予少謂 蘇子瞻之於文
과 之於詩
와 之於兵
은 天各縱之以神僊(仙)軼世之才
하야 而非世之問學所及者
러니
及詳覽其所上神宗皇帝及代張方平, 滕甫諫兵事等書와 又如論徐州京東盜賊事宜와 幷西羌鬼章等箚子하니
이 嘗病其文不脫
氣習
하니 蓋特其少時
에 沾沾自喜
하야 或不免耳
요 入哲宗朝
하야 召爲
하고 及謫海南以後
에는 殆古之曠達
하야 遊方之外者已
라
然其以忠獲罪하야 卒不能安於朝廷之上하니 豈其才之罪哉리오
予錄其制策二首, 上書七首와 箚子十四首, 狀十二首와 表啓二十六首와 與執政及友人書二十二首와 論七十首와 策二十五首와 序傳十首와 記二十六首와 碑六首와 銘贊頌十五首와 說賦祭文雜著十五首하야 釐爲二十八卷하노라
나는 젊어서 생각하기를 ‘문장文章에 있어서 소자첨蘇子瞻(蘇軾)과 시詩에 있어서 이백李白과 병법兵法에 있어서 한신韓信은 하늘이 각각 신선神仙과 같은 뛰어난 재주를 마음껏 부여하여, 세상에서 묻고 배워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여겼는데,
그가 신종황제神宗皇帝에게 올린 글과 장방평張方平과 등보滕甫를 대신하여 병사兵事를 간한 글과 또 서주徐州와 경동京東의 도적盜賊의 일에 대한 마땅한 조처를 논論한 것과 아울러 서강西羌과 귀장鬼章 등等에 대해 올린 차자箚子를 자세히 읽어보니,
요컨대 한漢나라의 가의賈誼와 당唐나라의 육지陸贄와 비교하여 어떠한지를 알지 못하겠다.
주회암朱晦菴(朱子)은 일찍이 그의 문장이 종횡가縱橫家의 기습氣習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비판하였는데, 이는 다만 그가 젊었을 때 잘난 체하여 스스로 자랑함을 혹 면하지 못한 것을 〈지적했을 뿐이요,〉 철종조哲宗朝에 조정에 불려 들어와 양제兩制가 되고 또 해남海南으로 폄적貶謫된 이후에는 거의 옛날에 광달曠達하여 방외方外에서 노닐던 자와 같았다.
그러나 그가 충성으로 죄를 얻어 끝내 조정에서 편안히 있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그의 재주 탓이겠는가?
나는 제책制策(제과制科의 책문策問) 2수首, 상서上書 7수首, 차자箚子 14수首, 장狀 12수首, 표表‧계啓 26수首와 집정대신執政大臣과 친구에게 준 편지 22수首, 논論 70수首, 책策 25수首, 서序‧전傳 10수首, 기記 26수首, 비碑 6수首, 명銘‧찬贊‧송頌 15수首, 설說‧부賦‧제문祭文‧잡저雜著 15수首를 정리하여 28권卷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