천문략〉에서도 실제로 일어난 하늘의 변화를 기록하여 천문 지식에서 미신적인 것을 탈피하도록 하였다.
〈교수략〉에서는 사료의 수집방법과 교감의 법을 설명하여 중국 교수학에서 첫 번째 전문서가 되었다. 그는 구서(求書)의 방법을 여덟 가지로 설명하였다.
《통지》의 〈제기(帝紀)〉, 〈후비전(后妃傳)〉, 〈세가(世家)〉, 〈종실전(宗室傳)〉, 〈열전(列傳)〉과 〈재기(載記)〉 등은 이 책의 기전부(紀傳部)로서 삼황 때부터 수나라까지의 역사 인물의 전기인데 《사기》에서부터 《남사(南史)》·《북사(北史)》 등 15부의 정사(正史) 및 기타 저작을 가감하여 베낀 것이다. 이 부분은 1차 사료가 아니고 가치도 떨어진다. 그러나 기존 사료를 가감과 개편을 하는 과정에서 정초의 사학사상과 편찬방법이 담겨 있어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
《통지》 기전 부분의 편찬방법은 역사 인물을 제왕, 후비, 봉국제후, 종실, 일반관료와 서민, 비정통왕조의 군신 등의 6가지로 나누고 각각 〈제기〉, 〈후비전〉, 〈세가〉, 〈종실전〉, 〈열전〉과 〈재기〉로 나누어 기록했다. 각 인물은 왕조를 강(綱)으로 삼아 시간순서로 배열하여 전후가 분명하고 연대를 관통하여 조리가 분명해 찾아보기가 편리하다. 또 《사기(史記)》와 《한서(漢書)》 등의 ‘합전(合傳)’ 형식을 바꾸어 일률적으로 분전(分傳)으로 나누었다. 춘추시대 인물에 대한 《통지》의 전기는 대부분 《사기》의 원서에 없었던 것을 다른 사서에서 보충한 것이다. 《통지》의 기전부분은 기존 사서의 내용을 가감하고 개편하여 연대 순서로 서술하여 중복을 피했다. 그러므로 《통지》는 사서 편찬방식에서 성과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상을 통합하면 《통지》는 연보, 20략, 그리고 기전의 3부분으로 구성된 백과전서식 통사라 할 수 있다.

5. 가치와 영향

중국 최초의 기전체 통사인 《사기》의 체제를 계승한 것이지만 포함된 내용은 《사기》보다 훨씬 광범하고 특히 20략의 서술에는 독창적인 견해와 탁월한 식견이 나타나 있다. 청대의 사학자 장학성은 《신정(申鄭)》에서 “정초가 3천 년간의 자료와 책을 바탕으로 하여 독창적인 견해로 저술했으며 역사가의 기풍을 이으면서도 자신의 기준을 마련하여 일가를 이룬 것이라 할 수 있다.”고 평하였다.
중국사학의 발전에도 영향을 끼쳐, 청(淸) 건륭(乾隆) 연간에 조정에서 대체로 《통지》의 체제를 모방하여 《속통지(續通志)》 640권을 편찬하고, 뒤에 다시 《청통지(淸通志)》 126권을 편찬하였는데, 기전과 연보는 생략하고 20략의 체제에 근거하여 20략만 보존한 것이다. 대체로 ‘10통’ 중에서 후대의 저작들은 대체로 《통지》의 성과를 일부 흡수한 것이다.

6. 참고사항

(1)명언
• “씨(氏)는 귀천(貴賤)을 분별하는 것이다. 귀한 사람은 씨가 있으나, 천한 사람은 이름만 있고 씨가 없다.[氏所以别貴賤 貴者有氏 賤者有名無氏]” 〈씨족략(氏族略)〉
• “천하를 다스리는 이에게는 책이 없어서는 안 되고, 책을 저술하는 이에게는 도보(圖譜)가 없어서는 안 된다. 도는 상(象)을 싣고, 보는 계(系)를 싣는다. 도를 만드는 것은 원근(遠近)을 널리 아는 방법이요, 보를 만드는 것은 고금(古今)을 통찰하는 방법이다. 이 때문에 옛날에 기년(記年)을 ‘보’라고 하였다.[爲天下者 不可以無書 爲書者 不可以無圖譜 圖載象 譜載系 爲圖所以周知遠近 爲譜所以洞察古今 故古者記年謂之譜]” 〈연보(年譜)〉
• “천지의 광대함은 그 용(用)이 감리(坎離)에 있고, 사람의 신령함은 그 용(用)이 귀와 눈에 있다. 사람과 금수는 보고 듣는 것이 한가지이다. 성인(聖人)께서 음률(音律)을 제정하신 것은 귀의 밝음을 인도하는 것이요, 문자(文字)를 제정하신 것은 눈의 밝음을 넓히는 것이니, 귀와 눈은 마음에 근본하고 눈과 귀의 밝음은 바깥에서 발현한다. 상지(上智)와 하우(下愚)가 여기서부터 나뉜다.[天地之大 其用在坎離 人之爲靈 其用在耳目 人與禽獸 視聽一也 聖人制律 所以導耳之聰 制字 所以擴目之明 耳目根於心 聰明發於外 上智下愚 自此分矣]” 〈칠음략(七音略)〉
(2)색인어:정초(鄭樵) 통지(通志) 이십략(二十略) 삼통(三通) 속통지(續通志) 청통지(淸通志)
(3)참고문헌
• 通志二十略(中華書局)
• 通志(浙江古籍出版社)
• 〈정초(鄭樵)의 도보학(圖譜學)과 그 영향〉(고인덕, 가천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 〈鄭樵通志之硏究〉(최경옥, 국립대만대학)
• 〈정초 《통지》의 성격과 회통사관〉(최경옥, 부산경남사학회)
【서영수】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0.08.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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