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揚子法言(1)

양자법언(1)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양자법언(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22. 或問 韓非作說難之書로되 而卒死乎說難하니 敢問何反也 注+韓非作說難之書……敢問何反也:韓非作書, 說難是也. 而西入關, 干秦王, 伏劍死雲陽, 故曰何反. ○咸曰 “韓非, 時作孤憤‧五蠹‧說難之書十餘萬言. 人或傳其書於秦, 秦王見之曰 ‘寡人得見此人, 與之遊, 死不恨矣.’ 秦因急攻韓, 韓王始遣非使秦. 秦王方欲任用之, 而爲李斯姚賈毁害之, 秦王以爲然, 下吏治非, 李斯遺非藥, 自殺. 註謂‘入關, 干秦王, 伏劍死’, 未知其據也.” ○祕曰 “韓非, 韓之諸公子也. 作說難之篇, 本以知說之難而免於咎耳, 而竟下吏死於秦, 卒如其言何相反耶. 司馬遷曰 ‘余獨悲韓子爲說難而不能自脫耳.’” ○光曰 “說, 音稅.” 曰 說難 蓋其所以死乎 注+說難蓋其所以死乎:咸曰 “言非徒知說難, 而不能行說難, 故所以死也.” ○光曰 “宋吳本, 無其字, 今從李本. 探人心而求合, 則無所不至, 適足取死.”인저
혹자가 물었다. “한비韓非는 유세의 어려움을 논한 〈세난說難〉이라는 글을 지었으면서 결국 유세의 어려움 때문에 죽었으니, 감히 묻건대 어째서 자신의 말과 상반됩니까?”注+한비韓非가 지은 글은 《한비자韓非子》 〈세난說難〉이 이것이다. 한비韓非가 서쪽으로 함곡관에 들어가 진왕秦王에게 등용되기를 구하다가 운양雲陽에서 자결하였다. 그러므로 ‘어찌 〈자신의 말과〉 상반되느냐.’고 말한 것이다. ○송함宋咸이 말하였다. “한비韓非가 당시에 〈고분孤憤〉, 〈오두五蠹〉, 〈세난說難〉 등 10여만 자를 지었다. 사람이 혹 그의 글을 나라에 전하였는데 진왕秦王이 그것을 보고 ‘과인寡人이 이 사람을 만나 함께 교유할 수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라고 하였다. 나라가 이 때문에 나라를 급히 공격하니, 한왕韓王이 비로소 한비를 보내 나라에 사신가게 하였다. 진왕秦王이 그를 임용하고자 하였는데 이사李斯요가姚賈가 그를 시기하여 헐뜯으니 진왕秦王이 그 말을 옳게 여겨 옥리獄吏에게 회부하여 한비를 치죄하게 하였다. 이사李斯가 한비에게 독약을 보내어 자살하게 하였다. 이궤李軌에, ‘함곡관에 들어가 진왕秦王에게 등용되기를 구하다가 자결하였다.’고 한 것은 무엇을 근거한 것인지 모르겠다.” ○오비吳祕가 말하였다. “한비韓非나라의 제공자諸公子이다. 한비韓非가 〈세난說難〉을 지은 것은 본래 유세遊說의 어려움을 알아 허물을 면하고자 한 것이었는데, 끝내 옥리에게 회부되어 나라에서 죽어서 끝내 자신의 말과 상반됨은 어째서인가. 사마천司馬遷이 ‘나는 다만 한자韓子가 〈세난說難〉을 지었으면서도 유세의 화를 벗어나지 못한 것을 슬퍼할 뿐이다.’라고 하였다.” ○사마광司馬光이 말하였다. “는 음이 이다.” 양자揚子가 말하였다. “〈한비韓非 자신이 말한〉 유세의 어려움이 아마도 그가 죽게 된 이유일 것이다.”注+송함宋咸이 말하였다. “한비는 한갓 유세의 어려움만 알았지 유세의 어려움을 행하지는 못하였기 때문에 죽었다는 말이다.” ○사마광司馬光이 말하였다. “송함본宋咸本오비본吳祕本에는 ‘’자가 없는데 지금 이궤본李軌本을 따랐다. 사람의 마음을 탐지하여 합하기를 구한다면 못하는 짓이 없을 것이니, 다만 족히 죽음을 취할 뿐이다.”
曰 何也 曰 君子 以禮動하고 以義止하니 合則進하고 否則退하여 確乎不憂其不合也 注+君子……確乎不憂其不合也:咸曰 “猶孔孟方圓鑿, 豈所以憂不合哉.” ○祕曰 “用之行而舍之藏, 何憂之有.” ○光曰 “確乎, 守正不移貌.”
