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揚子가 말하였다. “〈묻기만 좋아하고 중니가 대답해 준 말을 쓰지 않은 것은〉 노나라 사람이 참으로 중니에게 묻기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注+송함宋咸이 말하였다. “덕이 있는 자가 성인聖人에게 묻기를 좋아하면 〈성인聖人이 대답해 준 말을〉 곧잘 행하는데, 지금 노魯나라 사람은 비록 묻기는 하였으나 그 말을 쓰지 못하였다.” ○오비吳祕가 말하였다. “지금 노魯나라가 공자孔子의 말을 쓰지 않았으니, 좋아하여 물은 것이 아니다.” 만약 참으로 중니에게 묻기를 좋아했다면 노나라는 동쪽의 주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注+혹자가 송함宋咸에게 “평왕平王이 동천東遷한 뒤로부터 주周나라의 쇠미함이 심해졌다. 그러므로 중니仲尼가 《시경詩經》 〈왕풍王風〉의 〈서리黍離〉시詩를 〈국풍國風〉으로 강등하여 왕王이 아정雅政을 회복하지 못하여 제후국의 임금과 같아졌음을 드러내었다. 그래서 양자揚子가 ‘노魯나라 사람이 중니仲尼에게 묻기를 좋아하였다면 다만 노나라를 동쪽의 주周나라로 만들기가 또한 쉽지 않겠는가.’라고 한 것이다.” 하니, 송함宋咸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렇지 않다. 공자孔子가 ‘만약 나를 써주는 자가 있으면 내가 동쪽의 주周나라를 만들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서주西周의 성대한 도를 동쪽의 주周나라에 다시 일으키겠다는 것이지, 어찌 중니仲尼가 단지 평왕平王의 도道를 일으키겠다는 것이겠는가. 지금 양자揚子의 생각에는 가령 노나라가 참으로 중니에게 묻기를 좋아했다면 노魯나라가 또한 왕실王室을 높이 세워 서주西周의 성대한 도를 동쪽의 주周나라에 다시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니, 어찌 다만 노나라로 하여금 평왕平王의 쇠미한 정사와 같아지게 하겠느냐고 여긴 것이다. 배우는 자들은 마땅히 분별해야 한다.” ○사마광司馬光이 말하였다. “주周나라의 도道를 동쪽(노魯나라)에 일으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