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揚子法言(1)

양자법언(1)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양자법언(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6. 老子之言道德 吾有取焉耳 注+老子之言道德 吾有取焉耳:可以止奔競訓饕餮. ○祕曰 “老子以道, 道其所道, 德, 德其所德. 雖然, 猶未離道也, 故有取耳.” ○光曰 “虛靜謙柔.” 及搥提仁義하고 絶滅禮學하여는 吾無取焉耳 注+及搥提仁義……吾無取焉耳:, 蓋言至理之極, 以明無爲之本. 斯乃聖人所同, 子雲豈異哉. 夫能統遠旨, 然後可與論道. 悠悠之徒, 旣非所逮, 方崇經世之訓, 是故無取焉爾 者, 不得之爲敎也. ○祕曰 “聖人以仁義禮俱道也, 老子以仁義禮別爲一端, 以至崇道德薄仁義, 非禮學, 故無取焉耳. 揚子言老子者, 皆據而言也. 嘗試, 是與聖人之道同也. 故.’ 又稱 ‘老聃曰 諸侯朝天子, 見日而行, 逮日而舍奠, 大夫使, 見日而行, 逮日而舍之類, 皆曰吾聞諸老聃云.’ 此誠學禮之效也. 觀此二章, 老子深於禮者也, 與虛無二篇, 絶不相侔, 豈老子所爲哉. 今道家流, 有黃庭內景之類, 亦曰‘老氏之作也.’ 言, 文辭淺近, 又與虛無二篇不侔矣, 豈非道家爲之名歟. 法之言以亂先王之敎也.’” ○光曰 “音義曰 ‘搥, 都回切. 舊本皆從手, 擲也. 漢書云 「以博局提吳太子.」’”로라
노자老子도덕道德에 대해서 논한 것은 내가 인정하지만注+노자老子는〉 분경奔競을 그치게 하고 탐욕貪慾을 훈계할 수 있다. ○오비吳祕가 말하였다. “노자老子에 대해서 말한 것은 자기가 도라고 여기는 것을 도라 한 것이고, 에 대해서 말한 것은 자기가 덕이라고 여기는 것을 덕이라 한 것이다.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오히려 도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에 인정하는 것이다.” ○사마광司馬光이 말하였다. “허정虛靜하고 겸유謙柔하다.”, 인의仁義를 내던지고 학문學問을 끊어버려야 한다는 것에 이르러서는 내가 인정하지 않는다.注+노자老子가 학문을 끊은 것은 지리至理의 극단을 말하여 무위無爲의 근본을 밝힌 것이다. 이는 성인聖人이 같은 마음이니 자운子雲이 어찌 다르겠는가. 원대한 뜻을 통달한 뒤에야 더불어 도를 논할 수 있으니, 세속의 무리들이 이미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고, 바야흐로 세상을 경륜할 수 있는 가르침을 존숭하기 때문에 취하지(인정하지) 않는다고 한 것일 뿐이다. 취하지 않는 것은 어째서인가. 이로써 가르침을 삼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비吳祕가 말하였다. “성인聖人에 갖추어져 있다고 여기는데, 노자老子를 별도의 한 단서로 삼아, 도덕道德을 높이고 인의仁義를 하찮게 여기며 학문學問을 비난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므로 취하지 않은 것이다. 양자揚子노자老子에 대해서 말한 것은 모두 《도경道經》과 《덕경德經》 2편에 근거하여 말한 것이다. 일찍이 《공자가어孔子家語》를 살펴보니, 공자孔子노담老聃에게 에 대해 물었는데, 성인聖人와 같았다. 그러므로 《예기禮記》 〈증자문曾子問〉에 기록하기를 ‘공자가 노담에게 들으니, 「〈천자天子가 죽고 국군國君이 죽으면 축관祝官이〉 여러 사당의 신주神主를 모아서 〈이것을 선조先祖의 사당에 보관하는 것이 이고, 군주가 나라를 떠날 적에는 태재太宰가〉 여러 사당의 신주神主를 모시고 따라가는 것이 이다. 