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의자公儀子와 동중서董仲舒의 재주가 높다.注+소卲는 높음이다. 공의휴公儀休는 노魯나라 정승이 되었을 적에 아내가 집에서 길쌈을 하자 아내를 내쫓았고, 채마밭에 아욱이 있자 아욱을 뽑아버려 백성과 이익을 다투지 않았으며, 동중서董仲舒는 강도상江都相이 되었을 적에 휘장을 내린 채 강론하고, 3년 동안 〈글만 읽으며〉 동산을 내다보지 않았으니, 이 두 사람의 재주와 덕이 높고 아름다운 것이다. ○사마광司馬光이 말하였다. “동중서董仲舒가 ‘급급히 재리財利를 구하여 항상 다 없어질까 두려워하는 것은 서인庶人의 뜻이고, 급급히 인의仁義를 구하여 항상 백성을 교화시키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것은 대부大夫의 뜻이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재주가 높은 이유이다.” 가령 이들이 선善을 보고 밝게 깨닫지 못하고 마음을 쓰면서 굳세게 바로잡지 않는다면 누가 능히 이러한 경지에 이를 수 있겠는가.注+주儔는 누구이다. ○송함宋咸이 말하였다. “명明은 밝게 깨달음을 이르고, 강剛은 강직剛直하고 방정方正함을 이른다.” ○오비吳祕가 말하였다. “공의휴公儀休와 동중서董仲舒는 밝게 깨닫고 또 강직하고 방정하기 때문에 이와 같을 수 있었다. 주儔는 ‘누구’이다.” ○사마광司馬光이 말하였다. “누가 능히 이와 같이 이익을 버리고 의義를 취할 수 있겠는가.”
역주
역주1公儀休爲魯相……不與民爭利也 :
公儀休는 春秋時代 魯 穆公의 재상이다. 그는 자기 집 채마밭의 아욱을 뽑아버리고 길쌈하는 처를 내쫓고는 “녹을 먹는 몸으로 백성과 더불어 이익을 다툰다면 백성은 장차 어디에서 삶을 영위하겠는가.” 하였다.(《史記 循吏列傳》)
역주2董仲舒爲江都相……不窺園 :
董仲舒는 漢 景帝 때 학자이다. 동중서는 講席 앞에 휘장을 드리운 채 강학하였기 때문에 제자들 중에 그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가 있었으며, 독서에 심취한 나머지 3년 동안 동산을 내다보지도 않았다고 한다.(《史記 儒林列傳 董仲舒》)
역주3(君)[子] :
저본에는 ‘君’으로 되어 있으나, 四部叢刊本에 근거하여 ‘子’로 바로잡았다.
역주4(爲)[謂] :
저본에는 ‘爲’로 되어 있으나, 四庫全書本에 근거하여 ‘謂’로 바로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