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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軾(1)

당송팔대가문초 소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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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식(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予少謂 蘇子瞻之於文 之於詩 之於兵 天各縱之以神僊(仙)軼世之才하야 而非世之問學所及者러니
及詳覽其所上神宗皇帝及代張方平, 滕甫諫兵事等書 又如論徐州京東盜賊事宜 幷西羌鬼章等箚子하니
要之於漢, 唐 不知其爲何如者
嘗病其文不脫氣習하니 蓋特其少時 沾沾自喜하야 或不免耳 入哲宗朝하야 召爲하고 及謫海南以後에는 殆古之曠達하야 遊方之外者已
然其以忠獲罪하야 卒不能安於朝廷之上하니 豈其才之罪哉리오
予錄其制策二首, 上書七首 箚子十四首, 狀十二首 表啓二十六首 與執政及友人書二十二首 論七十首 策二十五首 序傳十首 記二十六首 碑六首 銘贊頌十五首 說賦祭文雜著十五首하야 釐爲二十八卷하노라
歸安鹿門茅坤하다


나는 젊어서 생각하기를 ‘문장文章에 있어서 소자첨蘇子瞻(蘇軾)과 에 있어서 이백李白병법兵法에 있어서 한신韓信은 하늘이 각각 신선神仙과 같은 뛰어난 재주를 마음껏 부여하여, 세상에서 묻고 배워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여겼는데,
그가 신종황제神宗皇帝에게 올린 글과 장방평張方平등보滕甫를 대신하여 병사兵事를 간한 글과 또 서주徐州경동京東도적盜賊의 일에 대한 마땅한 조처를 한 것과 아울러 서강西羌귀장鬼章 에 대해 올린 차자箚子를 자세히 읽어보니,
요컨대 나라의 가의賈誼나라의 육지陸贄와 비교하여 어떠한지를 알지 못하겠다.
주회암朱晦菴(朱子)은 일찍이 그의 문장이 종횡가縱橫家기습氣習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비판하였는데, 이는 다만 그가 젊었을 때 잘난 체하여 스스로 자랑함을 혹 면하지 못한 것을 〈지적했을 뿐이요,〉 철종조哲宗朝에 조정에 불려 들어와 양제兩制가 되고 또 해남海南으로 폄적貶謫된 이후에는 거의 옛날에 광달曠達하여 방외方外에서 노닐던 자와 같았다.
그러나 그가 충성으로 죄를 얻어 끝내 조정에서 편안히 있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그의 재주 탓이겠는가?
나는 제책制策(제과制科책문策問) 2, 상서上書 7, 차자箚子 14, 12, 26집정대신執政大臣과 친구에게 준 편지 22, 70, 25, 10, 26, 6, 15, 제문祭文잡저雜著 15를 정리하여 28을 만들었다.
귀안歸安 사람 녹문鹿門 모곤茅坤은 쓰다.


역주
역주1 李白 : 701~762. 唐나라의 저명한 시인으로, 字는 太白이고 號는 靑蓮居士이다. 杜甫와 함께 漢詩의 양대 산맥으로 일컬어져 李白은 詩仙, 杜甫는 詩聖으로 불린다. 天寶 元年(742) 가을에 처음 長安에 나와 賀知章(659~744)을 만나 ‘천상의 謫仙人’으로 찬양되면서, 그 명성이 온 세상에 퍼졌다. 그 뒤 玄宗을 알현하여 시문의 재능을 인정받아 翰林供奉으로 임명되고 궁중 시인으로 명성을 날렸다. 《李太白詩集》 30권이 있다.
역주2 韓信 : ?~B.C. 196. 漢나라의 개국공신이다. 高祖를 도와 수많은 싸움에서 승리하여 漢나라 개국에 결정적인 공을 세웠는데, 이 과정에서 절묘한 兵法을 많이 사용해 역사상 가장 뛰어난 兵法家로 꼽힌다.
역주3 賈誼 : B.C. 200~B.C. 168. 西漢(前漢) 때 洛陽 사람으로 시문에 뛰어나고 제자백가에 정통하였으며, 20세에 文帝에게 발탁되어 博士가 되었다가 太中大夫로 승진되었다. 正朔과 服色을 고치고 법률을 제정하며 禮樂을 일으키려 하였으나, 周勃 등 당시 대신들의 시기로 長沙王 太傅로 좌천되었다. 4년 뒤 복귀하여 文帝의 막내아들인 梁懷王의 太傅가 되었으나 왕이 낙마하여 급서하자, 죄책감과 함께 이를 애도한 나머지 33세의 젊은 나이로 병사하였다. 《漢書 賈誼傳》
역주4 陸贄 : 754~805. 唐나라 嘉興 사람으로 諡號는 宣이다. 代宗 大曆 연간에 進士가 되었고 또 博學宏詞科에 급제하였으며 直諫을 잘하였다. 朱泚가 반란을 일으키자 德宗을 따라 奉天으로 피난하였는데, 이때 조서를 起草하여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뒤에 兵部侍郞에 임명되고 中書平章事에 이르렀다가 裴延齡의 참소로 忠州別駕로 좌천되어 그곳에서 죽었다. 奏議에 뛰어나 그가 쓴 奏議를 모아 《陸宣公奏議》라 명칭하였는데, 후대 정치가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唐書 陸贄傳》
역주5 朱晦菴 : 1130~1200. 宋나라의 대학자인 朱熹로, 晦菴은 그의 號이며 字는 元晦이다. 道學과 理學을 통합한 宋學(性理學)을 집대성하여 중국 및 한국의 사상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역주6 縱橫 : 縱橫家를 말한다. 春秋戰國時代에 성행했던 아홉 가지 流派 가운데 하나로, 趨時附勢하여 권모술수의 계책으로 諸侯들 사이에 遊說한 자들을 일반적으로 지칭한다. 蘇秦과 張儀 외에 公孫衍과 鄒陽 등이 여기에 해당되며, 漢나라의 主父偃과 徐樂 등 후세의 說客들도 그 아류로 분류된다.
역주7 兩制 : 宋代에는 翰林學士와 知制誥를 兩制라 칭하였다. 황제의 명령을 ‘制’라 하는데 翰林學士는 內制를 관장하였고 知制誥는 外制를 관장하였다. 蘇軾은 哲宗 元祐 元年(1086)에서 4년(1089)까지 이 두 직책을 겸임하였으므로 兩制라 한 것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식(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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