〈태조의 사당에 제사를 지낼 적에〉 축관祝官이 네 사당의 신주神主를 맞이하니, 신주神主가 사당에 들어오고 사당에서 나갈 때에는 반드시 벽제辟除를 한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노담老聃이 말한 것이다.’라고 하고, 또 ‘노담老聃이 「제후諸侯천자天子에게 조회할 때에 해를 보면 길을 가고 해가 지면 머물러 을 올리며, 대부大夫가 사신 갈 적에 해를 보면 길을 가고 해가 지면 멈춘다.」라고 하였다.’라고 한 따위에 모두 ‘내가 노담老聃에게 들었다.’고 하였으니, 이는 진실로 예를 배운 효과이다. 이 두 을 보면 노자老子에 조예가 깊은 자이다. 《도경道經》과 《덕경德經》 2편과는 전혀 비슷하지 않으니 어찌 노자老子가 지은 것이겠는가. 지금 도가류道家流에 《황정내경경黃庭內景經》 등이 있는데, 또한 ‘노씨老氏가 지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태식술胎食術문사文辭천근淺近하고 또 《도경道經》과 《덕경德經》 2편과 비슷하지 않으니 어찌 도가道家에서 명목으로 삼은 것이 아니겠는가. 옛날 최호崔浩가 일찍이 노장老莊의 책을 읽을 적에 수십 행도 못 읽고 곧 내던지며 ‘이는 이리저리 꾸며대어 속이는 말이니 인정人情에 가깝지 않다. 필시 노자가 지은 것이 아닐 것이다. 노담老聃은 예를 익혔고 중니仲尼가 그를 스승으로 삼았으니, 〈노자가〉 어찌 법도가 아닌 말을 하여 선왕先王의 가르침을 어지럽혔겠는가.’라고 하였다.” ○사마광司馬光이 말하였다. “《음의音義》에 ‘반절反切이다. 구본舊本에는 〈〉 모두 변을 따랐으니, 던진다는 뜻이다. 《한서漢書》에 「장기판을 오태자吳太子에게 던졌다.」 하였다.’라고 하였다.”
역주
역주1 老子絶學 : 《老子》 20章에 “학문을 끊어야 근심이 없을 것이다.[絶學無憂]”라고 하였는데, 聖人의 학문을 버리라는 말이다.
역주2 [無取焉何] : 저본에는 없으나, 四部叢刊本에 근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3 (已)[以] : 저본에는 ‘已’로 되어 있으나, 四部叢刊本에 근거하여 ‘以’로 바로잡았다.
역주4 虛無二篇 : 老子의 道經과 德經을 가리킨다.
역주5 (之家語稽)[稽之家語] : 저본에는 ‘之家語稽’로 되어 있으나, 四庫全書本에 근거하여 ‘稽之家語’로 바로잡았다.
역주6 孔子問禮於老聃 : 《孔子家語》 〈觀周〉에 보인다.
역주7 曾子問有記……老聃云 : 《禮記》 〈曾子問〉에 “내(孔子)가 老聃에게 들으니, ‘天子가 죽고 國君이 죽으면 祝官이 여러 사당의 神主를 모아서 이것을 先祖의 사당에 보관하는 것이 禮이니, 卒哭을 하여 祭祀를 지낸 뒤에 神主를 각각 그 사당으로 다시 모신다.’ 하였다. 군주가 그 나라를 떠나갈 적에 太宰가 여러 사당의 神主를 모시고 따라가는 것이 禮이다. 태조의 사당에 祫祭祀를 지낼 적에 祝官이 네 사당의 神主를 맞이하니, 神主가 사당에 들어오고 사당에서 나갈 때에는 반드시 辟除를 한다 하였으니, 이것은 老聃이 말한 것이다.[吾聞諸老聃 曰天子崩 國君薨 則祝取群廟之主 而藏諸祖廟 禮也 卒哭成事而后 主各反其廟 君去其國 太宰取群廟之主以從 禮也 祫祭於祖 則祝迎四廟之主 主出廟入廟 必蹕 老聃云]”라고 하였다.
역주8 胎食之術 : 胎食은 道家에서 수련하는 방법으로 곡식을 먹지 않고 혀 밑에 고인 침을 삼키는 것을 이른다.
역주9 昔崔浩嘗讀莊老之書……豈設敗法之言以亂先王之敎也 : 《北史》 〈崔浩列傳〉에 보인다.
역주10 (以設)[設非] : 저본에는 ‘以設’로 되어 있으나, 四庫全書本에 근거하여 ‘設非’로 바로잡았다.

양자법언(1) 책은 2019.06.07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