혹자가 말하였다. “무슨 뜻입니까?” 양자揚子가 말하였다. “군자는 에 따라 움직이고 에 따라 멈추니, 도에 합하면 나아가고 도에 합하지 않으면 물러나서 확고하게 정도正道를 지키고, 군주의 뜻에 합하지 않을까 근심하지 않는다.注+송함宋咸이 말하였다. “공자孔子맹자孟子는 〈그 당시 군주와〉 둥근 구멍에 모난 자루처럼 서로 맞지 않았으니, 어찌 군주의 뜻에 합하지 않을까 걱정하였겠는가.” ○오비吳祕가 말하였다. “등용되면 세상에 도를 행하고, 버림을 받으면 도를 간직하고 은거하니, 어찌 근심할 것이 있겠는가.” ○사마광司馬光이 말하였다. “확호確乎는 정도를 지키고 바꾸지 않는 모양이다.”
夫說人而憂其不合이면 則亦無所不至矣 注+夫說人而憂其不合 則亦無所不至矣:祕曰 “夫不以禮義, 而惟以談說, 伺主之顔色, 憂其不合, 則邪佞詭譎, 無所不至, 宜其死也.”리라
군주에게 유세하면서 군주의 뜻에 합하지 않을까 근심한다면 또한 못하는 짓이 없을 것이다.”注+오비吳祕가 말하였다. “예의禮義로써 하지 않고 오직 말로써 유세하여 군주의 안색을 엿보면서 군주의 뜻에 합하지 않을까 근심한다면 간사하고 속여서 못하는 짓이 없을 것이니, 죽는 것이 당연하다.”
或曰 說之不合 非憂邪 注+說之不合 非憂邪:咸曰 “言韓非憂說不合, 爲非乎.” ○祕曰 “或曰 ‘非謂韓非.’” ○光曰 “宋吳本, 作非憂說之不合非邪, 今從李本. 邪, 余遮切.” 曰 說不由道 憂也 注+說不由道 憂也:咸曰 “言說人不以聖人之道, 此君子之所憂.” 由道而不合 非憂也 注+由道而不合 非憂也:譏本自挾詭以說秦. ○咸曰 “言說人以道而不合, 則猶仲尼去魯, 孟軻舍梁, 何憂之有. 韓非則不然, 故所以卒死於說難也.” ○祕曰 “說以道而不見用, 繫乎時君, 己則何憂.”니라
혹자가 말하였다. “군주에게 유세함에 뜻이 합하지 않는 것은 근심할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까?”注+송함宋咸이 말하였다. “한비가 군주에게 유세하면서 군주의 뜻에 부합하지 않을까 근심한 것이 잘못이냐는 말이다.” ○오비吳祕가 말하였다. “혹자가 ‘한비韓非를 이른다.’라고 하였다.” ○사마광司馬光이 말하였다. “송함본宋咸本오비본吳祕本에는 ‘비우설지불합非憂說之不合 비사非邪’로 되어 있으나, 지금 이궤본李軌本을 따랐다. 반절反切이다.” 양자揚子가 말하였다. “군주에게 유세하면서 유세하는 내용이 도를 따르지 않는 것이 근심할 일이지注+송함宋咸이 말하였다. “사람을 유세하면서 성인聖人로써 하지 않는 것이 군자君子가 근심하는 바라는 말이다.”, 도를 따랐다면 군주의 뜻에 합하지 않는 것은 근심할 일이 아니다.”注+본래 스스로 속이려는 마음을 품고서 나라에 유세한 것을 비난한 것이다. ○송함宋咸이 말하였다. “로써 사람에게 유세하되 합하지 않으면 오히려 중니仲尼나라를 떠났고 맹가孟軻나라를 버리고 떠났으니, 어찌 근심할 것이 있겠느냐는 말이다. 한비韓非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끝내 유세의 어려움으로 죽은 것이다.” ○오비吳祕가 말하였다. “도로써 유세하되 등용을 받지 못하는 것은 당시의 군주에게 달려 있으니, 자신이 무엇을 근심하겠는가.”
역주
역주1 (衲)[枘] : 저본에는 ‘衲’으로 되어 있으나, 글자 모양이 비슷하여 잘못된 것으로 보아 ‘枘’로 바로잡았다.
역주2 [其] : 저본에는 없으나, 四部叢刊本에 근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3 (憒)[情] : 저본에는 ‘憒’로 되어 있으나, 四部叢刊本에 근거하여 ‘情’으로 바로잡았다.

양자법언(1) 책은 2019.06.07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